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8

 

죽은듯 한 거리, 그렇지만 투쟁은 좌절될수가 없다. 15년동안 쌓이고쌓였던 울분의 폭발이, 비오듯 하는 탄우속에서 죽음을 각오했던 용기가 아무리 모질다고 해도 일진의 회오리바람으로 쉽게 잦아버릴수는 없다. 다만 모든것을 예상할수가 없었다. 맨주먹의 평화적시위에 총탄이 날아들고 기관총이 울부짖고 땅크와 한개 사단의 병력에 기관포까지 동원되리라는것을 상상하지 못하였을뿐이다.

항쟁의 새로운 방도가 모색되여야 했다. 상처받은 대오를 정비하고 새로운 결정적인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서울은 더욱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있었다.

검거선풍이 온 시가를 휘몰아치고 병원마다에서 부상자들은 신음한다. 그래도 학생들은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비밀회합을 가지면서 대오를 정비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폭풍은 잠재해있는 모든 힘을 휘감으면서 폭발전야의 가쁜숨을 몰아쉬고있었다.

ㅅ대 문리대 학생위원회도 그 례외일수가 없다. 회합장소는 서준하네 집이다. 어제오늘 경찰의 수사가 거의 발악적이여서 위원들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집합장소를 북한산에서 급기야 서준하의 집으로 옮긴것이다.

준하는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 건넌방에 누워있었다. 부상자로 차고 넘친 병원에 그리 중상도 아닌 자기가 누워있을수 없다고 하면서 종시 퇴원을 하고만것이다. 사실 상처는 대단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윤아때문에 받은 마음의 아픔이 상처의 회복을 방해하고있었다. 지혜가 매일 한번씩 찾아와서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준하의 어머니 김씨는 자기 집을 집합장소로 하는것을 마다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그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뜰안을 서성거리면서 망을 보아주기까지 하였다. 방에는 각 대학 련합회의에 참가한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여덟명의 위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한 학생이 시계를 본다. 위원장이 기다려졌던것이다. 그들의 얼굴표정들은 새로운 투쟁을 앞둔 흥분과 긴장, 참담한 투쟁에서 겪은 분노와 보복의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있어 침통하면서도 젊음에 빛나고있었다.

방금까지 그들은 윤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윤아는 그들모두가 사랑하던 다정하고 발랄한 처녀였다. 그를 잃음으로 하여 그들모두의 가슴에 뚜렷한 흔적이 남는 그런 처녀였다. 그러니만큼 그들은 준하의 아픔도 리해하였다. 윤아의 회상으로 침통해진 그들은 얼마동안 덤덤히 앉아있었다.

강우는 미닫이옆에 앉아 신문을 보고있었다.

《철면피한들!》

그가 혼자 중얼거리자 곁의 학생이 신문을 넘겨다본다. 강우는 활자보다도 더 많은 시커먼 빈글자투성이인 제1면에서 삭제되지 않은 단 하나의 기사를 가리키면서 신문을 넘겨주었다. 그 글을 보고난 학생도 성을 내였다.

《우리를 바보로 알고있는거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신문을 받아 그 기사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하였다. 봉기에 대한 미국무성의 각서였다.

매코노이가 내외기자들앞에서 한 성명이 바로 이 각서에 근거한것이다.

《당황망조한걸세.》

언제나처럼 강우가 주해를 단다. 동무들은 명석한 그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군 하였다.

《15년간이나 제놈들이 리승만을 가르쳐서 해온 선거놀음인데 인제 와서 부당을 운운하는것이 당치않지. 또 실질적인 통치자인 제놈들이 야당을 랭대하지 말라., 학생들은 민주주의였다. 하고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 누구를 속여넘기려 하고있다. 이런 서툰 궁여지책밖에 생각해내지 못한다는것이 또 하나 당황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

《더구나 미국의 체면을 운운하는것은 뭔가? 여기 미국이 무슨 상관인가?》

얼마간 성미가 메말라보이게 칼칼하게 생긴 학생이 강우의 과학적이기는 하나 어딘가 미적지근한 론증에 성차지 않아 높은 목소리로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러자 동그스름한 얼굴에 애티가 흐르는 학생이 이런 말을 하였다.

