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4

 

지혜는 현관문에 들어서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3년동안이나 낯익혀온 얼마전의 그 병원이 아니였다. 이전의 병원질서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파괴되고 마치 야전병원같은 걷잡을수 없는 혼잡이 모든것을 뒤덮고있었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들과 가족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있는 아낙네들의 바쁜걸음이 쉴새없이 마루를 울린다. 병실이건 복도건 부상자로 꽉 차있었다. 해빛도 들지 않는 복도에서 부상자들은 담요가 아니면 거적때기우에서 뒤채고있다. 피가 붕대에도, 담요에도, 거적때기에도 어디고 스며있다. 침착성을 잃은 부상자들의 울음섞인 고함소리며 신음소리, 가족들의 흐느낌소리, 이를 악물고 아픔을 억누르는 참을성있는 부상자들의 안깐힘, 그러다가도 밖에서 총소리나 함성이 울려올 때면 그들은 일어나려고 몸부림친다.

《날 저 거리에 내보내주!》

어떤 부상자들은 흰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이나 의사를 보기만 하면 거의 적의를 가지고 대들었다. 상한 그들의 가슴속에 투지가 그대로 뛰고있었다. 병원은 혼잡속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줄기차고 격한 생명력이 거칠게 맥박치고있었다.

지혜는 미여지는 가슴으로 온몸을 떨면서 부상자들앞에 오래동안 서있었다. 부상자들의 격한 울분이 자기를 밀어던지고있는것 같은 고독감에 휩싸인다.

지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상자가 없는 반대쪽 복도로 들어섰다. 진찰실이며 제약실이며 간호원수직실들이 있는 복도였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위생복을 입지 않은 지혜를 힐끗 보고는 그대로 지나갔다. 얼마간 낯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멈춰서서 이야기할 경황이 없는것이다.

《지혜!》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지혜는 흠칠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영애가 뚫어질듯이 바라보며 서있었다. 지혜는 격한 마음으로 마주보았다. 갑자기 영애가 와락 다가오더니 보이라칸뒤로 끌고 가던 그때처럼 그의 팔을 모질게 잡아끌고 간호원수직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두말없이 장에서 위생복 한벌을 꺼내서 침대우에 던져주며 명령하였다.

《입어!》

지혜는 잠자코 웃옷을 벗어 걸고 위생복을 끼였다. 영애가 위생복등뒤에 달린 끈을 매준다. 지혜는 그의 두손끝이 떨리고있음을 몸에 닿는 감촉으로 느꼈다. 지혜는 돌아섰다.

《영애!》

영애의 두눈에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그러나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노기에 찬 표정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네가 돌아왔다고 나의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아. 병원을 돌아보아! 그럼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알거야. … 윤아는… 윤아는 중앙청앞에서 총에 맞았어. 한마디 말도 없이…》

영애는 방금전까지도 지혜를 만나기만 하면 윤아가 너의 몫까지 싸우겠다고 했다는것, 그 죽음앞에서 너는 뭐라고 하겠는가고 소리를 높여 힐책하리라 마음먹고있었다. 그렇지만 지혜를 보자 한순간에 모든 미움이 다 사라지고 마음속에서는 벌써 그를 용서하고있는것이다. 그런 자기 마음을 아무리 모질게 가지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었다.

《윤아가?!》

지혜는 비명이 나오려는 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운다. 지혜의 얼굴은 흰종이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런 지혜를 보자 영애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침대가에 주저앉는다. 마음 괴로와하는 지혜가 측은하게 생각되여서였다. 지혜가 윤아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영애는 알고있는것이다.

《지혜, 돌아와주어 고마와. 네가 마지막까지 오지 않았다면 나는 동무 하나를 또 영원히 잃을번 했어.》

왜 그런지 영애만을 멍해서 지켜보고있던 지혜는 더는 서있을 기력이 없어진듯이 영애에게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의 무릎에 손을 얹으며 세찬 숨소리로 말하였다.

