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장

13

 

아무리 파쑈적인 로동법이라 하여도 박정희도당이 만들어놓은것보다 더 모진 악법은 없다. 례를 들어 로무자들이 자본의 철쇄와 싸우는데 있어 유일한 무기인 파업권만 하여도 그것을 행사하기 거의 불가능하도록 법조항들이 만들어져있는것이다. 그리하여 로무자들은 고용주에게 요구조건을 내놓고나서도 80일이라는 《랭각기간》을 두고서야 파업을 할수가 있는것이다. 그 80일동안에 고용주와 경찰은 파업투쟁을 압살하기 위한 온갖 모략과 폭행을 다할수 있다. 해고, 매수, 체포, 구금, 핵심로무자들의 각개격파 등 당국자들은 투쟁대오를 사분오렬하려고 발광한다.

이리하여 로무자들은 대렬의 단결을 강화하고 그 단결로 기업주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피투성이싸움을 파업투쟁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토와 롱성, 태업과 쟁의로 실력을 키워 로무자들은 마침내 이 《랭각기간》을 무시하고 파업에 들어가기 일쑤다.

ㄷ방직이라고 례외일수가 없다.

공장은 급작스럽게 더욱 삼엄해졌다. 구내 도처에 사복경관들이 득실거렸으며 정문과 작업장 출입구근처에는 항상 고용깡패들이 으르렁거렸다. 로무자 둘셋이 으슥한데서 수군거리는것만 보아도 《참회실》에 데려다 문초를 하였으며 하루이틀씩 경찰에 검속도 하였다.

지혜는 싸움을 준비하면서 자기가 파업을 위해 얼마나 몸바칠수 있는가를 검열하는 시련의 시기로 간주하였다. 작업장에 있는 13시간 그는 200명의 로무자들의 움직임의 매 거동을 주시하면서 힘을 안겨주기 위하여 자기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야 하였고 감독과 수위 그리고 형사의 행패를 최대한으로 막기 위해 무엇인가 대책을 세우고 행동해야 하였고 그자신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태업을 하기 위해 작업에도 온 신경을 써야 한다.

공장문밖에 나서서도 그의 할 일은 간단없이 들이닥치는 파도처럼 끊임이 없었다. 로무자들의 가정방문, 모임, 걸음마다 있을수 있는 놈들의 책동에 대한 경각성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학습은 한시도 중단할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많은 학습을 해야 한다. 밤이 깊어 길바닥 한가운데에 모든것을 드러내놓고 살고있는것 같은 판자집거리에도 고요한 정적이 스밀 때면 석유등앞에 앉은 지혜의 두눈은 절세위인의 로작의 글줄들을 따라 빛나고있다. 때때로 눈을 감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필기는 곧 암기였다.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들을 가슴속에 아로새기며 새로운 투쟁의지를 가다듬는 지혜의 얼굴에는 말할수 없이 그윽한 빛발이 감돈다.

적의 힘을 과대평가하여도 안되지만 결코 과소평가하여도 안된다. 간악한 적과 싸워 이기자면 우리의 힘을 빨리 길러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지금 투쟁력량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으므로 무의미한 충돌과 희생을 삼가하여야 하지만 실지투쟁을 통하여 단련하고 또한 전략전술도 연구하는것이 중요하다. …

지혜는 타오르는 투지와 약동하는 긍지를 느끼면서 신념이 굳세지는것을 느꼈다. 모든것이 힘에 부치다고 생각될 때면 학습을 배가하며 난관을 맞받아 자기를 단련시킨다. 몸도 마음도 불타고 고동친다.

또 얼마전부터 쟁의를 위한 신문이 발간되고있다. 각 직장의 투쟁경험을 알리고 승리에 대한 신심을 불어넣으며 단결과 투쟁을 호소하는 그 신문은 로동자들의 발걸음을 더욱 정연하게 할것이다. 지혜는 1직조 통신원의 역할도 하여야 하고 때로는 인쇄한 신문을 인수해오기도 해야 한다.

지나친 과로때문에 때로는 오한에 시달려 밤거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현기증을 참기도 하면서 지혜는 매 순간 마지막힘을 쏟듯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이군 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또 연구소조의 운영, 연구소조원들은 학습에서뿐만아니라 사업에서도 성실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주었다. 더구나 남수, 기봉이들은 아슬아슬한 경비망을 담과 기지로 뚫고 어떠한 련락임무도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맡겨진 삐라들을 태연하게 지정된 장소에 붙이고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슬그머니 선동까지 한다. 더구나 남수는 소년공들을 묶어세우는 능력뿐만아니라 너그러운 포옹력까지 보이고있다.