《그렇지만 여기 한가지만은 주목할만 한것이 있단 말이다. 결국 미국무성이 선거가 부당했다는것을 인정하고있단 말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리승만이와 싸우는 우리들에게 유리하면 했지 불리할건 없지 않은가?》

《잠꼬대같은 소리말게!》

칼칼한 청년이 또 소리를 꿱 질렀다. 애티있는 청년은 동의를 바라듯 강우를 쳐다보았다. 강우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그 시선에 대답하였다.

《물론 불리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백히 알아야 할것은 양키들의 이 철면피한 넉두리를 우리의 투쟁을 고무하는 힘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미국무성은 우리의 강력한 투지앞에서 비명을 치고있단 말이다. 혼란에 빠지고있단 말이다. 전세계가 우리의 피의 대결을 주목하고있다. 우리의 투쟁은 력사우에 뚜렷한 발자취를 아로새기고있다. 교활한 양키들은 동정을 표시하는것으로 우리의 투지를 마비시키려고 한다. 경각성을 높여야 하는것이다.》

강우는 자기 말에 과학적타당성과 정당성을 확신하면서 자신심을 가지고 명백한 어조로 말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때 강우의 말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혼자서 각서를 읽고있던 학생이 혼자 소리내여 웃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어쨌든 리승만의 신세 가련하게 되였어. 상전의 눈에서까지 놓여나게 되였으니 말이다. 그 늙다리의 꼬락서니가 눈에 보이는것 같구나.》

강우에게는 어쩐지 너스레를 떠는 그 학생의 어조가 불쾌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학생에게 지나친 면박을 주었다.

《우리는 판가리싸움의 마당에 있다. 많은 학우들이 피를 흘렸다. 그 원한의 넋들앞에서 아직은 엄숙해야 한다.》

상대방 학생의 낯빛이 일순 변하면서 강우를 쏘는듯이 응시한다.

그 학생은 가슴에 흉탄을 맞아 죽은 동생의 시체를 메고 사자처럼 바리케드우로 뛰여올라갔었다. 무서운 눈초리로 강우를 노려보던 그 학생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우울한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의 피를 흘린것이 어제오늘에 시작된것은 아니다. 너무도 오랜 세월 너무도 많이 흘렸다. 15년의 학정속에서 굶고 병들고 매맞아 죽어갔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내 동생에 대해서 상기하지 않으련다. 하지만 강우, 언제부터 내가 자네에게 말하고싶었던것은 자기만이 옳을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거다.》

긴장과 울분과 격동속에서 몸부림치고있는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보다 더 너그러웠지만 때로는 그 반대로 곧 격해지기 쉬웠다. 그는 무릎우에 얹고있는 두주먹에 힘을 주더니 불쑥 얼굴을 들어 강우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자네 말은 대체로 언제나 옳아. 미국무성 각서에 대한 판단에도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자네 말들이 옳다는것을 인정하는데 나는 조금도 린색하지 않아. 그렇지만 자네가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할수 없다는 증거를 하나 이야기하지. 19일 밤 학교강당에서 그자들과 협상하러 대위와 경무대에 가려고 생각했던것은 강군이 아니였단 말인가? 한 로무자가 자네의 실책을 시정해주지 않았던들 사태가 어떻게 되였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가? 그때 무엇이 항상 명석한 자네의 판단을 그릇되게 했던가를…》

《그만하게, 지금은 이러구있을 때가 아닐세.》

애티가 흐르는 학생이 두사람이 주고받는 말에 도가 넘치고있음을 느끼고 참견을 하였다.

《그렇지, 이러구있을 때가 아니지.》

그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하게 말하였다.

《래일 강군이나 내가 총탄에 쓰러질수도 있는데 이래서는 안되지. 일생 그것때문에 가슴아파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을…》

그러나 강우는 얼굴이 빨개서 앉아있었다. 강당의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여서만 아니라 사람들의 면전에서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는데 모욕감을 느껴서였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혜냐? 준하는 건넌방에 있다. 어제 밤에는 아프단 말을 안하더라만… 아버님께서는 좀 차도가 있으시냐? 이런 험한 때 매일처럼 와주니 뭐라 했으면 좋겠니?》

강우는 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어제 그들은 지혜가 실습려행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만났었다. 지혜는 강우앞에 모든것을 하소연하듯 몹시 울었다. 자책때문에, 부상자들에 대한 련민때문에, 윤아때문에. 그러나 그 누구에 대해서보다 아버지때문에 울음을 멈추지 못하였었다. 그런 지혜가 측은하여 강우는 진심으로 위로하였다. 하지만 실습려행때문에 생겼던 지혜에 대한 불만이 다 가시여지지는 않았다. 그것때문에 동무들앞에서 느껴야 했던 수치감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다 부드러워지게 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지혜의 목소리를 듣는 반가움을 짓밟는것이였다.

