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장

9

 

작업반사무실에서 나온 경옥은 기쁨인지, 불안인지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가슴이 두근거렸다.

《직녀… 견우… 잘 생각해냈지?》

경옥은 얼굴이 빨개서 옥채에게 바싹 다가서자 그는 한심해하는 표정을 하였다.

《잘 생각해냈다구? 너는 참 철이 없구나. 그게 다 우리의 기름을 더 짜내자는거야.》

《짜내겠으면 짜내라지. 직녀상마다 양단 다섯마를 준댔어. 직녀왕에게는 반필! 반필이라니… 생각만 해두 가슴이 뛰여. 내가 그걸 타가지고 집에 간다면… 우리 집에서는 큰일이지 뭐. 그런걸 꿈에도 못 가져봤으니까.》

《흥, 하루에 그만큼씩을 짜자면 물도 안 마시고 변소에도 못 가고 눈 한번 팔지도 말고 그렇게 해도 될가말가야. 반필은 고사하고 다섯마를 타자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일하다가는 병이 도져서 죽어…》 하는 옥채의 목소리는 아주 우울하였다. 백창락의 창안인지, 림억규의 창안인지는 모르나 공장에서는 로동강도를 높이는 놀라운 방도를 생각해내였던것이다. 즉 매 직장에서 다섯명의 직조공과 수리공을 선택하여 경쟁을 조직하고 열흘동안에 목표량의 직물을 짜낸 직조공과 수리공에게 모두 직녀, 견우의 상으로 양단 다섯마씩을 주고 그중 1등에는 양단 반필을 준다는것이다. 그런데 그 목표량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한두사람이 어쩌다 달성해본 량보다 더 많은 량이였다.

옥채와 경옥이도 그 선수로 선발되였다. 양단의 황홀한 무늬와 반필이라는 엄청난 수량은 경옥의 머리를 아연하게 하였다.

《기름이야 째우기마련인걸. 상을 타면서 째우는것이 낫지 뭐… 우리 어머니는 내가 시집갈 때 가져가라 하겠지만 나는 조카의 설빔으로 두겠다.》

양단으로 설빔을 차린 조카에 대한 환상은 경옥의 마음을 기막히게 하였다. 옥채는 왜 그런지 무거운 한숨을 쉰다.

《나는 선수로 되지 않겠다.》

《왜?》

《경옥아, 설사 네가 그만큼 짤수 있대도 딴 사람 생각도 해야 하지 않니? 보나마나 우리가 그걸 짜낸다면 앞으로 그만큼 짜지 못하는 사람의 월급을 낮출거다. 공장주가 직공들 생각을 한적이 있느냐? 양단을 거저 인심이 좋아서 줄줄 아냐?》

《우리 아니면 딴 사람이 선수노릇을 할테니까 어차피 마찬가지야.》

《어쨌든 나는 안하겠어.》

하도 옥채가 신중한 표정을 하기때문에 경옥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장에 돌아온 옥채는 자기 기대쪽으로 가지 않고 지혜에게로 갔다.

지혜도 요즈음에는 여섯대의 기대를 맡은 기대공이였다. 옥채는 처음 올때보다 몹시 수척해진 지혜의 움직이는양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서서 바라보다가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천 짜는데만 정신을 쏟고있던 지혜는 얼마간 놀라면서 멈춰섰다.

《지혜선생, 선수로 안 나가야 옳지요?》

요즈음 무척 침착해진 옥채를 지혜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뿐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옥채의 생생한 얼굴에는 표정의 깊이가 생겼다.

《어째서?》

《몰라서 물어요? 저는 월등한 직포솜씨를 가지고있어요. 제가 짠 량을 표본으로 등급을 고쳐맨다면 그러지 않아도 먹구 살아갈만큼 받지 못하는 녀공들의 임금이 또 낮아지지 않겠어요?》

지혜는 옥채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옥채, 그렇지만 나가야 해.》

《네? 지혜선생, 저는 뭔가 구실을 붙여 거절할수 있어요. 내가 그것때문에 욕을 볼가싶어 걱정하지는 마셔요. 그리고 설사 욕을 본다쳐도 모두를 위해서라 생각하면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을수 있어요.》

《그런 너의 마음은 안다. 너는 <참회실>에서도 그렇게 했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가야 한다. 너만큼 남의 생각을 하는 처녀는 쉽지 않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남의 생각을 해서 안 나가겠다고 저는 말하고있어요.》

《옥채, 선수로 나가서 천을 많이 짜지 말란 말이다. 너와 언년이만 그렇지 경옥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너희들처럼 많이 짜지는 못하지 않겠니? 언년이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옥채의 두눈이 침착하게 빛났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가요? 언년인 좋은 처녀예요.》

《그렇게 해주겠어?… 고마와 옥채.》

옥채는 비로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하지만 지혜선생, 천을 덜 짠다는것이 내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예요. 천이 짜질 때 제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아셔요? 그럴 때면 기계와 실들이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귀엽기까지 하거든요. 열흘동안 그 기쁨을 내가 스스로 짓밟아야 하지요. … 그렇지만 할수 있어요. 감쪽같이 할수 있어요. 언년은 좀 미욱스럽게 그렇게 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는 아주 맵시있게 해치울수 있어요.》 하는 옥채의 얼굴에서 빛나고있는 웃음은 천진스러웠다.