《영애, 난 죄를 졌어. 윤아와… 그리고 시위에 떨쳐나선 모든 사람들앞에… 나는…》

지혜는 울고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터질듯이 소용돌이치는 격정을 걷잡지 못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준하씨는 윤아가 자기의 온넋이였다고 했어.》

《윤아, 윤아…》

그렇듯 밝고 파들파들하여 동무들을 정답게 하던 윤아를 다시는 볼수 없는것이다. 윤아의 죽음은 말보다 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지혜를 질책한다. 용서를 빌수조차 없어진 엄숙하고도 단호한 심판이였다. 지혜는 창백한 표정으로 그 심판앞에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괴롭고 쓰라리고 그러나 슬픔이 아니라 어떤 엄숙한 마음으로 오래동안 그렇게 앉아있던 지혜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영애, 정림간호장을 만나게 해줘.》

천천히 문가를 향해 가던 지혜는 불현듯 오열이 터져나와 문설주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자책때문에, 슬픔때문에 자기를 지탱하지 못하는 지혜를 영애는 잠자코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 흐느낌소리가 복도까지 울린듯 누군가가 재빨리 그러나 소리 안 나게 문을 열었다. 그렇게 문을 여는 손은 정림간호장의것밖에 없다.

간호장은 흐느끼고있는 지혜와 울어서 눈이 빨개진 영애의 얼굴을 보자 모든것을 알아차린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영애는 붕대를 마저 감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지혜.》

지혜는 숨을 죽여 흐느낌을 멈춘다.

정림은 왜 늦게야 왔는가를 따지지 않았다. 봉기 첫시작부터 함께 일해온 사람에게처럼 실무적인 어조로 말하였다.

《지혜는 3호병실의 간호를 맡아주어야겠어. 혼수상태에 있는 한 부상자에게 곧 링게르주사를 놓아주어.》

정림은 의사가 아니고 간호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높은 능력으로 해서 병원에서는 실질적인 권위를 가지고있었다. 면허가 없어 간호장이지 허락만 한다면 어떠한 절단수술도 할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있었다. 의대학생의 실습은 마지막학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림이가 그 조직사업을 진행하고있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서 항변할수 없게 착실한 실무능력을 가진 간호장이였다.

《이름은 김기태, 직업은 ㄷ방직 로무자. 기마대를 향해 수류탄을 안고 들어간 용사야. 하긴 모든 부상자가 용사지. 누구의 명령도 아니고 자진해서 총탄을 맞받아나간 사람들이니까. 경의를 가지고 대해야 해.》

지혜는 입술을 깨물며 말하였다.

《윤아가… 저는 그것도 모르고 실습려행에 가있었어요.》

정림은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한마디 하고 돌아서 나갔다.

《알고있어요.》

 

《여기가 어딥니까?》

《깨여나셨어요?》

근 40시간이나 혼수상태에 있던 기태가 눈을 떴다. 흰 침대와 지혜의 흰 위생복을 보자 일어나려고 머리를 쳐든다. 지혜가 재빨리 그의 머리를 도로 베개에 눕히였다.

《안정하셔야 해요.》

《중상입니까? 저의 팔다리는 성한것 같은데…》

《가볍지는 않아요. 하지만 안정하신다면 곧 나을수 있다고 김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김선생님이 누굽니까?》

《수술해주신 선생님이예요.》

병실에는 중환자들만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있다. 그 소리에 따라 흥분을 못이겨 침대머리를 거머쥐고 숨이 차하기도 하였으며 얼굴빛이 새까맣게 질려 이를 부드득 갈기도 하였다.

지금도 시위자들의 웨침소리와 달리는 군중들의 발구름소리가 창유리를 흔들면서 울려오자 기태의 입술이 흥분에 푸르르 떨렸다.

《투쟁은 계속되는구만요.》

《네.》

지혜는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많은 말을 할수가 없었다. 싸움은 걸음마다 더 힘들어지고있는것이다. 철조망의 장애물을 단결의 거대한 힘으로 물리칠수 있었던 시위자들도 장갑차의 대렬앞에서는 멈추어서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

앉아버티기투쟁을 하면 순경놈들이 뒤로, 앞으로 쏘아댄다. 유일한 공격무기인 돌도 모자랐다. 집집의 기와장들은 죄다 벗겨서 던져버린지 오래다. 새로운 정황에 대처하여 새로운 투쟁방도가 요구되였다.

《지혜누나!》

이미 낯을 익힌 남수가 방싯하게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을 뜬 기태를 보자 반기며 달려들어온다.

《전 아저씨가 죽은줄 알았어요. 이틀이나 깨여나지 않았거든요.》

《죽긴… 리승만이보다 먼저 죽지는 않는다.》

《누나!》

남수는 다시 지혜를 쳐다본다.

《왜 아픈?》

남수도 왼팔에 부상을 당했다.

