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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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기도당책임비서는 반짐차에 얼군 통돼지와 말린 국수사리, 당과류와 같은 후방물자를 싣고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 당도하였다.

어슬무렵이였다.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살을 에이는것 같은 찬바람이 싸락눈을 그의 얼굴에 휘뿌렸다.

수수한 검은토색솜옷을 입고 작업모를 눌러쓴 윤정기의 차림새는 현장에 내려온 큰 간부가 아니라 어딘가 로동자의 체취가 푹 밴 직장일군 비슷했다. 수소정제탑제작전투가 벌어지는 제관직장현장에 당분간 틀고앉을 잡도리로 세면도구를 넣은 가방까지 들고 내린 그는 반짐차를 후방공급과쪽으로 보냈다.

눈이 발목을 슬치는 구내길을 따라 제관직장쪽으로 얼마쯤 가던 윤정기는 마주오는 소녀애를 만났다.

추위에 량볼이 얼어 복숭아빛이 된 소녀애는 울고있었다.

윤정기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길을 피해서는 소녀애를 멈춰세웠다. 보아하니 기업소종업원의 딸이 분명한데 목수건도 없이 추운날 저녁에 울고있으니 그대로 지나칠수 없었다.

《얘야, 넌 어데 갔다 오느냐?》

《아버지한테요. … 저녁밥을…》

《그래 용쿠나. 아버지가 어느 직장에 있느냐?》

《제관… 직장이예요.》

소녀애의 가는 목소리에는 설음이 가득 실려있었다.

윤정기는 자못 놀라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아버지이름이 뭐냐?》

《진 … 태범입니다.》

《작업반장이지?》

《예, 용접하는 …》

소녀애가 쭈밋거리며 대답했다.

윤정기는 생각났다. 며칠전 제관직장사무실에서는 수소정제탑생산기술협의회가 열렸다. 윤정기는 룡성기계의 조창주지배인과 기사장이 주관하는 그 협의회에서 그닥 참녜하지 않고 지배인옆에 놓인 걸상에 앉아 협의회흐름을 지켜보고있었다.

서두에서 그는 제관직장사무실에 가득 모인 기업소안의 유능한 설계가들과 공정기사, 기술자, 기능공들에게 수소정제탑제작의 의의와 중요성을 말하였다.

흥남비료가스화공사의 운명이 자기들에게 달려있다는것을 자각한 룡성기계의 일군들과 기술자, 기능공들은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결사관철할 일념밑에 대용합금강질을 찾아내고 1만톤프레스도 찍어내기 어려운 수소정제탑의 반구형경판제작을 위한 독특한 형타장비안도 탐구했다.

사람들의 창조적열의와 지혜로 제작공정상 부딪칠 여러가지 난문제들을 해결하며 흘러가던 기술협의회는 마감에 이르러 어려운 고비에 부닥쳤다. 수소정제탑의 동체며 반구형경판을 정밀하게 붙이는 용접문제였다.

《도당책임비서동지 … 다른건 다 우리 룡성기계 힘으로 할수 있는데 …》

생산기술문제로 늘 신경을 써가지고있어 그런지 두드러진 앞이마를 내놓고는 눈확과 볼편이 움푹 꺼져들어간 기사장이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정밀자동용접기만은 …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윤정기는 기사장이 자동용접기수입문제를 딱해서 에둘러 말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룡성기계련합기업소의 모든 직장들과 공정들에서 제기되는 생산기술문제들에 한해서는 귀신이라 할 정도로 휑하니 알고 능란하면서도 원만하게 대응해나갈줄 아는 기사장의 발언에 반대의향을 표시할 사람은 있을상싶지 않았다.

그러나 윤정기는 기사장의 제의에 선뜻 대답할수 없었다. 주머니에 외화를 듬뿍 차고앉아 협의회지도를 하는것이 아니였으며 당장 그런 정밀기계를 수입한다는것이 실무적으로나 자금상으로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제관직장사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서렸다.

