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장

11

 

…공보부 차관의 요구를 박차고 나온 강우가 두 형사에게 끌리워 사흘밤을 류치장에서 자고나서 던져진 곳은 국토건설단이였다.

박정희군사깡패는 자기의 정치적지반을 꾸리는데 있어 그를 항상 불안하게 하는 청장년들의 반항을 사전에 억누르기 위하여 국토건설단이라는것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거미줄같은 특무망을 통해 《용공분자》로 지목되는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여 《병역기피》를 비롯한 이런저런 죄명을 들씌워 강제로동에 투입하였던것이다. 청장년 10명에 이를 감시하는 기간요원 하나씩을 붙여 그들을 군용도로건설에 내몰았다.

강우가 속한 건설단은 그중 제2대다. 가까이에 ㄷ광산이 있는 험한 산골짜기였다. 죄수나 조금도 다름없는 《267번》이라는 번호가 잔등에 붙은 푸른 작업복을 입은 강우는 끓어오르는 처량한 마음으로 자기가 내던져진 낯선 산과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떠나올 때의 서울에는 신록이 피고있었건만 이 산골짜기에는 바위와 돌틈에 간신히 돋아난 진달래가 피지 못한채 추위에 떨고있었다.

한 산골짜기에 제2대의 막사 열개가 한키로씩 사이를 두고 서있었다.

그가 속한 그리 크지 않은 막사에는 40명의 건설원이 시루속에서처럼 빽빽이 웅크리고 잔다. 천막천으로 만든 막사는 여름이면 화독속같고 겨울에는 성에가 불린다.

국토건설단의 생활은 바로 군사《정권》의 축도였다. 아침 6시 점호, 그리고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돌을 까고 흙을 메여나르는 중로동의 계속, 게다가 한두시간의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 욕설, 감시, 기합, 강우는 군대식기합이 얼마나 끔찍스러운것이라는것을 처음 당한다. 배고프다고 해도 기합, 기진해져도 기합, 말버릇이 나쁘다고 기합, 꿈속에서까지 공포와 울분에 몸부림쳐야 한다. 힘의 질서가 있을뿐 그들의 교양이나 지식은 헌신짝보다도 소용에 닿지 않는다.

강우의 잠자리 바른편곁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가 잤고 왼편곁에는 어떤 회사 사무원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피곤과 두려움에 그들은 온종일 가야 별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사무원은 마음이 양순하고 몸이 쇠약한 청년이였고 대학교수는 그런 속에서도 하루에 한두페지의 생물학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학자였다. 대학교수는 208번, 사무원은 215번이다. 기간요원들은 그들을 번호로만 불렀다.

어느날 아침 사무원은 오한이 나서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다. 강우는 작업복을 벗고 입은것 한벌밖에 없는 내의를 벗어주었다. 그것을 보고도 대학교수는 자기것을 벗어줄 생각을 못하고 묵묵히 걸어나간다. 그에게는 입고있는 내의도 없어 아무것으로도 도와줄수가 없었던것이다.

사무원 215번은 그날 굼뜨게 움직였다. 대학교수와 강우가 그가 져날라야 할 흙을 더 져날라서 그의 일손을 덜어주었지만 215번은 그래도 허덕이기만 하였다.

밤 11시에 작업이 끝나고 막사로 돌아가려는데 기간요원이 215번을 불러세웠다. 대학교수는 아침에 막사를 나올 때처럼 고개를 숙인채 사무원쪽은 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다. 그들이 여라문발자국 걸었을 때 뒤에서 몽둥이기합을 가하는 철썩 소리와 215번의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온종일 작업을 태공했다는것이다. 사람들은 비명소리에 가슴을 찢기우지 않으려는듯이 걸음발을 다우쳐 막사에 돌아오자 가랑잎같은 담요를 휘감고 드러누워 귀를 막았다.

사무원이 들어온것은 밤 1시가 넘어서였다. 열려진 문으로 기여들어오는 버스럭소리에 잠들수 없던 강우와 대학교수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두사람은 215번을 부축하여 자리에 눕혔다. 그는 울지도 않았으며 성내지도 않았다. 죽은듯이 조용히 누워있더니 한참만에 괴로운 한숨을 들이키면서 말하였다.

《살기가 정말 고되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강우는 그 누구도 자지 않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떨리는 숨결이 막사안을 숨막히게 하고있는것이다. 사무원은 그날 밤에 고된 세상을 영영 하직하였다.

