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7월 8일 《통일신보》

 

《인민행렬차표》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람들속에서 인민행렬차라는 말은 너무도 귀에 익은 말이다.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의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적령도와 수령님들의 이민위천의 뜻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인민사랑과 결부하여 부르는 인민행렬차.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 높이 울리며 현지지도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애민헌신을 생각하느라면 위대한 일성주석의 고매한 인민적풍모가 비껴있는 인민행렬차표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뜨겁게 마쳐온다.

주체78(1989)년 9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을 방문한 이딸리아의 언론인 피오레를 만나시였다.

그때 피오레는 장편기록영화 《조선―신비와 영광》을 만든데 이어 수령님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초기혁명활동시기 인민들속에 들어가 활동하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청을 쾌히 들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인민대중은 혁명의 기본동력이라고, 인민대중을 어떻게 각성시키고 준비시키는가에 따라 혁명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때문에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사활적인 문제라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초기혁명활동시기 인민들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별의별 일을 다했다고 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이전에 혁명운동을 할 때 농촌에도 많이 가군 하였는데 농촌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들이 제문을 써달라거나 대서를 해달라고 하면 다 해주군 하였다고, 제사를 지낼 때 《유세차》하는것처럼 제문에는 일정한 틀이 있어 정해진 투로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군중속에 들어가기 위하여 우정 그런것들을 다 배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몇명의 청년학생들과 같이 농촌마을에 나가 활동하시면서 어느 한 집에 류숙하신 일이 있었다.

하루는 집주인이 조부님의 제사날이라고 하며 선생님들이 제문을 써주시면 새날을 잡아 제를 올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차광수도 그렇고 계영춘도 역시 제문에는 통 소경이였다.

바로 그러한 때 볼일이 있어 다른 고장에 가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정이 되여 그 집에 들어서시였다.

그들로부터 전후사연을 자초지종 다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제문에 막혀 쩔쩔 매는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품을 팔겠으니 그대신 값은 톡톡히 내야 한다고 유쾌하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주인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써주신 제문을 놓고 제를 지내게 되였다.

그 일을 놓고 계영춘과 마주앉은 차광수는 오늘일을 교훈으로 삼자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자면 막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것을 꼭 명심하자고 약속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야기를 마치시며 그때 차광수가 바로 말했다고, 혁명가들이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자면 세상에 막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박다식, 다재다능 이것은 인민행렬차를 타고가기 위한 차표와 같은것이라고 하시며 가벼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피오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말씀올리였다.

《참으로 깊은 뜻이 담긴 말씀입니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다박다식, 다재다능 그것은 인민행렬차를 타고가기 위한 차표와도 같다는 말씀은 오직 주석각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명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였다.

인민들을 찾아가신 그이의 발자취는 나라의 북변의 탄광, 광산마을로부터 동서해의 작은 포구와 외진섬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방방곡곡 인민이 있는 곳 그 어디에나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이 어린 인민행렬차는 정력적인 현지지도로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이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애국헌신을 전하며 오늘도 쉬임없이 달리고있다.

 

리 송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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