성에불린 창문쪽에 눈길을 쫓고있던 지배인 조창주는 피로가 몰린 거밋한 얼굴을 돌렸다.

《이보오, 기사장동무 … 》

조창주지배인의 목소리는 느릿했으나 랭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사장을 탓하려는 어감도 없었다.

《우리가 정밀자동용접기를 필요로 하고 욕심낸지는 오래됐지. 그것만 있으면 제관용접공들이 가스와 고광에 시달리지 않고도 어려운 대상설비용접작업을 쉽게 할수 있고 감마촬영을 별로 해보지 않아도 용접부위정밀도를 보장할수 있다는걸 왜 모르겠소. 그렇지만 값이 엄청나게 비싸 나라에 손을 내밀지 못했소. 기사장도 생각다못해 그 말을 꺼낸것 같은데. …》

윤정기는 조창주의 복잡한 심중을 알고도 남았다. 공장, 기업소들이 숨죽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조창주는 함경남도안의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필요되는 발전설비들과 국가적으로 제기되는 중요대상설비들을 생산보장하는데서 난관에 난관이 겹쳤지만 그 모든걸 자체의 힘으로 해냈다. 자력갱생이 말그대로 체질화되였다고 할수 있는 지배인이였다. 그런데 기사장이 수입기계를 요구하고있으니 난처할만도 하였다.

조창주가 한숨을 톺고 계속하려는데 기사장이 불손하달 정도로 말허리를 잘랐다.

《지배인동지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우리 룡성기계가 자력갱생의 정신력이 높은 기업소라는 고귀한 칭호는 장군님께서 주신것이고 우리는 지금껏 장군님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힘껏 노력해왔습니다.》

기사장의 목소리는 격하게 들렸고 우묵한 눈확에서는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수소정제탑은 초고압응축설비입니다. 가동시 압력이 400기압을 오르내리는 이 숨쉬는 합금강질동체나 반구형경판용접은 반드시 정밀자동용접기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 일반수동용접을 하여 어떤 미세한 기포나 결점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단순히 용접오작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무서운 폭발을 초래할수 있습니다. 수소정제탑이 갈탄가스화공사에서 심장부라는걸 고려할 때 만에 하나라도 결점을 낳을수 있는 재래식용접작업에 매달리는것은 기사장으로서 허용할수 없습니다.》

《이보오, 기사장.》

조창주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높았으나 질책이 아닌 타이름의 어조가 짙었다.

《초고압수소정제탑을 엄밀한 기술적요구대로 제작해야 한다는건 기사장동무만이 아는게 아니지 않소. 그만큼 힘든 화학설비기때문에 그걸 타개하자구 다들 협의회에 모여 궁리를 짜내는거구. 흥분하지 말구 … 옹졸하게스리 후과의 책임을 앞세우지 말구 의논해보기요. 외국에서 재세를 부리구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사오기도 어려운 수소정제탑을 과분하게도 우리 기업소가 척 맡았는데 … 수입설비를 제작한다고 수입기계를 사내라고 하는것은 아무래두 우리 룡성기계자존심에 허락치 않는구만. 안 그렇소, 기사장?

사실말이지 지난 시기 룡성기계가 최신형압축기건 합성탑이건 당에서 만들라면 못 만든게 있소?! 자존심을 굽히구 그 대상설비는 못할것같습니다 하구 말한적이 한번도 없단 말이요. 자존심이 하늘같았고 기개가 높았소. 그래 그 한번도 손상당하지 않은 자존심이 누구 자존심이요? 기사장과 지배인인 나와 여기 모인 기술자, 기능공들, 룡성기계로동계급의 자존심이 아니겠소. 기사장, 정밀자동용접기가 없다고 허리를 굽히자오?》

《아, 아니 …지배인동지, 또 날 옴짝 못하게 정통을 찌르는구만요.》

기사장은 손을 내저으며 우묵한 눈에 열적은 웃음을 띠웠다.

《기사장동무의 정통이 어데요?》

윤정기가 걸상등받이에 한팔을 얹어 엇비스듬히 몸을 돌리고 넌지시 물었다.

