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장

8

 

강우가 다니는 《일일신문》이 재정난에 처한지는 이미 오랬다. 하긴 어용출판기관을 제외한 남조선의 모든 언론출판기관들이 정치적으로는 당국의 가혹한 통제와 탄압때문에 기를 못 펴고 경제적으로는 빚투성이여서 은행이나 재벌들의 손아귀에 얽매여있는것이다. 진실을 다 말하기는 고사하고 거짓말을 밥먹듯 해야 정간이나 페간을 면할수 있는데 사람들은 신문들에 무엇보다도 진실을 요구한다. 부당한것에 대한 비판이 없거나 정의로운것에 대한 열정적인 지지가 없으면 아예 사보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모든 신문사들은 당국의 횡포에도 일정하게 비위를 맞추고 독자들의 정의감에도 응하는 그런 신문을 만드는 불가피한 재주를 놀아야 한다.

강우가 다니는 《일일신문》은 정간이나 벌금의 곤경에 처한 일이 없는 대신 구독자가 그리 많지 않아 어느덧 재정은 점점 쪼들려서 난방을 절약하고 기자들의 월급을 곧잘 체불하면서도 장부에 매달처럼 적자를 기입하고있는것이다.

5. 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이전부터도 그 곤경은 혹심하여 신문사의 문을 닫던가 송두리채 경매에 붙이던가 해야 하는 두 길만이 남았었다.

경영주는 살아남아보려고 투자를 해줄 자산가를 물색하여 매일처럼 찾아다녀보나 교제비만 탕진할뿐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 백창락이가 투자에 응할 기미를 보였었다. 애청학원에 강우가 찾아갔던 그무렵이다. 흔히 재벌들이 출판사업에 손을 대는것은 신문에서 큰 리윤을 바라서가 아니라 저들의 어두운 뒤골목이 폭로되지 않도록 보도기관의 힘을 리용하려는것이며 신문을 통해 적수를 중상하여 파멸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 강우를 만난 백창락이 《일일신문》을 매수할 생각을 한것도 그때문이였다.

백창락의 투자목적이 어쨌든 신문사가 파산하지 않기 위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경영주는 편집국장을 강압하여 애청학원 페교와 관련된 흑막거래를 폭로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투자의 교제를 진행하였었다.

하지만 백창락은 아주 적은 량의 주를 샀을뿐 큰 투자는 한달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이리 핑게 저리 핑게로 종시 리행하지 않았다. 그후 5. 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백창락의 뜻대로 애청학원이 페교되고 ㄷ방직이 확장되자 창락은 경영주를 만나도 주지 않았다. 경영주는 그제야 자기가 속았다는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인제 와서는 신문을 더 많이 팔리게 하는 길밖에 살아남을 길이 없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요구에 맞게 기사들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 경영주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최저한도라도 좋으니 신문의 색채를 더 적극적인것으로 만들자는 국장의 제의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온 강우에게 급사애가 신바람이 나서 이런 말을 전한다.

《국장님이 아까부터 기다리고계셔요. 강선생님, 한턱 단단히 내셔야 해요.》

《무슨 일인지 알고나 그러냐?》

《왜 내가 몰라요. 차를 가지고 국장실에 들어갔다가 다 들었어요. 강선생님도 깜짝 놀라실거예요.》

《하도 놀랄 일이 많으니 인제는 아무 일에도 놀라지 않는다.》

강우는 쓰거운 웃음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천천히 국장실로 향하였다.

《아, 강우군! 축하하오.》

뜻밖에도 국장은 간사회에서 강우를 정경부 차장으로 임명하였다는것을 전하였다.

《강우군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겠지?》

국장은 즐거운 어조로 떠보듯이 강우를 쳐다본다.

《왜 그렇겠습니까, 감격이 이를데없습니다.》

강우는 허구픈 미소를 짓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줄 알았어. 그런데…》

국장은 서랍에서 원고뭉치 하나를 내놓는다. 강우는 흘깃 국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ㄷ방직의 구타사건과 관련한 강우의 시사론평이였다.

