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장

1

 

수위가 세차게 어깨를 밀어던졌다. 그바람에 지혜는 비칠거리면서 작업장에 들어섰다. 류치장에서도 순경이 바로 그렇게 감방에 밀쳐넣었었다.

얼굴을 들자 드넓기는 하지만 역시 창문이 없는 차단당한 세계가 있었다.

시커먼 먼지에 얼룩이 진 천장채광창으로 겨우 어스름한 해빛이 비쳐들어 작업장은 굴속처럼 어둑시근하였다. 그렇게 사방 담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에 비좁게 자리잡은 수백대의 직기가 저마끔 정신없이 돌아치면서 새된 비명을 지르고있었다. 그 비명에 기겁을 한듯이 직기들을 련결한 피대들도 미친것처럼 춤을 추고있다. 마치 굉음에 뒤집혀진 도가니속에 던져진것처럼 정신이 멍멍하였다. 게다가 찌는듯 한 무더위가 입은 옷을 순식간에 화락하니 젖게 하였으며 습기와 솜먼지가 숨쉬기도 가쁘게 한다.

이런데서 하루 13시간씩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섬찍하였다.

누군가가 팔죽지를 마구 잡아채여 지혜는 흠칠 놀랐다. 코가 꺾쇠처럼 휘여든 사내녀석이 뭐라고 고함을 치지만 기계소리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그러자 사내는 지혜의 귀에 바싹 얼굴을 갖다대고 악취를 풍기면서 소리를 쳤다.

《야, 날 따라와!》

반장이였다. 그는 작업장 한구석에 칸막이한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에는 그래도 창문 하나가 있어 숨이 나갔다. 반장은 종이 한장을 꺼내더니 이름이며 주소며 그러루한것들을 물었다. 글이 서툰듯 공연히 펜을 꽉꽉 박아 종이를 째면서 가까스로 적고있었다.

《몇살?》

《열아홉살입니다.》

반장이 힐끗 눈길을 들어 쏘아보았다. 스무살이상의 견습공은 받지 않는것이다.

《호적초본을 해올수 있어?》

《해올수 있어요. 그렇지만 호적초본이 왜 필요해요?》

《시끄럽다. 열아홉이면 열아홉.》

나이를 세살이나 속이면서도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신에 대하여 지혜는 허구프게 웃었다.

《경찰서의 신원보증서는 왜 안해왔어? 인사과에서 야단을 치더란 말이다.》

그는 뭔가 열심히 적으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그리 끈끈한 녀석은 아닌듯 하다.

《오늘은 그대로 일을 시키겠다만 사흘안에는 가져와야 한다. 누가 뒤를 봐주지? 신원보증서도 갖추기 전에 들어오는걸 보니까 말이다.》

기태가 알선해주었다. 어떤 경로를 밟아 취직이 되였는지 지혜도 모른다. 신원보증서가 첨부되지 않은걸 인사과에서 종시 밝혀낸 모양이다.

《이봐, 따라와!》

지혜는 반장의 뒤를 따라 직기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탁한 소음을 내면서 돌아가는 기계마다에서 무수한 잉아들이 춤을 춘다. 북집들은 이리저리 쫓기우면서 헐떡거리고있다. 그 기대사이를 창백한 직조공들이 땀을 빨빨 흘리면서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모두 무엇에 쫓기는듯 한 겁먹은 표정이였다. 그렇게 출입문에서 까마득히 멀어졌을 때 반장은 한 직조공의 어깨를 탁 쳤다. 직조공은 고개를 돌려 지혜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였다. 그는 지혜를 보조공으로 받는 대신 넉대의 기대를 더 받아야 하는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장은 견습공들에게 지출하는 로임을 실질적으로 숙련공들에게서 떼여낸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한발작도 못 나가! 쫓겨나고싶거든 나가란 말야.》

반장은 공연히 눈을 부라렸다.

기실 밖에 나가고싶어도 작업장의 구조가 나가게 되여있지 못하였다.

창문도 없는 작업장에 출입문은 도합 두개가 있었는데 그나마 하나는 언제나 빗장이 걸려있었고 작업의 필요로 해서 드나들어야 하는 또 하나의 출입문에는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기 좋아하는 강마른 수위가 눈을 부라리며 도사리고 서있었다. 수리공들은 그래도 하루 한번은 창고에 부속품을 가지러 나가기때문에 잠시나마 바깥공기를 쏘일수도 있었지만 녀공들은 새벽에 작업장에 들어서고나면 점심시간 20분외에 한발자욱도 나갈수가 없다. 견디기 힘들 때면 할수없이 작업장에 잇닿아있는 변소에 들어가 뙤창에 얼굴을 내밀고 잠시 숨을 돌린다. 그렇기때문에 변소출입이 잦다고 눈총을 받거나 때로는 매도 맞지만 어쩌는수가 없었다.

