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3월 2일 《통일신보》
일본의 과거죄악은 반드시 결산되여야 한다
3. 1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94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1919년의 3. 1인민봉기는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하에서 모진 수모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조선민족의 쌓이고쌓인 울분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합병》후 조선을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버린 일제의 중세기적공포정치의 총검밑에서 우리 민족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권리와 재부를 강탈당하고 끝없는 고통을 느끼며 수난의 시대, 암흑의 시대, 기아의 시대에서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을 그대로 감수할수 없어 우리 민족은 마침내 전국적범위에서 독립만세시위에 떨쳐나섰던것이다.
3. 1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시작되였다. 이날 평양에서는 낮 12시에 종소리를 신호로 수천명의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이 장대재에 있는 숭덕녀학교(당시) 운동장에 모여들어 《독립선언서》를 랑독하고 조선이 독립국가라는것을 엄숙히 선포한 다음 《조선독립 만세!》,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웨치면서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리였다.
시위대렬이 거리로 밀려나오자 수십만 군중이 이에 합세하였다.
서울에서도 반일독립만세시위투쟁이 벌어졌다.
평양과 서울에서의 시위를 발단으로 봉기는 3월중순에 이르러 전국의 13개 도를 모두 휩쓸고 만주와 상해, 연해주, 하와이 등 해외에 있는 조선동포들에게까지 파급되여 전민족적인 항쟁으로 번져갔다.
민족적량심을 가진 조선사람들은 직업, 신앙, 남녀로소의 구별이 없이 누구나 다 봉기에 참가하였다.
3. 1인민봉기는 탁월한 수령의 령도를 받지 못한탓에 비록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일제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에 항거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은 물론 해외조선인거주지역들에서 거세차게 일어났던 3. 1인민봉기는 우리 민족의 투철한 자주정신과 꺾이면 꺾일지언정 굴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 강의한 투쟁정신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한 애국애족의 장거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흘러 한세기를 가까이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을 등에 업고 되살아난 일본은 과거 저들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특대형범죄들에 대해 사죄와 배상은커녕 오히려 미화분식하면서 또다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겠다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
《야스구니진쟈》참배와 력사외곡책동으로 군국주의부활을 재촉하다 못해 최근에는 일본군성노예범죄를 인정한 《고노담화》를 재검토할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으면서 과거 저들이 저지른 반인륜적범죄를 합리화하는 파렴치한짓을 공공연히 벌리고있는것이 바로 일본이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평화》의 빛갈로 위장한 허물을 완전히 벗고 독기서린 이발을 드러내며 재침야망실현에 로골적으로 나서고있다.
최근 일본당국이 헌법개악을 통해 집단적자위권행사를 허용하고 《자위대》의 명칭을 《국방군》으로 변경시키며 《해외일본인구출》의 미명하에 《자위대》의 무기사용기준을 완화하려 하고있는것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실례이다.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별을 잃고 날뛰는 일본의 첫번째 공격목표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조선반도이다.
조선반도에 대한 일본의 재침책동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지금 일본은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적극 추종해나서면서 한쪽으로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강탈책동에 열을 올리고있다. 얼마전에 있은 그 무슨 《다께시마의 날》행사에 지난 시기와는 달리 일본정부급관리가 참가한것은 그들의 령토강탈야망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그대로 실감하게 한다.
력사를 부정하며 전쟁의 길로 줄달음치는자들은 징벌과 파멸을 면할수 없다. 이것은 력사의 법칙이며 진리이다.
지정학적위치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지만 조선의 지위와 국력은 오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다.
일본이 패전의 쓰디쓴 교훈을 망각하고 끝끝내 재침의 길에 나선다면 우리 민족은 쌓이고쌓인 증오심과 분노를 총폭발하여 백년숙적 일본으로부터 과거의 죄악을 반드시 결산하고 3. 1인민봉기자들의 원한을 풀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김 응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