《사장은 결심을 채택하였네. 그래서 이 론평이 해빛을 보게 되였어. 그러나 이대로는 무모하지. 당장 페간처분을 받던가 삭제를 당할걸세.》

강우의 얼굴에는 의혹과 함께 그 어떤 알수 없는 정기가 두눈에 떠오른다.

《좀 고쳐줄수 없겠나? 그렇다고 타협조로 쓰라는것은 아니지. 무지막지한 녀석들도 구실을 찾을수 없도록 그렇게 써달라는거네.》

국장의 뜻밖의 말에 줄곧 그를 응시하고있던 강우는 받은 충격을 누르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고 그자들이 그런것도 가려보지 못할 바보인줄 아십니까?》

《왜? 무섭나?》

강우의 얼굴에는 일순 성난 표정이 지나갔다.

《물론 태연할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서워서가 아니올시다. 다만 그런 기사들이 해빛을 보게 되는데는 저 하나의 각오만으로 되는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신문을 도마우에 올려놓는 용기가 있어야 할겁니다. 국장님도 사장님도…》

《솔직히 말해서 페간될 각오까지는 하고있지 못하네. 사장이 용기를 낸것은 문을 닫게 된 신문사의 재정적위기를 헤여나가보자는데서 온것이고… 하지만 나로 말하면 위험에 대한 얼마간의 각오가 없지는 않아. 그렇지만 요즈음 박정희가 <민정이양>문제를 두고 약간 립장이 난처할 때지. 재정적지반도 아직 튼튼하지 못한데다가 정치적으로도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아 갈팡거리고있지. 이런 틈새를 리용해서 하고싶던 말을 하자는걸세.》

강우는 아무말없이 담배 한대를 다 피웠다.

《자, 이 기사를 가지고 가게. 사흘의 말미를 주지.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줄 믿고있네.》

기사를 호주머니에 넣은 강우는 가슴을 압박하고있는 허다한 생각들과 맞씨름하는듯 한 격한 기분으로 거리를 거닐었다. 《군정》의 폭압과 부패를 파헤쳐 세상앞에 폭로하는 글을 쓸 용기가 자기에게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해서가 아니였다. 그의 흥분은 가슴에 차고넘쳤던 울분이 갑자기 돌출구가 생기자 오히려 어찌할바를 몰라 사납게 몸부림치고있는것이라고 할가. 그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대문앞까지의 가깝지 않은 거리를 주위정경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그저 흥분에 뒤채기면서 목적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스스로도 자기의 감정이 기쁨인지, 노기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게 거리와 골목들을 얼마나 싸다녔을가. … 저녁의 어스름이 다가왔을 때 그는 문뜩 한 키낮은 집의 문을 두드리였다. 그리고나서야 그것이 지혜의 집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가슴에 받은 강렬한 충격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지혜가 요구되였던것이다.

공교롭게도 지혜는 밤일을 나가려고 밥곽을 손에 들고 뜰에 나섰던 때였다. 생활에는 자주 있을수 있는 례사로운 일이건만 강우는 실망의 무거운 납덩어리가 흥분을 한꺼번에 밀어던지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소?》

《옆집에…》

강우가 왔는데도 나가야 하는 지혜도 난처해한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걸어요. … 공장에 늦어져도 괜찮아요. 저는 지금 함께 걷고싶어요.》

북한산에서 만난 때로부터 지혜는 강우에 대해 마음이 씌였고 왜 그런지 그를 만나고싶은 마음을 달래기가 고통스러워졌다. 그런 지혜는 또 한번 마지막말을 되뇌인다.

《걷고싶어요. … 한번만이라도… 마음껏…》

지혜의 낮으나 탄력있는 목소리가 강우의 가슴에 감겨오는듯싶다.