《선생님, 경비는 우리 소년공들이 맡읍시다. 미행을 혼란시켜 따버리는데는 우리 소년공들을 당할 어른이 없지요.》

《정말이지 그 일에서 너희들을 따를수 없을거야.》

그러자 어째선지 남수는 빙긋 웃으면서 점직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 하지만 소년이란 그애들이구요. 저는… 저는 인제 어른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요? 곧 열아홉살인걸요.》

지혜는 새삼스럽게 남수를 바라보았다. 키는 지혜보다 컸지만 아직 뼈대는 어른의 그것이 아니다.

《하긴 너는 열다섯에 벌써 어른이 다되였었는지도 모르지. …》

땅크앞에 나섰던 4. 19의 남수, 교단우에서 학생들을 투쟁에로 부르던 남수, 공장에 와서의 남수 등 지나간 모든 추억이 머리에 솟구쳐오른다. 그 모든 남수들은 투쟁의 토양우에서 굳세게 자랐다.

《선생님, 그러니까 저에게 더 많은 일을 맡겨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십니다.》

지혜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남수의 얼굴에는 선생을 아끼는 다정하고 친근한 심정뿐아니라 비판의 총명한 빛발도 비껴있었다.

연구소조모임이 필해 혼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지혜는 남수의 말을 깊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혼자 결론을 지었다.

《남수, 네 말이 옳아. 모든 사람들이 다 움직이게 그렇게 분공을 주고…》

얼마나 귀중한 나날들인가. 그 매일매일은 미래를 향한 보람찬 투쟁이며 그리고 만사람과 련결된 줄기찬 전진운동이기에 한걸음한걸음이 잊을수 없는 격동의 련쇄의 고리들이기도 하였다.

적들은 갖은 모략을 다해보지만 아무것도 알아낼수가 없었다. 대체 로무자들이 파업을 하려는것인지 아닌지조차 알수가 없으니 주모자가 누군지, 지하조직이 있는지 없는지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로무자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공손해보였다. 수굿해서 출근했으며 일을 끝마치면 덤덤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덤비지도 초조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새삼스레 모여서 수군덕거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어리숙하고 근기있게 일하는것 같았지만 설비리용률이 40~50%로 저하된것이다. 기계들에서는 자주 고장이 났으며 고장이 나지 않은 기계도 자주 멎었다. 직조공처녀들은 허물도 없는데 공연히 다 짜진 날실을 자꾸만 풀었다. 생산은 20%, 때로는 40%까지 낮아졌다. 직조공도 수리공도 그것때문에 임금이 적어졌지만 개의치 않는것 같다.

감독들은 눈이 시뻘개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오직 한덩어리가 되여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태업을 발가낼수가 없었다.

로무자들은 적어진 임금, 감독들의 독이 오른 행패, 자주 당하는 형사들의 잔학한 문초를 잘도 참았다.

오늘도 은실이가 그렇게 참았다. 그는 고장도 없는 두대의 기대를 멈추었는데 석감독의 눈에 띄였다. 그자는 승냥이처럼 은실에게 달려들어 근육이 불끈불끈한 험상궂은 팔을 번개처럼 휘둘러 가냘픈 처녀의 뺨을 수없이 후려치고도 모자라 머리끄뎅이를 잡아 땅에 멨다꽂았다.

《왜 기계를 멈추었지? 대라! 누가 시켰어?》

은실은 부어오른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아무런 대항도 없이 그저 사정하는것이였다.

《잘못했어요. 감독님…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 하는 은실의 애절한 목소리는 직조공과 수리공들의 가슴을 쓰리게 하였다. 어떤 처녀들은 눈물이 비오듯 하여 실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운다. 은실의 수리공은 석감독의 행패를 그대로 보고있어야 하는 가슴아픔때문에 나사못을 쥐고있던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다가 손바닥에 상처를 내였다. 은실은 애원한다.

《너무 힘들어서 쉬려고 그랬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은실은 《참회실》에 끌려가 반나절을 있다가 나왔다. 그는 비칠거리며 간신히 걸어들어왔다. 동무들이 작업장 한구석에 저들의 웃옷을 깔아 은실을 눕게 하였다.

또다시 들어온 석감독녀석이 누워있는 은실이를 보자 잽싸게 달려왔다. 별안간 수리공들이 와그르르 기대에서 뛰여나와 그의 앞에 막아선다. 녀석은 멈칫 섰다. 수리공들의 사나운 시선이 그의 발목을 묶었던것이다. 쌍방은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무서운 적의를 가지고 마주섰다. 험악한 공기였다.

