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22

 

뜻밖에도 어머니가 어둑시근한 정문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지혜를 보자 입가의 잔주름이 더 깊어지면서 잠시 바라보고 서있다가 얼마간 비칠거리며 다가왔다.

앞머리가 더 세였다. 지혜가 이 세상에 태여나서 인간의 따뜻함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어머니, 그 어머니가 류치장이라는 생지옥속에 딸을 보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파했겠는가? 이런 어머니들의 피눈물을 무엇으로 닦아드려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가 먼저 떨리는 두손으로 지혜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어머니, 고생하셨겠어요.》

지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당당하게 말하였다. 어머니도 우시지 않는다. 메마른 그의 몸집처럼 목소리도 가늘었다.

《내야 무슨 고생… 너야말로 용하게 견디였구나.》

딸을 칭찬하신다. 작고 연약한 어머니는 자기 체내에 있는 강한 모든것을 다하여 그 말을 하였을것이다.

《네가 나온다는것을 강우가 알으켜주었어. 함께 오자고 했는데 어제밤에 신문사일로 갑자기 대구에 갔어.》

지혜의 온몸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것 같았다. 감방에 있는 근 한달 지혜는 강우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왜 그랬는지 알수가 없지만 지금은 마음이 저리도록 강우와 만나고싶었다.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강우는 환멸이 주는 공허한 울분에 거칠게 몸부림치고있었지만 지혜는 그 강우를 아무것으로도 위로해주지 못하였었다.

《가자꾸나, 무엇때문에 이앞에 서있겠니?》

어머니는 딸의 손목을 잡고 서둘러 경찰서앞에서 멀어졌다. 감방에 남은 녀인들의 모습이 가슴속을 뒤흔들었다. 마치 자기 혼자 그들의 고통을 등지고 떠나버리는듯 하여 가슴이 죄여든다.

(먼저 나가요. 용서해요.)

지혜는 혼자 속으로 수없이 그렇게 중얼거리였다.

행길에 나섰다. 여름의 뜨거운 해빛에 드러난 모든것이 눈부시게 밝았다. 생활도 역시 밝았던가? 키낮은 살림집의 작은 창문들, 그속에는 가족들이 가난하나 단란하게 살고있으리라. 다닥다닥 붙어서있는 상점들, 그 상점들이 떠이고있는 크고작은 간판들, 그밑을 지나는 행인들,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객을 부르는 행상들의 목소리, 감탕물을 튕기며 지나가는 자동차며 자전거, 어쩌다 눈에 뜨이는 가로수에 늘어진 검푸른 록음… 착잡하나 어쨌든 생활이 있으리라.

이마에 와닿는 바깥세계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셔본다. 그러다가 문뜩 눈에 뜨이는 미군놈들… 그뿐인가. 《국군》장교들의 수는 놀랍도록 자꾸만 늘어난다. 행인들은 사처에 널려있는 그들을 피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하지만 쪽지는 그의 품속에 있다. 그것은 무사히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자리부터 펴준다. 편안히 누워서 마음껏 잘수 있는 나의 집, 누구도 고문실에 불러내지 않을것이며 잔다고 몽둥이로 찌르지도 않을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자꾸만 북받치는 마음, 감방속에서 다진 커다란 결의가 잠 못 이루게 한다. 보람찬 생활의 출발점에서 긴장한 가슴이 고동치고있었다.

지혜는 방안을 둘러본다. 책상과 책장 그리고 옷궤 하나, 옷걸이에는 지혜와 어머니의 수수한 단벌옷이 걸려있었다. 사람의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게 얻어지는것이랴. 여기 어머니와의 살뜰한 생활이 있었다.

책상 한 모서리에 아침해볕이 아롱거린다. 그 빛줄기를 던진 뙤창을 쳐다보았다. 조그만 뙤창밖으로 옆집 추녀의 한끝이 보인다. 거미줄과 먼지에 엉킨 추녀 한옆으로 해빛이 새여들어오고있는것이다. … 류치장의 손바닥만 한 채광창은 더 높이 있었다. 거기에 비쳐들던 푸른 새벽빛발,

그것은 유일한 바깥세계. 그러나 그 해빛은 작은 반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해빛은 아침에만 이 사람 저 사람의 흩어진 머리를 비치다가 어디론가 없어졌었다.

《어머니, 애청학원이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셔요?》

어머니는 한숨부터 쉬였다.

《건물까지 다 헐렸다는구나.》

그렇듯 참담했던 조건에서도 배우겠다고 버둥거리던 학생들, 경찰의 곤봉밑에서 헤여진 처참한 작별, 부어오른 얼굴들, 창자를 끊는듯 웨치던 목소리, 수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그 광경은 지혜의 마음속에 못처럼 박혀있다. 지혜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사랑하였으며 학생들전부를 사랑하였다.