숙련공 경옥은 혼자 뛰여다니면서 지혜에게는 아무 일도 시켜주지 않았다. 그는 맡은 기계들의 날실들이 하도 여기저기에서 끊어져서 손을 뗄수가 없었던것이다. 이따금 초조한듯 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군 한다. 지혜는 반시간이나 후려갈기는듯 한 요란한 기계소리속에서 무더위와 습기에 지지눌려 허덕이며 서있었다.

문뜩 그때 어째선지 자기를 향해 잽싸게 달려오는 한 사내가 눈에 띄웠다. 키는 작아도 드러난 두팔의 근육이 불끈불끈하였고 눈찌가 사나왔다. 그는 주먹으로 지혜의 어깨를 탁 밀치며 뭐라고 고함을 쳤다. 지혜는 《앗-》소리를 치며 비칠거리다가 뒤에서 돌아가고있는 피대에 치마폭이 감길번 하였다.

다음에 사나이는 경옥의 팔죽지를 모질게 나꿔채더니 뒤로 비틀었다.

경옥의 굴욕을 참는 슬픈 얼굴이 구원이나 청하듯 지혜를 바라본다. 왜 보조공에게 일을 배워주지 않는가 하는것이다. 소음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작업장에서는 간단한 의사표시도 손짓이나 동작으로 하였는데 그것이 감독이나 반장들에게 폭력을 행사할수 있는 좋은 구실을 주고있는것이다. 공장은 감옥이였고 작업장은 감방이다. 감옥이기에 중세기적인 암흑과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법인것이다.

경옥은 우선 기계의 운전법을 가르쳐주었다. 조종간을 앞으로 당겼다 뒤로 제꼈다 하는 그 간단한 동작이 기계의 회전과 맞아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런 지혜를 보자 경옥은 한숨을 지으며 혼자말처럼 신세타령을 한다.

《흥, 굼벵이를 또 만났구나. 내게 태우는건 왜 하필 이런것들일가?》

다음에 그는 기대마다 매달려있는 실타래에서 실 몇오리를 빼가지고 실잇는 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맺는거야.》

지혜는 놀라서 경옥의 얼굴을 보았다. 손가락들이 하도 빨리 움직여 어떻게 맺는건지 보고도 알수가 없다.

《자, 이렇게… 아유, 눈은 멀하는거니?》

실을 맺는 경옥의 손가락은 날씬하고 가볍고 소리없는 빛발같았다. 그런 숙련을 가진 경옥이가 돋보이기까지 한다.

《에이구, 정말 굼벵이구나… 내 팔자두 이런걸 보조공이라고 넉대의 기대를 더 맡기니 에잇!》

경옥은 성이 나서 돌아서 가고만다. 지혜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학생들에게 지식과 도리를 가르치던 교사였고 배움의 전당에서 인간생명에 대한 과학을 탐구했었다는것이 여기서는 아무런 가치로도 인정되지 않았으며 작업동작을 숙련시키는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지혜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씻으며 실잇는 련습에 온 정신을 쏟았다.

지혜는 자주 갈증을 느꼈다. 더위와 습기때문에 땀이 비오듯 하는 대신 목은 타들면서 혀가 입천장에 말라붙는다. 음료수가 있는데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갈수가 없었다. 땅딸보가 한 녀공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하고있는것이다.

《또 변소야? 일하기 싫으면 공장을 그만두란 말야.》

밖에는 수백만의 실업자가 있다. 이 일자리나마 떼우면 늙은 부모와 동생을 어떻게 먹여살리겠는가. 녀공들은 목에 힘을 주어 메마른 군침을 꿀꺽 삼켜본다. 입술우로 흘러내리는 쩝쩔한 땀방울을 핥기도 한다. 지혜는 종시 참을수가 없어 땅딸보가 저쪽으로 돌아서자 자리를 떴다.

《야, 어델 가?》

가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땅딸보였다.

《변소에 가요.》

지혜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발을 멈추었다.

