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7

 

그날 저녁, 김의사는 약창고의 자물쇠를 도끼로 깠다. 정림간호장은 바닥이 드러났던 약함에 귀한 약들을 무드기 담아가지고 병실마다 돌아다니며 나누어주었다.

지혜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있는 아버지의 침대곁에서 새로 받은 주사약을 주사기에 넣고있었다.

《선생님!》

권범이가 담당간호원에게 부축되여 병실에 들어섰다. 수염이 자라고 수척해진 얼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게 쇠약해진 권범을 본 지혜는 가볍게 놀라는 소리를 쳤다.

《이렇게 나오시문 안돼요, 안정하셔야 해요.》

그러나 권범은 두손을 문섭의 이불우에 얹고 고개를 숙인채 오래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하건만 문섭은 사랑하는 제자였던 권범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출혈이나 겉으로는 이렇다할 상처도 없으면서 움직이지 못하였으며 벌써 하루동안이나 혼수상태에 있었다. 퇴원하는 환자가 있어 입원시킬수 있은것은 다행이였으나 그의 상처는 유능한 외과의 김의사의 손으로도 속수무책의 절망적인것이였다.

한 학생은 그때의 광경을 지혜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프랑카드를 써주고계셨어요. 그럴 때 교실에 순경 네놈이 달려들었어요. 선생님은 언제나 그러시듯이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나가시오. 경찰은 학원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오!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순경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어요. 우리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책상을 던지고 물어뜯고 해보았어요. 선생님은 우리들이 다칠가싶어 감싸주시다가 한 순경놈의 총에 맞아 어푸러지셨어요. 그리고는 일어서지 못하셔요…》

《선생님!》

권범은 창자를 끊는듯 한 목소리로 또 그렇게 불렀으나 그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싶어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5년전 혹독하게 춥던 날이였다. 방안에는 성에가 불렸다. 밖에서는 휘파람소리같은 바람소리가 점점 더 날카롭게 윙윙거렸다. 어디선가 양철판같은것이 바람에 흩날리다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중학교에 다니던 지혜는 학과복습을 하고있었는데 추위때문에 어깨를 옹송그리고있었지만 기실 바람이 하도 기승스러워 공연히 가슴이 뒤설레였다.

그러는데 갑자기 대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소리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무던히도 두드리였다. 공연히 무섬증이 생겨 지혜는 차마 자기가 대문을 열겠다는 말은 못하고 아버지얼굴만 쳐다보았다.

대문을 열려고 나갔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굵은 무명옷을 입은 젊은 사람이 방에 들어섰다. 버선이 흙탕물에 화락하게 젖었었고 얼굴이 시퍼렇게 얼었었다. 어머니는 버선을 벗기고 대신 빨아서 기운 아버지의 양말을 신겼다. 그리고 보리죽 한사발을 데워다주었다. 청년은 사양을 하였지만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결심을 내린듯이 양말을 신었고 죽도 먹었다.

청년은 문섭이가 무척 사랑하던 제자중의 하나였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살뜰하게 대하지 않는 문섭은 덤덤히 앉아 그의 다 해진 옷주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옛 제자 역시 존경하는 스승앞에 단정히 앉아 오래동안 찾아온 사연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시작하였을 때는 한마디한마디에 마음을 담아 명백하게 말하였다.

《선생님, 저를 하루밤만 헌병들 손에서 숨겨주십시오. 믿고 찾아왔습니다.》

어린 지혜는 방안 한편구석에 앉아 두사람을 놀람과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았었다. 헌병이라는 끔찍스런 말에도 아버지는 놀라지도, 난처해하지도 않는다. 자기의 제자를 뚫어질듯이 응시하고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지혜는 청년이 왜 헌병들에게 쫓겨다녀야 하는지 알고싶었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옛 제자는 격동에 넘쳐 스승을 쳐다보며 서둘러 말하였다.