다음날 공장은 선수로 뽑힌 다섯명의 직녀들에게 새 앞치마 한벌씩을 주었다. 지배인은 일장의 연설에서 이런 말까지 하였다.

《하늘의 견우, 직녀처럼 직조공과 수리공은 마음을 합심해서 모두 직녀상, 견우상을 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등을 받은 직조공과 수리공은 앞으로 견우왕, 직녀왕으로 모실테다.》

경옥은 마음이 뛰였으나 옥채의 얼굴빛을 살피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드디여 경쟁이 시작되였다. 언년은 성난 얼굴이였고 경옥은 놀란 토끼처럼 기계사이를 뛰여다녔고 옥채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그리고 자기의 기대들을 쓰다듬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열흘동안 푹 쉬는셈 치자.》

저녁녘이 되자 경옥은 수리공인 덕대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기계가 왜 오늘 이래? 벌써 여덟신데 절반밖에 못 짰어.》

덕대는 낑낑거리며 나트를 조이다가 심드렁해서 말하였다.

《<아사히>직기란 원래 그런걸 몰라? 절반이면 어때? 짜는껏 짜지, 다시 까불었단 봐. 한대 얻어맞구싶으면 까불란 말이다.》

《네가 감독이냐? 사람을 치게…》

《가만있지 못해!》

별안간 덕대가 성이 나서 벌떡 일어섰다. 경옥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하고 기대사이를 헤여나갔다. 속안이 단 경옥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않고 물대신 인중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핥았다. 물마시는 시간이 절약되고 변소에도 점심시간에 한번 가면 된다는것이다.

점심도 게눈감추듯 기대곁에서 훌떡 먹어치우고 신호종이 나기 전에 일을 시작하였다.

그렇건만 갈 시간이 거의 다되였어도 목표량을 하려면 두시간을 더해야 할것 같다. 오늘 그는 지친줄도 몰랐다. 동그란 두눈은 짜져서 감겨지는 천필만 노려보면서 팔팔 뛰였다.

《반장님, 두시간만 더 짜게 해주셔요. 그래야 돼요.》

반장은 두시간이 아니라 밤이라도 새우라고 하였다. 그러나 수리공인 덕대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되자 코끝을 기름묻은 손등으로 뻑뻑 문지르고나서 대답도 없이 나갔다. 경옥은 입술을 깨물고 수리공없이 일을 하였다. 웬간한 고장은 혼자 손질을 하고 손을 씻고 와서 다시 짰다. 그렇게 겨우 목표량을 다하자 두시간이 아니라 네시간을 더 일했다. 그래도 졸음은 오지 않았다. 두눈은 여전히 초롱초롱하였지만 팔다리가 더는 움직여지지 않았고 뒤머리가 지긋지긋 아팠다. 열일곱시간을 일한셈이다. 손을 꼽아보니 세시간밖에 잘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좋아, 열흘이야 못 견딜가?》

그런데 인수과에 천필을 바칠 때 보니까 언년이도 옥채도 목표량을 얼마간 넘쳐했다. 경옥은 비로소 울상을 하였다. 더구나 옥채가 괘씸하게 생각되였다. 선수로 나서지 않을것처럼 굴더니 자기보다 앞서 목표량을 다하고 간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지런한걸로 따라앞설테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경옥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였다. 과연 옥채와 언년의 생산량이 하강선을 긋기 시작하였다. 경옥은 이를 옥물고 더욱 기승스럽게 일하였다.

그렇게 닷새째 되는 날이였다. 경옥은 일하기가 정말 힘에 겨웠다. 온몸에 오한이 났고 실을 잇는 손이 떨렸다. 마음은 달리는데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아 눈물이 흘렀다. 그럴라치면 눈앞이 흐려져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오한에 떨리는 몸을 움직였다.

《경옥아, 너 미쳤니? 이 땀 봐…》

옥채가 손수건으로 비칠거리는 경옥의 얼굴에서 땀을 훔쳐주었다.

