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주체107(2018)년 3월 26일 《통일신보》

 

대중적인 문화정서생활기지―평양보링관

 

인민의 웃음에 깃든 은정

 

맑은 물결 출렁이는 풍치 하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천하절경으로 불리우는 대동강반에 각계층 근로자들이 즐겨 찾는 평양보링관이 자리잡고있다.

평양보링관이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기지로 훌륭히 일떠선 때로부터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예나지금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칠줄 모른다.

평양보링관에는 몸은 이역에 살고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조국과 함께 숨쉬며 살고있는 총련 도찌기현 상공인 권영숙동포가정의 애국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당시 일본에서 보링관을 운영하고있던 권영숙동포는 뜻깊은 조국방문의 나날 참다운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고 조국인민들을 위해 보링설비들을 기증하고싶은 마음속충동을 누를길 없었다.

이러한 그의 소박한 심정을 헤아리시고 높이 평가해주신분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은 문화정서생활을 누리도록 하시려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권영숙동포의 지성이 깃든 보링관을 잘 건설하도록 필요한 온갖 대책을 취해주시고 보링관의 위치와 설계, 건설력량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이의 다심한 손길에 떠받들려 짧은 기간에 평양보링관이 국제경기도 할수 있게 훌륭히 일떠설수 있었다.

우리와 만난 김영호 평양보링관 감독은 이렇게 말하였다.

《보링관의 주로가 40개이면 큰 규모라고 할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우리 보링관에서와 같이 40개의 주로를 갖춘 보링관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땅값이 너무 비싸기때문이지요. 때문에 보링관을 건설할 때 1층에 20개, 2층에 20개 이렇게 주로를 따로따로 설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보링관으로 각계층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 외국인들과 해외동포들이 찾아오고있는데 보링관의 규모를 알고 감탄합니다.》

주체83(1994)년 2월 개관된 평양보링관을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인민을 위한 또 하나의 현대적인 문화정서생활기지가 훌륭히 일떠선것이 만족하시여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의 뜻을 이으시여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요구에 맞게 보링관운영을 더 잘하여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의 문화정서생활과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고계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은정속에 오늘 이곳으로는 남녀로소 누구나 찾아와 보링을 즐기고있다.

평양보링관에는 지난 기간 여러 국제경기들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조국의 영예를 떨친 보링선수들만이 아닌 보링애호가들을 비롯하여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다.

보링관을 즐겨 찾는 애호가들로 무어진 보링협회도 조직되여있다. 보링협회에서는 해마다 크고작은 경기를 자주 조직하여 애호가들의 열의를 불러일으키고 기술수준도 향상시키고있다.

김영호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업상용무로 어느 한 나라에 갔을 때 그 나라의 보링관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링관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만이 보링을 즐기고있었습니다. 정말 대조적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우리 보링관에서야 로동자, 사무원, 근로청년들 누구나 아무때나 와서 보링을 하면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들으니 지구상에 보링관은 어디에나 있어도 누구나 찾아와 희열과 랑만에 넘쳐 보링을 즐기는 이 땅의 인민들이야말로 제도복을 타고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갈마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것, 제일 훌륭한것은 응당 우리 인민이 누려야 한다는 절세위인들의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이 꽃피운 행복과 랑만의 웃음소리는 평양보링관의 어디에서나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올 때마다 보링실력이 쑥쑥 …》

 

지난 3월 18일, 평양보링관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링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흥성거렸다.

아침일찍 보링관을 찾는것을 보니 보링을 무척 즐기는 모양이라는 기자의 말에 웃고 떠들며 보링관에 들어서던 사람들이 저마다 《하면 할수록 좋은것이 보링이지요.》, 《보링을 하고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온몸이 거뜬해지는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라며 한마디씩 했다. 그들의 마음은 벌써 보링주로에 가있는듯싶었다.

《오늘과 같은 일요일이면 손님들이 꽤나 많이 오군 합니다. 40개의 주로도 부족해서 몇십분씩 차례를 기다릴 때가 드문하답니다.》

안내하던 신주현 평양보링관 과장이 손님들로 흥성이는 보링관의 여기저기를 소개하며 하는 말이였다.

《우르르 쾅!》

둔중한 보링공들이 연해연방 웅글은 소리를 내며 쉬임없이 굴러가는 보링주로들, 보링장을 메운 사람들이 저마끔 익숙한 동작으로 보링공을 주로우에 굴린다. 쉴새없이 넘어지는 곤봉들…

보링주로에 나서면 누구나 10개의 곤봉을 단번에 넘어뜨릴 자신심이 넘치게 된다. 하지만 역시 생각과 다른것이 보링이다. 자신만만하게 보링공을 굴리였지만 몇개밖에 넘어뜨리지 못한 아쉬움에 머리를 긁적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때 한쪽에서 《야―》하는 탄성이 터졌다. 첫번째 굴리기에서 10개의 곤봉들을 단번에 넘어뜨리는 스트라이크가 나왔던것이다.