좁은 골목길이였다. 집집에서 무엇인가 끼니들을 끓이는 냄새가 저녁의 선들바람을 타고 스며든다. 별로 맛있는 냄새는 아니였지만 습관된 생활의 흐름이 느껴진다. 지혜는 걸으면서 강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셔요?》

《어떻게 아오?》

그의 표정의 갈피갈피를 놓치지 않고 마음을 쓰는 지혜의 마음에 감동을 느끼며 강우는 되물었다.

《강우씨 두눈이… 저의 가슴까지 뛰게스리…》 하고 웃음을 그린다.

그 눈이 얼마나 다정한지 강우는 잠시 그 눈만을 바라보며 딴 생각들을 잊어버린다. 그 눈은 그가 모든것을 던져버릴듯이 뒤채길 때도 변함없이 혼자 살아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없이도 결코 광채를 잃지 않을 눈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눈이 때로는 너무도 신선한 빛을 뿜으며 살아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먼거리를 느끼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새로운 충격에 북받치고있는 지금 불꽃이 튀는 그 두눈은 가깝고 다정하고 부드럽게만 느껴진다.

《지혜.》

《예?》

《무엇인가 진실을 말할수 있게 됐소.》

말뜻을 다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지혜의 얼굴에는 새로운 기대로 해서 광채가 더해진다.

《진실을 담은 기사들을 쓰겠다는거요. ㄷ방직구타사건과 관련된 기사도…》

강우는 문뜩 결연한 표정으로 지혜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어딘가 앞을 바라보았다.

《쓰겠소. 생각하면 아무것도 쓰지 않은 이 몇달처럼 쓰고싶어 견딜수 없었던 때는 더는 없었던것 같소.》

갑자기 지혜의 얼굴에서 가벼운 웃음이 가시였다. 그대신 마음속깊이에서 무엇인가 절절하게 호소하고있는듯 한 강한 빛발이 비꼈다. 강우는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좁은 골목길에는 밤의 어둠이 저녁의 어스름한 빛갈마저 서서히 걷어들이고있었다. 지혜는 흠칠하는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본다. 강우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있었다.

《여기서 갈라집시다. 지혜는 늦지 말고 공장에 가오. 나는 신문사에 돌아가야겠소.》

지혜는 시선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혼자소리처럼 낮은 소리로 말한다.

《…공장에는 늦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

강우는 문뜩 소녀시절의 지혜를 보는것 같았다. 그에게 모든것을 기대면서도 그를 다 리해하고있지 못하는 단순하고 다정하기만 하던 그 지혜가 그때처럼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그에게 다가선다. 하느적거리는 머리칼의 연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의 볼을 스치고 가슴에 스며든다. 그 역

시 그때처럼 괜스레 무뚝뚝하게 말하였다.

《새로 쓸 기사의 자료들을 조사하기 위해 신문사에 가야겠소.》

그러자 지혜는 역시 그전날처럼 신뢰와 존경만이 있는 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언젠가 모든것을 이야기하고싶어요.》

지혜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렇게 말하였다. 강우는 무엇인가 참기 힘든것을 견디면서 지혜와 헤여졌다.

강우는 정력적으로 일하였다. 온갖 자료를 종합하면서 침체해있던 울분을 분화구로 뿜어내듯 글을 썼다.

당시 권력내부안으로는 파벌싸움, 밖으로 《군정》에 대한 인민들의 랭대에 떨고있던 박정희는 정치적지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정치자금을 얻기 위해 대대적인 협잡판을 벌리고있었다. 탐오, 사기, 횡령의 스산한 놀음판을 벌리면서 그것을 합법화하기 위해 악법을 만들고 포고와 명령을 련발하고 경찰과 깡패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였다.

각 신문들은 그중의 한 단면들을 산만한 작은 기사로 조심스럽게 보도하였었다. 강우는 그 모든것을 종합하고 그 잡다한 자료속에서 본질적인것을 포착하여 군사《정권》의 사기적면모를 명확하게 드러내였다. 그리고 그는 《군정》의 사기협잡놀음이 그들의 창안이 아니라 미제상전의 지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있다는것도 암시하였다.

