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9

 

《우리가 왔어요!》

세 처녀가 한꺼번에 권범의 침대주위에 다가섰다. 담당환자들의 체온을 재면서 순회하던 지혜는 얼마간 놀란 시선을 들었다. 얼굴들이 창백할 정도로 희고 유난히 날씬한 몸매에 눈들이 별처럼 빛나는 처녀들이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권범의 표정은 괴롭게 상처의 아픔을 참던 방금전과는 달리 밝고 유쾌한것이였다. 그것은 병실에 감도는 무거운 공기와 권범의 수척한 얼굴을 보자 한순간에 굳어진 처녀들의 표정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 처녀들중에서 검고 커다란 두눈과 그 눈빛처럼 검은 머리태를 길게 땋늘인 처녀가 권범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처음에 저는 정선생님이 부상당하였다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 처녀는 권범의 얼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권범은 미소를 그려보였다. 정다운 눈길이다. 그는 곧 모두를 둘러보며 쾌활하게 말하였다.

《왜들 울상을 하고있소? 부상을 당한것이 나요, 처녀들이요?》

《차라리 저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울상을 하고있지 않아요.》

그 말에 권범은 씨물씨물 웃으며 정겹게 처녀들을 바라보았다.

《복희가 부상을 당해 나처럼 누워있다면 나는 병문안을 와서 한대 갈겨주겠소. 리승만은 신수가 번번해서 앉아있는데 이게 무슨짓인가구말이지.》

권범은 쾌활하게 보이느라고 무척 애를 쓰면서 한 말이지만 처녀들의 우울한 표정으로 해서 서먹하게 들릴뿐이였다. 지혜는 복희라는 이름이 어디선가 듣던 이름같았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지혜, 우리 공장 직조공들이요. 약골들이지만 먹지 않고 자지 않고 하루 13시간 로동에 견디는 불사신들이요!》

《우리는 사흘이나 기숙사에 갇혀있었어요.》

《왜?》

《란동에 가담한다나요? 우리는 머저리처럼 울고불고하면서 철문을 열어주기만 기다렸어요. 기태씨랑, 권범씨랑 아예 공장에 안 나오고 시위에 나가기를 얼마나 잘하셨어요. 그러다가 오늘은 창문이며 책상이며 사발이며 아무것이나 깨뜨리고 부시고 했지요. 그랬더니 철문이 열리더군요. 투쟁이 제일이예요.》

복희는 유쾌하게 웃으며 마지막말을 하였다. 지혜는 어째서 그 말에 그들이 유쾌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깨뜨리고 부시고 하는데는 이 얌전한 은실이가 가장 능수였답니다. 정선생님, 그걸 상상할수 있으셔요?》

권범은 수줍음에 얼굴을 붉히고 서있는 은실이를 잠시 쳐다보다가 대답하였다.

《은실이가 아닌 딴 사람이 앞장에 섰었다면 믿지 않겠소.》

《기태씨며 권범씨가 이 병원에 입원한걸 몰랐어요. 오늘 아침에 복희언니가 우리를 찾아와서야 알았어요.》

문뜩 지혜는 준하 어머니에게서 복희이름을 들은 생각을 해내였다. 강우네들을 무사히 피하게 해준 그 복희가 바로 이 처녀였구나. 지혜는 처음으로 만난 그러나 어제오늘 그 이름이 기억에가 아니라 가슴에 새겨진 복희를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첫눈에는 보통처녀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더 아름답지도, 더 매혹적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모든것은 용모에도, 언어에도, 동작에도 정확한 그림자를 가지고있었다. 할 말은 하였다. 그러나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들과 그의 움직임에는 내심의 깊은 사려가 주는 확신에 찬 믿음성이 있었다. 모든것이 건전하게 살아있었다. 미움과 사랑의 강한 빛발을 가지고 줄기차게 살아있었다.

《내가 이 병원에 있다고 연희가 말했소?》

복희에게 묻는 권범의 물음이다.

《네, 연희의 선생님이 역시 이 병원에…》

《이분이 문섭선생님의 따님이요.》

권범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혜는 미소를 그리였다.

《알게 되여 기뻐요.》

그런데 갑자기 권범이가 몸을 뒤채긴다.