《저는 하루만 더 있으문 시위에 나가도 되는거죠?》

《안돼! 며칠 더 있어야 해.》

지혜는 기태의 팔에 꽂혔던 링게르주사바늘을 뽑으며 대답하였다. 남수는 자기 팔에서 바늘을 뽑기나 하는것처럼 얼굴을 찌프리며 말했다.

《누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호강하면서 자란 머저리가 아니지요. 쇠부라고 해요. 어른들이 날 쇠붙이처럼 단단하다고 그렇게 부른단 말입니다.》

쇠붙이는커녕 나무가지같은 남수의 팔다리를 굽어보는 지혜의 눈가에 일순 서글픈 미소가 지나갔다. 그때 별안간 또 일제사격의 총성이 울렸다. 지혜는 기태의 침대머리를 꽉 그러쥐고 눈을 감았다. 견디기 힘든 아픔이 발끝에서부터 모든 혈관을 꿰며 지나간다. 놈들의 행패는 여전히 너무도 혹독하였다.

그러나 군중의 웨침소리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 소리는 오히려 터진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거대한 음향이 되여 총성을 완전히 집어삼킨다.

《장하다! 나의 학우들!》

다리를 절단한 한 부상자가 이불을 꽉 그러쥐며 목메인 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상자들은 총성을 제압하는 함성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체험으로 알고있는것이다. 그것은 피를 토하는 전우를 업고 죽음을 내던진 시위자들의 혈투의 물결인것이다.

그 흥분을 뒤흔들듯 병실문이 탕하고 열리더니 헤덤비는 목소리가 지혜를 부른다.

《빨리, 지혜!》

또 부상자가 도착한 모양이였다. 지혜는 아래입술을 깨물며 창황히 밖으로 나갔다.

현관홀은 부상자와 그를 운반해온 학생들로 벌써 꽉 차있었다. 김의사와 정림간호장이 그 혼잡속을 헤치며 부상자들의 예비진단을 하고있었다. 흘러내리는 피와 해쓱한 얼굴들, 그러나 신음소리들을 내지 않는다. 세찬 눈빛속에 담겨진 사나운 투지로 해서 아픔을 감각하지 못하는것이다.

김의사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간명하였다.

《치료실… 다음…》

그는 허리 한번 펴지 않고 다음 부상자에게로 옮겨간다.

《수술대기… 다음…》

그러자 정림간호장이 낮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이렇게 귀띔한다.

《수술대기환자가 벌써 열명입니다. 어떻게 오늘안으로 다 수술을 끝내겠어요? 이 환자는 응급처치를 해주고 수술은 래일로 미룰수 있지 않을가요? 그리고 선생님은 주무셔야 합니다.》

청진기를 들고있던 김의사는 쌀쌀하게 책망하였다.

《조용하시오.》

커다란 가제마스크가 얼굴 절반을 가려 그의 표정은 알수 없었으나 환자들의 상처를 살피는 두눈이 피로때문인지, 긴장때문인지 날카로왔다. 아직 예비진단도 못 받은 부상자들이 홀에 그대로 차있는데 부상자들은 뒤를 이어 자꾸만 도착하고있는것이다.

지혜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부상자들의 옷자락을 헤쳐서 상처를 김의사앞에 보인다. 지혜는 그 상처들을 똑바로 바라볼수가 없었다. 정의롭고 성실하고 건장하던 젊은이들이 무엇때문에? 자꾸만 목이 꽉 메였다. 정신이 아찔해지려는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다음 부상자에게로 힘없이 옮겨가던 지혜는 누군가에게 업혀들어온 부상자를 보자 놀란 눈으로 지켜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준하씨…》

한 청년의 등뒤에서 준하는 실신한채 축 늘어져있었다.

《어디를 다쳤나요?》

지혜는 업고 온 청년에게 매여달리듯 물었다.

《…날 좀 도와주시오!》

업고 온 청년은 힘이 진한듯 비칠거리였다. 정림간호장이 재빨리 달려와 실신한 준하를 청년에게서 받아 익숙한 동작으로 마루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날렵하게 움직여 온통 피칠을 한 준하의 웃옷소매를 가위로 잘라 상처를 김의사앞에 헤쳐보인다.

《응급처치.》

김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곧 돌아선다.

지혜는 목메인 소리로 물었다.