이튿날 대학교수와 함께 215번을 이름없는 골짜기에 묻고 돌아오던 강우는 수림속 오솔길에 들어서자 참다못해 소리쳤다.

《당신의 이름은 뭐요? 나는 강우요.》

208번은 대답없이 한참을 그대로 걷는다.

《당신의 이름이 뭐요?》

208번은 천천히 멈춰선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리재우, ㅂ대학 생물학교수요. 당신은 <일일신문> 기자… 당신이 언젠가 우리 학교에 취재왔던것을 보았소.》

강우는 208번처럼 침착하게 말할수가 없었다. 그는 또다시 소리쳤다.

《이렇게 살아야 하오? 래일 죽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고역과 천대와 멸시를 당해야 하오?》

그 말에 대학교수는 내키지 않는듯 뜨직이 대답하였는데 아까보다 더 낮은 소리다.

《신문사에서는 이렇게 살지 않았소? 당신은 행운아였구려. 이 땅전체가 감옥이요. 다만 신문사나 대학에는 직접 눈앞에서 기합을 당하지 않았을뿐이요.》

강우는 자기를 행운아였다고 하는 교수의 비꼬인 침착성에 끓어오르는 반발을 느끼였다.

《우리는 215번이 죽는것을 보고만 있었소. 보고만 있었다는것은 죽이는것에 가담한것이나 마찬가지요.》

교수는 강우를 남기고 서너발자국 그대로 걸었다. 그러나 휙 돌아서더니 강우를 응시하면서 묻는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번 했소?》

그 말에는 강우도 얼른은 대꾸할수 없었다. 가슴이 통분할뿐이였다.

《설사 감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그놈을 요정내야 했소.》

모든것이 지나가버린 지금에 와서 그렇게 말하고있는 자신을 강우는 스스로 멸시하면서 힘없이 대답하였다.

《쓸데없는 생각이요. 그러면 당국에선 죽은 놈대신 더 악질적인 기간 요원을 하나가 아니라 서너놈을 보낼거요. 215번은 서너놈에게는 더 당하지 못하겠지.》

《그렇게 산판만 튀겨서 당신은 살아남을것 같소? 이렇게 먹고 이런 고역을 그냥 계속한다면 며칠이 못 가서 병들건 뻔하오. 그때는 당신과 내가 215번의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오?》

《나에게 성낼건 없소. 나 역시 견디기 힘드오. 우리뿐 아니요. 수천명의 건설원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거요. 그렇건만 우리들속에는 우리를 묶어세울만 한 사람이 없소. … 만약 우리들속에 누군가 선진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를 묶어세웠을거요. 나는 어리석게도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 생물학책에만 파묻혀왔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소?》

대학교수는 또다시 걸음발을 떼였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모르겠소. 나는 어리석게도 생물학을 온 세상이라고 생각하였었소.》

그후 얼마 안 있어 사무원이 있던 자리에 새 사람이 보충되였다. 국토건설단에 들어오기만 하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만 250번이란 번호가 붙은 새로 온 사람 역시 명랑한 사람인지, 우울한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가 없게 말이 없었다. 게다가 통성명을 안해도 때가 지나면 어느덧 직업이나 이름정도는 알게 되기마련인데 250번에게서만은 아무것도 알아낼수가 없었다. 강우의 신문기자의 촉감으로도 성격이나 교양정도조차 가려볼수가 없었다.

250번은 언제나 외토리로 다니고 누구와 어울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결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것은 그의 부드러운 눈길이며 하찮은것이라도 항상 남에게 양보하는 그의 거동으로 알수 있었다.

그리하여 250번은 별로 이렇다할 훌륭한 일을 한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렇게 되자 그는 어느덧 혼자 외토리로 걷거나 앉아있거나 하는 일이 없어졌다. 휴식시간에도, 오고가는 길에서도 둘 혹은 셋이 같이 있었다.

그렇다고 함께 걷는 상대가 반드시 일정한것은 아니였다. 강우는 왜 그런지 그에게 자꾸만 마음이 씌였다. 강우는 어느날 잠자리에서 좀 성이 난 목소리로 대학교수에게처럼 그에게도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250번입니다.》

공손하고 밝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강우는 더 캐묻지 않고 그에게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아침부터 무더위때문에 땀이 비오듯 하던 날이였다. 그날 아침도 새벽점호가 끝나자 기간요원은 언제나 같은 내용의 훈시를 했다.