《선생님, 잘 생각하시고 응낙하셔야 합니다. 발각되는 날이면 선생님도 무사할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거절하신대도 저는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테로정치의 이 가혹한 사회를 한층 더 저주할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문섭의 성난 눈길이 제자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흥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자네에게는 어릴 때부터 한가지 결함이 있어. 자기만이 옳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만성이지. 임자가 각오하는 고초를 나라고 외면할줄 아나? 자네가 무엇때문에 헌병놈들에게 쫓기우고있는가를 나는 묻지 않았네. 반드시 옳은 일을 위해서라고 믿었기때문이지. 내가 자네를 믿듯이 자네가 나를 믿지 않을진대 뭣때메 찾아왔지? 자네가 말하는 그런 각오가 없이 내가 대답할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제자는 선생의 무릎앞에 손을 짚고 푹 고개를 떨구더니 부르짖듯 사과하였다.

《용서하십시오, 선생님!…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튿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지혜는 벽장속에 숨어있는 손님에게 물었다.

《정선생님, 알으켜주셔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열여섯살의 지혜는 어떤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황홀한 시선으로 수염이 꺼칠한 권범이를 바라보았다.

《어떤 일?》

권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이 땅에도 북처럼 착취도 없고 빈궁도 없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때 지혜에게는 그것이 꿈처럼 아득하게 생각되여 그저 한숨을 쉬였다. 권범은 지혜의 생각을 꿰뚫어본듯 하였다. 지혜는 그렇듯 힘이 박히고 신념에 찬 목소리를 처음 듣는다.

《한점의 불꽃은 료원의 불길이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는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있다. 다만 누구때문이라는것을…》

밖에서 목소리가 났다.

《지혜 있어?》

지혜는 서둘러 벽장문을 닫았다.

《학급동무예요. …》

그러나 그날 밤 련락을 받은 권범은 지혜의 집을 떠났다. 아침에 깨여보니 권범은 없었다. 지혜는 벽장문을 열어잡고 권범이가 비좁게 앉아있던 그속을 금방이라도 울어버릴듯싶은 표정으로 들여다보고있었다.

《어쩌면 하던 이야기도 끝내지 않고 가버렸어.》

권범은 마치 진리를 전달하러 온 꿈의 사도처럼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버렸다.

그후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혜의 정권범에 대한 인상은 뚜렷하기는 하면서도 그날의 바람소리와 지혜로서는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동경이 남아있을뿐이였다.

그렇지만 어떤 경로를 밟아서인지 문섭은 권범의 은닉혐의를 받아 경찰에 붙들려갔다가 20여일만에 나왔다.

《안심해라, 권범은 무사하다.》

경찰서에서 나온 문섭은 그렇게 말했을뿐 딸에게도, 안해에게도 그안에서 어떤 고초를 당하였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혜는 두손가락의 손톱이 빠진 아버지의 손을 보고 그 손우에 엎드려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후 사람을 통해 권범에게서 한장의 편지가 왔다.

《선생님이 희생적으로 도와주신 덕에 추격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저의 생명이 선생님이 당한 모진 고초의 대가라는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선생님이 이 제자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지금 문섭은 자는듯이 고요히 누워있었다. 지혜는 목이 메여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정선생님이예요! 아버지!》

《선생님, 이게 웬 일입니까?》

권범은 땅을 치고 통곡하듯 또다시 그렇게 웨쳤다. 그의 목소리는 가슴에 컥컥 막혀 괴롭게 들렸다. 간호원이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정선생님, 병실로 돌아가십시다.》

그러는데 입원실문이 조심성없이 열렸다. 문섭의 어린 제자들이 잠시방안을 살피다가 반듯이 누워있는 자기의 선생을 보자 가슴을 쥐여짜는듯 한 흐느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 맨앞에 삼각끈으로 팔을 달아맨 남수가 있다.

《선생님!》

학생아이들은 두볼이 움푹 패워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비껴있는듯 한 선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저 떨고있었다. 다치면 선생의 상처가 더할가싶어 엎드려 울지도 못하고 입을 비죽이며 서있다. 얼굴이 가무스레하고 언덕이마인 득찬이라 부르는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보이라아저씨.》

학생중의 하나인 연희가 눈물이 하나 가득 고인 눈으로 권범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의 상처가 낫도록 도와주세요. 꼭 도와주세요.》

권범은 연희의 손을 잡고 대답하였다.