《저리 비켜!》

경옥은 옥채의 뜨거운 손길에 목이 메였으나 멎은 기대를 보자 또 달려갔다. 그날 온종일 옥채의 불안한 눈은 경옥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도 경옥은 2시간 더 작업을 해서 겨우 목표량을 넘쳐하였다. 경쟁은 단연 경옥이가 앞섰다. 다만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잘수 있는 네시간동안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야 하였다.

《이모, 어디 아파?》

신열때문에 입맛도 없어 밥을 먹는둥마는둥하고 자리에 눕자 자다가 깨여난 두 조카가 걱정스러운듯이 내려다보며 그렇게 묻는다. 경옥은 힘없이 손을 올려 사랑하는 두 조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웃으려고 했는데 왜 그런지 목이 메였다. 경옥의 눈에서 눈물을 보자 두 조카는 영문을 모르면서 입가를 비죽이더니 쿨쩍쿨쩍 울었다.

그런 어느날 경옥이가 기대옆에서 시래기범벅을 먹고나서 물을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옥채가 그의 팔을 꽉 붙들었다.

《경옥아, 정신차려. 몸을 돌봐야 하지 않니?》

《일없어, 견딜만 해.》

《너 정말 왜 이러니? 네가 뼈를 깎아서 천을 많이 짜면 딴 사람들의 월급이 낮아진다고 내가 말하지 않더냐? 공장주에게 리용당하고있다는것을 왜 모르니? 정말 답답하구나.》

《옥채, 너는 기술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지. 그렇지만 나는 이악으로 할수밖에 없단 말이다.》

《너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는지 좀 생각해보란 말야.》

《내 조카, 내 언니 그리고 우리 어머니… 나는 고생을 해도 괜찮아.》

경옥은 신열때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서슴없이 말하였다.

《양단 다섯마는 차례질지 몰라도 이다음 네 월급도 낮아진단 말이다.

그렇게 자주 말해도 모르겠니?… 경옥아, 너의 어머니나 조카들이 잘살게 되려면 백창락이밑에서는 안돼. 우리들에게서 기름을 짜낼 생각만 하는 녀석한테서 임금을 타야 하는데 어떻게 잘살게 되겠니?》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다.》

《그 말은 옳아. 이 땅 천지에서는 어디나 마찬가지야. 너 이북에서 직포공들이 어떻게 산다는 말 들었지?》

《나도 그런데서 살구싶다. 그렇지만 어쩌겠니? 갈수도 없고…》

《그러기에 말하지들 않드냐? 싸워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구.》

그 말에 경옥은 오래동안 잠자코 있었다. 한참만에야 중얼거리듯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너나 지혜와는 사정이 달라. 삐라를 붙이고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다가 붙잡히면 내가 고생하는것도 무섭지만 페병을 앓는 나의 언니며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가겠니? 남수는 너없이도 살아갈수 있고 지혜 어머니도 홀몸이니까 어떻게 살겠지. 하지만 내가 없으면 우리 집안은 거지노릇밖에 할수 없어. … 나는 그런 일을 가슴아파 할수가 없어.》

서글픈 얼굴을 한 옥채는 얼마간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너는 아둔하구나. 네 사정이 나보다 딱하리라는것은 알고있다. 그렇지만 나는 너와 처지가 바뀌였더라도 싸울수 있다고 생각해. 각오를 가져야 해. 너도, 너의 언니도, 어머니도, 조카도… 너는 감옥에 갈가싶어 두려워하고있지? 네 꼴을 거울에 비쳐보렴. 경쟁을 시작한지 일주일밖에 안되는데 네 얼굴이 어떤 모양이 되였나 좀 보란 말이다. 공장이 바로 감옥이란 말이다. 경쟁이 바로 고문이란 말이다. 형사가 너를 치기 전에 너스스로가 너의 살을 도려내고있단 말이다. 경옥아, 이 맹추야, 네가 이 꼴이 되는데 양단 한필을 타오고 설빔을 해준다고 너의 조카들이 기뻐할가싶으냐? 땅을 치며 통곡할게다. <이모 바보, 이모 바보!> 하고 말이다.》

《그만둬!… 가슴이 아퍼.》

경옥은 소리를 쳤다.

《부탁이야. 쉬염쉬염 일해. 나나 언년은 네가 아무리 적게 짜도 그보다 덜 짤테니까.》

경옥은 옥채를 처음 보는것처럼 한참이나 멍해서 바라보다가 작업시작의 전등신호가 울리자 말없이 기계를 돌렸다.

오늘은 더구나 오한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자주 기대에 손을 짚고 현기증을 멈추고나서야 순회를 하였다. 또 얼마 안있어 이번에는 모질게 기침이 났다.

(정말 견디기 힘들구나.)