국장은 강우의 론평을 읽자 찬탄하였다.

《잘 썼네, 예리하게 폭로하였지만 당국에서도 어떻게 할수가 없을걸세. 이 론평이 나가기만 한다면 독자들에게는 물론 출판계에도 <군정>을 비판하는 련쇄반응이 일어나리라 나는 확신하고있어.》

그무렵, 강우의 집안에도 새로운 활기가 소생하였다. 아버지는 돋보기를 끼고 기름투성이가 되여 사랑채에 꾸린 작업장에서 신바람이 나서 일하였다.

《아버님, 천천히 하십시오.》

《내 걱정은 말라니까. 되려 젊어지는것 같다. 사람이란 일하고 먹어야 한다는 리치가 옳다는걸 인제야 알았느니라. 오히려 네가 걱정이다. 이 며칠 뭘 그리 써갈기냐? 집안살림에 보태느라고 량심을 속이고 아무거나 쓰는게 아니냐?》

변명이 없이 그저 빙그레 웃는 강우의 표정에서 량심의 가책이 없음을 본 아버지는 만족스러워한다.

《자식두……》 하고는 밝게 웃었다. 그러나 강우는 혼자 속으로 침울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였지. 이 며칠 사는것 같다. 하지만 다 석연해진건 아니다. 어쨌든 눈치를 보며 써야 하니까. 마음내키는대로 재능을 휘갈길수 있는건 아니다. 재능이 관료배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진실을 다 말하지 못하기는 오십보, 백보인지도 모른다. … 다만 안 쓰는것보다 날뿐이다.)

그의 위구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그 론평들은 해빛을 보지 못하였다.

국장은 강우의 론평이 삭제되여 거밋거밋 긁혀진 신문을 책상에 펴놓고 무거운 한숨을 지었다.

《내 실책일세. … 신변에 주의하게. 당분간은 출퇴근을 사의 찌프차로 하고 결코 혼자 다니지 말게.》

강우는 무릎에 놓인 두주먹을 부르쥐고 가슴속에 들어찬 울분의 소용돌이를 참으려고 안깐힘을 썼다.

《국장님, 하지만 저는 이럴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강우가 자기 방에 가서 한시간도 못되였는데 또다시 국장이 불렀다. 국장은 신중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본다.

《또 한가지 심상치 않은 일이 강군을 기다리고있지.》

《뭔데요?》

《공보부에서 호출이 왔어.》

《무엇때문입니까?》

《모르지, 어쨌든 오늘 6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네.》

국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잇는다.

《강우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충분히 마음을 다잡고 가야 할걸세. 경찰이나 정보부의 호출은 아니지만서두.》

《알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돌아올 때에 사에 들리게. 기다리고있겠으니까.》

국장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우는 시간보다 얼마간 늦어 공보부에 도착하였다. 안내하는 처녀가 그를 공보부 차관실에 데려가는데는 더우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강우군, 이렇게 만나 반갑소.》

강우는 차관이 권하는대로 커다란 손님용안락의자에 태연하게 앉았다.

요란히 큰 책상에 마주앉은 차관은 동그란 얼굴에 미소를 그리고있었다.

강우는 우선 차관의 낯짝부터 관찰한다. 번지르르한 이마, 사기협잡에 흐려진 눈빛, 유들유들한 몸집들이 어느모로 보나 전형적인 정상배의 형이였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코날과 칼날처럼 단단하고 얇은 입술이 표독한 인상을 준다. 차관은 인사말이며 날씨들에 대해서 대중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을뿐 좀처럼 용건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술잔에 양주를 부어주기까지 한다.