보링공을 굴렸을 때 10개의 곤봉이 유쾌한 소리를 내면서 한순간에 넘어질 때의 쾌감이란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법이다. 보링경기를 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는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다.

《올 때마다 보링실력이 쑥쑥 늘어납니다.》

멋진 장면을 보여준 동대원구역에 산다는 김은옥(42살)녀성이 활짝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일요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군 한다는 그는 남편과 초급중학교 학생인 딸과 함께 와서 다른 애호가들과 보링솜씨를 겨루던 참이였다.

알고보니 20년나마 보링을 해온다는 김은옥은 이곳 보링관의 단골손님인 동시에 남편인 김영남과 함께 보링협회에도 든 애호가였다.

해마다 진행되는 2월25일상 보링경기대회에서 여러번 1등을 하였다는 그의 보링실력은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라고 한다.

한번 공을 굴려 10개의 곤봉을 단번에 넘어뜨리는 묘리에 대해 알고싶어하는 기자에게 그는 공을 정확한 자리에 굴리고 일정한 힘과 동작의 유연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스트라이크가 나올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호기심에 끌려 보링관으로 걸음을 내짚었다가 하면 할수록 자석처럼 끌려드는 보링의 세계에 완전히 심취되여 이제는 일요일에 보링을 하는것이 하나의 일과로 되였다는 그였다.

그만이 아니라 많은 보링애호가들이 이곳에서 실력을 쌓아 두각을 나타내고있었다. 지난해 2월25일상 보링경기대회에서 일흔살 난 로인이 1등을 하였는데 그 역시 보링애호가라고 한다.

김은옥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이번에는 그의 딸이 보링공을 잡았다. 오른손에 공을 들고 침착하게 주로우로 공을 굴린다. 그 모습이 보링을 하루이틀 해본 솜씨가 아닌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8개의 곤봉밖에 넘어뜨리지 못했다.

《괜찮아! 잘했어.》 그의 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러면서 《보링은 아이들도 쉽게 배울수 있고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참 좋은 운동》이라며 웃었다.

그들과 헤여진 기자는 35, 36주로에서 보링경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지켜보았다. 흥분과 긴장속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점수를 올리며 와 ― 와 ―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느라니 절로 흥이 났다.

각이한 직종,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경기를 하면서 상대방이 높은 점수를 맞으면 축하도 해주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보링이야말로 즐거움과 랑만을 안겨주는 운동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평양보링관을 찾아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링을 즐기는 남녀로소모두가 청춘이였다.

 

보링은 어떤 운동인가

 

즐거운 유희형태의 재미있는 대중체육종목인 보링은 길이 18. 3m, 너비 1. 66m의 나무로 된 마루의 한쪽에서 공을 굴려 다른 한쪽에 놓인 10개의 곤봉(핀)을 넘어뜨리여 넘어진 곤봉수에 따라 승부를 가르는 실내경기이다.

보링경기는 2명이상이 개인전과 단체전의 형식으로 진행하며 3회전으로 승패를 가른다. 한회전은 10틀로 구성된다. (틀이란 10개의 곤봉을 한번 배렬한것이다.)

매 선수는 한틀에 두번 공을 던질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10번째 틀에만은 3번 던질수 있다.

곤봉 1개를 넘어뜨리면 1점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채점한다. 보링경기기재로는 보링대, 곤봉(핀), 보링공이 있다.

보링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였다는 정확한 력사자료는 전해지지 않고있다. 고대에짚트에서 오늘의 보링과 류사한 유희에 리용한것으로 추측되는 유물들이 1920년에 발굴되였는데 이것이 가장 오랜 력사적자료로 인정되고있다. 그때 발견된 유물들이 대리석으로 만든 공과 핀, 주로라는 점에서 현대보링의 기원으로 보고있다.

이렇듯 보링은 공을 굴려 곤봉을 넘어뜨리는 일종의 놀이로서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말할수 있다.

현재와 같은 형식의 보링경기는 중세기 유럽에서 오락의 한 형식으로 널리 보급되였다. 당시 보링경기는 9개의 곤봉을 가지고 하였으며 19세기 중엽부터 10개의 곤봉을 가지고 하였다.

1952년에 기계적수단으로 곤봉을 세우는 자동식보링대가 발명됨으로써 보링경기는 대중체육의 한 종목으로 급속히 발전하게 되였다. 1952년에 국제보링련맹(FIQ)이 창설된 후 련맹의 주최로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비롯하여 여러 국제경기들이 진행되고있다. 공화국은 2005년 8월에 국제보링련맹에 가입하였다.

 

본사기자 홍 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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