가슴속이 꽉 막힌것처럼 답답하였다. 또다시 몇발자욱 걸었다. 기계소리들이 아득히 멀어지면서 어딘가에 눕고싶었다. 문뜩 미친것처럼 돌아가는 피대를 보자 섬찍한 생각에 얼마간 정신이 든다.

(이북의 방직기계들에는 피대가 없이도 어떤 천이나 다 짠다는데…)

자꾸만 어렴풋해지는 머리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천근무게로 무거워진 그의 몸뚱이를 받쳐준다. 어깨를 껴안아준것은 옥채의 손이였다. 경옥은 중얼거렸다.

《영 기력이 없어…》

옥채가 그의 입에 꽛꽛한 무엇인가를 넣어준다. 곧 달콤한 물기가 입안에서 내장속에 스며들었다. 강엿덩이였다. 옥채의 말이 귀가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기대밑에 쪼그리고 앉아 좀 쉬여라. 그동안 내가 기계를 보아줄게.》

《옥채… 왜 그런지 오늘 저 피대가 두렵구나. 이런 일은 없었는데… 30분만 쉬게 해줘.》

경옥이가 기계밑에 숨어있을수 있도록 옥채는 기계 하나를 멈춰준다.

엿 한덩이가 온몸에 속속들이 퍼져들면서 차츰 정신이 들었다. 기계소리가 또다시 귀청을 때리고 매캐한 솜먼지가 감촉되였다. 그러자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북받쳐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속으로 웨쳤다.

《왜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야 하니?》

20분이 못되여 옥채가 달려왔다.

《땅딸보녀석이 왔다. 우라질 녀석.》

경옥은 다시 일어섰다. 옥채가 멈추었던 기계의 조종간을 당겨준다.

《순회하는척 해!》

얼마동안은 꽤 뛰여다닐만 하였다. 어쨌든 오늘도 목표량을 해야 한다.

경옥은 또다시 아래입술을 사려물고 달리였다. 그러나 마음뿐이지 또 두다리가 휘청거리고 손이 떨렸다. 또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다음 기대로 기다싶이 건너가 실을 잇는다. 그리고 또 다음 기대로 발을 옮기던 그는 종시 악 소리를 치고 옆으로 튕겨나듯이 넘어졌다. 그러나 기계소리때문에 아무도 경옥의 비명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엎드려서 나사못을 조이던 덕대가 무심결에 얼굴을 들다가 비로소 쓰러진 경옥을 발견하였다. 달려간 덕대는 경옥의 상반신을 들어안았다. 소매자락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경옥이가 상했소!》

목청껏 웨치는 그의 목소리도 기계소리가 삼켜버린다. 그는 경옥을 다시 눕히고 성이 나서 가까이에 있는 기계들을 모조리 멈추었다. 옥채가 놀라서 달려온다.

《피!》

달려온 녀공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피대에 다쳤어!》

왼편팔목이 피투성이가 되여있었다. 나어린 녀공들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터치였다.

《전기를 꺼!》

갑자기 돌아치던 기계의 소음이 멎자 텅 빈것처럼 조용해진 작업장안에 처녀들의 우들우들 떠는 울음소리가 커졌다. 밖에서 쏟아지고있는 비소리도 들린다. 늦가을비답지 않게 억수로 쏟아지는 비소리다.

지혜는 피투성이가 된 경옥의 팔목을 살피였다. 손바닥의 뼈들이 부서진것을 본 그는 말없이 수건을 찢어 지혈을 시켰다. 처매진 흰 수건은 금방 붉게 물들었다. 맥을 짚어보고 가슴에 귀를 대였다. 간신히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렸다. 다른데도 다친데가 없는가 해서 살피는데 양말에 피가 묻어있기에 벗겨보았더니 종아리에 불에 덴것 같기도 하고 멍이 든것 같기도 한 이상한 반점이 있었다.

《누구야! 기계를 멈춘 녀석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최감독이 총알처럼 개페기있는데로 달려간다.

직조공도 수리공도 격노한 시선으로 감독의 거동을 쏘아보고있었는데 한 수리공이 불쑥 나서더니 달려가는 최감독의 다리를 걸자 그자는 머리를 짓쪼으며 넘어졌다. 일어서는 감독의 부리부리한 눈에 살기가 돋았다. 경옥의 부상에 그러지 않아도 격해있던 수리공 여라문명이 무서운 적의를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더니 최감독의 주위에 빙 둘러선다. 일하다 달려온 그들의 손에는 나사조이개며 뻰찌들이 들려있었다. 땅딸보의 살기띤 두눈에 점점 공포가 서린다.