《곧 수술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정림간호장이 엄한 눈길로 지혜를 나무란다. 간호장은 기쁨이나 슬픔의 충격이 아무리 크다 해도 흥분때문에 침착성을 잃는 그런 의료일군을 경멸했다. 그자신은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혼잡할 때에도 언제나 갓 손질한것 같은 희고 빳빳한 위생복을 입고 모든 질서를 어김없이 지켰으며 남에게도 그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수술을 서둘지 않아도 되는것을 요행으로 생각하시오.》

흔히 외과의들의 성미는 그가 사용하는 수술칼처럼 예리하고 명확하였다. 더구나 김의사와 같은 유능한 외과의의 경우 미적지근한 인정이나 상대방의 기분 같은것을 고려해서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만은 김의사도 힐책이 아니라 안심시키느라고 한 말이였으나 듣는 사람의 가슴이 섬찍하도록 목소리가 날카로왔다. 그는 부드럽게 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틀째 한잠도 자지 못한 자기의 체력이 자신의 의지를 배반하면서 점점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것에 화가 나있었던것이다.

그리고도 준하곁에서 떠날줄을 모르고있는 지혜에게 김의사는 엄한 시선으로 업고 온 청년의 가슴을 헤치라고 명령한다. 마루바닥에 쓰러진듯이 누워있는 그 청년에게로 황망히 허리를 굽혀 앞자락에 손을 가져가던 지혜는 흠칠 놀라 낮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정선생님…》

쇠로 깎아 만든듯 한 굳은 턱, 시커먼 눈섭, 고집스런 입가, 어린 지혜에게 그렇듯 강한 인상을 주었던 변함없는 그 얼굴이다. 다만 타오르듯 빛발치던 두눈만이 지금은 지친듯이 감겨져있다.

그의 상처를 본 김의사의 두눈은 삽시에 흐려졌다.

《곧 수술준비, 1호수술실.》

그 명령에 정림간호장은 재빠른 동작으로 청년을 들것에 눕혔다. 그러는 정림간호장의 얼굴에는 어려운 작업과 맞다든 그러면서도 그 일에 자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수 있는 태연한 긴장의 빛이 있었다.

하지만 외과의는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마치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잠시 허탈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의 두터운 마스크속에서 거쉰 목소리가 들렸다.

《미련한 사람, 업혀와도 모르겠는데 남을 업고 온단 말이요!》

들것에 누운 권범을 내려다보는 외과의의 두눈에 고통의 빛이 서리였다. 김의사에게서 실무적인 랭랭한 표정과 질책하는 날카로운 표정이 아닌 비록 고통이라쳐도 인간적인 감정에 속하는 뜨거운 빛발을 지혜는 처음으로 보았다. 지혜가 들것의 한끝을 들자 권범이가 눈을 떴다.

《지혜… 아버님을 만났었소?》

정림간호장이 대답을 말라고 고개를 흔든다. 권범은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은 학생들과 함께 지금 중앙청앞에 계시오. 공연히 지혜걱정을 하고계시지…》

지혜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안정하셔야 해요.》

권범은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방금전과는 달리 힘들여 묻는다.

《김기태라는 부상자를 모르오?》

《수술했어요. 경과도 좋아요.》

권범은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지혜는 북받쳐오르는 오열을 삼켰다.

 

날이 또 저물기 시작하였다. 총성도, 군중의 발구름소리도 들리지 않은지 오랬다. 오늘도 경무대의 저지선을 돌파하지 못한채 시위는 점심전부터 뜸해졌었다.

지혜는 현관광실 두리기둥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싸움의 흔적만이 어수선하게 흩널려있는 텅 빈 거리에는 철갑모를 쓴 군인들과 목끈을 졸라맨 경관놈들이 유난히 넓어보이는 차길을 부산스레 왔다갔다하고있었다. 이따금 찦차나 오토바이가 번개처럼 제모습을 드러냈다가 일순에 시야에서 사라지군 한다. 그 황량한 페허같은 거리에 붉은 저녁노을이 비끼여 더구나 기이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거리에 여전히 사람들의 항거와 투지가 맥맥히 살아있다는것을 지혜도 느낀다. 그것은 움직이는 자유를 상실당한 부상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남수는 부단히 거리로 달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싸워야겠다는 욕구는 부상자들의 상처를 놀랍도록 빨리 회복시키고있었다. 권범은 수술실에서 마취제가 부족하다는것을 알자 완강하게 그것을 거절하였다.