《다른 나라 기술에 머리숙이는걸 죽기보다 싫어한다는거지요. 우리 지배인동지는 내 성미를 잘 아는지라 늘 거기를 찌르지요. 됐습니다, 지배인동지. 순 룡성기계 손으로 수소정제탑을 만들어봅시다.》

《이제야 제대로 됐군.》

조창주지배인은 벙글써 웃었다.

《우리 기사장이 결심했으니 수소정제탑은 만문한 송아지고긴셈입니다.》

《가만, 지배인동무.》

윤정기는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수소정제탑을 지내 우습게 보지 마오. 정밀자동용접기가 없이 동체와 경판모자를 때붙일수 있겠는지 용접기능공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창문쪽벽에 빼조롬히 붙여놓은 걸상에 앉았던 용접기능공들중에서 중키에 다부지나 등이 약간 굽을사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어질어보이는 눈길을 다른 기능공들에게 돌렸다. 량해의 눈길이였다. 아마도 이런 관건적인 시각에 앞채기를 해나서서 인끔을 올리는것 같은 미안쩍은 감정이 그를 어줍게 만든것 같았다.

기계공장에서 로동생활체험이 깊은 윤정기는 공명을 멸시하고 말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현장기능공들의 소박한 심리를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기술협의회에서는 말없는 진중성보다 주저를 모르는 결패있는 주장이 더 큰 선동적힘을 가지는것이다.

윤정기는 용접기능공을 향해 고무의 눈길을 보냈다.

《진태범이라고 … 용접반장입니다. 용접을 20년 했습니다.》

조창주지배인이 도당책임비서에게 몸을 기울이고 나직이 소개했다.

윤정기는 상반신을 앞으로 숙였다.

《태범반장동무, 어서 말해보오. 만문한 송아지수소정제탑을 료리할수 있겠는가?》

《있습니다. 도당책임비서동지, 우린 제관공들 손재간으로 수소정제탑을 등탈없이 무조건 만들어내겠습니다. 정밀자동용접기가 없이도 됩니다. 우리 용접공들이 동체안에 들어가 세밀용접을 해내겠습니다.》

《다른 용접기능공동무들도 태범반장과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용접기능공들의 목소리가 제관직장사무실 천정을 드르릉 울리였다. …

윤정기는 인상깊었던 진태범반장의 딸애한테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이름이 뭐냐?》

《진미화예요.》

윤정기는 솜옷깃속에 둘렀던 목도리를 뽑아내여 소녀애의 머리를 감싸주었다.

《근데 미화야, 왜 우느냐?》

《선생님이 몇번이나 당부했는데 … 아버지는 학부형총회에 못 간다고 …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엄마는 … 작년 봄에 …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하구 둘이 살고있느냐?》

《예.》

《아버지저녁밥은 네가 지어오구?》

《예.》

《몇살이냐?》

《아홉살입니다.》

《정말 용쿠나. 아홉살인데 집안살림을 다 하구.》

윤정기는 소녀애를 껴안고 볼에서 눈물자욱을 닦아주었다.

《미화야, 나하구 같이 학교에 가자.》

소녀애는 눈이 동그래졌다.

《할아버지는 누구십니까?》

《나 말이지… 난 진태범반장과 가까운 사이다. 아버지랑 제관용접공들과 같이 중요한 설비를 만든다. 아버지는 그래서 바쁘단다. 어서 학부형회의에 가보자.》

윤정기는 소녀애를 데리고 눈덮인 밭사이 지름길로 걸음을 다그쳤다. 차디찬 맞바람이 싸락눈을 휘몰아와 숨이 떡떡 막혔다.

흰 회벽칠을 한 길다란 단층교사가 자리잡은 소학교 운동장으로는 뒤늦은 두세명의 학부형들이 눈바람을 피해 종종걸음을 다그쳐 들어가고있었다. 학부형회의들이 이미 끝났는지 불빛이 비치는 교실이 몇개 없었다.

