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8월 2일 《통일신보》

민족과 함께 사는 생

 

사람이 세상에 한번 났다가 유명을 달리하는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의 리치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죽음과 함께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월과 더불어 민족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그런 사람도 있다.

전 현대아산주식회사 회장이였던 정몽헌선생이 바로 그러하다.

8월 4일은 정몽헌선생이 별세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온 겨레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해하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사실 그가 이전 현대그룹명예회장이였던 정주영의 다섯번째 아들로 세상에 태여났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유족한 생활을 누릴 운명을 타고난 아이쯤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가 성장하여 현대그룹산하의 어느 한 회사를 맡아 10년만에 좋은 실적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형제들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부지런하고 이악한 기업인이라는 정도가 세상의 평가였다.

이런 그가 민족과 통일을 위하는 량심적인 기업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아버지를 따라 북남경제협력사업에 나서면서부터였다.

그가 아버지 정주영과 500마리의 소를 끌고 평양방문의 길에 처음으로 오른 때는 1998년 6월이였다.

당시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적대시압살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던 때여서 누구나 쉽게 걸을수 있은 길이 아니였다.

하지만 거기에 애국과 통일, 민족의 대단결이 있음을 굳게 확신한 그였기에 아버지를 따라 주저없이 평양길에 올랐던것이다.

이런 그를 공화국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해 분투하는 애국인사로, 북남경제협력의 선두에 나선 기업가로 내세워주었으며 소원대로 북남협력사업에 헌신할수 있도록 온갖 믿음과 특혜를 베풀어주었다.

특히 정몽헌선생과 그 일가에 돌려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배려는 끝이 없었다.

하기에 그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후 아버지에게 돌려주신 절세위인의 따뜻한 보살피심에 감동을 금치 못해 하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을 터치였다.

그리고 2000년 6월 력사적인 평양상봉때에는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결단하신 문제를 북과 남의 정치인들이 실천해나가는것》이라고 하면서 《저는 어떻게 하나 합의하신 문제들을 하나하나 실현하여 력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합니다.》는 결의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절세위인의 넓은 포옹력과 덕망에 깊이 매혹된 정몽헌선생은 그후에도 여러차례 북을 방문하여 금강산관광과 개성공업지구건설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사업들을 폭넓게 벌려나갔으며 현대가 변함없이 북남경제협력사업에 앞장설것을 다짐하였다.

이런 그를 정치적으로 박해하고 인간적으로 모해하다 못해 죽음에로 몰아간것은 다름아닌 친미반통일세력이였다.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날로 높아가는 민족적화해와 단합, 통일기운에 당황망조한 당시 《한나라당》을 위시한 극우보수세력과 남조선의 공안당국은 이른바 《대북송금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해내고 그를 비롯한 진보개혁세력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을 여기에 걸어 대대적으로 구속, 조사하였으며 보수언론들을 총동원하여 이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한 비렬한 여론전을 벌렸다.

결국 정몽헌선생은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과 반통일무리들의 집요한 정치, 경제적압력과 무근거한 인신공격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민족단결, 통일애국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친 기업가를 금방석에 앉히지는 못할망정 온갖 비렬한 수단과 방법을 다해 죽음에로 몰아간것은 두고두고 용서받을수 없는 범죄행위가 아닐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것은 동족을 모해하고 압살하려는 남조선반통일대결세력의 못된 속심이다. 그것으로 인해 겨레의 애타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북남관계가 여전히 대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으며 금강산에 가보고싶어하는 남녘겨레의 소망도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반통일세력이 아무리 훼방을 놀아도 통일에로 향한 민족의 힘찬 발걸음을 멈춰세울수 없다. 북과 남의 겨레는 6. 15의 기치높이 거족적인 통일대진군을 더욱 힘차게 벌려 화해와 통일의 그날을 반드시 앞당겨오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박 철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