김의사는 권범을 두터운 마스크우로 한참이나 쏘아보다가 그대로 수술칼을 대였다. 권범은 한번밖에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수술을 끝마친 김의사는 무섭게 낮은 소리로 그러나 싸움이나 걸듯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그 의지력을 어떻게 키웠소?》

권범은 아픔을 참느라고 기진하여 나른해진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이렇게 키우는중이랍니다, 선생님!》

지혜는 자기에게 남을 위해 바쳐지는 그런 의지가 없다는것을 느끼며 두리기둥에 이마를 비볐다.

《이거 보세요.》

지혜는 얼굴을 들었다. 한 녀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성난 사람처럼 소리를 친다.

《여기에 남수라는 애가 입원해있지요?》

지혜에게 대답할 사이도 주지 않고 두세발자국 다가선 녀인은 이번에는 애원하듯 물었다.

《물장수하는 사내애말이예요.》

그리고는 마치 남수를 누가 감추어두기라도 한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2층에 있어요. 같이 가요.》

녀자는 두눈을 빛내이더니 지혜의 앞장에 서서 층계를 서둘러 올랐다. 검은 통치마에 흰 저고리를 수수하게 입었다. 20살안팎밖에 안돼보이게 애티가 엿보이기도 하였고 30살이 다된것 같게 나이들어보이기도 하였다. 생생한 움직임이 처녀같기도 하였고 얼굴에 스민 깊은 수심이 살림에 시달리고있는 아낙네같기도 하였다. 그런 모순이 어떤 깊이를 가지고 사람의 눈을 끈다.

층계를 올라선 녀자는 멈칫 섰다. 긴 복도에 부상자들이 얼기설기 꽉 들어차있었던것이다. 녀자의 발밑에 있던 녀학생이 신음소리를 내였다. 그러자 그 녀자는 갑자기 남수를 찾는것을 잊어버린듯이 풀썩 주저앉아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것이였다.

《몹시 아파요?》

녀학생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애써 미소를 그려보인다. 그의 이마에 내돋은 식은땀을 자기의 저고리소매자락에서 꺼낸 유난히 희고 깨끗한 손수건으로 훔쳐주는 녀자의 두눈이 어느덧 물기에 젖는다. 그렇게 녀자는 복도를 지나는 동안 신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더 걷지 못하고 몇번이나 주저앉아 무엇인가 떨리는 입술로 위로의 말을 하면서 떠나지 못하군 하였다. 인제는 그의 두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지혜는 그가 일어서기를 잠자코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남수한테로 가요.》

녀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남수는 복도가 아니라 병실에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자 녀자는 소리치면서 달려갔다.

《남수야, 네가 살았구나.》

침대에 누운 남수를 와락 붙잡은 녀자는 어쩔줄을 모른다. 남수는 팔의 상처를 다치는 바람에 낮게 비명을 질렀다.

《어깨를 다치지 마셔요.》

지혜가 낮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지만 전혀 듣지 못한 녀인은 남수의 얼굴이며 가슴이며 어깨를 그냥 어루만지면서 소리내여 흐느낀다. 하건만 주책이 없다고 나무랄수가 없었다. 오히려 자기의 동생을 생각하는 그의 진정이 후듯후듯 가슴을 쳤다. 복도를 지나오는 동안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여 비오듯 눈물을 흘렸던 다감한 녀자다.

반대로 어째선지 남수의 표정은 착잡하였다.

《누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울음을 그쳐요.》

슬퍼하는듯 한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부끄러워하는듯 한 헤아릴수 없는 표정이였다.

한참 흐느끼던 누이가 갑자기 눈물에 뒤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었다. 그리고 이를 가는 목소리로 묻는다.

《어느 놈이지? 네 어깨를 분질러놓은 놈말이다. 당장 주리를 틀어놓겠다.》

분기로 해서 충혈된 눈길이 어딘가를 쏘아본다. 그놈을 만나기만 한다면 이 녀자는 반드시 그렇게 할것이라고 지혜는 생각하였다.

《누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남수는 눈물이 질펀한 누이의 얼굴을 그 헤아릴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누이의 얼굴빛이 일순 변했다. 그리고 남수를 응시한다.

《뭐라구?》

누이의 쏘아보는 눈길을 견디지 못하겠는듯 남수는 힘없는 시선을 딴데로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다구?》

누이의 표정에 사나운 빛이 번뜩하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남수에게로 얼굴을 바싹 가져다대더니 무엇인가 북받치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말하였다.