곧 학생위원장이 도착하자 그들은 모임을 시작하였다.

별안간 대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이 학생련합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가지고 한 30분간쯤 토의를 했을가말았을가 하는 시간이였다. 뜰에서 서성거리던 김씨가 방문을 재빨리 그러나 소리없이 열었다.

《뙤창을 뜯고 뛰여내려라! 옆집 행랑채다. 그 집에 복희라는 처녀가 지금 있을거다. 그 처녀 하라는대로 하면 된다. 어서빨리!》

그리고는 다시 문을 닫는다. 문두드리는 소리는 란폭해졌다. 김씨는 지혜와 아들이 있는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너희들도 빠져라! 위원이 아니라고 하지만 놈들은 아무것도 분간할줄 모른다.》 하는 말을 어떻게 가려들을수 있었던가싶도록 김씨의 목소리는 낮았다.

지혜는 준하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의 마지막매듭을 매야 하건만 갑자기 손끝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밖에서는 뭐라고 소리를 치면서 대문을 발길로 걷어찬다. 널쪽이 짜개지는 소리가 났다.

학생위원들이 아직도 다 뙤창을 넘어서지 못한듯 헤덤비는 소리가 그냥 들렸다. 김씨는 실신할듯이 문설주에 기대서면서 말하였다.

《그대로 붕대를 감고있어라. 이미 늦었다.》

10년전 김씨는 남편때문에 이런 경황을 한두번만 겪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지금처럼 불안과 절망에 떨지 않았었다. 그도 젊었었고 남편은 아들 준하와는 달리 굳세고 너그러웠다. 남편은 위급한 경황에서도 기민하게 자취를 감출줄 알았고 태연하게 뚫고나갈 길을 타개할줄 알았으며 안해에게 힘을 넣어주듯이 뜨거운 눈길로 쓰다듬어주었었다. 그런 보호와 고무속에서 김씨는 스스로도 자랑스러울만큼 모든 난관을 이겨나갔었다.

남편이 옥사하고 어린 준하와 남은 뒤에도 그 뜨거운 눈길이 남긴 기억으로 해서 각박하나 떳떳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강의하다고 해도 녀자의 외로운 손밑에서 자라 그런지 아버지처럼 굳세고 슬기롭게 키우려는 김씨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준하는 착하고 정직하기는 해도 몸도 마음도 섬약하였다. 더구나 윤아가 죽자 넋을 잃은 사람처럼 뒤채기고있는 아들이다. 그 아들이 지금 대문을 짜개고있는 포악한 경관놈들과 당장 대결해야 하는것이다.

김씨는 대문을 마스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안방으로 건너왔다. 방금 마지막사람이 뙤창을 넘어섰다. 김씨는 뜯어놓은 뙤창을 도로 맞추려고 방에 들어섰다. 그 뙤창밖으로 한 처녀의 얼굴이 보였다.

《준하씨는요?》

《늦었어, 빨리!》

밖의 처녀는 극히 짧은 순간 김씨를 통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뙤창앞에 함석장들을 세워놓는다. 그밖에도 무엇인가 잡동사니들로 막아놓는듯 이것저것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김씨는 뙤창을 끼우고 휘장을 친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털이를 감추듯이 들고 방문밖으로 나왔다.

종시 대문의 빗장이 부러졌다. 네다섯의 순경놈들이 살기를 품고 와르르 들어서더니 제잡담하고 방문을 벌컥 열고 제각기 흩어져서 집안의 책이고 옷장이고 골방이고 발칵 뒤집어놓기 시작하였다.

《위원녀석들 어디로 도망뺐냐?》

놈들은 모든것을 알고 왔던것이다.

