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3월 26일 《통일신보》

 

    민족단합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여 (6)

 위대한 통일경륜에 감복하여

 

재미동포인 김성락목사는 남조선과 해외에서 잘 알려져있는 그리스도교계의 원로였다. 그가 통일애국인사로 오늘도 겨레의 마음속에 살아있게 된데는 한없이 넓은 도량과 인덕으로 그를 민족을 위한 의로운 길로 손잡아 이끌어주신 절세위인의 뜨겁고 다심한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미국에서 살던 김성락목사가 처음 평양을 방문한것은 1981년 6월이였다.

공화국의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를 담은 편지를 남조선과 해외의 여러 인사들에게 보내였다. 그러한 인사들속에는 당시 미국에서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을 하던 김성락목사도 있었다. 그가 평양에 온것은 공화국의 통일립장을 직접 들어도 보고 생전에 고향땅을 한번 찾아보려는 마음에서였다.

하기에 목사는 평양에 도착한 날 자기는 조용히 와서 조용히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로 말하면 1904년 평양 두단리(당시)에서 태여나 숭실중학교를 다니다가 미국류학도 하고 교회의 목사로 오래동안 있으면서 미국정객들과의 안면이 넓은편이였다.

조국통일만이 민족백년대계의 길이라는 지론을 주장해오면서 자신을 해외통일운동의 선두자로 자부하고있던 그는 통일문제에서 공화국의 방안에 동조하거나 말려들지 않는다는 립장에 서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고국방문의 날들이 흐르면서 목사의 완고한 립장과 편견에서는 동요가 일어나게 되였다.

어느날 그는 보통강반을 돌아보았는데 여기가 그전날 자기가 살던 보통강일대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가 보통문우에 올라 주변 땅생김새와 강줄기를 살펴보고 다시 모란봉에 올라 보통강주위를 관망하고 나서야 한겻만 비가 와도 주변이 온통 물천지가 되군 하던 이전의 토성랑이 틀림없다고 수긍하는것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고국의 변모된 현실을 직접 보는 과정에 목사는 마음속에 품고있던 의문과 오해를 풀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김성락목사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차례졌다.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위대한 일성주석님께서 평양에 온 그를 몸소 만나주신것이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목사를 만나신 자리에서 부친이 다니던 숭실중학교에서 공부한 선생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고, 선생이 미국에 가서도 애국활동을 계속하였다고,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에서 사대주의의 력사적근원과 그 해독성, 조국통일을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실현할데 대한 문제, 북과 남이 련합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문제들을 차근차근 말씀해주시였다.

그리고 오찬도 베풀어주시였다. 오찬에 앞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에게 식전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어서 기도를 드리라고 하시였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서까지 관심하시고 뜨거운 은정을 부어주시는 그이의 사려깊은 말씀에 목사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는 잠시 몸둘바를 몰라 주춤거리다가 두손을 마주 잡고 일어나서 기도를 드리였다.

목사는 기도를 마치고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경모와 감사의 정을 담아 위대한 주석님께 머리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지금까지 《하느님》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머리숙여 인사를 해본적이 없다는 그였지만 주석님의 높으신 덕망에 감복하여 그이께만은 허리 굽혀 큰 절을 올리고싶었던것이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목사의 인사를 만류하시며 고국의 향취가 나는 음식물을 한가지라도 더 들어보라고 권하시였다.

김성락목사는 주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힘이 생긴다고 하면서 이번에 공화국의 현실적이고 공명정대한 통일방안을 잘 알게 된것만큼 미국의 정계인사들에게 전달할것이며 해외교포인사들과도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런 사업을 많이 하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번에 조국래왕의 길을 열어 놓은것만큼 앞으로 자주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다음번부터는 부인과 아들딸들을 데리고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 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많이 노력하리라고 믿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무격려하시였다.

김성락목사는 조국방문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일체 보도를 내지 않겠다던 당초의 립장을 바꾸어 출발성명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는 성명에서 민족도 강산도 그 민족 그 강산이되 오늘과 같이 놀라운 현실을 국토우에 가꾸어놓게 된것은 위대한 령도자의 은혜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해 미군이 남조선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분렬된 조국은 일성주석님께서 천명하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대로 통일되여야 하며 하루빨리 그 방안이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숭미사대에 물젖어 공화국의 통일방안에는 절대로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던 완고한 립장에서의 극적인 전환이였다. 반공으로는 민족통일을 이룰수 없다는 심각한 자책과 반성의 결산이였고 련북통일에 여생을 바치려는 비장한 인생전환의 선언이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다음해에 부인과 함께 평양에 온 김성락목사를 또다시 만나주시였으며 8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를 잊지 않으시고 조국해방 45돐을 맞으며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김성락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절세위인을 따르는 길에 민족과 통일을 위한 값높은 삶이 있다는것을 감명깊게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주 일 봉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