윤정기가 미화의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서는데 날씬한 몸매의 처녀선생이 학적부를 껴안고 마주 걸어나왔다. 아마 학부형회의를 끝내고 교원실에 돌아가려던 참인것 같았다.

《내 미화의 외할아버지벌되는 사람입니다.》

윤정기는 어지간히 놀라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처녀선생에게 말했다.

《신흥군에서 오셨는가요?》

《예, 엊그제 거기서 왔지요. 얘아버지가 일이 너무 바빠놔서… 》

《룡성기계 학부형들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요.》

처녀선생은 얼굴에 상냥스런 웃음을 지으며 인정 절반, 나무람 절반하고는 덧붙였다.

《미화학생은 어머니까지 안계시니 학부형회의에 오려니 하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을 봐서 학교지원사업은 못하는거고 공부를 잘하는것만도 기특하지요.》

《엄마를 대신해 동자질도 하고 밤패는 아버지한테 저녁밥도 가져다준답니다.》

윤정기는 미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는척 했다.

《근데 미화의 외할아버님은 내가 어데서 딱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요. …》

처녀선생은 여전히 아리숭한 표정이였다.

《허, 신흥군의 촌령감을 어데서 봤겠소. 선생님, 기왕 학부형회의에 왔는데 뭘 도울게 없겠습니까? 교실을 꾸린다든가 학교를 지원하는 사업에 우리 미화네도 좀 이바지합시다.》

《그게 정말이세요?!》

처녀선생은 기뻐서 하마트면 학적부를 떨어뜨릴번 했다.

윤정기는 처녀선생이 권하는 작은 걸상에 불편스레 앉아 교실안을 둘러보았다.

《칠판이 검은색인것부터 틀렸구만. 풀색이 눈에 좋습니다. 풀색이 돼야 선생이 백묵으로 쓰기도 좋고 아이들도 시력장애없이 칠판을 보며 공부할수 있지요.》

윤정기는 벌써 촌령감의 행색을 잊어버리고 관심하기 시작했다.

《미화 할아버님, 우린 언제부터 칠판을 푸른 색갈로 교체한다는게 못하고있습니다.》

《책걸상도 몹시 낡았소.》

《학부형회의에서 책걸상칠감문제를 상정시켰는데 잘 나서지들 않습니다. 손쉬운 지원사업만 맡으려고 해요.》

《거야 감당하기 어려우니 그러겠지요. 책걸상과 칠판을 번듯하게 개변시켜놓도록 해봅시다.》

《미화 할아버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

《담임선생이 못 미더워 그러는구만. 한주일내로 선생과 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윤정기는 운동장가녁에 바래주러 나온 처녀선생에게 나직이 당부했다.

《우리 미화랑 애들을 잘 배워주시오. 룡성기계 학부형들이 나라에서 요구하는 큰 설비와 기계들을 만드는데 전심하다나니 학교사업이나 자식들의 공부에 관심이 덜할수 있습니다.》

 

×

 

윤정기는 날이 캄캄해서야 제관직장에 당도했다.

용접불광이 천정트라스를 벙긋벙긋 비치고 연기내가 짙게 풍기는 현장의 구석진 곳에서 조창주지배인이 불쑥 나타났다.

《책임비서동지, 어데 가셨댔습니까? 얼마나 찾았다구요.》

《소학교에 들렸댔소.》

지배인은 도당책임비서의 낯빛이 그닥 밝지 못한걸 보고 어림짐작하는 눈치였다.

《우리 기업소에 대한 의견이… 많을겁니다.》

《지배인이 학교지원사업에 무관심했다는걸 인정하는구만.》

윤정기는 정색해서 말을 이었다.

