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8월 16일 《통일신보》

 

종양치료에서 파문을 일으킨 의학자

 

붕―

지금으로부터 44년전인 1974년 2월, 자본주의일본땅을 떠나 사회주의조국의 품을 찾아오는 재일동포들을 태운 배가 청진항에 도착하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 동포들을 수많은 군중이 뜨겁게 맞아주었다.

얼마나 고생했는가고, 친혈육, 친형제처럼 함께 지내자며 얼싸안아주는 정다운 사람들속에 안겨 격정의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조국을 찾아오는 당시 17살의 김성언선생이였다.

김성언선생이 조국의 품을 찾아오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리웠던 그는 장차 의학자가 될 꿈을 품고있었다. 의사가 되여 돈없는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자는것이였다.

하건만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일본땅에서 부모들이 막벌이군으로 고역에 시달리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한다는것은 꿈조차 꿀수 없었다.

돈밖에 모르는 세상을 저주하며 설음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던 어느날 그는 몇해전에 조국에 귀국하여 대학공부를 하고있는 한 친구의 형의 편지를 받아보게 되였다.

전반적무료교육제도의 혜택아래 학비라는 말조차 모르고 오히려 장학금까지 받아안으며 마음껏 배우고있다는 편지의 구절을 읽어갈수록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한편 조국의 품에 안긴 그가 한없이 부러웠다.

(가자, 꿈도 희망도 운명도 다 맡아 안아주는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어서 가자!)

이렇게 결심하고 혈육들과 헤여져 조국에 삶의 닻을 내린 그는 의학자가 되려는 애초의 희망대로 해주의학대학에 입학하여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칠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늘까지 해주의학대학 교원, 의학과학연구소 실장, 박사원 원장으로 일해오면서 김성언선생은 의학과학연구사업과 후비육성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이 나날 김성언선생은 수십건의 가치있는 의학과학론문들을 발표하고 《암의 림상》, 《의학염색법》 등 의학도서들과 수많은 교과서와 참고서들을 집필, 번역하였다.

특히 김성언선생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암성질환과 여러 종양조직들에서 렉틴접수체의 분포상특성에 대한 연구는 의학계에 큰 파문을 던지였다.

그가 이룩한 연구성과는 종양의 진단과 감별, 악성도의 평가와 수술후판정 나아가서 종양치료를 성과적으로 할수 있게 하는데서 학술적의의가 대단히 컸다.

그뿐이 아니다.

현대적인 투영기와 만능현미경을 비롯한 각종 교육설비들과 실험기구들을 자체로 마련하여 대학의 교육사업과 과학연구사업에 리용할수 있게 한 김성언선생이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교수, 박사인 김성언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차디찬 일본땅에서 얼음우에 떨어진 씨앗의 신세가 될번 했던 나를 따뜻이 품어안아 인간의 값높은 존엄을 안겨주고 인생의 모든 꿈과 희망을 활짝 꽃피워준 하늘같은 은정에 비기면 너무도 해놓은 일이 적건만 어머니조국은 저를 영광과 행복의 단상에 올려세워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김성언선생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학의 교육과학사업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여 은정어린 감사를 보내주시였다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을 안겨주시였을뿐아니라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대표로 불러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며 격정에 넘쳐 이야기하였다.

자랑은 그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다.

오사까에서 귀국하여 그와 한가정을 이룬 안해 강춘도도 해주의학대학 고려의학부 교원, 과학연구과 지도교원, 대학일군으로 값높고 보람찬 삶을 빛내여왔다.

한없이 은혜로운 어머니조국의 품속에서 그의 안해와 아들, 딸들도 학위소유자들로 자라났다.

키워주고 내세워주고 희망을 꽃피워준 조국의 고마움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오늘도 김성언선생은 패기와 열정에 넘쳐 후대교육사업에 심혈을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홍 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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