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7(2008)년 2월 17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수원지로 변한 샘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위인으로서의 천품을 타고난 위대한분이시라는것을 더욱 뜨겁게 절감하게 됩니다.》

주체58(1969)년 어느날이였다.

그날 한 농촌마을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살림살이형편을 알아보시던 과정에 수원지자리를 잡지 못하여 집집에 수도를 놓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아픈 심정으로 농민들을 둘러보시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오늘은 왔던김에 자신께서 수원지자리를 잡아주겠다고 하시며 그전에 이곳에 양수장물주머니를 만들 때 거기에 샘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먼저 그리로 가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샘구멍이 있는 양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샘터에 이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샘구멍을 한동안 유심히 살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여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는 아무래도 모자라겠다고 하시며 양우리앞에도 가보자고 하시였다.

얼마후 양우리앞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변의 지형을 둘러보시면서 그전에 여기에 자그마한 샘줄기가 하나 있었겠는데라고 조용히 외우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나서 여기가 옳은것 같다고, 아무리 가물 때에도 여기는 내내 젖어있었다고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10여년전에 이곳에 저수지와 양수장물주머니를 만들 때 자신께서 지질상태를 연구해보았는데 이 고장의 세 골짜기가운데서 양우리가 있는 방향의 골짜기밑으로 흐르는 물량이 제일 많았다고 설명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농민들의 기억을 10여년전에로 이끌어갔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고장농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려고 저수지와 양수장물주머니를 만들어주도록 하신것은 주체46(1957)년 봄이였다. 그러고보면 그이께서 샘구멍을 봐두신것도, 골짜기어구의 샘줄기를 봐두신것도 그리고 아무리 가물이 심할 때에도 양우리쪽의 골짜기만은 내내 젖어있었다는것을 기억해두신것도 바로 열두해전의 일이였다.

그런데 그것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고계시였으니 그이를 우러르는 농장원들의 감사의 정이 얼마나 북받쳐올랐으랴.

그후 옛말에 잘 나오던 샘구멍도 잘못 다치면 물이 적어진다고 하시며 기술자들과 의논하여 잘 뚫어보라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길이 덜 미치던 샘터가 수원지로 변하고 수도화가 실현되는 희한한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으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샘구멍이 물동이를 없애주었다.》는 이야기가 세월을 이어 가슴뜨거운 전설로 전해지게 되였다.

본사기자 김 동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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