지혜는 문뜩 책상우에 놓인 거울에 비쳐진 자기 얼굴을 보았다. 수척해지고 어딘가 날카로와진 얼굴, 두눈에는 슬픔인지, 노기인지 가려볼수 없는 빛발이 있다. 그러나 곧은 코마루밑에 길지 않은 인중과 잇닿은 입술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강우가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들려주었단다. 늦었을 때는 자구 가기도 했는데 밤에도 잠들지 못하더구나. 하루는 밤중에 일어나 책상앞에 앉아 멍해있기에 왜 그러는가고 물었더니 그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잠자코 있지 않겠니. 우리가 그러구 앉아있는 동안에도 네가 끔찍스럽게 매를 맞고있겠거니 하면 정말 잠이 안 왔다. 강우도 그래서 일어나 앉아있었겠지. 그담부터 나는 술을 사다두군 했다. 취해올 때도 많았어. 그렇지만 어쩌겠니. 이 늙은것도 참기 힘든데 항차 젊고 펄펄한데 자기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고있으려니 좀 가슴이 쓰리고 답답했겠냐?》

어머니는 한숨을 짓는다.

《네가 돌아오면 곧 결혼식을 하자고 하더라… 하지만 네가 말을 듣지 않을거라구, 너 강우가 싫으냐?》

《아니요, 어머니! 하지만 너무 일러요. 좀더…》

《강우말이 맞았구나. 그애는 네속을 다 꿰뚫고있구나. … 나는 너보다 되려 강우가 측은해진다.》

지혜는 놀란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였다. 자기를 잡아당기고있는 강우의 꺼칠해진 고독한 얼굴이 눈에 떠오른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버린다.

(그럴리 없어, 그런 연약한 강우씨가 안야.)

그렇게 생각하며 지혜는 늦은 조반을 먹자 곧 자리에 누웠다. 이튿날 미행자들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지혜는 쪽지를 전달하려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디 가냐? 강우가 오늘 저녁전에는 꼭 돌아온다고 했어.》

오랜만에 만난 딸과 함께 있고싶은 어머니는 서운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 점심전에 돌아오겠어요. 그리고는 아무데도 나가지 않을게요.》

《응, 갔다온. 나도 수원집의 빨래를 해주기로 했어.》

지혜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어머니를 보고 섰다가 고개를 숙이였다. 언젠가 어머니가 《너까지 모질어지면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하던 말이 괜스레 생각히웠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주인집 뒤담에 잇달아 지은 복희네 행랑채에는 자물쇠가 채워있었다. 지혜는 잠시 서성거리다가 돌아서려는데 복희 어머니가 왔다.

《얼마나 고생하셨수?》

방에 들어앉은 연희 어머니는 옷고름에 눈물을 묻힐뿐 딸 복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연희 언니와 같은 감방에 있었어요. 복희는…》

《알고있었수… 독한 애니까 견디고있겠지. 어미걱정일랑 말았으면 좋으련만…》

지혜는 오는 길에 산 졸인젖 두통을 꺼내놓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별안간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술이 새파래졌다.

《복희가 영이 걱정을 해서…》

지혜는 연희 어머니가 미안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이그러진다. 종시 참지 못하겠다는듯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왜 그러셔요?》

불길한 생각이 앞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연희 어머니는 목갈린 소리로 대답한다.

《그애는 없다우.》

《네?》

어머니는 소리를 삼키며 그러나 목놓아운다. 울면서 간간이 말을 잇는다.

《죽었어… 갑자기 젖을 떼니… 내… 복희를 무슨 낯으로 만나겠수?》

지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온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싶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혜는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잡고 정신없이 흐느껴울었다. 흐느낌을 멈출수가 없었다. 복희의 어머니가 먼저 울음을 그치고 이렇게 타이른다.

《선생님, 그만 우셔요. 이 어미를 보아서 그만 우셔요.》

지혜는 그 어머니의 두손목을 잡고 울음을 참느라고 두팔을 후두두 떨었다.

《안 울겠어요. 어머니!》

그때 밖에서 이상한 버스럭 소리가 났다. 지혜는 울음을 삼키였다.

《연희 선생님이 오셨다.》

연희 어머니가 방안에 앉은채 그렇게 말한다. 담벽을 스치며 문쪽으로 걸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지혜선생.》

들어온 사람은 천천히 그들과 마주앉는다.

《정선생님…》

지혜는 자기가 놀라지 않는것이 스스로도 이상하였다. 경찰에서 그렇게 미친것처럼 찾고있는 권범이가 여기 태연하게 앉아있다. 완강한 의지를 말하는 너부죽하고 꿋꿋한 턱, 세차게 빛발치는 시선, 나이를 분별할수 없는 깊은 표정, 조금도 변함없는 이전 그대로의 반석같은 권범이가 앉아있었다.