《이건 일도 배우기 전에 변소출입부터야?》

그러나 감독은 지혜의 기품에 눌린듯 얼마간 어조를 낮추었다.

《흥, 공주님이라… 하지만 여기는 너의 궁전이 아니란 말이다.》

지혜는 지친 걸음으로 변소문을 열었다.

변소 역시 감방의것처럼 작업장에 달려있었다. 생리적요구인 물을 마시고 변소에 가고 하는것을 아주 금할수가 없어 작업장에서 떠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시키느라고 그렇게 잇대여 지은것이다. 그 근처에만 가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게다가 음료수는 변소간막이 바로 곁에 있었다. 아무리 수도물이라 해도 악취속에서 그 물을 마시기가 역겨워 지혜는 목만 추기고 도로 뱉았다. 그러자 뒤에서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났다.

《공주님이 그 물을 어떻게 마실가?》

꽤 멀끔하게 생긴 처녀가 조소를 띠고 서있었다. 지혜는 그저 웃어보였다. 그 처녀는 음료수를 서슴없이 량껏 마시더니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면서 지혜를 바라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래서 너는 변소 물이 꿀맛이겠구나!》

변소간막이에서 나오던 중년의 녀인이였다. 직조공은 입가에 조소를 담은채 밖으로 나갔다. 청소부인 그 녀인은 지친 동작으로 곁에 세워놓았던 긴 비자루를 잡더니 잡은 손에 상반신을 실으며 물었다.

《처음인가?》

《네.》

《학교에 다니다가 왔나?》

《네.》

《어딘가 공부를 많이 한것 같더라니까. 그러니 감독한테도 공주님소릴 들을만 하지… 에이구, 천당에서 지옥엘 왔구먼.》

청소부아주머니는 꺼지게 한숨을 지으며 나갔다.

또다시 귀청을 때리는 기계의 소음, 피대며 잉아며 북집들의 란무, 지혜는 자리에 들어오자 경옥에게 물었다.

《공장주는 왜 피대에 안전장치를 안할가요?》

《공연한 비용이 들거던. 하지만 안하문 어때? 장님인가, 피대도 못보게!》

권범은 말했었다.

《로무자들은 다 각성되지 못했소. 지혜선생, 그들을 깨우쳐주어야 하오.》

점심시간이다. 밖의 고동은 들리지 않고 전등이 깜박이며 신호가 나자 광란하던 피대도, 잉아들도, 기계의 비명도 일시에 멎었다. 그대신 지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밥 가져왔니?》

《아니…》

《시래기범벅이라도 같이 먹어.》

《싫어, 아침에 량껏 먹었어…》

《거짓말…》

《싫다는데두.》

두 처녀의 소곤거리는 목소리다. 정적은 얼마간 숨이 나가게 하였다.

지혜는 출입문으로 밀려나가는 녀공들새에 끼여 밖으로 나왔다. 탈의실에서 밥곽을 가지고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며 서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지혜는 깜짝 놀랐다. 야학생중의 누구가 아닐가싶어 가슴이 뛰기까지 하였다.

《선생님, 저예요.》

뜻밖에도 은실이가 반기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선생님이 이런델 오시다니… 일하면서 먼발치에서 보았어요.》

은실의 표정과 시선에는 오히려 이전에는 없던 강기가 있었다. 슬픔과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나가게 하는 의지가 길러주었을 그 강기는 지혜의 가슴을 쳤다.

그들은 득찬에 대해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슬픔이 아직도 생생한것이기에 가슴이 미여져 말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속에서 득찬의 죽음이 빚어놓은 분노가 상대방의 가슴에도 못박혀있다는것을 명백하게 느낀다.

《은실이, 점심은 어디서 먹어야 하나?》

지혜는 서글픈 표정대신 웃는 얼굴로 물었다.

《같이 가요. 20분동안에 빨리 먹어야 해요.》

은실이도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뿐아니라 장소도 따로 없었다. 녀공들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일하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요기를 한다. 은실은 지혜를 탈의실옆 골방처럼 생긴 복도끝머리로 데리고 갔다. 여라문명의 처녀들이 마주앉거나 등을 맞대고 앉아 밥보자기를 끄르고있었다.

《이 좁은델 누굴 또 데리고 오니?》

아까 변소에서 만났던 명주다.

《들여놓지 마!》

한 처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하였다. 은실은 미소를 띠우며 그 처녀의 등을 향해 말한다.