《가차없이 처벌하리라. 군대는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규률을 파괴하고 맡은바 임무를 소홀히 하는자들에게는 군법이 있을뿐이다.》

건설원들은 대낮이 되자 더위와 고역에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져서 숨을 헐떡거리였다. 이대로 더 계속한다면 숨이 막혀 죽을것처럼 목구멍이 뜨거운 열기로 콱콱 막혔다.

《208번, 이리 와!》

기간요원이 무엇때문인지 대학교수를 불렀다. 교수는 고개를 숙인채 소리난쪽으로 다가갔다.

《이 자식 왜 대답이 없어?》

대학교수는 벙어리처럼 서있었다. 상대방은 20대의 새파란 젊은이였고 그는 40고개를 바라보는 대학교수였다.

《이 자식이 그래도 대답을 안해?》

방망이가 번쩍 들렸다. 비로소 대학교수는 울음을 터뜨리듯 대답한다.

《네, 208번 명령대로 대령했습니다.》

《막사에 가서 점심밥을 현장으로 날라오라고 해라! 왔다갔다할 시간이 없다.》

밥을 먹고 휴식없이 계속 일을 시키겠다는것이다. 대학교수는 막사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등뒤로 기간요원의 고함소리가 귀를 찢었다.

《이 개자식, 왜 복창을 안해?》

대학교수는 잠시 멈춰섰다가 어째선지 다시 발걸음을 떼였다.

《이 개자식, 왜 복창을 안해!》

두말없이 기합이 가해졌다. 순식간에 교수의 두볼이 너무도 부어올라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곧 복창하는 버릇을 몸에 지니였다. 그것은 기간요원이 이렇게 소리쳤을 때였다.

《야, 다시 그랬다가는 군법이다.》

《야, 다시 그랬다가는 군법이다.》

《그게 복창이야? 이 개새끼야!》

《그게 복창이야? 이 개새끼야!》

그렇게도 참을성이 있던 대학교수가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울분을 터뜨리였던것이다. 그는 당장 그 자리에서 반주검이 되게 몽둥이기합을 당했다.

그날 밤 무더운 잠자리에서 대학교수가 부어오른 다리를 뒤채기자 250번은 아무말없이 교수의 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하였다. 교수는 뜻밖인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대로 그의 손에 다리를 내맡기고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어디서 안마하는 법을 배웠소? 혹시 전문가였소?》

250번은 례의밝고 다정한 얼굴로 그저 웃었을뿐이였다. 그러자 교수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감방에 오래 있으면 전문가나 다름없이 안마에 능숙해진단 말을 내 어디선가 들은상싶소.》

250번은 그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교수는 무거운 한숨을 지으면서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본다.

《부질없는 반항이였다는것을 나도 아오. 하지만 나도 인간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싶었소. 강군, 어쨌든 나는 반발해보았으니 오늘 사는것 같소.》

그러자 강우는 상반신을 쳐들어 대학교수를 향해 낮은 소리로 웨쳤다.

《부질없는짓이였소.》

강우는 거칠게 말하고 다시 드러누웠다. 이대로 살아나갈수는 도저히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설사 죽음이나 감옥이라도 반항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도주? 문뜩 지혜의 얼굴이 떠오른다. 국토건설단과 조금도 다름없는 무더위와 고역의 소란하고 답답한 작업장에서 그러나 틀림없이 생생하게 움직이고있을 지혜의 모습이 맑은 샘물이 되여 가슴에 스며든다. 그러자 막사안이 더 숨막힐듯이 생각되면서 밖으로 뛰여나가고싶어졌다. 하지만 밖에는 보초가 서있다. 이런 시간에 뛰여나간다면 도주자로 간주되여 감옥에 가야 할것이다.

이밤 강우는 잠들수 없었다.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지혜를 마음속에 응시하면서 생각을 나누어보기도 한다.