또 그때 작업장밖을 지나던 기사장이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천천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울고있는 처녀들이며 적의를 가진 수리공들의 시선으로 대강 짐작은 하면서도 기사장은 덤비지 않고 점잖게 묻는다.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 피대에 감겼소!》

누군가 단죄하듯 설명하였는데 한 수리공이 경옥을 안고 다가온다.

《그게 누구요?》

기사장은 피에 엉킨 손목을 보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경옥이라는 직조공입니다. 직녀선수로 일하고있었지요. 그의 집에는 병든 언니와 조카며 동생들 일곱식구가 있소. 어머니가 가엾소.》

기사장은 혀를 차면서 최감독을 나무랐다.

《그러기 내 뭐랬소. 퇴근시간이 가까와올무렵에는 특히 직조공들을 주의해서 살피라고 안했소?! 로무자들을 위할줄 모르는 감독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기사장은 불상사가 일어나는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는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우선 화부터 났다. 그런 그도 가까이 온 경옥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가슴이 철렁하였다.

《빨리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하오. 가엾소. 기력이 약해서 졸렸겠지.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요.》

기사장의 말속에는 부상이 과실이라는것, 경상이라는것, 때문에 공장은 치료비나 위자료를 안 물어도 된다는 뜻이 포함되여있었다. 따라서 기사장에게 책임추궁이 될수도 있는 안전장치때문이 아니라는것이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구? 그럼 죽었으면 좋겠소?》

덕대가 덤벼들었다. 유들유들한 기사장은 손을 저어 덕대를 달래면서 어물어물 돌아선다. 그는 무슨 일이든 무사해지는것을 바랬다.

몇사람이 들것과 방수포를 가져왔다. 지혜가 돌아서려는 기사장앞에 불쑥 일어서며 말하였다.

《졸다가 다친것이 아니예요.》

《그럼 뭐요? 처녀는 의사요?》

《전기에 감전되였어요. 그래서 넘어지다가 피대에 다쳤어요. 전기에도, 피대에도 안전장치가 없었기때문이예요.》

기사장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로무자들의 펄펄 뛰는 모습들에 겁도 났지만 옥신각신이 벌어지는게 귀찮아서였다. 책임지지 않아야 할 일에는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피대에 안전장치가 없는 공장이 ㄷ방직뿐이란 말인가, 이 궂은날에 루전(전기가 새는것)이 되는것도 할수 없지 않은가. 안전장치로 말하면 지배인에게 권고한지 오래니 그 역시 자기 책임은 아니다. 그는 부상자를 눕힌 들것이 작업장을 나설 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곧 병원에 가겠소.》

이미 호일의 급보를 받은 병원에서는 집에 돌아갔던 김의사와 정림이가 병원에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정림간호장은 오늘도 예나 다름없이 방금 다려입은것 같은 깨끗하고 빳빳한 위생복을 입고 들것에 누워있는 부상자의 상처를 헤쳐본 후 조용히 진찰대에 눕혔다.

어두운 밖에서 여전히 쏟아지고있는 비가 간단없이 병원의 함석지붕을 두들긴다. 정림이도 김의사도 수술준비를 하느라고 유능한 의료일군들의 조용하고 기민한 동작으로 재빨리 움직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값… 없어요.》

경옥의 입술이 간신히 움직이더니 그런 말을 하고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진찰실앞 복도를 서성거리고있는 네다섯의 수리공들의 몸도 마음도 저려왔다.

진찰을 한 김의사는 꽛꽛한 솔로 손을 닦으며 지혜에게 말하였다.

《몸이 몹시 쇠약하오. 하지만 지혜말이 맞소. 감전이요. 대단치 않은 감전이였지만 넘어질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조성하였소. 손목을 절단해야 할것 같소.》

손목을 절단한다는 말을 듣고있던 로무자들은 머리를 쇠몽둥이로 얻어맞는것 같았다.

《이달에 들어 ㄷ방직에서 온 부상자가 여덟명이요. 안전대책을 세우고 일하도록 해야겠소.》 하고 말하는 김의사의 두눈은 날카로왔다.

의사도 간호원도, 환자를 실은 담가도 수술실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로무자들만이 남았다. 지혜는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집에 알려야지요.》

한 수리공이 지혜에게 귀띔한다.

《수술경과를 보고 제가 알리겠어요.》

밤은 그대로 깊어갔다. 현관에 걸려있는 커다란 벽시계가 한시를 쳤다.

어느 방에선가 입원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밤, 밤은 사람들의 모든 생각을 더욱 격하게 만든다. 분노도 아픔도 밤에는 더 견디기 힘들다. 불안은 심장을 그러잡고 숨이 막히게 한다.

흥분과 함께 항거를 결심하기도 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희생을 각오하기도 한다.