《누가 왔나 돌아보기나 하고 그러려무나.》

《아무가 왔던 들여놓지 마.》

등을 돌린 처녀의 어조는 그리 앙칼지지는 않았다.

《글쎄, 누가 왔나 보란 말야!》 하는 은실의 말에 처녀가 무심히 얼굴을 돌린다. 뜻밖에 옥채였다. 값눅은 인조치마를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신선하고 발랄한 얼굴이 순간 아연해서 입을 반쯤 벌린채 지혜를 바라본다. 그리고 미소를 그린다.

《아니… 지혜선생이군요. 선생이 여길 오시다니…》

자리에서 일어난 옥채는 지혜의 손목을 부여잡는다.

《우리 남수가 그렇게도 우러러보는 선생님이…》

옥채의 목소리는 점점 노기로 변하였다.

《빌어먹을 자식들, 학원을 왜 없앴지?》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옥채가 스스로 대답한다.

《방직공의 자식은 배우지도 말란 말이야… 이리 들어와요.》

옥채는 자기곁에 넓게 자리를 내면서 은실이와 지혜를 이끌었다. 지혜와 은실이가 밥보자기를 끄르는데 한 처녀가 말하였다.

《하기야 배우지는 못해도 실컷 먹기나 했으면 좋겠어.》

옥채가 그러는 처녀를 잠시 바라본다.

《누가 먹지 말랬어? 밥이 없으면 술지게미를 먹고 술지게미가 없으면 맹물이라도 먹되 15분동안에 제꺽 먹으란 말야. 지각하면 5분에 1환씩 벌금.》

《흥, 벌금을 제해도 좋으니 임금이나 주었으면 좋겠어. 준다는건 표쪽지, 썩은 밀가루…》

한숨 짓던 처녀의 대꾸였다.

《먹지도, 자지도 말고 일만 하면 되잖아? 자그만치 13시간, 버러지냐? 먹기만 하게.》 하는 한 녀공의 목소리는 성이 나서 그런지, 목이 메여 그런지 떨렸다.

어떤 수리공이 그들앞을 지나다가 땅딸보가 온다고 알려주었다.

《쉿, 좀 낮은 소리로 지껄여!》

《왜? 못할 소리 했어?》

옥채의 용모는 그렇게 성이 나서 대들 때도 그것대로 아름다왔다.

《밥보다 술지게미는 싫고 돈보다 표쪽지나 썩은 밀가루가 싫다는데 뭐가 틀렸어?》

수리공은 자기의 친절이 도리여 반발을 당한데 화가 나서 볼부은 소리를 했다.

《감독놈앞에서 말해보지, 뒤에서만 큰소리치지 말고…》

그 말에 옥채가 도전하는듯 한 표정으로 얼굴이 변한다.

《말 못할줄 알고?》

청년은 이 처녀라면 정말 그렇게 할수 있다 생각하면서 손을 휙 젓고 지나갔다. 중세기적인 압박밑에서도 줄기찬 젊음은 결코 질식하지 않았다.

지혜는 밥보자기를 풀었으나 먹을수가 없었다. 진 보리밥이나마 낟알밥을 가져온것은 지혜뿐이였다. 그들이 가져온것은 두부비지 아니면 술지게미 아니면 시래기범벅이다.

《이거 나눠먹어요.》

지혜는 밥곽을 내밀었다. 《우선 친하십시오.》 하고 어제 지혜를 찾아온 기태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옥이가 얼굴빛을 바꾸며 돌아앉는다.

지혜는 전혀 뜻밖이였다. 만약 옥채나 은실이, 그들중의 누군가가 보리밥을 나누어먹자고 했다면 즐겨 함께 먹지 않았을가? 지혜는 사과하듯 공손히 말하였다.

《시래기범벅을 나도 먹고싶어 그래.》

동기는 어쨌든 솔직하지 못한 그 말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공주님이라 시래기범벅을 못 먹어봤단 말이지?》

명주가 또다시 조소를 띠고 참견을 한다. 경옥이가 시래기범벅을 지혜앞에 성난 손짓으로 내밀었다.

《먹어! 보리밥보다 나을거다. 흥, 감독놈만 우리를 천대하는줄 알았더니 견습공까지 우리를 얕보누나.》

지혜는 자기의 성의가 가닿지 않는 경옥을 잠시 서글픈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느끼였다. 천대받는 사람들은 모욕에 민감한 법이다. 가식과 허위를 모르는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외교적수단이 따로 필요없었다. 진실하고 허심하게 마음을 터놓아야 했다. 지혜는 침울한 목소리로 사과하였다.

