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상 글
卢志明
~中国上海 上班族 ~
화면을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아나운서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자한당은 그야말로 "기생충"이다. 얼마전 프랑스 칸느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그 "기생충"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찬 민족"에 기생하여 그야말로 흡혈귀 처럼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민족의 피를 아주 쪽- 쪽- 빨아처먹는 아주 진짜 재수없는 기생충이다. 자한당의 조상을 얼마전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밝힌 바 있어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다시한 번 재론하면 1945년 9월 8일 일본의 항복을 받으러 조선 인천항에 들어오는 미군에게 그 당시 식민지 정부의 일본의 경찰 수장 고즈키 요시오 중장은 "조선인들이 미군을 공격할 수 있으니 우리 일본식민지 경찰이 보호해 드리겠소"라고 뇌까린 바 있다. 이러자 미군 하지준장은 고즈키 요시오의 청을 받아들였다. 식민지 일본경찰과 조선인 친일파들은 일본패전(8.15)후 숨죽이고 있다가 때는 이때다 싶어 다시 조선에서 득세하기 시작하엿다. 사실 일본은 조선에서 무사히 어떻게 탈출할까 매우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한시름을 놓았다. (부르스 커밍스 1943.9.5 미국출생 /미국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 정치학자 의 말) 그 상황이 즉 1945.9.8 미군이 인천항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그 친일파 후손들의 만용이 그야말로 뻔뻔스럽게도 얼굴에 철판을 깐 그 쿠린내나는 친일파들의 모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잠이오지 않아 미치겠다.. 지금 이 중심에는 그야말로 아이큐 20 닭대가리 들만 모여서 세상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 할 줄 모르고,지랄 발광만 할 줄 아는 병신들이 육갑을 떨고있는 집단, 그가 바로 자한당이다. 그 당시 친일파들을 청산했어야 하는데...... 그때 우리가 친일 청산을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미군정의 목표는 오로지 조선반도를 분단시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엇기 때문에 조선반도에 사는 민중들의 안전과 미래는 추호도 안중에도 없었다. 즉 미군정은 일본 식민지 정부의 조직을 고스란히 인계인수 하여 조선을 통치하려 했다 . 그러자 백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댓가가 ???? 이 것이란 말인가???? 즉 급기야는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소식을 듣고 민중들은 극렬하게 들고 일어났다.. 미국의 마틴히트 렌즈버그 오레건주 루이스 앤드 클라크 대학교수의 말에 의하면 제일먼저 봉기를 일으킨 지역이 오늘날 보수골통 수구 수전노들이 자타가 텃밭이라고 자부하는 "대구"이다. 그 곳 대구에서 1946년 10월1일 시위대 1명이 미군과 경찰이 쏜총에 사망한다. 성난 민중은 경찰 10명을 죽여버리고 친일파 고위관료 집들을 공격한다. 이는 1592년 왜놈이 부산 동래에 침입해 오자,역시 닭대가리 20 밖에 안되는 또라이 선조는 지금의 광화문 앞에서 명나라로 도망갈 가마를 꾸린다. 이 때 성난 백성들이 가마에 돌을 던지면서 하는말 "우리는 어떻하라고--??" 그리고 성난 민중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경복궁 근처의 고관대작들의 집에 불을 질러 버린다. 훗날 이 불을 왜군이 질렀다고??? 훗날 선조실록에 적혀 있는데 지나가는 개새끼도 웃을 일이요, 잠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어서 경북 전체, 그리고 경남 진주에서는 10월 7일 미군이 쏜 총에 시위대 2명이 죽었고, 마산에서도 수많은 민중이 경찰의 총에 죽었으며 이어서 부산은 시위가 너무커서 미군이 주둔해야 했다. 10월 중순에는 충남에서, 10월 말에는 전남으로 번졌으며, 11월초 2주 동안은 47개 시군에 봉기가 일어났다. 이 봉기는 조선 건국후 동학혁명(1894년 고종31년) 이후 최대의 봉기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역시 미국의 대 한반도 기본정책(분단)은 바꾸어 놓지 못했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느냐 하면, 자한당의 조상의 탄생배경을 설명하려 한다. 이렇게 민중들이 극력 반항을 하자 미군정이 생각해 낸게 바로 어용정당을 만들어서 일반 민중들의 자주 독립의지를 꺽어 버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자한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누구의(?)어용정당인지도 모른다.... 그 어용정당이 바로 "한국 민주당"(한민당)인데 이들은 모두 친일파 대지주, 사업가출신, 식민지 시절 고위관료 출신 등 (무언거 지금도 짚히는데가 있지 않은가?)식민지 시절에 국민의 피를 쪽쪽 빨아쳐먹던 자들이다. 미군정은 이들 한민당 간부와, 식민지 시절 고위 관료 출신들을 미군정 자문위원으로 대거 위촉하고 정치를 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한민당의 탄생 부터가 이미 친일이라는 DNA를 갖고 태어났다. 그러니 아가리만 벌리면 누가 친일 후손이라고 안할까봐 똥구먹에 불이 붙었는지 젖 쳐먹던 힘까지 다해서 악다구니를 해 댄다. 요즈음 조선의열단 문제로 말들이 많은데, 냉철히 생각해 보자. 대구 경북지역이 옛날 부터 위에서 보듯이 민족주의자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민족주의 왕성 지역이었다. 지금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대구 경북지역이 민족주의 전통이 뿌리 깊었던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하는 것이다. 어쩌다 대구 경북이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일이 지만.... 한민당은 그 후로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기득권에 기생(충)하여 살아남은 즉 천항폐하 만세!, 위안부 모집, 학도호국단 모집까지 온갖 매국행위는 밥처멱듯 해 대던 쿠린내 나는 언론(?) 그야말로 보수골통들의 대변인 역할 만 하는 일정한 주의 주장도 없는 언론(?,사살 언론도 아니다. 하나의 동물 근성을 갖고 제배만 채우는 찌라시 제조기)들과 야합하여 오늘날의 자한당으로 까지 연명해 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43제주" "4.19학생의거". "5.18 광주의거"이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자한당 것들에게 경고한다.! 또 다시 외세를 등에 엎고 음흉하게 어둠속에서 허튼 수작을 부리다가는 이제는 그야말로 제명에 못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지어다. 바로 지금, 오늘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특히 지금 이 싯점은 우리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을 할 수 있는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살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있다. 추신 : 기생충은 두가지 무리네요 자한당, 골통언론(?) 기생충을 박멸하여 건강한 우리 조국을 건설 합시다. 상하이에서... 늦은밤에 통일을 꿈꾸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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