강우는 점점 더 영문을 알수 없었으나 태연하게 술도 받아먹고 답례술도 붓고 담배도 피웠다. 그러면서도 매 거동에 과장된 례의를 갖추면서 왜 불렀는가 묻지도 않았다. 별반 정상배들과 외교교섭을 한 경험은 없으나 어떤 정황에서나 그 정황이 요구하는것에 대한 명확한 판단력을 가진 그는 어물어물 말려들지도 않았으며 공연히 첨예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다.

《강군, 장관께서 강군의 론평을 읽으셨소.》

《네?… 이 몇달 저의 론평이 실린것은 없었습니다만…》

강우는 얼마간 놀랐다.

《왜 없어, 나도 보았소. 며칠전에 실렸던데…》

차관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강우를 주시한다. 강우는 태연하게 웃었다.

《삭제된것 말입니까?》

《삭제되였소? 그거 안됐군… 어쨌든 나는 이전부터 강군의 론평들의 애독자요. 그 예리한 분석, 패기에 넘치는 필봉, 군의 론평들은 이 나라를 청신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고있단 말이요.》

강우는 그자의 표정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군사깡패들에 대한 규탄의 뜻으로 일관된 자기의 론평들이 이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을리 만무하기때문이다.

《천만뜻밖입니다.》

강우가 보일가말가한 비웃음을 머금고 대답하였건만 차관은 강우의 야유를 알아듣지 못한다.

《강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현대적인 <제3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커다란 포부를 안고 당당하게 발족하였소. 부패한 구정치인들로서는 생각도 못했을것이고 감당도 할수 없었을 과단성있는 <개혁>들을 단행하였소.》

차관은 개기름이 흐르는 유들유들한 자기 낯짝처럼 철면피한 이야기를 주어섬기고있다. 무지막지한 《군사재판》, 총칼을 휘두르며 굶주리고 헐벗은 인민들에게 강요하는 《내핍생활》, 그것들이 《과단성있는 개혁》이란 말인가. 그 《개혁》밑에 량심의 붓을 꺾어야 하였고 진실은 삭제를 당해야 했단 말인가. 강우의 얼굴에 비꼈던 쓰거운 미소에 차츰 노기가 서린다. 차관은 이야기를 계속하고있다.

《하건만 강군, 호사다마라 시기질투와 야욕에 눈이 어두운자들이 저들의 유치한 판단과 궤변으로 군사<정권>을 헐뜯고 지어는 박의장각하를 모해하려고 날뛰고있소.》

차관은 강우를 응시한다.

《너도 그중 한사람이 아니냐?》 하는 협박의 눈초리다. 강우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천천히 담배를 피워문다. 차관의 얼굴에 이상한 미소가 지나갔다.

《그렇다고 강군을 가리켜 한 말은 아니요.》

강우는 잠자코 담배만 빨았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그런자들의 준동을 그대로 내버려둘수는 없소. 내무부에서도 그렇고 공보부에서도 그렇소. 하지만 공보부는 내무부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강권을 행사하는 곳은 아니요.

우리 공보부는 말과 글로 군사<정권>을 모해하려는자들의 론지의 부당성을 때리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단행하는 <개혁>의 진의를 백성들에게 명백하게 전달해야 할 사명을 가졌소. 공보부는 그런 필진을 최상의 특혜로 대우할 작정이요. 박의장각하께서도 그런 공보부 기안에 만족을 표시해주었소.》

강우는 그제야 비로소 자기에게 던지려는 미끼의 륜곽을 알았다. 배운것이라고는 일제하에서 《황국신민》의 정신과 새로운 상전인 미제에게서 첩보훈련을 받은것밖에 없는 무식쟁이깡패 박정희군사《정권》에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입히기 위해서 온갖 모략과 사기협잡의 수완이 동원되고있는데 그중 하나로 군사《정권》을 위한 어용론설의 집필자가 필요한것이다.

바로 강우자신이 그 적임자로 지목된것이다. 강우는 난처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어이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강우는 앞질러 말하였다.