진찰실 한구석에 묵묵히 앉아있는 수리공들이 경옥의 부상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으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백사장도 림억규도 기사장도 털끝만 한 동정도 없이 치료비와 위자료를 물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리라. 그러나 로무자들은 경옥의 가긍한 처지가 곧 자기들의것이여서 울분과 불안을 묵새길수가 없어하는것이다.

지혜는 막막하였다. 가뜩이나 가난과 고통에 싸여있는 경옥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또 딸이 부상당했다는것을 알린단 말인가. 이 어두운 하늘밑에서 불구가 된 처녀의 운명이란 생각만 해도 슬픔에 몸서리쳐졌다.

수술을 끝내고난 김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지혜에게 말하였다.

《로무자의 과실이 아니라 감전에서 오는 부상이라는것을 우리는 끝까지 주장하겠소.》

위자료와 치료비의 응당한 지불을 위한 싸움에 그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결의를 전하는것이다.

《고마와요.》

김의사의 그 한마디 말에서 문뜩 지혜는 로무자들과 련결된 수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본다.

수술을 끝낸 경옥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있었다. 잠든 그 얼굴을 오래동안 묵묵히 굽어보면서 서있던 수리공들은 말없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돌아들 갔다. 지혜와 정림이만이 남았다.

《지혜…》

정림이가 밖에 나가자는 눈짓을 한다. 지혜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갔는데 정림은 웃으면서 그답지 않게 손목을 잡아끌고 한 병실앞에서 멎었다. 마치 감방의 통방암호처럼 가만히, 그러나 명백하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번 두드렸다.

잠시후 안으로부터 쇠고리 벗겨지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지혜가 놀라서 앗 소리를 치려는데 정림이가 잡고있던 손목을 재빨리 잡아당겨 안에 들어서게 하더니 문을 닫았다.

《지혜, 만나고싶었어.》

영애가 환자옷을 입고 자던 사람 같지 않게 얼굴을 빛내이며 서있었다.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르던 가을하늘, 삭막하던 벌, 그속에 농촌청년들에 둘러싸여있던 영애는 말했었다.

《나는 반드시 학교에 돌아가야겠어. 배우러가 아니라 싸우러 가겠어.》

대학의 학생조직들은 녀학생들속에 영향력이 있는 영애의 귀환을 몹시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기어이 학교로 돌아왔다. 가정교사, 인쇄, 번역, 무엇이든지 일감이 생기는대로 고학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 그런데 그 영애가 왜 여기에 서있단 말인가? 병때문이 아니라는것은 빛나는 얼굴표정으로 알수 있었다.

《대학의 교재를 만들어야 해. …》

영애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혜도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말이 없이도 그들은 서로가 무엇을 하고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있다는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들의 상봉의 기쁨은 세속적인 단순한것일수가 없다. 우정은 공통된 념원으로 하여 타오르며 믿음은 서로의 미래에 대한 신념과 꿋꿋이 다져진 투지로 해서 뜨거운 빛을 뿌린다. 영애는 학습교재를 인쇄할 장소를 이 방으로 정한것이다.

《원장은 영애의 병이 4. 19때 입은 부상때문이라고 하자 김의사가 담당하겠다는 말에 반대하지 않았고 그런 환자에게는 입원료를 실비로 해도 좋다고 하였어. 그리고는 절대로 이 방에는 들리지 않아. 다른 부상자들인 경우에는 며칠에 한번쯤은 반드시 내과진단을 하군 하는 원장이건만…》

ㅅ구에 그들을 위한 하나의 병원이 생긴것이다. 투쟁을 위한 새로운 병원이… 지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강우씨 소식은?》

영애가 얼굴빛을 흐리며 묻는다. 지혜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강우씨 아버님이 자작부속품들을 만드신다지?》

《젊어진다고 하시면서 만들고있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려고 활기에 넘쳐하셔. 강우씨도 고생을 하면 사람이 된다고… 자기 말이 맞는가 안맞는가 두고보라고… 그럴 때면 나의 온몸에 피가 끓어올라.》

강우에 대한 생각은 그때로부터 거의 반년이 지났건만 언제나 지혜의 마음을 견딜수 없게 하였다. 얼마나 세월이 흐르면 이 아픔에 관습이 된단 말인가. 이대로 영원히 소식을 알수 없어진다고 해도 아픔은 그대로 남으리라. 그에 대한 불안과 근심때문인지 강우에 대한 마음은 오히려 자주 만날수 있던 그때보다 더 강렬하게 심장을 그러잡고 압박하는것이였다.

《준하씨는 졸업을 하셨다지?》

윤아를 잃고 모대기던 4월의 준하가 생각키웠던것이다.