《지배인동무는 요전 협의회때 룡성기계의 존엄을 두고 감동스레 말했는데… 그래 룡성기계 사람들의 자녀들이 낡아빠진 책걸상에 앉아 공부하는걸 등한시하는것도 존엄있는거요? 학교지원사업은 실무적인 일거리가 아니라 장군님의 숭고한 후대관을 받드는 사업이요. 아이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걱정없이 공부하면 생산이 올라갈거요. 길게 말하지 않겠소. 래일 지배인동무가 학교에 나가 실태료해를 해보오. 우선 화학제품공장에서 노란색과 푸른색칠감을 가져다가 학교 책걸상과 칠판들을 새것처럼 만듭시다. 그리구 제기되는걸 큰 기업소답게 하나하나 시원스레 풀어줍시다.》

《책임비서동지, 제가 생산에만 묻혀 근시안적으로 일해왔습니다.》

《됐소. 나도 지배인동무가 놓친걸 도와주니 마음이 가볍구만.》

《합숙으로 가십시다. 저녁식사랑 차려놓았습니다. 사무실은 제 방을 쓰십시오.》

《번듯한 지배인사무실에 틀고앉을바에야 내가 왜 현장에 내려왔겠소. 난 수소정제탑을 만드는 이 제관직장현장에 방을 정하겠소. 저기 철판집이 좋을것 같구만.》

윤정기가 천정기중기 대차뒤에 있는 뙤창문이 달린 철판집을 손짓해 보이자 조창주지배인은 벌씬 웃었다.

《저건 용접작업반의 공구창고인데 제가 벌써 차지했습니다.》

《지배인동무가?!》

《제관용접공들더러 수소정제탑을 만들라 하고는 제 사무실에 편안히 있으면야 지배인이 아니지요.》

《하기야 그렇지, 창주동무가 고난의 행군때 로동자들과 같이 양배추뿌리를 캐먹은 사람이라는걸 내 잊었댔구만. 그럼 철판집을 나하구 같이 쓰기요. 두사람이 써도 비좁을것 같지는 않구만. 가방부터 갖다놓기요.》

윤정기는 지배인과 같이 대형철판만곡기와 플라즈마절단기사이로 걸어갔다. 맞다들린 용접공들과 제관공, 절단공들이 두 일군에게 꾸벅꾸벅 머리숙여 인사를 했다. 용접불광을 날리던 진태범반장이 황급히 보호면을 들치고 례의를 차리려 하자 윤정기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꾹 눌러 도로 앉혔다.

《엊그제 만났는데 또 무슨 인사요. 일은 언제 하겠소. 작업반원들보구 말하오, 분주스레 인사치레를 그만두구 도당책임비서를 같은 로동자로 대하라구 말이요.》

조창주는 저으기 어줍어하는 진태범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제관로동자들이 책임비서동지가 현장에 내려온다니까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책임비서동지가 로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진심으로 존경하고있습니다.》

《아니요. 난 아직 일군들이 공장, 기업소 현장에 내려가 대중의 정신력과 창조적지혜를 발동시켜야 한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관철하는데서 거리가 머오. 서툴고 진심이 못된단 말이요. 아래단위에 대한 유람식, 행세식지도일본새를 완전히 떼버리지 못했소.》

조창주는 도당책임비서의 겸허한 자세에 머리가 숙어져 말머리를 돌렸다.

《책임비서동지가 가지고온 돼지고기와 강냉이, 당과류는 수소정제탑을 만드는 제관직장로동자들에게 공급하자고 합니다.》

《많지 못하니 그렇게 하는게 좋을것 같소. 아까도 보니까 태범반장의 아홉살잡이 딸애가 아버지 저녁밥을 가져다줬더구만. 지배인동무, 제관직장장한테 과업을 주어 강냉이는 국수를 누르게 하시오. 구내식당에서 돼지고기꾸미를 무둑히 놓은 국수를 배불리 먹입시다.》

제관직장현장은 볼이 시리게 추웠지만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용접섬광에 대낮처럼 밝았다.

머리우에서 천정기중기가 우릉거리며 합금강철판퉁구리를 물어 대형만곡기에 날라갔다. 마찰프레스의 둔중한 소음과 쿵다당거리며 두꺼운 철판을 순식간에 잘라내는 절단기의 음향이 도처에서 울리는 함마질소리와 어울려 어떤 장중한 현장교향곡을 련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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