《내가 잘못했어. 보리밥을 혼자 먹기가 목이 메여 그랬어.》

경옥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쏘아붙인다.

《밖에 나가봐! 술지게미도 없어서 비실비실 돌아다니다 그저 들어오는 애가 얼마인가 나가보란 말야.》

《경옥이, 그만둬!》

은실이가 조용히 타이른다. 그러자 명주가 마뜩지 않은 눈으로 은실이를 쳐다본다.

《은실이는 영낙없는 공주님의 시녀로구나.》

《시녀라고 해도 좋아, 지혜선생 같은분이 공주라면 말이다. 명주나 경옥언니가 만약 보리밥을 가져왔더라면 누가 빼앗을가싶어 어디 뒤뜰에서 혼자 먹었을거야. 하지만 지혜언니는 목이 메여 먹지 못하겠다고 했어.》

은실은 성도 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있었으나 그 어조에는 타협없는 질책이 있었다.

《은실이가 시녀면 명주는 뭐지? 땅딸보 말본새대로 지혜선생을 공주님이라고 하니 말이다…》 하는 옥채의 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는듯 명주는 흘깃 쳐다만 보고 잠자코 있다. 옥채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 모두 먹자. 5분 늦으면 1환씩 벌금이란다.》

어째선지 다들 시무룩해서 먹기 시작하였다. 지혜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궁핍한 이 처녀들에 대한 반감은 조금도 없었다. 그들이 성을 낼수록 오히려 부여잡고 울고싶은 마음이였다. 지혜는 혼자 보리밥을 먹기가 목이 메여 종시 밥곽을 닫으려고 하였다.

《지혜선생, 다 잡숴요!》

옥채가 가슴에 스미는 상냥한 목소리로 권한다. 지혜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을뿐이다.

《은실아, 너 선생의 보리밥 같이 먹으려무나.》

은실은 웃으며 지혜의 보리밥을 한저가락 떴다. 지혜도 뜨거운 목안에 가까스로 밥덩이를 넘기였다.

기태는 말했었다.

《친한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어쨌든 배운 지식과 교양정도가… 그리고 중요하게는 지금까지의 처지가 녀공들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모두가 기분이 언짢게 점심을 먹은 뒤끝이라 말없이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방금까지 성을 내고 까박을 붙이던것 같지 않게 지친듯이 걷고있는 처녀들을 바라보면서 지혜는 천천히 뒤따라갔다.

또다시 소음과 습기와 먼지, 시간이 갈수록 온몸이 나른해져서 팔다리가 자기것이 아닌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저녁무렵이 되자 경옥이도 땀을 철철 흘리면서 해쓱해진 얼굴로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있다. 직조공들은 누구나 그랬다.

더 보기가 딱한것은 기계밑에 처박혀서 기계와 씨름을 하고있는 수리공이였다. 그들은 더위를 참지 못해 런닝그마저 벗어던지였다. 말잔등처럼 땀에 번지르르한 등판을 구부리고 온종일 부속을 갈고 나사를 조이느라고 허리뼈가 쑤셔 일어설 기력도 없어 세멘바닥에 주저앉은채 한참씩 숨을 돌리고나서 마지막힘을 쓰군 하였다.

잘 먹지 못한 그들의 체력이 이미 한정량을 넘게 소모되였지만 빈궁과 기아와 보이지 않는 채찍이 쓰러질 때까지 움직일것을 강요하고있는것이다. 과로가 숙명이기라도 한것처럼 그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다. 이런 엄청난 로동을 과연 매일처럼 지탱할수가 있겠는가?

그때 가까이에서 일하던 한 직조공이 갑자기 허공에다 대고 《아- 악》하고 소리를 쳤다. 기계소리때문에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을 본 지혜는 가슴이 옥죄여졌다.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을 때 사람들은 그런 얼굴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나서 직조공은 비칠거리며 기계사이를 다시 순회하였다. 두줄기 눈물이 그의 두볼을 적시고있다. 가슴에 차고 넘치는 과로와 압박감에 대한 혼자 속에서의 항거이리라.

지혜는 오래동안 그 직조공에게서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 종시 직조공은 기력이 쇠진한듯 자꾸만 비칠거렸다. 기대에다 손을 짚고서야 겨우 움직였다.