《응. 그리고 지금은 대학연구실에 있어. 준하씨 어머니는 지혜이야기를 자주 묻군 해.》

《훌륭한 어머님이였어.》

부드럽고 굳센 어머니, 지혜는 김씨를 늘쌍 그렇게 생각한다.

영애는 지혜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우리는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고있어. 이 교재는 그 투쟁을 위한 학습자료야. 준하씨도 이 자료들의 편찬일을 하고있어.》

영애의 시선은 줄곧 지혜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점점 격해졌다.

《당국자들은 4. 19 같은 전군중적항쟁이 벌어질가싶어 두려워하고있지. 하지만 그자들이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것은 성토대회나 시위가 아니지. 우리는 이미 정의감이나 열정만이 각오와 용기를 주던 4월의 우리가 아니니까.》

영애의 얼굴에는 신심을 말하는 태연한 표정이 있었다.

《지혜, 너는 정말로 달라졌어. 작년에 만났을 때는 너의 두눈의 불꽃이 나를 감동시켰다만 일년이 지난 오늘의 너는 어쩐지 내 가슴을 엄숙하게 하는구나.

로동이 너를 이렇듯 침착하게 만들었니? 아니면 천대에 대한 반항이 너를 이렇게 줄기차게 만들었니? 아니면 참기 어려웠을 그 고문의 아픔때문이냐? 하긴 그런것들이 너를 단련시키기야 했겠지…》

영애는 여전히 감동에 넘치는 표정으로 줄곧 지혜를 바라본다. 하지만 지혜는 영애가 단순히 지혜 자기 하나에 대한 찬탄에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더 큰것을 생각하여 마음이 북받쳐한다는것을 느낀다. 드디여 영애는 말하였다.

《크낙한 사상의 빛줄기가 너의 심장에 새로운 고동을 주었기때문이지. …간호장님, 나는 오늘 왜 이렇게 가슴이 터질것처럼 벅찰가요?》

영애의 마음의 격동은 그대로 지혜의것이기도 하였다. 크낙한 사상, 그것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령마루에로 그들을 인도하는 찬연한 빛발, 그것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온 겨레를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끄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자주사상의 빛발이였으니 그 빛발은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과 승리의 신심을 가지게 하고 힘과 예지를 키우게 하였다.

《지혜, 우리 고향을 기억하고있어?》

기억하고있다. 페허같다던, 그러나 아름다운 농촌, 《단결》이라는 거대한 힘의 자각을 안고 나래치는 미래를 향해 투지를 기른다던 청년들, 지혜는 그들의 꺾이지 않는 기개와 랑만에 머리를 숙였었다.

《그들도 싸우고있어. 동뚝을 막고 푼 논을 빼앗으려던 관료배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겼지. 농촌에 참담한 현상을 빚어놓은 그 모든 불의를 반대하여 싸우려고 그들도 대오를 준비하고있어.》

영애의 목소리는 더욱 격해진다.

《어떻게 통치배들이 공포에 떨지 않겠어. 튼튼한 대오가 싱싱한 힘을 가지고 자라고있거던. 우리는 새로운 투쟁을 위해 무엇보다먼저 민족자주사상을 잘 알아야 해. 흥분만 앞서던 4월의 대오가 아니라 확신에 넘치는 강철의 대오로 자라기 위해서지.》

《이미 신념을 가진 힘의 덩어리가 줄기찬 뿌리를 내리면서 걸음마다 강해지고있지.》

정림이가 지혜와 영애를 의연히 바라보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혜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창밖이 푸르스름해졌다. 벌써 먼동이 터오는가싶다. 지혜는 경옥의 집으로 가야 한다. 그들의 상봉은 언제나 짧았다. 짧으나 의의있는 불꽃이 타는 시간이다. 언젠가 마음껏 격동을 나눌 앞날의 커다란 상봉을 위해 아끼고있는 시간이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항상 함께 있어.》

지혜와 영애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속에 못다한 많은 말을 담으면서 작별하였다. 정림이가 현관까지 바래주었다.

경옥의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비발이 가늘어졌지만 지혜는 축축하게 젖어 시름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어디선가 겨울을 예고하는듯 한 차거운 랭기가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판자집거리에는 아직 불상사의 소문이 퍼져있지 않았다. 으시시하고 어수선한 가을의 새벽비를 맞으며 로무자들이 벌써 출근을 하고있다. 부석부석한 얼굴에 밥곽을 낀 그들은 이따금 후 한숨을 짓는다.

경옥의 어머니는 불도 없는 어두운 부엌에서 새벽조반을 짓고있었다. 열어젖혀진 부엌문에서 쓸어나오는 연기가 눈을 쓰리게 한다. 방에서는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옥의 어머니가 사이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친다.