건넌방에 들어갔던 놈은 지혜앞에 놓인 약가방을 구두발로 차던지고 준하의 살멱을 잡더니 짐짝처럼 뜰에 내던졌다. 준하는 뜰에 관자노리를 박으면서 어푸러졌다. 굵은 모래를 깐 정갈한 뜰이다. 준하의 팔에 감긴 흰 붕대에 빨간 피가 질벅하게 내배였다.

《준하야!》

김씨가 달려가 준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아들을 일으켜 세워주며 관자노리와 턱을 수건으로 눌러 닦아주었다. 오랜 세월속에 매디진 그러나 아들에게는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이였다. 그 어머니의 두눈에 일찌기 보지 못했던 이슬같은 눈물이 어리였다.

《어머니, 괜찮아요.》

아들은 도리여 어머니를 측은하게 생각하는듯 미소를 그려보인다.

《준하야!》

김씨는 억한 미소를 그리며 아들의 피가 배인 붕대를 푼다. 지혜는 숨가쁨을 가까스로 견뎌내면서 준하의 피가 배인 팔의 붕대만을 응시하다가 흩어진 약가방을 다시 챙겨넣고 준하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방들에 뙤창이 없느냐?》

잘 들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것은 토방에 한발을 올려놓은채 지금까지의 광경을 보고만 서있던 ㄷ서 사찰계주임이였다. 한 순경이 이미 짜개지고 넘어져있는 미닫이를 짓밟고 또다시 방으로 들어가 방안을 살피더니 휘장을 나꾸채여 뜯어버렸다. 뙤창을 드르륵 하고 밀었으나 함석장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그것을 총탁으로 떠밀었다. 무엇인가 우지끈했으나 함석장은 도루 제자리에 몇번 춤을 추며 기대선다.

《거 누구요! 장독대 깨져요!》

옆집에서 날카로운 녀자의 목소리가 걸고들듯이 소리쳤다.

《미친년, 게사니처럼 고아대긴!》

순경은 게두덜거리면서 주임앞으로 오더니 보고한다.

《옆집 뒤뜰입니다. 수사해보랍니까?》

지혜는 준하의 상처에 지혈을 하고 다시 씻어낸 후 정성껏 약을 바르고 새 붕대를 감기 시작하였다. 순경들의 말소리는 어째선지 멀리서 들리는 소리처럼 아득히 들려왔으나 지혜는 자기가 그 소리에 얽매여있다는것을 느끼면서 힘들게 움직이였다. 주임은 순경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소용없다, 저녀석이나 묶어라! 제갈길을 다 갔을게다. 뙤창으로든 어디로든… 익숙한 솜씨가 있다.》

그놈은 주머니에서 천천히 담배갑을 꺼내면서 김씨를 곁눈으로 보았다. 마침 붕대를 다 감고난 지혜는 저도 모르게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두 형사가 달려들어 준하의 팔을 뒤로 비틀어 묶었다. 그때 김씨가 달려들며 소리쳤다.

《집을 빌려준것은 나다! 나를 묶어!》

지혜는 별안간 불덩어리가 심장속에서 치솟아오르는것 같았다. 언제나 례절바르고 부드러운 김씨가 그렇듯 사나와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었다.

주임놈은 몇모금밖에 빨지 않은 담배를 집어던지더니 김씨에게 암팡진 그러나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혹시 주모자가 네년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은 그대로 간다. 네년의 아들이 다 말하겠지. 우리는 잘 타이를줄 아니까…》

그리고는 지혜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하들에게 가자는 눈짓을 했다.

형사들이 나가자 부러진 빗장을 꽂은 김씨는 늙은이처럼 허리를 굽힌채 천천히 걸어와 토방에 주저앉았다. 스산한 집안은 마치 페허처럼 공허하였다. 좁은 뜰이건만 불그스름한 저녁해빛이 이상스레 길게 비껴들어 땅에 떨어져서 짓밟힌 미닫이의 한 귀퉁이를 비치고있었다. 김씨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묶이워 갔구나. … 지금쯤 매질을 할게다.》

이렇게 말한 김씨는 피가 배도록 아래입술을 깨문다. 지혜는 흐느끼듯 상반신을 떨었다.