《복희, 나 물…》

복희가 유리잔에 물을 따른다. 권범의 얼굴빛은 재빛으로 변하고 숨이 넘어가는것 같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질렀다. 진통의 발작으로 실신한것이였다. 이따금 있는 일이였다. 처음 당하는 직조공처녀들은 소리를 치면서 한꺼번에 침대에 매여달렸다.

《늘쌍 이런가요?》

얼굴빛이 해쓱해진 복희가 지혜에게 짤막하게 물으면서 무엇인가 참는다. 지혜는 구급약을 가지러 병실을 나가다가 정림과 부딪쳤다. 정림은 위급한 때면 반드시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그는 재빨리 주사기에 약을 넣으며 지혜를 나무랐다.

《순회할 때는 언제나 구급약들을 준비해가지고 다녀야 해요.》

아버지의 부상이 지혜를 침착하지 못하게 하고있다는데 대해 정림은 고려해주지 않았다. 한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수다한 환자를 보아야 하는 의료일군들에게 있어 구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그런 정림이기에 지혜는 그를 존경한다. 간호장은 처녀들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조용들 하세요. 이 부상자에게는 안정이 필요해요.》

권범의 이불을 바로잡아주고나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간 잠드실겁니다. 담당간호원은 면회인들을 단속해야 해요. 절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절도면 전부인가요?》

복희는 정림이가 들어온 첫 순간부터 어째선지 적의를 가지고 바라보고있었다. 정림은 처녀에게로 천천히 돌아선다.

《물론 다는 아니예요. 그렇지만 병원에서는 때로는 아무리 정당한 감정도 억제하는것이 초보적인 질서며 도덕으로 되지요. 자, 내려갑시다.》 하고 처녀들을 둘러보는 정림의 눈에는 뜻밖에도 지친듯 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복희는 어떤 노기를 띠고 그대로 서있다. 정림은 또다시 낮은 소리로 재촉하였다.

《권범씨의 병세가 더해지는것을 원하지 않거든 나갑시다. 지혜도 내려가요.》

지혜는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복희도 따라나온다. 그러나 아래층으로 내려서자 그는 치료실로 가려는 정림간호장의 앞을 불쑥 막아나섰다.

《병실에서 정숙하지 못했던것은 우리들의 잘못이였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이대로 병원문을 나설수는 없어요.》

복희는 낮은 소리로 말하고있었으나 노기를 참고있는것이 뻔하였다. 지혜는 무엇때문에 그가 그렇게도 성을 내는지 알수가 없었다. 정림은 한숨을 지으며 지혜에게 이렇게 사유를 말한다.

《부상자들에게 수혈할 피를 뽑아달라는거야, 검진을 했더니 너무들 쇠약하다고…》

《아무리 약골이지만 몇그람의 피때문에 쓰러질 우리가 아니예요.》

《…》

《물러설 우리가 아니예요.》

두 처녀는 싸움이나 하듯 대들고있다. 정림은 더는 대답을 하지 않을 모양이였다. 지혜만이 정림이가 결코 양보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있는것이다. 세워진 규률에서 물러설 약자가 아니다.

《처녀들의 건강은 부상을 당한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은것이 없어요. 피를 뽑기는커녕 수혈을 받아야 할 몸들이예요. 저를 더이상 괴롭히지 말고 돌아가줘요.》

정림이로서는 놀라울만치 인간적인 온정을 담은 거절이였다. 복희는 정림이 못지 않게 고집스러웠다.

《우리를 어루만지지 말아요. 간호장님, 부상자들은 총에 맞으면 죽을줄 몰라서 바리케드를 향해 나간줄 아세요?》

그렇게 처절하던 싸움이 멎은 텅 빈 거리를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던 정림은 복희의 말에 흠칠 놀래듯 상반신을 가볍게 떨었다.

그이들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듯이 우리들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간호장님, 공장주에게 피를 빨리우느니 차라리 부상자들을 위해 바치는것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니겠어요?!》

정림은 말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앞가슴만이 천천히 그러나 높이 오르내리고있었다. 처녀들은 잠시 더 할 말이 없는듯 그대로 버티고 서있었다. 해맑은 은실이의 표정은 거의 절망적인 서글픈것이였다.