《앗.》

지혜는 소리를 치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처녀는 날실짬에 손을 푹 떨구고 기계우에 쓰러졌다. 지혜가 그를 안아일으켰다. 누군가가 찬물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준다. 검버섯이 돋아 겉늙어보이는 처녀였다. 달려온 경옥이가 이렇게 말했다.

《정신을 차려! 한시간밖에 안 남았어.》

《아니, 안정시켜야 해요. 어디 눕게 할데가 없을가?》

지혜는 반장이 있던 방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자 경옥이가 사나운 시선으로 쏘아붙인다.

《여기가 궁전인줄 알아? 아프면 눕게? 한시간 조퇴하면 그날 임금을 안 준단 말야!》

지혜는 할 말이 없었다. 실신한 사람이지만 한시간쯤은 버티고 일을 할수 있다는것을 저들의 경험으로 알고있는 그들이다. 영문을 몰라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들고있는 직조공들에게도 경옥은 말했다.

《자기 자리로들 가! 땅딸보가 오면 어쩌겠니?》

사람들이 헤여져가자 경옥은 처녀에게 속삭였다.

《그저 서서 돌기만 해, 내가 기계를 보아줄테니 말이다.》

처녀는 새파래진 입술을 움직거리더니 간신히 입을 연다.

《기력이 영 없어 피대에 넘어질것 같아 겁이 나. 드러누워 실컷 잤으면… 게서 더 바랄것이 없을것 같아.》

지혜때문에 넉대의 기대를 더 맡았다고 투정을 하던 경옥이가 그 처녀의 여섯대까지 맡아 바삐 돌아갔다.

《지혜, 감독이 오나 살펴!》

그들은 동무를 어떻게 도와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윽고 경옥이가 처녀를 측은해서 바라보고있는 지혜귀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애는 임신했어. 결혼은 했지만 속이고있지. 결혼한걸 알기만 하문 곧 해고거던. 지금은 속여서라도 다니고있지만 어린애를 낳은 후에는 어떻게 할지 딱해. 시부모요, 어린 시동생이요, 여덟식구나 되는데…》

처녀들은 누구나 다 언젠가 결혼을 해야 하며 결혼하면 어린애를 낳기 마련이다. 그것이 해고의 리유가 될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사칙이 있는것이 비단 ㄷ방직만도 아니다. 녀사무원의 임금은 남자들의 삼분의 이밖에 안된다.

《부당하구나!》

지혜는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경옥은 지혜를 힐끗 보더니 례사로운 표정이다.

《애달린 녀자가 처녀만큼 일할리 없지 뭐, 그러니 할수 있어?》

지혜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것을 명백하게 느낀다.

더이상은 한발자국도 움직여내지 못할것처럼 온몸이 뻣뻣해졌을 때 작업을 필하는 신호가 났다. 그러나 천필들을 인수과에 바쳐야 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다. 경옥은 사정이 없는 사람처럼 지혜의 어깨에 한퉁구리의 천필을 올려놓았다. 그 무게에 어깨도 다리도 허리도 꺾어지는것처럼 아팠다. 지혜는 부지중 야속스러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경옥은 자기 어깨에 두퉁구리의 천필을 올려놓는것이다.

인수과앞에는 생산품을 바치려는 녀공들이 긴 줄로 늘어서있었다. 지치고 피곤한 그들은 입을 다물고 불안하고 무거운 표정이다. 방에서는 한 녀공의 애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생각해주세요. 네, 아저씨.》

《이따위로 짜놓고 생각을 해달라구?》

《그래도 온종일 열심히 짰어요. 제 잘못이 아니예요. 씨실이 빔이 돼서 그랬어요. 아저씨, 3등으로라도 해주세요.》

생산품에 불합격이 섞이면 그날 임금에서 10%가 삭감된다. 팔 때는 불합격이란 하나도 없으면서 로무자들에게서 인수할 때는 웬간히 넘길수 있는 사소한 흠집에도 불합격을 단다. 등급판정은 《군정》의 《혁명재판》언도처럼 정하는 사람의 마음대로이며 그 언도처럼 잘못을 시정하는 법이 없다. 녀공은 목메인 소리로 애걸한다.

《저의 어머니가 벌써 한달째나 부증병으로 앓고있어요. 불쌍하게 생각해주셔요. 네, 아저씨.》

그러자 나무막대기로 책상을 치는 딱하는 소리와 함께 사나이의 상욕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서있는 사람들까지 그 소리에 질겁을 하였다. 10%가 삭감된 전표를 받아쥔 어린 녀공이 흐느끼면서 방에서 나온다. 아무도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곧 그들의 처지였기에 가슴이 막막할뿐이였다. 저렇게 사정해도 안되니 자기들은 무슨 수를 써야 한단 말인가. 로동은 혹독하였다.