《어쨌으면 좋아요, 어머니!》

쓰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김씨의 무릎우에 두손을 얹은 지혜는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는 김씨를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오히려 김씨에게 매여달려 몸부림친다. 혼자생각에 잠겨 문가만 응시하고있던 김씨는 지혜의 말을 리해하지 못하고 잠시 멍해서 마주보기만 하였다. 어느 누가 지금의 자기에게 구원을 청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러다가 문뜩 정신이 든듯 그제야 자기 무릎에 얹힌 지혜의 손을 잡고 말하는것이였다.

《너무 걱정할건 없어. 지혜야, 일은 잘되고있지 않니. 위원들은 다 빠져나갔어. 모두 무사할거다. 뙤창문밖은 옆집 행랑채란다. 그 집 식구들은 어떻게서든 학생들을 숨겨주든가, 무사히 가게 하든가 할거다. 그 집 큰딸 복희가 공장에서 돌아와 집에 있으니까 모든 일이 다 잘된다. 그애는 그런 일처리를 훌륭하게 할줄 아는 애란다.》

이 훌륭한 녀인은 슬픔을 당하고있는것이 자기가 아니라 지혜이기라도 한듯이 처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안심시키고있다. 지금 김씨의 두눈은 고통을 당하고있는 어머니의 쓰라린 눈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굳세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부드러운 눈이였다.

《자, 지혜, 가봐야지. 아버지의 병간호도 해야 하고 맡은 일도 있을게 아니냐?》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지혜는 약가방을 어깨에 메고 일어섰다. 김씨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혜를 쳐다본다. 작별인사를 하려던 지혜는 무엇인가 북받쳐 이렇게 말하고말았다.

《전 좀더 여기 있다 가겠어요.》

혼자 남는다면 이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김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면서 다시 타이르듯 말하는것이였다.

《혹시 네가 나때문에… 내가 측은해서 그런다면 공연한짓이다.》

《아니예요, 그저 저는 가고싶지 않아요.》

지혜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김씨는 그러는 지혜를 더욱 다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혜야, 정말이지 나때문에 걱정할건 조금도 없어. 나는 지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단다. 거짓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늘쌍 준하가 약골인것 같아 걱정해왔더랬다. 그런데 막상 부닥치게 되니까 제법 침착하고 당당했다. 더구나 윤아때문에 슬퍼서 어쩌지 못해하던 준하가 아니였냐.》

하는 김씨의 표정에는 마음의 고통을 자랑의 감정으로 이길줄 아는 사람만이 가지는 숭고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공연히 애타했었지. 왜 좀더 씩씩한 사내로 키우지 못했는가, 왜 좀 더 용기와 힘을 가진 젊은이로 키우지 못했는가고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 그애는 결코 부끄럽게 행동하지 않았어. 준하는 자기가 대신 붙들려가는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있었어. 그애가 말하지 않더냐. 한사람이라도 우리 집에서 체포되였다면 그 수치를 평생 어떻게 씻겠는가구. 그리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려고 웃으면서… 준하는 정말 당당했다. 조금도 겁내지 않았어. 이런 아들을 본 어머니가 어떻게 슬플수만 있단 말이냐, 지혜야!》

《어머니!》

지혜는 김씨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애는 고문에도 훌륭히 이길거다.》 하고 말한 김씨는 숨이 막혀오는듯이 잠시 가슴을 어루더듬더니 긴숨을 내쉬였다.

《어머니!》

《괜찮다, 괜찮아.》

김씨는 자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것을 증명하려는듯이 미소를 그려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미소는 입가에서 괴롭게 이그러졌다. 그러다가 종시 더는 걷잡을수 없어진듯 지혜의 어깨에 무거운 머리를 비비면서 목메인 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지혜야, 어머니되기란 정말 힘이 드는구나.》

김씨의 두눈에 맑고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헤프게 줄줄 흘리는 그런 눈물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승화된 그런 눈물이리라 지혜는 생각하면서 자기의 하잘것없는 위로따위로는 그 눈물을 지워드릴수 없다는것을 느끼였다. 지혜는 터질듯 한 가슴을 안고 말없이 마주서있었다.

《가거라, 빨리!》

김씨는 지혜를 떠밀었다. 지혜는 그의 말에 순종하여 문가를 향해 뒤걸음칠뿐 얼마동안 돌아서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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