《그런 중요한 자리를 저에게 맡기시지야 않으시겠지요?》

《강우군! 공연한 사양을 하시오.》

《사양이 아니라 거절하기 난처하니 안 들으니만 못해지겠기 말입니다.》

《강군, 제노라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를 노리고 은연중 암투를 벌리고있소. 강군의 필봉밑에서 군사<정권>이 빛을 뿌릴것이요. 마음이 솟구치지 않소? 이런 행운을 공연한 겸양으로 놓쳐서는 안되지.》

그 말을 할 때에 차관의 단단하고 얇은 입술이 암팡스럽게 움직였다. 강우는 물끄러미 그 표정을 살피며 모면할 방도를 생각한다. 어차피 《칭찬》을 받으면서 거절할수는 없을것 같다. 그렇지만 할수 있는껏 변명은 해본다.

《좋은 자리가 나섰다고 해서 <일일신문>과의 의리를 하루아침에 배반하기가 저로서는 난감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일일신문>은 풋내기던 저를 키워서 차장까지 만들어주었으니까요.》

《군의 그 마음씨도 대단히 마음에 드오. 그러나 공보부에서는 강군의 수입을 열배로 높여줄것이요. 그런 영달의 길을 거절하도록 강우군에게 저들에 대한 의리를 강요한다는것은 <일일신문>으로서도 삼가해야 할 일이지.》

강우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억누르고있던 경멸을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 분에 넘치는 후대를 받는것에 기쁨과 감동을 느낄줄 모르는 저는 그저 립장이 딱할뿐입니다. 차관님께서 건의하셔서 저보다 재능있고 저보다 량심을 덜 가지고있는 그런 사람을 물색하시여 맡기시도록 알선해주실것을 바랄뿐입니다.》

그리고나서 강우는 모양있게 썰어놓은 희멀건 사과 한쪽을 집어들어 와작와작 씹었다. 차관의 얼마간 놀란 눈이 갑자기 사나와진다. 교형리들의 살인직전의 시선이 바로 저럴지 모른다. 대담한 강우는 오히려 유순한 미소를 그리였지만 통치관료배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차관도 상전앞에서는 참을성이 있지만 아래사람앞에서는 모질게 신경질이였다. 그자의 얇은 입술이 더욱 가늘어지더니 그 입술짬에서 암팡스런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군사<정권>의 명령을 거역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오? <국가>반역이요.》

급작스런 협박이다. 강우는 잠자코 있었다. 잔뜩 앙심을 품은 놈은 어떠한 말에도 말꼬리를 잡을 잡도리를 하고있는것이 뻔했고 이자들의 스산한 흑막속에 밀려들어 귀신 몰래 죽을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그의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조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절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하리라는것을 미리 짜들고있는 판에 조심한다고 거절이 응낙으로 변할수도 없는 일이고보면 욕설을 퍼부으나 아부조로 말하나 거절에서 오는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강우는 신문사에 되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속에서 대충 인사를 하고 곧 공보부를 나와 누가 뒤덜미를 잡아당기는것 같은 불안을 느끼며 거리로 나왔었다. 그런데 정문근처에 대기하고있던 두 형사가 강우의 량옆으로 다가왔다. 그중의 한 녀석이 아주 부드럽게 말하였다.

《우리와 함께 좀 가실가요?》

형사 하나는 옆에 바싹 붙어서고 다른 하나는 뒤에 섰다. 강우는 공포나 절망이 아니라 반사적인 분노를 느끼였다. 교차점에 오자 강우는 두 녀석을 때려눕히고 도주할 생각을 한다. 승산여부를 가릴 여유도 없다. 그런데 문뜩 강우는 길 건너편에서 푸른 신호가 나길 기다리고있는 지혜를 발견하였다.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리라. 강우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이런 행복한 우연이 베풀어지리라고 어떻게 생각할수 있었겠는가? 지혜쪽에서도 강우를 알아보고 푸른 신호가 나자 달려 건너왔다.