밖은 별이 총총하였다. 마가을의 맑은 공기가 페부에 스며든다. 하지만 몸은 너무도 지쳤다. 피곤에 축 늘어진 로무자들은 묵묵히 정문으로 밀려가고있었다. 땀내와 기름때에 절은 로무자들속에 붐비면서 지혜는 천천히 걸었다. 온종일 귀청을 때린 작업장의 소음이 아직도 귀가에서 윙윙거려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옆사람의 말소리도 어딘가 아득히 먼곳에서 나는것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기계소리에 귀가 멘거야. 자구 깨면 또 들리게 돼.》

경옥은 요행 불합격을 맞지 않아 기분이 좋아하였다. 그는 치마옆구리에 손을 넣어 모아둔 전표를 보이면서 기뻐하였다.

《9할로만 바꾸면 조카에게 고무신하구 약도 한첩 사다줄수 있거던.》

조카는 네살이지만 잘 먹이지 못하고 자주 앓기만 해서 인제야 겨우 걷기 시작한다는것이다. 그렇지만 고무신을 신겨 아장아장 걷게 하면 무척 귀여울것이라고 하면서 기쁨을 참지 못해 지혜의 어깨에 이마를 비빈다.

까다롭고 때로는 야박스럽기까지 한 경옥이, 그러나 쓰러진 동무를 위해서는 그토록 헌신적이던 경옥이, 그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고있는 조카들이건만 오직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로 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경옥이, 지혜는 경옥의 그 작은 행복감에 오히려 저미는듯 한 련민의 아픔을 느낀다.

정문수위가 한사람한사람씩 몸수색을 한다. 자기들의 몸을 마음대로 내려쓸어보고 시까슬러보는 수위의 란폭한 행동에 로무자들은 울분이 치솟아올랐지만 가슴속깊이에 눌러버리면서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고 느릿느릿 밖으로 나간다.

로동은 너무도 힘들었다. 너무도 굴욕적이였다. 너무도 부당하였다. 소나 말이 아니고는 참을수 없는 천대였다.

인격을 되찾기 위해 항거해야 한다. 자유롭게 숨을 쉬기 위해 출입문의 빗장을 뽑아야 하며 담벽마다 밝은 창문을 뚫어야 한다. 먹고살아갈수 있는 보수를 받아야 한다. 안전장치와 통풍장치를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생명의 건전한 영위를 위하여 8시간로동과 휴식을 받아야 한다. 녀성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철페해야 한다. 산모들에게 안정을!

지혜는 로무자들에게 그 모든 요구를 갖게 하도록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 요구를 위해 싸우도록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도 수위앞에 섰다. 시펄뚱한 얼굴에 검은 안경을 낀 수위는 어깨에서 아래도리까지 마구 쓸어보고 뒤적거려본다. 지혜 역시 다른 녀공들처럼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은 목석이 되여 모멸감을 참는다.

《가라.》

몸수색을 하고난 수위는 지혜의 등어깨를 탁 밀어던졌다. 그렇게 란폭할줄 예상하지 않았던 지혜는 땅에 두손을 짚고 앞으로 어푸러졌다. 여러 사람의 손이 지혜를 부축하여 일으켜준다. 그 사람들의 묵묵한 시선깊이에 노기가 빛발치고있었다.

《다친데 없으셔요? 선생님.》

남수였다. 지혜의 무릎은 잔돌들에 쓸리여 피가 빨갛게 배여있었다. 그러나 남수를 보자 그 아픔도, 방금 당한 굴욕도 잊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개새끼들이거든요. 공장이 아니라 감옥이야!》 하고 말한것은 남수와 함께 서있는 동혁이였다. 목소리도 어조도 놀랍도록 어른스럽다.

《자식, 밸통만 늘었다니까. 그렇게 늘쌍 성내고있으면 진짜 성을 내야 할 때 가서는 힘을 못써.》 하는 남수의 대답도 학원에 다니던 얼마전과는 다르다. 지혜는 물었다.