《연희야, 운다고 선생님의 상처가 낫는건 아니지? 울면 힘이 약해져, 원쑤를 갚으려면 힘이 있어야 해.》

연희는 아래입술을 사려문다. 눈물이 눈시울에서 넘어나지만 흐느끼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득찬이만은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안한다. 방안의 모든 부상자들이 학생아이들의 설음에 찬 표정을 보고 눈물지었다. 그때 별안간 남수가 큰소리를 쳤다.

《이 바보자식들아!》

너무도 마음껏 큰소리를 쳐서 사람들은 놀람때문에 남수를 달랠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선생님 한분을 지켜드리지 못해 매를 맞게 해! 이 머저리들! 바보자식들!》 하고는 소리내여 통곡하며 몸부림친다. 간호원이 어쩔줄 몰라 남수를 붙잡고 진정시키려고 애썼으나 그 통절한 설음과 노기를 당할수가 없어 하였다. 권범이가 목메인 소리로 꾸짖었다.

《남수! 누구를 보고 대드는거야?》

남수는 울음을 삼킨다. 목이 메여 빨개진 얼굴로 권범을 쳐다보다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보이라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왜 욕하려들어요. 선생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가르치셨다는걸 알기나 해요?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우리는…》

《누가 돌아가신다고 했어, 남수!》 하고 말한것은 어느새 들어온 정림간호장이였다. 남수는 갑자기 침을 삼키고 불안과 놀라운 시선으로 정림을 쳐다본다.

《선생님은 잠이 드셨어. 기태아저씨가 이틀동안 잠을 자고있은것도 모르고 운것도 너지? 남자는 침착해야 해!》

남수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정림간호장님말씀이 옳아요.》 하고 말하는 남수의 표정에서 지혜는 그가 정림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고아댄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러자 지혜의 가슴속에 창자를 끊을듯 한 아픔이 북받쳤다. 지금 아버지는 딸과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가슴을 태우고있다는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의식이 있었을 때의 아버지는 학생들앞에서도, 권범이앞에서도 딸때문에 떳떳치 못해 했으리라는것, 그래서 괴로와했으리라는것을 불현듯 느끼고 지혜는 온몸이 굳어지는듯 하였다.

 

지혜의 아버지 리문섭은 보잘것없는 사립학교 교원이였다. 늙고 초췌하여 그날그날을 살아가기가 힘에 겨워보였다. 지혜의 어머니 역시 일찌기 젊음이라고는 가져보지 못한 녀인처럼 극심한 생활고에 쪼들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0년전 그때에는 그들에게도 꿈과 리상이 있었고 사람들의 존경과 기대도 지녔던 다감하고 진실한 젊은이들이였다.

리문섭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였다. 진펄의 밭 몇뙈기를 지주에게서 얻은 부지런한 문섭이네는 몇해를 두고 그 진펄을 논으로 만들어 열명이나 넘는 식구가 풀뿌리로 보탬을 하면서 그럭저럭 연명하였다. 그러나 늙은 아버지로부터 일곱살짜리 동생에 이르기까지 찌는듯 한 메마른 긴 여름하늘을 쳐다보면서 끝없이 물을 퍼올리던 그때의 고되고 절망적인 불안의 기억을 문섭은 잊지 못했다.

문섭은 형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에는 마음이 없고 책에만 정신이 있었다. 소가 콩밭을 다 뒤져도 모르고 풀밭에 누워 책을 보고있기 일쑤여서 아버지에게 종아리를 맞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어느날 맏형은 식구들이 모인데서 문섭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너를 공부시킬 돈이 없구나. 그렇지만 집안걱정일랑 말고 고학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너 하구싶은대로 해라.》 하고는 질펀하게 땀이 밴 구리빛이마를 숙이더니 허리춤에서 꽁꽁 접어둔 지전 몇장을 꺼냈다. 밤에는 어머니가 버선 두컬레를 기워주면서 목이 메여하였다.

