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8(2019)년 6월 5일 《통일신보》

 

자체의 힘과 기술로 만들어낸 첫 전기기관차

 

주체75(1986)년 2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1차전원회의는 나라의 과학기술을 가일층 발전시키는데서 획기적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회의였다.

위대한 일성주석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우리는 기술혁명도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진행하여야 한다고,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사람은 절대로 만들수 없다던 전기기관차도 우리 자체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전기기관차제작을 시작한것은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위한 과업이 수행되고있던 시기였다.

당시 공업은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식민지적편파성과 락후성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있었으며 3년간의 전쟁에서 입은 혹심한 파괴의 흔적은 도처에 남아있었다. 세계선진수준에 비하면 과학기술도 멀리 뒤떨어져있었다.

그때 전기기관차의 설계를 맡았던 서평양철도공장(오늘의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의 기술집단은 모두 금방 대학을 나온 20대의 청년들이였다.

전기기관차제작공정은 1만 4 000여종에 22만 5 000개가 넘는 크고작은 부분품을 설계하고 가공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이였다.

제작과정에서 가장 걸린것은 고속도차단기였다.

고속도차단기는 전기기관차에 대한 전력공급과 중단을 보장하는 설비로서 운전의 믿음성과 사고방지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것이였다.

수십차례의 실패끝에도 성공을 보지 못하게 되였을 때 보수주의, 신비주의자들은 기다리고있은듯이 《콩을 먹자면 이발이 있어야 한다.》고 떠들어대며 고속도차단기만은 수입해야 한다고 제기해나섰다.

그러나 공장의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기기관차의 뇌수라고 말할수 있는 고속도차단기를 수입하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자기 손으로 전기기관차를 만들었다고 하겠는가.

바로 이무렵 평양에서는 교통운수부문 열성자대회가 진행되였다.

회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통운수부문에서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를 불사르고 기술을 혁신하여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회의후 친히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여 누가 뭐라고 하든지 흔들리지 말고 전기기관차제작을 끝까지 밀고나갈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용기백배하여 오직 앞으로만 나아갔으며 끝끝내 그처럼 힘든 고속도차단기도 만들어내고야말았다.

주체50(1961)년 8월 30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첫 전기기관차를 보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전기기관차를 직접 설계하고 만든 기술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따뜻이 잡아주시며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고, 장하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기기관차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오는것보다 우리 힘으로 만들어내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우리는 일찍부터 자력갱생의 구호를 높이 들고 싸워왔는데 동무들을 공부시킨 보람이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조선에서는 전기기관차를 만들수 없다고 한 외국사람의 말을 상기하면서 우리가 만든 전기기관차를 보니 힘이 솟는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 사람은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의 로동계급과 기술자들은 이렇게 전기기관차를 만들어냈다고, 자력갱생이 제일이라고 만족해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기기관차의 이름을 《붉은기》로 달며 기관차의 앞머리에 휘날리는 붉은기를 만들어 붙일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인민들은 자체로 만들어낸 전기기관차의 기적소리로 조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전기기관차만이 아니라 자체의 힘으로 새로운 공장을 수많이 일떠세우고 뜨락또르와 자동차, 대형양수기와 굴착기를 비롯한 현대적인 운수수단들과 설비들도 만들어냈다.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제힘으로 맞받아나가는 완강한 의지는 모든 기적의 원천이다.

 

본사기자 김 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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