《지혜, 지금 뭘 하오? 밤일이요? 아니면 낮일을 하고 잠들어있소? 나는 잠들지 못하오. 고역에 시달려서 잠이 안 오오. 억울하게 짓밟힌 처지에 대한 분노때문에 잠이 안 오오. 나를 포함한 건설원들모두에 대한 동정과 련민때문에 잠이 안 오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수가 없어 잠이 안 오오. 대학교수는 인간임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쳐보았기에 오늘 사는것 같다고 하였소. 하지만 그건 억지요. 그가 얻은것은 인격이 아니라 몽둥이기합이였소. 하긴 교수의 그런 반항도 쉽게 할수 있는것은 아니요. 용기와 자존심이 없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오. 그런데 왜 부질없는짓으로밖에 되지 못하였겠소? 그것때문에 병신이 될수도 있는 그런 반항이였건만 왜 그것을 값있게 살수가 없겠소?》

강우의 머리는 점점 더 맑아졌다. 무엇인가 새로운 깨달음이 차츰 형체를 똑똑히 드러내며 다가오는것 같았다.

《지혜, 나를 도와주오. 나는 밝혀내야 하겠소. 생각하면 대학교수가 지키려고 했던것은 <나> 하나의 인격이였소. 나는 그의 거동을 지혜의것과 대비해보오. 지혜가 지키고있는것은 <나> 하나가 아니라 압박받고있는 수백만군중이요. 뿐아니라 대학교수의 반항은 기껏해야 자제력을 잃은 일시적흥분이였소. 그는 혼자였소. 그렇지만 지혜는 군중과 함께 있소. 만사람과 련결된 힘속에 자기의 힘을 합치고있소. 지혜의 투쟁은 미래와 신념과 잇닿아있소. 하지만 대학교수의 그것은 절망적이고 일시적인것에 불과하오. 만사람이 련결된 힘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찬 타산이 있기에 지혜는 절망을 모르고 항상 생신하며 탄력에 넘치고있소.》

강우는 반듯이 누운채 가슴에 손을 얹고 어두운 천장을 쳐다보고있다.

누군가가 신음소리같은 잠꼬대를 한다. 괴로움때문에 압착된 코고는 소리도 들렸다. 앓음소리를 치며 뒤채는 소리도 들린다. 바람이 설레고있는 밖에서는 소쩍새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그칠줄 모른다. 강우는 대학교수를 향해 돌아누웠다.

《자오?》

《아니…》

강우는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왜 이렇소? 우리는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고역을 당하면서도 왜 이렇게 뿔뿔이요? 왜 서로 믿지 않소? 왜 남의 불행을 도울 용기가 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오?》

《언젠가 내가 말하지 않았소? 우리에게는 우리를 묶어세울 사람이 없다고…》

《이 사람들을 묶어세울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가 그런 사람이 돼야 하오.》

《쉿.》

250번이 움죽거렸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강우는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그가 들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250번이 다시 조용해지자 교수는 말했다.

《자기자신을 선진분자라고 한다고 하루아침에 선진분자가 되겠소?》

《그렇소, 당신 말이 옳소.》

강우는 머리에 손을 얹고 또다시 반듯이 누웠다. 마음의 모대김속에서 머리는 점점 더 맑아진다.

《지혜, 나의 깨달음이 늦었소. 어쩔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가 아니라 지혜곁에 있을 때 깨달아야 했소.》

강우는 또 뒤채였다. 그런데 문뜩 복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혜는 그 복희가 ㄷ광산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ㄷ광산은 지척에 있다. 강우는 소스라치게 대학교수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ㄷ광산에 우리가 찾고있는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오.》

억수로 비가 퍼부어서 작업이 불가능한 그런 날중에서 어쩌다 반나절씩 휴식이 선포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면 대개가 막사안에서 옷을 깁던가, 자던가, 앓던가, 한숨을 짓던가 하였다. 외출은 광산마을아근에서 일용품을 사러 가는것외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강우는 외출을 신청하였다.

《왜?》

기간요원이 시끄러운 표정으로 따진다.

《신을 하나 사와야겠습니다.》

강우는 구멍이 뚫린 신바닥을 쳐들어보였다.

《흥, 좋다. 여기 증명서들을 다 내놓고 가라. 이담부터는 좀 공손하게 해라. 신바닥은 신을 벗어서 보이는 법이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났게 요행이라고 생각해라.》

강우는 쓰거운 웃음을 그리였지만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기간요원은 250번의 친구라고 한다.

강우는 복희를 찾아야겠다는 억누를수 없는 마음으로 그날 온종일 광산마을을 헤매였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도 복희를 안다는 사람이 없었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강우는 복희가 애당초 ㄷ광산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혹시 이름을 바꾸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막사로 왔다. 그날 밤 그는 솟아나갈 하나의 구멍마저 메꾸어진것 같은 절망감에 정말 신열이 났다.