눈치를 알아차린 형사가 가자고 떠밀었지만 강우는 버티고 서있었다. 그러자 한놈이 지나가는 택시를 멈춰세운다. 형사에게 잡아끌리워 승용차 문앞에 갔을 때에야 지혜가 강우곁에 다달았다.

《무슨 일이예요?》

《모르겠소. 거절했소. 우리 집에 알려주오. 걱정마오. 지혜…》

《강우씨…》

승용차문은 지혜의 귀뿌리를 스치면서 모질게 닫겨졌다. 달리는 차의 뒤창유리로 강우가 뭐라고 웨친다. 지혜는 그만을 바라보면서 마구 달리였다. 지혜를 피하려던 한대의 자전거가 넘어지고 지혜도 땅에 어푸러졌다.

지혜는 오래동안 애를 쓰다 잠을 깼다. 벌써 뙤창이 훤하게 밝았다.

늦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섬찍해서 일어나려던 지혜는 무릎이 아파서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자전거와 함께 어푸러질 때 바른편 무릎을 인도와 차길모서리에 힘껏 짓찧어서 지치러졌었다. 혼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두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찢어지는듯 아프다.

아픔을 참으려고 베개우에 이마를 얹은채 지혜는 처음으로 마음껏 강우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빨래를 하러 갔다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가 곁에서 때때로 앓음소리를 하면서 방바닥에서 스며오르는 찬 기운때문에 온몸을 가드라뜨리고 아직도 깊이 잠들어있다. 뙤창은 푸르스름해졌으나 방안은 어두웠다.

돌연 강우에 대한 격한 생각이 가슴을 미여지게 한다.

자주 무엇인가에 저항하면서 강우에 대한 솟구치는 생각을 뿌리치지도, 억눌러버리지도 않았다. 그러자 강우에 대한 모든 생각이 걷잡을수 없이 소용돌이쳤다.

달리는 차창에서 뭐라고 웨치던 강우의 얼굴, 그 얼굴은 자신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으면서 오직 지혜를 안심시키려고 애쓰는 절절한 표정이였다. 그가 말한 《거절했소.》는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형사들은 련행하면서도 포승을 지우지 않았었다.

오래동안 지혜를 괴롭히던 강우의 거만도 허영도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거동도 지금은 생각히우지 않았다. 《춥소?》 하고 말하던 다정하고 가깝던 그 얼굴, 차창에서 지혜만을 걱정하던 그 얼굴만이 가슴에 있다.

그의 모든 결함은 그 얼굴뒤로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리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수도 없다. 끔찍스런 그 지옥으로 던지여졌을 강우, 그와 지혜와의 사이에는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도 들을수 없는 군사독재의 철창이 가로막혀있다.

강우와 지혜, 그들은 소꿉놀이할 때부터 다정하게 지냈다. 그 어린시절 지혜는 강우의 모든것이 훌륭해보였었다. 빛나는 재능, 넓은 안목, 타오르는 열정과 과감한 용기… 소녀시절의 지혜는 황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사랑하였다. 처음에 사랑은 순탄하였었다.

그러나 지혜는 어느덧 그들 서로가 심혼속에서 모든것을 리해하고있지 못하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하였었다. 사랑은 뜨거운 가슴속에서 뒤채기였다.

하지만 지혜는 그를 잃은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몸부림치면서 생각한다. 강우가 많은것을 리해해주었었다고. 그는 알고있었으리라, 정의로운것을 바라며 점점 더 황량해가는 세상에 항거하고 도전하고있다는것을, 그 험난한 가시밭길이 행복보다 희생을 더 많이 요구하고있음을 각오하면서 스스로 택하였다는것을 알아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것을 더 말해야 하였었다. 지혜자신의 념원은 사소한것이 아니며 이 땅우에 천대받고 억압받는 근로민중이 잘사는 세상을 일떠세우는데 생의 보람이 있다는것, 그리고 그 념원은 나 혼자의것이 아니라 천만대중의 공동의것이라는것, 그 념원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에 삶도 죽음도 바치고있다는것을 다 말해야 하였다.