며칠후 작은 보따리를 허리에 차고 집을 나온 문섭은 행길까지 바래러 나온 가족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길을 떨군채 신작로길을 줄달음치듯 작별하였었다. 고개마루턱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행길에 서있는 아버지, 어머니, 형들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문섭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열심히 공부하겠어요!)

서울로 올라온 문섭은 거리변두리의 연자집인 지혜의 어머니 윤상녀의 집에 기숙하게 되였다. 윤상녀의 부친은 연자망 하나로는 식구를 먹여살리기 힘들어 추녀밑에 방 한칸을 잇달아 학생하숙을 쳤던것이다. 변두리였지만 하숙비가 싸고 주인들의 사람됨도 의젓하여 가난한 집 자식들이 싫단 소리없이 들어있군 하였다.

상녀는 2년제의 이름없는 녀학교를 마치고 집일을 도우면서 시집갈 때를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부모는 혼기를 앞둔 딸을 두고도 걱정하거나 서둘거나 하는 법없이 생계를 위한 연자망일에만 부지런하였다.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얌전한 상녀는 끼식도 하고 부탁받는대로 하숙생들의 빨래도 하였고 때때로 연자간에 나가 채질도 하였다.

문섭은 항상 무릎을 기운 양복바지와 축 늘어진 물날은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그런 자기의 옷주제며 그리고 18살이나 되여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간 자기의 나이따위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밤이면 전등밑에 바싹 다가앉아 공부에만 파묻혔고 새벽이면 우유배달, 석탄운반, 필공 뭐든지 닥치는대로 하면서 학비를 마련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 생활속에서 싹튼 하나의 진실한 포부가 그에게 보람을 주었으며 그 포부와 보람을 맑고 깨끗한 처녀 상녀에게 남김없이 이야기할수 있는 행복을 가지게 되였다. 선량한 그는 상녀가 가진 소박한 정서를 알아보았던것이다.

그리하여 파리한 노새가 여물을 씹는 더러운 마구간의 냄새도, 얼음장처럼 차고 축축한 잠자리도, 연자망의 끊임없는 찌쿠덩소리도 상녀를 바라보는 정결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혼잡한 판자집거리로 화하였지만 수십년전만 하여도 그 변두리에는 초라하기는 했어도 그것대로의 소박한 운치가 있었다. 시내뻐스의 종착점이였던 행길에는 몇채의 가게들이 있었는데 건물보다 더 큰 간판을 떠인 리발소, 양복수리소, 려인숙과 설렁탕집들이 추녀를 맞대고있었다. 코닿는 이웃에서 서로 낯이 익고 친숙하게 살아가는 동리사람들은 어느 점방에나 제 집처럼 마음놓고 드나들면서 물건도 샀고 세상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방들뒤로 빠지면 곧 벼모가 바람에 설레이는 논벌에 나서게 된다. 그래서 여름이면 온 들판에 개구리소리가 처량하고 구슬펐다.

상녀와 문섭은 은가루를 뿌린것 같은 달빛을 담뿍 받으면서 자주 논뚝길을 걸었었다. 상녀는 가슴이 북받쳐 아무 말도 할수 없었지만 훌륭하고 값있는 문섭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황홀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문섭에 대한 상녀의 존경은 결코 지나친것이 아니였다. 이 가난한 수재는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한 교육학자의 생애에 심취되여 자기도 빈궁에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심혼을 넣어주는 교육자가 되려고 굳게 마음먹으면서 꿈도 리상도 그 념원속에 부풀어올렸다.

문섭은 상녀의 조그만 손을 잡고 말하였었다.

《상녀, 가난을 각오해야 해! 불쌍한 아이들에게 진리를 알게 한다는것은 훌륭한 일이거던. 가난하다고 불행한것은 아니야. 상녀도 나도…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하고있으니까…》

그후 얼마 안 있어 문섭과 상녀는 두집 부모와 친지들의 진심으로 되는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였다. 소박한 두집 식구들은 문섭이가 왜 남처럼 영달의 길을 탐내지 않고 각박한 사립소학교 교원의 길을 택하였는지다 알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훌륭한것을 위하여 자기들의 곁을 떠나고있다고 생각하면서 리별의 쓰라림을 참았다. 그렇듯 상녀와 문섭의 첫출발은 아침해빛처럼 밝았었다고 할수 있다.