그런 어느날 250번이 강우에게로 다가와서 넌지시 이런 말을 묻는것이였다.

《ㄷ광산에 누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강우는 흠칠 놀라면서 되물었다.

《그건 왜 묻소?》

250번은 빙그레 웃었다. 언제나처럼 밝고 다정한 얼굴이였다.

《나도 ㄷ광산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형에 대한걸 묻지 않겠소. 그래서 혹시 강형이 그 아주머니를 찾고있지 않나 해서 물었을뿐이요.》

《아주머니? 어떤 아주머니요?》

강우는 놀라는 마음으로 멈춰섰다.

《멈춰서지 마오. 그대로 걸읍시다. 이름을 나도 잘 모르오. 이번 휴일에 함께 갑시다. 강형이 찾고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강형을 알고있으니까 만나면 반가와할거요.》

《당신은 누구요?》

《국토건설단에 자원해서 들어온 250번이지요.》

그후 강우는 250번을 주시하였다. 중키에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얼굴, 거동에도 목소리에도 별로 유별난것이 없는 보통청년이다. 구태여 딴 사람과 구별된다면 밝은 표정을 하군 하는것이리라.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도 강우는 휴일이 되기를 몹시 기다렸다.

어느날 강우는 비소리에 잠을 깼다. 천막지붕을 두드리는 비소리가 북소리처럼 소란하였다. ㄷ광산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자 강우는 흥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부터 깨여나있었던지 250번의 낮은 소리가 들렸다.

《9시에 <남경반점>에서 기다리겠소.》

그리고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나자 휴일이 선포되였다. 건설원들도 이런 날만은 그래도 몇마디씩 말도 하고 롱담도 주고받는다. 돈잎이나 부쳐오는 사람들은 투전을 하든가 주막집에 내려가 술을 먹든가 했다.

《남경반점》은 중국우동이나 파는 초라한 음식점이였다. 강우가 빵 한그릇을 청해 반쯤 먹었을 때 250번이 나타났다. 그도 빵을 청했지만 먹지는 않고 신문지에 싸서 들더니 가자고 하였다.

그들은 대줄같은 비속을 묵묵히 걸었다. 이윽고 산자락에 붙어서 길에 늘어선 광산마을에 들어섰다. 추녀가 땅밑까지 늘어져서 기울어져가는 초가집 아니면 산자락을 한편 담으로 하고 썩은 갱목에 푸실거리는 흙을 붙여 지은 반토굴집들이였다. 돌투성이산도, 페허같은 집들도, 바라보이는 모든것이 비줄기속에서 망연하게 주저앉아있었다. 두사람은 비에 흠뻑 젖어 뻘건 흙물이 소리치며 흐르고있는 도랑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강우는 비물이 흐르는 얼굴을 한손으로 문지르면서 수걱수걱 걷는다. 250번은 신문지에 싼 빵이 젖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도 마음을 써서 품속에 꽉 껴안고 간다.

그는 한 토굴집에 멈춰서더니 찾지는 않고 그대로 쑥 들어섰다. 밖에 주춤하고 섰던 강우는 먼저 들어간 250번의 소리를 들었다.

《연희, 강선생을 모시고 왔다.》

강우는 마치 그 자리에 못박힌듯이 잠시 걸음발을 뗄수가 없었다. 집안으로 들어설 때의 그의 마음은 어떤 엄숙한것이기까지 하였다. 오래동안 가시밭과 벼랑턱의 길을 헤매다가 뜻밖에 불쑥 목적지에 다달은것 같은 기쁨과 감격이 온몸을 휩쌌다.

《안녕하셨어요? 강우아저씨.》

강우는 젖은 옷을 대강 짜고 방에 들어섰다. 연희가 단정히 앉아 다소곳이 인사를 한다. 애청학원에서 만났을 때의 연희는 어린 소녀였는데 지금 그와 마주선 연희는 얼굴에 깊은 음영을 가진 성숙한 처녀였다. 어두운 방을 부드럽게 비치고있는 빛처럼 강우를 조용히 마주본다.

《지혜선생도 안녕하셔요? 공장에서 헤여진 후 만나지 못했어요. 보고싶어요. … 무척…》

연희가 자기와의 상봉을 지혜를 만난것 같은 심정으로 대하고있다는것을 그의 물기어린 두 눈빛으로 강우는 알아차린다.