기름때에 절은 누데기작업복들을 걸치고 먹지 못해 쑥 들어간 두눈에, 그러나 사나운 불꽃이 튀고있는 로무자들의 한떼, 칼날처럼 매서운 석감독, 그것은 악과 선, 권세와 항거, 추한것과 아름다운것의 대결이였다.

《네놈들이 작당을 하고있지! 어디 보자…》

그는 표독스런 소리를 치며 돌아서 갔다.

수리공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들로 돌아가더니 다시 태업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은실은 그러는 동무들의 모습을 남김없이 바라보았지만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은실아, 용해…》

지혜는 비틀렸던 은실의 팔을 문질러주느라고 이마에 땀을 흘린다.

《지혜언니, 매맞은건 아무렇지도 않았어. 모두를 위하는 일인데 그만한것은 견딜수 있어. 그렇지만 대들 용기가 없는것도 아닌데 잘못했다고 말하기가 몇배나 더 고통스러웠어.》

《은실이…》

지혜는 그러는 은실의 얼굴을 그저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상대방이 옳게 행동할 때 언제나 지혜는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걸음마다 쓰라림과 고통밖에 차례지지 않는 속에서 옳게 행동하고있는 이들에게 더 무슨 조언이 필요하겠는가. 모두 스스로 힘을 기르며 채찍질하고있는것이다. 동무들에 대한 그의 그런 믿음으로 해서 오히려 사람들은 더 뜨거운 고무를 받고있다는것을 지혜자신은 모른다.

지혜의 눈에 괴였던 눈물이 종시 은실의 부어오른 볼우에 떨어졌다.

《지혜언니의 눈물은 뜨겁네. 우리보고는 울지 말라 하시고 언니는 우셔. 울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마음이 약한 증거라고 하시구서는 우셔. 나는 울지 않았어요. 나는 언니말이라면 뭐든지 지키겠어. 봐요, 내 얼굴에 눈물자욱이 하나도 없잖아요. 나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어요. 형사가 내 팔을 비틀 때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려고 기봉이네 집앞의 살구나무를 생각하였어요. 그 살구나무는 지금 추위에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지만 우리가 파업을 시작할무렵에는 꽃이 만발할거라구. 그러자 별안간 살구꽃 만발한 만경대가 환하게 머리에 떠올랐어요. 형사녀석은 공연히 내 팔을 비틀고있었지요. 머리에 그려진 만경대에 안겨있는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으니까요.》

《은실아… 모두 훌륭하게 싸우고있구나.》

은실은 손을 들어 그러는 지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언제까지나 은실의 곁에 있을수 없는 지혜는 조용히 일어섰다.

일어선 지혜는 문뜩 그들을 주시하고있다가 얼굴을 돌리는 명주를 보았다. 시커멓게 죽은듯 한 우울한 표정이였다. 그의 기대도 두석대가 멎어있었고 고의적으로 끊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북짜기가 된것처럼 뭉텅 끊어진 날실을 잇고있었다. 지혜는 사위를 살핀 후 명주에게로 갔다.

《명주, 고마와.》

《뭐가 고마와?》

명주는 얼굴을 들지 않은채 실을 잇는 손만 놀리며 묻는다. 지혜는 대답대신 멎어있는 기대 두대의 조종간을 당겼다. 아무런 고장이 없이 멈춰놓았던 기계는 소리치며 잘도 돌았다. 명주도 역시 태업에 협력하고있었던것이다.

《나는 한가지만 모를것이 있어. 왜 네가 자기를 나쁘게 가장하는지 그것만은 모르겠어. 너는 훌륭히 태업에 협력하고있으면서 왜 그걸 숨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총명한 네가 삐뚤어진 자기의 성미를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그것만은 모르겠어.》

그들은 바싹 다가서서 말하고있었지만 기계소리가 자꾸만 그들의 목소리를 잡아먹었다. 별안간 명주가 지혜의 팔죽지를 잡는다.

《음료수칸으로 가자!》

귀가에 대고 명령하듯 단호하게 말한 명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을 서는것이였다.