《내가 공장에 다니게 된걸 알고있었니?》

《기태형이 알려주었어요.》

갈림길에서 로무자들은 흩어지고 지금은 그들만이 작고 초라한 세멘트다리를 건는다. 구정물로 된 개울에서는 온갖 퇴적물의 썩은 내가 풍겨올랐다. 그렇지만 그들의 머리우에는 맑게 개인 가을의 밤하늘이 무한대하게 펼쳐져있다.

《우리 학급에서는 일곱명이 공장에 들어왔어요. 애청학원 학생이 거진 50명은 왔는데 다 뿔뿔이 흩어놓아서 만나기가 힘들어요. 교대도 다르고 작업반도 다르고…》

그리고나서 그들은 어째선지 잠시 묵묵히 걸었다. 동혁이가 무엇인가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류치장에서… 생각하문 막 분해요. 그 자식들이 글쎄 선생님을… 늙으신 교장선생님까지 마구 때렸을 생각을 하문…》

한순간 고문실의 광경이 가슴을 허비며 지나갔다. 그러나 지혜는 그 기억을 힘있게 짓밟아버리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제는 못 견딜 고통이 없어 보인다. 놈들은 잘못 생각했지.》

《공장에 온 애청학원 학생들은 이따금 만난답니다. 선생님들 이야기도 자주 했습니다.》

남수와 동혁이는 힘있게 뚜벅뚜벅 걷는다. 그들의 씩씩한 숨결에 지혜는 기쁨을 느끼며 그 역시 힘있게 걸었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마디는 열마디의 힘을 가지고 서로의 믿음을 굳게 하였다.

《우리는 애청학원 학생들과만 사귀는것은 아닙니다. 우리 같은 소년들이 이 공장에 거의 4백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 하고 말한 남수의 표정에는 자랑과 어떤 신념이 있었다. 그때 뒤에서 자지러진 발자 국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세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연희와 기봉이가 뛰여온다.

《선생님.》 하고 소매끝에 매여달린 연희의 두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또 운다.》

기봉이가 그렇게 꾸짖자 연희는 눈물을 닦으며 말하였다.

《나도 1직조에 있었으면…》

그 말에 기봉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연희와 저는 2직조에 있습니다.》

복희의 얼굴이 떠올라 지혜는 괴로운 한숨을 쉬였다. 연희는 언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 좀 앉았다 갈가?》

지혜가 다리란간을 가리키자 모두 대답에 앞서 걸터앉았다. 다리밑을 흐르는 더러운 구정물우에 보름이 가까와온 달빛이 부서져 무수한 달빛쪼각들이 반짝이고있었다.

시내의 소음은 아득히 멀리 들리고 주위는 고요하였다.

《야, 학원에서 공부하고싶구나.》

동혁이가 무릎을 치며 새삼스럽게 한탄한다.

《나는 단념했어. 다만 우리를 내쫓은 놈들에게 보복을 하고싶다.》 하고 말한것은 남수였다.

《누군지 알아야 보복을 하지. 우리 공장 백사장이 그랬단 말도 있다만…》 하는 동혁의 말에 남수는 달빛이 부서진 개천바닥을 내려다보며 낮으나 배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로 웨쳤다.

《저들 마음대로 학원을 없애기도 하고 로무자들에게 고역을 시키기도 할수 있는 이놈의 세상에 대고 보복을 할테다.》

그때 저쪽 행길에서 길가는 녀인들을 희롱하느라고 지껄이는 미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남수의 눈빛이 사나와졌다.

《저놈들이 만들어놓은 이놈의 세상을 말이다!》

《그래서 득찬의 원쑤를…》

기봉은 스스로 입밖에 낸 득찬의 이름에 가벼운 전률을 느낀듯 목소리를 삼켰다.

그놈들이 뭔가 또 지껄인다.

《한놈도 남김없이 죄 바다에 처넣는거다!》

남수가 또 웨친다. 지혜는 입을 꽉 사려문 남수의 얼굴을 언제까지 지켜보고있었다. 남수는 키가 자라서 어른이 된것은 아니였다. 그의 내부에서 모든것이 자라고있었다. 분노도, 적개심도, 사회를 보는 안목도 그리고 애청학원이 페교되는 그날 그의 소년시절은 끝이 난것이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달빛을 등진 그들의 다섯 그림자가 함께 걷고있다. 남수와 동혁의 그림자가 지혜의것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았다.

문뜩 지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다섯, 래일은 쉰, 모레는 500, 놈들을 바다에 처넣을 젊은 힘은 자라나고있는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에 겪은 혹독한 로동의 고됨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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