《복희누이는?》

250번이 묻는 말이였다.

《합숙에 가셨어요.》

250번은 잠시 생각하더니 일어설 차비를 한다.

《우리가 그리로 갑시다. 강선생님도 광부들이 어떤데서 사는가 보시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이건 어머니 드려.》 하고 신문지에 싼 빵을 내준다.

《공연히 오실 때마다 사오시네요.》

《연희 주는것은 아니고 어머니께 드리는거다.》

250번은 그 밝고 다정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화락하게 젖은 지하족을 다시 꼈다.

앞선 250번은 또 도랑을 끼고 올라갔다. 버럭더미를 지나 몇그루의 큰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펑퍼짐한 곳에 엉성하게 지은 긴 통나무집이 보였다. 갑자기 비발이 가늘어지고 산마루를 덮었던 재빛구름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때는 물이 뚝뚝 흘러도 모르겠더니 비가 얼마간 멎은 지금에 와서는 젖은 속옷들이 몹시 끈적거렸다. 합숙앞에 다달으자 250번은 올라온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골짜기를 <기아의 골짜기>라 부른답니다. 합숙에 들어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생활이 아니라 동물적인 서식이지요. 그래도 광부들은 필사적으로 살고있습니다. 합숙방에서는 야간작업에서 나온 광부들이 글을 배우고있을겁니다.》

《광산측에서 배워줍니까?》

어리석은 질문이였다.

《그럴리 있습니까.》

방문을 열자 땀내가 확 풍겨왔다. 맨땅에 멍석을 깐 방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상이나 옷장이나 이불장 같은 가구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겨울이면 방에서 그냥 장작불을 피우는듯 드러난 서까래며 기둥에 연기가 그슬려 새까맣다.

40전후의 장년광부들 20여명이 방안에 꽉 차있다. 엎드린채 조그마한 연필꽁다리에 침을 묻혀가며 구겨진 종이에 무엇인가 쓰고있다.

《이게 누구요? 강군이 아니요?》

글을 가르치고있던 거의 백발이 다된 로인이 덤벼치며 다가왔다. 강우도 그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소리를 쳤다.

《교장선생님!》

《아, 이거 반갑소. … 정말 반갑소. 사느라면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구먼.》 하고 말하면서 교장은 엄지손가락끝으로 눈물을 훔쳐내였다. 강우도 교장의 손을 잡고 서서 목이 메였다. 학대속에서 쫓기고 쫓겨왔건만 자기들은 이렇게 반갑게 만날수 있다 생각하여 가슴이 뜨거웠다.

《학생들, 오늘은 그만합시다. 지금 쓴 종이들을 내게 내고 갑시다.》

하는 교장의 말에 광부들은 소박한 웃음을 그리고 게면쩍어하면서 종이쪽지들을 내놓고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3 000명 광부중에 문맹자가 1 500명이나 있지 않겠소. 연희 언니가 그들에게 글을 배워주는 일을 시작하였소. 처음에는 배우려 하지 않더니 요즈음은 달라졌소.》

광부들이 돌아가자 교장은 결리는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치면서 그렇게 말하였다. 그는 강우가 국토건설단에 와있다는 말을 듣자 얼마간 거쉰 목소리로 이런 말도 한다.

《아예 락망이란 마오. 나로 말해도 교장으로 있을 때는 그 교장자리에서 밀려날가싶어 항상 겁나서 살았는데 그뒤 경찰서에 붙잡혀가서 갖은 천대를 다 받았고 여기 와서는 또 사무실청소부로 있느라고 수모를 당하지만 겁나지도, 꿀리지도 않소. 왜냐하면 여기서 나는 이렇게 광부들의 까막눈을 뜨게 하고있지 않소. 이 늙은것도 정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젊었을 때처럼 바라보는게 있고 사는 보람이 있소.》

비록 애청학원때보다 머리칼은 세였지만 표정이나 동작이 활달해진 교장을 바라보며 강우는 많은것을 생각한다.

《연희 언니도 만나고 가시오. 내 평생에 그런 녀자를 처음 보오. 지금 녀성반에서 글을 가르치고있는데 곧 올거요. 복희는 이 골짜기에 빛을 던져주었소.》

그러는데 거적문이 들리더니 복희가 들어섰다.