명주는 창문을 바라보면서 한편 담에 기대섰다. 얄궂게만 보이던 그의 얼굴이 오늘은 입가에 비웃음이 나타나있지 않아서 그런지 서글픔과 애수와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의 고통이 엿보였다. 명주는 뜻밖에도 조용하나 힘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일지 몰라. 과자부스러기따위때문에 서기의 끄나불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너는 알고있으니까.》

《그뿐이겠니. 이러나저러나 너는 대표를 파견할 때도 그것을 서기가 알고있다는것 그리고 서기가 무엇인가 항상 내탐하고있다는것을 우리가 알아차리도록 해주었다는것도 나는 알고있어.》

《하지만 너는 그러면서도 역시 나를 다 믿어주지 않았어.》 하는 명주의 표정은 도전이 아니라 서글픔에 찬 그런것이였다.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나는 너를 다 믿을수가 없었어. 너는 자존심이 강하고 총명하고 용기가 있고 사람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훌륭한 장점들을 가지고있어. 하지만 너는 너무도 변덕스럽고 그렇기때문에 분별없이 모든것을 조소하고있어. 그런 너이기에 어느날 갑자기 우리가 옳기때문에 우리를 비웃으면서 우리의 비밀을 지켜주지 않을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어. 바로 탈의실에서 삐라를 두고 하마트면 너는 그렇게 할번 하였어. 요행 중도에서 그만두었지. 그리고 너는 그것을 부끄러워할줄도 몰라. 명주, 정당한것과 부당한것을 모두 뒤섞어서 그 모든것에 도전하는 너를 내가 어떻게 믿겠니?》

지혜가 말하는 동안 명주의 얼굴은 점점 해쓱해졌다. 지혜는 그러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것을 허심하게 털어놓았다.

《너에 대한 나의 이 모순된 판단은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너의 삐뚤어진 성미는 너의 잘못이라기보다 고통과 굶주림밖에 주지 않는 사회때문인지 모르지. 그리고 너의 어머니가 너의 가슴에 심은 불행을 이기지 못했기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명주, 그런 불행이 너에게만 있어? 너의 곁에서 일하는 서미는 어머니가 경찰에게 매맞아 죽는것을 열두살의 어린 눈으로 보았어. 언년은 어머니가 미국놈에게 서미의 어머니보다 더 참혹한 유린을 당하는 광경을 보았고 그의 어머니는 그것때문에 자기 목숨을 끊었어. 땅크에 깔려죽는 할아버지를 목격한 호일이, 미국놈의 과녁으로 억울히 동생을 빼앗긴 은실이…》

불현듯 굳어진 득찬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지혜는 찌르는듯 한 가슴속에서 그 얼굴을 향해 웨쳤다.

(득찬아! 우리는 너의 원쑤를 갚고있다. )

지혜는 명주를 향해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이와 비슷한 허다한 아픔이 있어. 그렇지만 딴 사람들은 분별을 잃지 않았어.》

《지혜.》

명주가 격한 목소리로 지혜의 말을 막았다.

《그렇지만 딴 사람들이 당한 불행이 나와 같은 종류의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어. 언년이나 서미는 미워해야 할 짐승인 미국놈이 부모의 원쑤였기에 마음껏 미워할수가 있었어.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이 세상에서 그 누구나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미워해야 하였어.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나와 동생은 중풍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3년을 밥을 빌러 다녔어. 동생은 얼어죽고 나는 아이보개가 되였어. …》

명주는 더 말을 하려다가 숨이 차는듯이 뚝 그쳤다. 그러나 곧 다시 말을 잇는다.

《그렇지만 네 말은 옳아…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든 모든것에-어머니도, 이 세상도 멸시하고 무엇인가에 보복하는 마음뿐이였어. 어머니는 잘못 처신하였어. 너무도 혹독한 가난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나도 하지 못한건 아니면서도 그런 마음을 억눌러버리려고 뒤채겼지. 하지만 나는 이런 말로 변명을 하고싶어 너를 부르지는 않았어. 너는 나를 다 믿지 않았다고 하였어. 나는 너에게 묻고싶어. 그럼 나를 도대체 어느 편으로 생각하나 말이다. 너는 한번도 나를 옥채나 언년이나 그밖의 모든 동무들을 대하듯 나에게 대한적이 한번도 없어. 금방 너는 은실이때문에 눈물을 흘렸어. 그렇지만 나에게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본 일이 있어?… 누구보다도 따뜻한것이 요구되는 나에게 말이다!》

명주는 아래입술을 깨물고 말을 멈추었다. 지혜는 한참이나 명주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명주를 보는것처럼 그리고 명주에 대한 자기의 잘못을 가슴저리게 느끼면서. 명주는 사람들의 버림을 받으면서도 결코 그들을 배반하지 않았다.

《명주, 내가 잘못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지혜는 그렇게 묻는 명주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았다.