《고맙소, 지혜선생.》

지혜는 옷섶을 뜯었다.

《어머니나 연희에게 주라고…》

미소를 그리며 쪽지를 받아든 권범은 얼마간 밝은 문가로 상반신을 가져가더니 읽는다.

《그 저고린 류치장에서 입고계시던것입니까?》

《아니요.》

무엇때문에 그런걸 묻는지 영문을 몰라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쪽지를 그대로 들고 오지 않은것은 참 잘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경각성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복희가 가르쳐주었어요.》

지혜의 눈앞에 류치장의 광경이 떠오른다. 손바닥만 한 채광창으로 비쳐들던 한줄기 새벽빛발밑에서 매일같이 자기를 깨우쳐주던 복희.

《복희가 피나게 공부시켜주었어요.》

권범은 웃으려고 하는것 같았으나 그의 표정에 스민 깊은 생각때문에 웃음은 자취를 남기지 못하였다. 완강해보이던 그의 굳은 턱이 한순간 후두두 떨리였다.

《복희도 곧 나올겁니다.》

《혹시 복희와 선생님은…》

《나의 처입니다.》

지혜의 마음은 놀람의 한순간이 지나자 곧 밝아졌다. 얼마나 훌륭한 부부인가. 이런 부부를 알고있다는것으로도 생활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권범은 오래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하였다.

《고생과 고통밖에 주지 못하는 남편이지요.》

그가 어찌도 그 말을 힘들게 하는지 지혜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권범은 얼굴을 들었다.

《복희의 쪽지에는 선생님이 ㅅ구를 떠나고싶어하시지 않는다고…》

《정선생님, 애청학원에서 일년 남짓한 기간은 저에게 귀중한 시간이였다고 생각하고있어요. 그래서 저는 애청학원이 있던 ㅅ구를 떠나고싶지 않아요.》

권범은 신중한 얼굴로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가난이 무엇이라는것, 굶주림이 무엇이라는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선생님, 저는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광명을 주지 않고서는 어떠한 민주주의도 자유도 없다는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 그리고 그보다 더 저를 ㅅ구에서 떠나고싶지 않게 하는것은…》

지혜는 권범이, 복희, 기태 그리고 또 그의 학생들이 살고있는 ㅅ구를 떠나고싶지 않다고 말하고싶었으나 잠자코 말았다.

《오히려 떠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싶소. 지혜선생, 로동을 하실수 있으시겠는지…》

권범의 어조는 언제나 내심의 격정을 누르는듯 한마디한마디에 힘이 박힌 목소리여서 상대방의 가슴에 파고든다. 지혜는 오래동안 대답을 하지 못한다.

《복희는 경찰서에서 나오더라도 ㄷ방직에 다시 들어갈수는 없을거요. 하지만 방직공장 로무자들은 다 각성되지 못하였소. 지혜선생이 일깨워주기를 기다리고있소.》

지혜는 어느 한곳을 주시하면서 역시 대답이 없다가 불현듯 한마디로 명백하게 대답하였다.

《하겠어요.》

가슴에 박듯 하는 그 힘있는 권범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한다.

《로동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남조선땅에서 로동은 너무도 참담한것이지요. … 하기에 로동대중은 낡은 사회를 매장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세상을 반드시 일떠세워야 하오. 그러자면 그들이 자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

그때 밖에 나갔던 복희 어머니가 돌아왔다.

《뭐 좀 요기를 해야 하지 않니? 낮이 기울었다.》

《저는 곧 가야겠어요. 저의 어머니가…》

권범은 무심중 지혜가 사온 졸인젖을 집어든다.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수 없는 통절한 슬픔의 그늘이 덮인다.

그러나 곧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걱정마세요. 이거라도 뜨거운 물에 타먹지요.》

순간 어머니는 울먹해서 사위를 쳐다보았지만 조용히 대답한다.

《그러려무나.》

《어머니, 들어가보세요.》

《오냐.》

복희 어머니는 토방에 섰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권범은 어째선지 졸인젖통만 매만지면서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말했다.

《하지만 복희는 이 슬픔도 견디여낼겁니다. 자기는 이 세상의 어떠한 슬픔이나 고통도 느낄줄 모르는것처럼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고 할거요. 그런 녀자요.》

지혜는 이처럼 완강하고 굴할줄 모르는 강의한 사람들앞에서 또다시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방직공장에 가면 우리 동무들이 뒤에서 지혜선생을 도와줄거요. 그리고 1직조에는 옥채나 은실이와 같은 좋은 처녀들도 있으니 먼저 그들을 묶어세워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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