별안간 복희가 정림의 소매자락에 매여달리더니 아까와는 정반대로 무엇인가 자비를 빌듯 머리숙여 간청한다.

《하지만 간호장님, 우리는 견디여낼수 있어요. 네, 믿어요. 우리는 잘 먹지 못하는 대신 견딜줄 알아요. 우리가 약골이라면 이 하늘아래에서 건강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네? 간호장님.》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곳에서 물러설 정림이가 아니라는것을 이들이 안다면… 그러나 지혜는 그들의 편을 들어 정림에게 부탁할수도 없었다. 그들의 건강은 정말이지 채혈을 견디여내지 못할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정림의 편에 서서 직조공처녀들을 타이를수도 없었다. 처녀들의 신심에 넘친 절절한 표정을 짓밟을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격동을 가지고 자기들이 행동해야 할바를 명백하게들 알고있었다. 지혜는 가슴이 터져올뿐이였다. 준하의 어머니앞에서도 지혜는 터질듯 한 가슴을 부여잡고 《어쨌으면 좋아요, 어머니!》 하고 부르짖었었다. 지혜의 의지의 날개는 아직 연약하였다. 그것을 키워주느라 애쓰면서 초췌하게 늙은 아버지는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다. 아까보다 더 침울한 목소리가 들린다.

《진찰하고 결론을 내린것은 내가 아니였어요. 간호장의 권한은 의사선생님의 진단과 명령을 그대로 집행하는것뿐이지요.》

복희가 불쑥 정림간호장에게서 한걸음 물러선다. 두편은 퍼그나 오래동안 묵묵히 버티고 서있었다. 지혜는 두사람이 말을 주고받을 때 보다 더 숨가쁨을 느끼였다. 두사람 다 물러서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림이가 지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채혈준비를 해요. 나는 김선생한테 말하고 오겠어요.》

지혜는 전기에라도 닿은듯이 놀랬다. 복희는 한순간 자기를 지탱하고있던 힘이 무너져내리는것처럼 비칠거리며 창문설주를 붙잡고 섰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정림은 어떻게 김의사의 승인을 받고 왔는지 곧 돌아와 세 처녀를 데리고 치료실에 가더니 복희를 침상에 눕히고 팔을 걷게 하였다. 지혜는 정림이가 바늘을 꽂기 쉽도록 복희의 팔을 잡아주었다.

커다란 주사기로 빨간 피가 흘러들기 시작한다. 정림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띠염띠염 이런 말을 했다.

《지혜, 정말 세상은 뒤죽박죽이지?… 얼마든지 피를 뽑아도 될… 피둥피둥 살이 찐 녀석들은 한그람의 피도 내려 하지 않는데…》

정림은 왜 그런지 말을 중둥무이하였다. 피가 주사기에 반나마 찼다. 불덩이같은 애국의 피가, 지혜는 문뜩 손등에 뜨거운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놀라서 시선을 들었다. 정림의 두눈에서 수없이 눈물이 흐르고있는것이였다. 슬픔이 아니라 역시 불덩어리인 뜨거운 눈물! 복희가 그러는 간호장을 쳐다보며 사죄한다.

《간호장님, 못나게 대든 저를 용서하세요. 간호장님이 우리를 생각해서 그러셨다는것을 우리가 왜 모르겠어요. 간호장님, 슬퍼하지 말아요. 저의 몸은 그리 약골이 아니랍니다. … 술지게미나 두부비지만 먹고도 하루 열세시간 로동을 견딜수 있는 우리가 아니겠어요. 우리에게는 힘이 있으니까요.》

권범은 이 처녀들을 불사신이라고 하였다. 연약한 육체속에 든 불사신의 힘! 정림의 랭랭한 외양속에 타고있는 사랑의 불덩어리! 소박한 준하 어머니의 숭고한 의지! 지혜는 찬란한 빛발속에서 그들을 본다. 그들은 지혜와 한겨레인것이다. 조선녀성의 참다운 모습들인것이다. 지혜는 그들을 붙잡고 온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싶었다.

《조선녀성들이 얼마나 슬기로운지 당신들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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