《귀찮단 말이지? 내가 싫단 말이지? 이 버러지같은것아! 이 건방진 자식!》

아마도 남수는 누이의 그런 말에 습관이 된듯 모든 타격을 각오하는 표정으로 흰 담벽 어딘가를 바라본다. 누이의 랭혹한 말마디들은 연방 계속되고있다.

《동기간도 모르는 이 바보야! 그래도 이 누나는 이틀밤을 꼬박 새우면서 해종일 병원마다 찾아다녔다. 네가 죽었으면 나도 죽으려고 했다. 그런 내가 싫단 말이지?》

종시 뺨이라도 후려갈길듯이 달려드는 누이를 지혜는 가까스로 떼여내였다.

남수는 언제까지나 얼굴을 돌린채 잠자코 있었다. 다만 무엇인가 참아내기 힘든듯 입가를 비죽이면서도 결코 누이쪽은 보지 않았다.

《남수.》

남수와 침대 하나 건너에 있는 기태가 힘에 겨우나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비로소 그편으로 고개를 돌린 남수의 두눈에 어렴풋한 물기가 서리였다. 고통을 참아내려는 안깐힘에 시달린 어린애답지 않은 표정이다.

《누나를 섭섭하게 하지 마!》

기태의 진정이 스민 목소리다. 남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눈시울에 괴였던 눈물이 한방울 볼을 스쳐 이불깃에 떨어졌다.

그런데 한편 누이는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기라도 한듯이 말없이 기태를 주시하는 눈길도 무엇때문인지 입가에 가져간 흰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천천히 일어선 그는 겁나하는 표정으로 기태를 향해 다가갔다. 침대머리에 다달은 그는 잠시 그대로 서있었는데 숨소리가 떨렸다.

《옥채!》

기태가 옥채의 두눈을 쳐다보며 미소를 그리였다. 그러자 옥채는 풀썩 엎드리면서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몹시 다치셨어요?》

《눈물은 닦어!》

기태가 웃으면서 말했다. 옥채는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무던히도 정성스레 닦는다. 닦는 동안도 기태의 수척해진 얼굴에 자주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이윽고 손수건을 놓고 얼굴을 들었다.

놀랍도록 청초한 얼굴이다. 지혜는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옥채의 모든것이 몹시 마음을 끈다. 변덕스럽고 거친 거동과는 달리 무엇인가 다감하고 결백하고 순결한 그의 내심이 사람들의 가슴에 스미는 그런 녀자다. 그렇건만 어째서 남수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돌렸을가?

《옥채는 오늘 화장을 안했구만. 그편이 좋아.》

별안간 옥채가 숨을 죽인듯이 조용해졌다.

《늘쌍 오늘처럼 화장을 하지 말어.》

기태의 부드럽고 친근한 말이였다. 옥채가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얼굴을 들지 않았다. 그 시간이 너무도 길어 기태는 섬찍해진 표정으로 옥채를 바라본다. 옥채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하였다.

《누가 분을 바르고싶어 발라요?!》

낮은 소리였으나 목소리속에 어떤 분노가 있었다. 아연해하는 기태의 표정을 굽어보며 옥채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런 가르치심은 저에게 소용이 없어요.》 하고는 휙 돌아섰다. 도도한 표정이였다. 그 자존심에는 거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항거가 있다.

옥채는 인사도 없이 문가로 걸어간다.

《누나, 누나… 누나!》

남수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옥채가 멀어짐에 따라 점점 커지다가 문이 탕하고 닫기자 뚝 멎었다. 남수는 불쑥 상반신을 쳐들더니 기태를 쏘아보며 말하였다.

《기태아저씨는 공연한 말씀을 하셨어요!》 하고는 담요를 푹 뒤집어썼다. 기태는 손등으로 두눈을 가린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안의 모든 부상자들이 다 잠자코 있었다. 낮은 촉수의 전등이 천장에 데룽데룽 매여달려 그들모두에게 희미한 빛을 던져주고있다.

지혜는 그들의 사정을 다 알수는 없었지만 선량하고 깨끗한 순정들이 짓밟히고 이그러져 허덕이고 착잡하게 뒤엉킨 모진 생활이 그들을 짓밟고있다는것만은 알수 있었다.

거족적인 항쟁의 폭풍우속에서 지나간 이 하나의 작은 사건은 왜 그런지 지혜의 가슴에 무엇인가 뚜렷한 흔적을 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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