《제 새끼들이 싸우는데 보고만 있어? 온종일 누워있으면서야 아이들이나 좀 달래려무나.》

《얘들아, 조용들 해라…》

《에이구, 내 팔자두. 경옥이는 왜 여적 안 오누. 그렇게 일하다가 앓아누우면 어쩔라구 이러는지…》 하고 가래기를 틀어막던 어머니는 비로소 부엌문앞에 서있는 지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무슨 일이 있었소?》

항상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지혜의 침통한 얼굴빛을 보자 경옥의 어머니는 무서운 표정으로 한걸음 다가선다.

《피대에 감겼소? 기진해서 인사불성이 되였소? 아이구, 이 일을 어쩐단 말이요. 얘야, 경옥이가…》

경옥의 어머니는 헤덤비며 방으로 들어간다. 연기와 함께 밀려나오는 불을 집어넣은 지혜도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싸움을 뚝 그치고 지혜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머니는 방바닥에 펄쩍 주저앉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혼자소리를 하였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죽었소? 다쳤어? 어디를 다쳤소?》

그 어머니의 불안한 목소리는 방안의 광경을 그대로 표현하고있었다.

가마니를 깐 방바닥에 올롱해서 앉아있는 아이들, 그들은 어른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에게 무엇인가 큰 불행이 닥쳐왔다는것을 느끼면서 울상이다. 총각애들은 버럭더미에 석탄을 주으러다닌듯 온몸이 새까맣고 얼굴은 반들반들하였다. 담벽도 방바닥도 그들이 묻힌 석탄얼룩으로 온통 거밋거밋하다. 경옥의 사랑하는 두 조카애들은 피기는 없었으나 사색이라도 깃들어있는듯 한 그 커다란 눈들이 불안에 떨고있다.

《그애가 병신이 되다니? 배부른 놈들이 그애 언니를 페인으로 만든것이 모자라서 경옥의 팔을 또 짤라간단 말이요!》

어머니는 악을 썼다. 지혜는 팔을 다쳤다고 했을뿐이지만 그는 모든것을 짐작한다.

어머니는 자기 가슴을 쥐여뜯었다. 생활의 사나운 파도에 밀려 막다른 골목에 처박히운 절망감.

《어머니, 제가 병원에 가보겠어요.》

경옥의 언니가 기운없이 일어나 앉는다.

《내 혼자 가마. 너마저 큰일 칠라. 제발 눠있어.》

지혜는 부엌에 나가 경옥의 어머니대신 아침끼니를 마저 만들었다. 탄가루에 알룩달룩해진 일곱살 난 사내애가 나오더니 지혜곁에 오도카니 앉아서 무엇인가 먹을것이 되기를 기다린다.

《우리 이모 팔이 없어졌어?》

지혜는 그애를 껴안고 말했다.

《아니야, 없어지긴 왜 없어지겠니.》

《그럼 할머니가 왜 울어?》

《이모는 어디 갔다 며칠 있어야 온단다. 그래서 할머니가 화가 나신거다.》

《응, 할머니는 화를 잘 내셔. 우리 이모 며칠 있어야 오나?》

그런데 조카애는 잠시 잠자코 있다가 난데없이 물었다.

《이모 북에 갔나?》

《북?》

《이모가 그러는데 이북은 참 살기 좋다누. 거기 가면 석탄을 안 줏는대. 경진이 삼춘은 학교에 다니구 나랑은 유치원에 가구. 과자랑 준댔어… 거기 가면 배고프지 않다누. 아지미도 이북에 가보았어?》

《아니.》

조카애는 실망한 한숨을 짓는다.

《아지미, 이런 이야기 아무보구두 하지 말아야 해. 순경이랑 미국놈이 붙잡아간댔어. 정말 아지미 말 안하지?》

《안하고말고.》

《이북에 가면 말야, 김일성장군님이 우리를 안아주신댔어. 우리 이모가 그러는데 빨리 커서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가자고 했어.》

《이모말은 정말이다.》

《사과랑 과자랑 학교랑 김일성장군님이 다 주신댔어. 김일성장군님은 제일 좋은건 뭐나 다 아이들에게 주라고 하셨대.》

《그렇단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신단다.》

지혜는 경옥의 조카를 한팔에 껴안았다. 한것은 경옥을 껴안는 마음에서였다. 아둔한 맹추라고 옥채의 마음을 그렇듯 애태우는 경옥이건만 조카애들과 함께 있는 경옥의 마음속에 공화국이 살아있는것이다.

경옥의 부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실신한 경옥이가 들것에 실려 작업장문을 나설 때 로무자들은 그저 묵묵히 바래였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담벽을 치며 통곡하고있었다.

그 격노를 자각과 투지에로 묶어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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