《강선생.》

서울에서 보았을 때처럼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있다. 수수한 옷차림이였지만 강우는 천만사람속에서도 복희만은 쉽게 찾아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초점이 명확하고 타는듯 한 눈빛, 강한 기백과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동시에 가지고있는 밝고 탄력에 넘치는 표정, 그런 녀자가 그리 많은것은 아니기때문이다.

《이렇게 만나 정말 기뻐요. 지혜소식을 모르시지요? 잘 싸우고있어요. 일전에야 선생님이 저를 찾고계신단 말씀을 들었어요.》

《어떻게 내가 찾고있다는것을 알았소?》

《한 광부가 알려주더군요. 저를 찾더라고…》

광부들은 강우에게 그런 녀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들 했었다. 한 광부가 강우의 행처를 밟아 제2대에 있다는것을 알아왔던것이다.

《용서하세요. 그 광부를 나무랍게 생각하시지 마셔요. 우리는 그 광부의 경각성을 리해해주셔야 해요.》

《섭섭하게 생각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석우에 내가 서있는것처럼 마음 든든해집니다.》

강우는 이 지하막장에 반항의 튼튼한 성새가 쌓여져있다는것을 느끼며 정말 마음 든든하였다.

그들은 오래 거기에 앉아있을수 없었다. 밤교대광부들의 잠자리를 내주어야 하기도 하였지만 마음놓고 그간의 회포를 나누게 평온한 생활을 하고있는 그들이 아니였다. 작별하면서 복희는 말하였다.

《저는 여기 와서 광부들의 의리와 힘이 무엇이라는것을 보았어요. 폭압밑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민감해지고 빨리 반항의 불씨를 가지게 돼요. 이 험한 산속의 메마른 돌자갈우에서 살지만 무엇인가를 전변시키는 불길속에 살고있다는것을 느낄 때 이 기쁨과 보람을 그 무엇과 바꾸겠어요.》

교장은 백발을 바람에 흩날리며 강우의 두손을 뜨겁게 감싸잡고 오래동안 놓지 않았다.

《또 만나겠지. 잘 가오.》

이 귀중한 사람들이 자기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강우의 가슴을 뜨겁게 감쌌다. 돌아가는 길에서 250번은 말하였다.

《그가 광산에 도착하기 이전의 광부들의 생활은 더 참담한것이였지요. 광부들은 시달리다 못해 페인이 된것처럼 부당한것에 대해 분노할줄도 모르고 인간이하의 고통에 관습되여 집짐승처럼 온순하고 참혹하게 살았소. 백창락이가 한명의 광부가 쓰러지면 딴 사람을 채용하고 병신이 되면 마을에서 내쫓군 하였지만 누구 하나 반항할줄을 몰랐지요. 복희는 광산에 도착하자 우선 그들이 인간이라는것을 자각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였소. 슬픔에 통곡하고 천대에 격노하는 인간의 감정을 소생시켜주었소. 그렇게 하는데 1년이 나마 걸렸다고 하오.》

《당신도 광산에 있었소?》

《광산에 있은 때도 있지요. 복희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알고있었소. 그건 그렇고… 광산이야기를 더해야겠소. 일단 자각한 광부들을 투쟁에로 부르는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하였다 하오. 오히려 무서운 중압에서 견딜줄 아는 강한 정신력과 감당하기 힘든 중로동에서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폭발적인 완강한 잠재력을 가지고있었던것이지요.》

멀리 그들의 막사가 보였다. 아직 재빛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있었지만 서쪽 멀리 푸른 하늘이 보였다. 인제는 젖었던 속옷도 체온에 말라버린듯 끈적거리지 않았다.

《여기 좀 쉬였다 갑시다.》

250번은 산등성이로 좀더 올라가더니 바위를 찾아 걸터앉았다.

《푸른 산골짜기에 맑은 공기, 그런데 왜 이렇게 살풍경하오?》

강우는 혼자소리처럼 느닷없이 말하였다.

《강형, 교장선생님은 지하막장,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젊어지셨다고 했소. … 강형, 살풍경한것이 이 골짜기뿐이겠소? 온 이남땅이 살풍경이지요. 이 살풍경한 땅에 강렬한 정서를 부어서 보람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강형, 손을 잡읍시다. 저 막사안에도 우리의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강우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투쟁조직이 내곁에 있었구만요.》

《아니, 강형의 마음속에서도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강우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비온 뒤끝의 맑은 공기를 가슴가득히 들이키였다.

강우의 편지에는 지나간 그 모든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리고도 그의 편지는 계속되였다.