자기가 다정하지 못하였던것은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신념을 지키려는 일념에서 투쟁에 단련되지 못한 자신을 채찍질하는데 온 정신을 쏟고있었기때문이였다는것도 다 말하고싶었다.

강우는 지금 어떤 일을 당하고있을가. 고문에 시달리고있을 그의 정상이 자꾸만 가슴을 찢고 머리를 괴롭힌다. 그 고통이 얼마나 혹독하다는것을 지혜는 너무도 잘 알고있는것이다.

너무도 밝아 전류가 그대로 통하는듯이 눈을 찌르고 이마에 무수한 땀방울이 솟게 하는 조명등, 형사들의 칼날같은 눈초리와 사정없는 매질, 입속에 틀어박힌 걸레쪼박의 메마른 악취와 모멸감, 잔인한 손때밑에서 물건짝처럼 뒤채겨야 했던 분노, 정신을 잃었다 끼얹혀진 찬물에 다시 깨여날 때에 온몸을 엄습하는 무서운 동통, 그 견디기 힘든 모든것을 강우가 당하고있으리라 생각하자 지혜는 저도 모르게 입속에서 신음소리를 내였다.

《지혜야, 발이 아픈?》

잠에서 깨여난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목소리다. 지혜는 어머니의 희여진 앞머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삯빨래에 거칠어진 작은 손을 꼭 잡고 결연한 마음으로 말하였다.

《어머니, 우리 ㄷ방직근처로 이사하면 싫어요?》

《이사?》

생활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소시민들이 살고있는 이 고장의 생활수준을 그들의 처지로써는 따를수가 없어졌다. 어머니는 되물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지혜는 무엇인가 격한 마음으로 말하고있었다. 생활은 그렇게도 모녀가 뼈를 깎듯이 일하건만 이 작은 집 하나 지탱할수가 없게 너무도 각박하였다.

《우리 판자집거리에 가 살아요!》

어머니는 한참만에야 조용히 대답하였다.

《나도 이 동리가 싫어졌다. 삯빨래를 하니까 어쩐지 동리사람들이 랭랭해진것 같구나. 아마도 자격지심이겠지. 이 동리라고 부자야 어디 있니? 그저 보리죽이나마 낟알로 끼니를 번지지 않다뿐…》

동리사람들이 랭랭해진것 같다는 어머니말에 가슴이 옥죄이는듯 하여 어머니의 손을 더 힘껏 잡았다.

《어머니, 앞머리가 더 많이 세진것 같아요.》

어머니는 모대기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너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한숨을 지었다.

《그야 나이들면 세게 마련이잖니?… 공장아근으로 이사가자. 그저 한가지 가슴아픈것은 이 집이 너의 아버지가 사시던 곳인데… 15년이나 살았다. 토방돌 하나에도 너의 아버지의 손길이 배여있단다. 그렇지만 가자. 죽은 사람의 혼이 우리가 없어진 집에 그대로 있겠니. 너나 나를 따라오겠지. 내 걱정은 말고 이사가자. 그래야 나도 마음펴고 살것 같다.》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하자는 일에 한번도 반대하시지 않으셔.》

《왜 반대하겠니? 나는 너 하는 일이 항상 마음에 들어.》

《아버지한테도 그리셨지요?》

《그랬다. 아버지 하시는 일도 언제나 옳았으니까. 네 아버님은 정말 착한분이시였다.》

《아버님이 그저 착하신줄만 아셔요? 얼마나 강기가 있으셨다구요.》

《착하다는것이 그런것 아니냐? 머랑해서야 착할수가 없지.》

어머니는 언제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믿었다. 그 깊은 믿음과 어린애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해서 어떤 가난도 곤난도 이겨나가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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