문섭은 교원생활에 자기의 재능과 성실성을 다 바쳤다. 순박한 그의 어린 제자들은 이 훌륭한 교사를 존경하였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도 이지러진 선생의 사택에까지 찾아와 학과시간에 못다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쏟았다. 상녀도 곁에서 아이들의 떨어진 옷을 꿰매주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얼마나 선량하고 생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

상녀는 취하도록 행복하였다.

그렇지만 젊은 부부는 생활에 대해서 아는것이 너무도 적었다. 보잘것없는 봉급은 살림을 유지하기에도 힘이 드는데 그들은 그것을 또 쪼개여 공책이며 연필을 사서 꽁다리연필밖에 못 가진 아이들에게 새 연필을 쥐여주고 다 써버린 공책을 놓고 멍해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새 공책을 펼쳐주는 기쁨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학생들과 다름없이 허줄하게 입었고 초라하게 먹었다.

아무리 훌륭한것에도 한정량이 있어야 하는가보다. 문섭부부의 이러한 행동은 속된 동료들의 비웃음과 경멸을 샀다. 부정의와 속물이 권세를 잡고있는 그런 사회에서는 선량하고 청렴한것이 자주 멸시를 당하군 하는것이다. 량심과 자존심은 미움을 사고 재능과 능력은 멸시와 모함을 받는다.

자신의 빈곤이나 고통을 견디는 힘은 있으나 악과의 대결에서 약한 문섭은 어느덧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차츰 우울해지고 초췌해지면서 꿈도 리상도 퇴색해버리였다. 그래도 일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났던 해방직후 그의 기대는 검은구름사이를 헤치고 잠시 반짝인 해빛처럼 소생하였으나 곧 다시 사라졌다. 남녘땅에 밀려든 미국식 새로운 노예교육은 문섭을 또다시 환멸과 무맥에로 밀어버렸다. 그는 더욱더 늙었다. 설상가상 고등학교에 다니던 맏아들 지성이가 급성간염으로 죽자 그의 마지막젊음은 완전히 끝이 났다. 상녀는 아들의 시체앞에서 언제까지나 흐느끼고있는 남편을 달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서러워말아요. 서러워한들 소용이 있어요?》

지금에 와서 두 늙은 부부에게는 지혜만이 유일한 꿈이였다. 미래였고 생활이였고 보람이였다고 할수 있다. 지혜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름답고 정직하고 총명하게 자랐다.

하건만 언제부터인가 문섭은 지혜에 대해서 마음을 쓰기 시작하였다.

딸은 다감하였지만 연약하였다. 오랜 세월의 풍상속에서 열정이 식고 환멸의 쓴잔과 함께 무맥하여진 자기의 그림자가 젊은 지혜에게 비끼고있음을 발견한 문섭은 일종의 전률을 느끼였다. 딸은 자기의 소망이 시골의 작은 병원이라고 하면서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온화하게 살겠다는것이다.

지혜의 그 작은 소망과 그리고 그 소망이 자기의 성실한 노력과 함께 이루어지리라는것을 의심하지 않는 순결성은 딸에게 녀성적인 아름다움을 주기도 한다. 바로 강우가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있다는것도 안다. 그렇지만 천진한 지혜의 작은 소망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것을 문섭은 수십년세월과 함께 젊음과 꿈이 짓밟혀버린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알고있다.

그 깨달음이 늦어 문섭은 일찍 초췌하게 늙었었다. 지혜만은 자기의 전철을 밟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그는 격동적인 밤의 낯설은 ㅅ대 문리대 강당에서 온 거리를 삼엄하게 드놀게 하는 땅크소리를 들으면서 딸에게 편지를 썼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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