《…250번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였소. 나는 그후 국토건설단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였소. 그뒤로는 일시적인 흥분에서 오는 반발은 점점 적어졌소. 그대신 집단적으로 짜고들어 벌린 작고 큰 충돌은 그치지 않았소. 조직적인 사건들은 우리 제2대뿐아니라 모든 건설단에 파급되였소. 그런 어느날 우리 제2대 400명은 야간작업의 페지를 요구하여 일제히 작업을 그만두었소. 방망이기합도, 몇몇 건설원의 체포도 우리의 단결과 투지를 허물지 못하였소. 그러자 놈들은 별안간 한밤중에 우리 제2대에 이동명령을 내렸소. 제2대를 갈기갈기 분산시키려고 책동하였소. 막사마다 행선지가 달랐던것이요.

조직은 건설원 다섯명에게 이동하는 틈을 리용해서 광산으로 탈주할것을 권고하였소. 새 투쟁을 위해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나는 당분간 광산에 있기로 했소. 지혜, 그무렵의 나는 조직이 주는 과업이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자기를 던지리만큼은 성장하였었소. 우리는 도주에 성공하였소.

탈주에 성공하여 광산마을에 도착한 나의 이름은 267번에서 다시 리영이라는 가명으로 바뀌였소. 직업은 운반공. 진실로 로동은 고되였소. 로동의 지나친 중하만으로도 부당하다고 말할수 있는 지하막장의 생활이 시작되였소. 건설단의 생활보다 여기가 헐하리라 생각해서 찾아온것이 아닌 나는 견디여냈소.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운반공이 아니라 한다하는 착암수요.

지혜와 헤여진 후-나는 자동차에 매여달리던 그때의 지혜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소. -국토건설단에서 5개월, 땅속에서 1년, 그것은 내 일생에 있어서 더없이 귀중한 나날이였소. 나의 힘, 나의 능력이 가장 값비싼 빛을 뿌린 시기라고도 생각하오. 공부도 했고 가르치기도 하였소.

광부들의 완강한 단결력과 의리와 힘을 배우고있는 나자신이 몹시 귀중하게 생각되였었소. 그들에게 진리를 전할 때의 나의 가슴은 보람에 가득차있었소.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투쟁의 길에 나선 한사람임을 자각하였던것이요.

지혜, 지금 우리 광산에는 폭풍전야의 가슴이 뛰는 정적에 휩싸여있소. ㄷ광산에 미국놈들의 략탈의 손이 뻗치였소. 2년전부터 놈들의 지질탐사대가 이 부근을 탐사하였소. 이 광산은 단순한 철광산이 아니였소. 놈들은 군사상 중요한 희유금속을 탐지해냈소. 백창락과 략탈교섭이 진행되였소. 그자는 그자대로 자기 주머니에 리득만 들어온다면 하나의 광산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민족의 재산도 서슴없이 미국놈에게 넘겨줄 매국노요.

우리는 광산을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새로운 투쟁을 조직해야 하였소. 략탈자에게도, 매국노 백창락에게도 응당한 징벌이 가해져야 하오.

우리모두 최후의 결전을 각오하고있소. 미국놈들은 온갖 악랄한 수단과 방법으로 ㄷ광산을 저들의 명의로 만들수 있을것이요.

그러나 그들은 결코 살아 움직이는 광산을 차지하지 못할것이요.

지혜, 이제야말로 나는 지혜와 나란히 걷고있소. 달이 비치는 버럭더미우에서 나는 활짝 가슴을 열고 당신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오. 그리고 나의 마음은 힘겨운 로동에 지친 당신곁에, 밤가는줄 모르고 학습하는 당신의 뜨거운 가슴속에 함께 있을것이라 믿소. 그럼 작별의 인사를, 손바닥에 광부의 못이 박힌 나의 손을!》

편지를 단숨에 읽은 지혜는 두터운 편지를 쥐고 혼자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놀랜듯 한 표정으로 도로 앉더니 마지막 한장을 다시 읽었다. 읽고나자 편지를 움켜잡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는다. 가보지 못한 ㄷ광산버럭더미우에 달빛을 받고 서있는 강우가 망막속에 떠오른다. 조금도 슬프지 않은데 눈시울에서 흘러내린 한방울의 눈물이 편지의 한 귀퉁이를 적시였다. 그러나 가슴은 말할수 없이 높이 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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