《손을 잡자.》

…그렇다. 원쑤가 아닌 이상 누구나 우리의 편에 튼튼히 서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혜는 명주를 리해하지 못한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뜨겁게 명주의 손을 잡았다. 명주 역시 지혜의 손을 힘껏 잡고 총명한 시선으로 이런 말을 하였다.

《오인숙서기는 미정보국 끄나불이야. 나는 그가 미군장교와 만나는것을 여러번 보았어. 그의 뒤를 밟았지. 혜화동근처의 약방에서 만나군 하는것 같아. 거기에 자주 가니까. 그리고 나더러 지혜와 언년의 동정을 살피라고 하였어. 물론 서기는 자기는 로동운동을 하고싶지만 지하조직과 련계가 없어서 그런다면서 혹시 지혜와 언년이가 그걸 알고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지. 주의해, 지금까지는 내가 적당히 거짓말을 하군 했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인숙이도 나를 믿지 않으니까.》

명주는 그가 할수 있는껏 지혜를 보호하였었다. 인숙이가 조직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것에는 명주의 공헌도 있는것이다.

《나가자, 우리는 너무 오래 있었다.》

불의에 정전이 되였다. 기계소리는 멎고 주위는 캄캄해지고 무덤속같은 정적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돌연 천장의 흐린 채광창으로 차디찬 달빛이 어슴푸레 비쳐들었다.

《지혜, 언제까지나 이렇게 참고있어야 하오?》

어떤 수리공의 목소리다. 그러자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결심이 아직도 모자란다고 생각하오? 우리는 어떠한 결사전도 다 각오하고있소.》

지혜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리난쪽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지쳤어요? 참기 힘들어서 그래요?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몰라서 그래요?》

그들은 파업을 서두르지 않았다. 청년학생들은 침착하게 이렇게 웨친다.

《박<정권>무력 겁나지 않는다. 총검밑에서 들고일어나기는 <군정>이건 <민정>이건 마찬가지니까.》

거리와 마을에 왜색의 침습, 일본상품의 범람, 《한일회담》의 조속한 체결을 위한 박정희도당의 발광… 청년학생들은 보고만 있을수 없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대 항쟁을 준비하고있었다. 력량의 분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소충돌을 피하면서 총명하게 한걸음한걸음 결전에로 다가가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반대하는 원쑤가 박정희군사깡패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에 간섭말라.》, 《물러가라, 미국놈, 일본놈.》…

ㄷ방직로무자들은 이 앙양된 기세를 타고 청년학생들의 항쟁에 발을 맞추기로 하였다. 지혜는 흥분한 목소리로 어둠속에 서있을 로무자들을 향해 말하였다.

《승리할수 있는 결정적인 시각을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니겠어요?!》

모두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에 투지가 넘치고있음을 탄력있는 숨소리가 전해준다. 지혜는 모두에게 다 잘 들리도록 어둠을 더듬어 중간통로에 나섰다.

《여러분! 은실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폭행을 참아내였어요. 놈들은 은실의 입을 통해서는 우리의 집단적인 태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였어요. 은실은 형사들과 포악한 감독과의 싸움에서 훌륭히 이겼어요. 여러분, 매일 매 시각 투쟁의 칼을 벼려야 합니다. 지칠줄 모르고 복수의 불을 태워야 합니다. 승리는 눈앞에 있습니다.》

《노래를 불렀으면… 무엇인가 힘찬 노래를 말예요.》

은실의 목소리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지혜는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개의 전지불이 어둠을 뒤지며 들어왔다. 형사들이였다. 자리를 떴던 로무자들은 허리를 굽혀 기계뒤에 숨듯이 제자리들로 소리없이 돌아간다. 전지불이 비치는 곳에 이미 자리잡은 로무자들이 지친 몸을 멎은 기계에 기대고 불빛에 가리여 보이지 않는 전지의 임자를 노려보군 한다. 얼마후 형사들은 또다시 아무런 소득이 없이 나갔다.

다시 어둠과 정적, 높이 뛰는 가슴의 고동, 지혜는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곁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한다는것을 압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때문에 참고 견디고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쩌면 장기간에 걸친 태업투쟁이야말로 모든것을 던지고 폭발하는 돌격적인 투쟁보다 더 힘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승리를 위하여 이 싸움 역시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

불이 켜졌다. 잠시 전동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계들이 갑자기 소리치며 기세좋게 돌아치기 시작하였다. 춤을 추는 잉아짬으로 북집이 화살처럼 드나들고 짜진 천이 앞으로 서서히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기여나와서는 권치기에 감겨졌다. 수리공도 직조공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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