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5월 22일 《통일신보》

 

    민족단합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여(9)

 통일애국의 길에 내세워주시여

 

사람은 황혼기에도 인생길을 바꿀 때가 있다.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선생의 경우가 그러하다.

평안북도 정주태생인 문선명선생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고향을 떠나 남조선에서 생활하면서 《통일교》의 교주가 되여 《반공》을 리념으로 내세운 사람이였다.

그가 《반공》으로부터 련공련북에로 극적인 인생전환을 하게 된데는 위대한 일성주석님과 위대한 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의 세계가 뜨겁게 어리여있다.

1991년 11월 문선명선생은 공화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때 그는 70고개를 넘은 몸이였다.

위대한 주석님과 장군님께서는 그의 평양방문에 아무런 불편도 없도록 비행기를 띄우도록 하시고 일가친척들의 비행장마중으로부터 고향방문, 금강산유람에 이르기까지 체류일정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선생의 일행이 공화국을 떠나기 전에는 친히 그를 만나시고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오찬도 함께 하시며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자기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탓하지 않으시고 한량없는 사랑과 믿음을 주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넓으신 도량과 덕망에 감복한 그는 주석님께서 자기의 고향방문신청을 받아들여주시여 평생의 소원을 풀어주신것만도 고맙기 이를데 없는데 친히 만나주시기까지 하시니 너무도 감동되여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통일을 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씀올렸다.

그때부터 문선명선생은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인생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후 문선명선생은 통일애국일념을 안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북과 남이 다 합하여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 되여 일성주석님을 중심으로 온 7천만 민족이 하나가 되여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사.》 하고 주문을 외우군 하였다.

해외교포언론들은 문선명선생의 평양방문소식을 전하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세상에 이 명언을 그 어떤 가책도,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정정당당하게 선언할수 있는 위인은 하늘같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고계시는 위대한 주석님뿐이시다.》, 《반공으로 얼룩진 그같은 사람까지 고향땅에 발을 들여놓게 해주시고 만가지 허물을 탓하지 않고 만나주신 주석님의 넓은 도량과 포옹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우듯이, 지구가 태양에 끌리우듯이 뭇사람들이 그이께 매혹되여 평양으로, 평양으로 달려가는 세상리치를 우리도 알게 되였다.》고 하였다.

문선명선생은 련공련북을 후회하지 않았으며 과거의 70년과 바꾼 조국방문의 7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는 모든 정당은 자기 리해관계를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할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위대한 주석님과 장군님의 민족대단합사상을 옹호하였으며 북남교류사업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남조선출판물들은 《평생을 반공운동에 바쳐온 그가 보여준 행동은 말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였다.》고 하였다.

문선명선생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과 믿음은 그가 로당익장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되였다.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를 지니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이 병환으로 서거하였을 때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울인 그의 노력과 공적을 잊지 않으시고 유가족들에게 조전과 위로의 말씀을 보내시였으며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였다. 그리고 평양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잘 치르도록 조처하시였다.

절세위인들의 믿음과 은정속에 문선명선생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을 위한 길에 생의 흔적을 남긴 애국인사로 사람들속에 전해지게 되였다.

 

본사기자 주 일 봉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