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21

 

두다리는 허공에 떴고 두팔은 천장가름대에 비끄러맨 가죽끈에 매여달려있었다. 형사녀석이 그 몸뚱이를 채찍으로 마구 후려갈기고있었다. 채찍자욱이 지렁이처럼 부풀어오르는 몸뚱이보다는 힘줄이 끊어지는듯 한 팔죽지가 더 아팠다. 몇대 더 맞으면 어깨의 관절이 무너나고 달려있던 이 팔이 아주 끊어져서 끝장이 날지도 몰랐다.

(이건 내 몸뚱이가 아닐것이다.)

지혜는 견디기 힘든 아픔을 참아내려고 그렇게 생각해본다. 그러나 곧 세차게 자기 생각을 부인하면서 혼자 속으로 웨쳤다.

(아니, 이 아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왜 잊어! 반드시 천백배로 복수하리라!)

그러나 어느덧 의식이 몽롱해지고 인사불성이 되였다. 이윽고 몸뚱아리가 천길나락밑에 떨어져내리는것 같은 어렴풋한 감촉을 느꼈다. 문뜩 눈을 떴다. 물이 끼얹혀진듯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지혜는 가슴이 답답하여 푸하고 힘껏 숨을 내쉬였다. 정신이 들자 온몸이 미칠것처럼 아팠다. 주임의 차디찬 미소를 띤 얼굴이 나타났다.

《복희를 만났지? 거기에 권범이도 있었지?》

련 일주일 같은 질문이다. 지혜는 말할 기력도 없었다. 한가지 생각만을 하고 한가지 대답만을 했다.

《권범이가 누군지 모른다. 복희는 4. 19에 만났다.》

뭣인가 또 고통이 가해진다. 그것이 채찍인지 발길질인지 인제는 정신이 몽롱해져서 알수도 없다. 이따금 간신히 입을 놀려 잠꼬대처럼 여전히 한가지 대답만을 중얼거린다.

《권범이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복희는 4…》

또 정신을 잃는다. 그렇게 새벽이 가까와지면 순경이 시체처럼 뻣뻣해진 지혜를 감방에 도로 처넣었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의 류달리 부드러우나 힘찬 손이 그의 몸을 주물러주고있다.

《물… 물…》

지혜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쇠창살을 붙잡고 물을 내라고 간수에게 소리치는 녀인들의 목소리, 저러다가 그들이 매를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설레설레 저어본다. 그러나 다시 재빛암흑속으로 잦아들면서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푹신한 장의자에 누워있는것처럼 팔도 다리도 등어깨도 편안하였다.

이윽고 누군가가 물을 먹여준다. 그것은 목구멍이 아니라 뇌수에 스며드는듯 맑고 시원하였다. 지혜는 눈을 떴다. 뜻밖에도 복희가 굽어보고있었다.

꿈속인가싶어 다시 눈을 감았다 떠본다.

《지혜선생.》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두눈만이 류다를뿐 얼굴도 표정도 몸가짐도 평범하고 수수한 녀자 복희였다.

《복희!》

류치장에 들어와 보름째 된다. 놈들은 무엇때문인지 지혜를 복희가 있는 3호감방에 넣었던것이다. 지혜는 반겨 웃으려고 애썼다. 이 살벌한 지옥속에서 복희를 만나는 기쁨이 차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북받쳐오르는 많은것을 이야기하고싶었다. 복희의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두눈과 평범한 그의 얼굴을 향해 묻고싶었고 하소연하고싶었다. 복희는 그렇듯 끔찍한 고문을 당한 사람 같지 않게 움직임에 줄기찬 힘이 있었고 표정에 활기가 있었다.

복희는 지혜를 감방 맨 구석 담벽에 기대앉혔다. 자기도 지혜에게 바싹 다가앉는다. 그리고 겨우 알아들을수 있을 정도의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교장선생과 상애선생은 류치장에서 나갔어.》

지혜는 어떻게 복희가 그것을 알고있는가에 대한 의혹을 전혀 가지지 않고 그 사실만을 기뻐하였다. 기태나 복희는 자주 지혜가 알고있지 못하는것들을 알고있군 하였는데 처음에는 놀라기도 했고 어리둥절해하기도

하였지만 어느덧 습관되여버린것이다.

《그것은 놈들이 애청학원사건을 결코 크게 보고있지 않다는것을 말하지.》

4. 19와 비기지는 않더라도 수천명 로무자들의 파업들에 비긴다면 애청학원 500명 학생들의 시위는 하치않은 작은 사건인것만은 틀림없었다. 그 작은 사건에도 이렇듯 몸서리쳐지는 고문을 당해야 한다. 지혜는 오래동안 말없이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다.

《복희,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 생활의 밑바닥까지 뒤흔들리운 사건이였는지 몰라!》

복희는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혜의 두눈의 불꽃은 지금 찢어지고 터지고 피가 밴 옷주제를 무시하면서 침착하고 강렬하게 빛나고있었다.

《지혜선생, 훌륭했어요. 놈들은 종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지요.》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있으니까. …권범이가 누군지, 기태가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들에게 신심을 줄수 있었는지 모르고있었으니까…》

《지혜선생은 알고있어요! 정확하게 느끼고있다는것은 알고있는거지요. 정선생을 본 일도 없었다고 하셨지요?》

《복희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알수 있어?》

《놈들이 심문할 때 우리의 머리는 놈들보다 더 날카롭게 움직여야 하거든요. 만약 지혜선생이 무엇인가 이야기했다면 나에게 덮어놓고 어디 갔는가고만 묻지 않고 뭔가 다르게 물었을게 아니예요.》

《나는 복희가 대답했듯이 했을뿐이야. 복희는 나보다 더 잘 알고있을 정선생님인데 본 일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복희의 얼굴에 놀랍도록 천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놈들은 지혜선생을 겁먹게 하려고 했었는데… 얼마나 우둔한 녀석들이예요.》

밝고 도도한 빛이 깊이를 모르는 그 눈동자속에서 빛발치고있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주임이 아니라 그런 교형리들로 이루어진 파쑈기구전부를 멸시하고있는 강렬한 빛발이리라 지혜는 생각하였다.

《지혜선생, 우리는 이기고있어요. 나는 막 즐겁기까지 하다니까요. 놈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거던. 지혜선생이, 내가 그리고 영철선생이 지켜냈어. 머리칼 한오리의 금도 가지 않고 우리의 무기가 살아있어요.》

지혜에게 《우리의 무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는가고 묻는다면 명백한 대답을 할수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그 륜곽을 가슴에 느낀다.

《지혜선생은 자랑하실수 있어요. 투쟁앞에 떳떳했으니까요.》

《투쟁…》

지혜는 중얼거리였다. 지혜는 투쟁이란 폭풍 휘몰아치는 아아한 산맥, 노호하는 바다, 거대한 서사시로 느끼고있었다. 그 크낙한것에 지혜 너의 힘과 뜻이 기여했다는것이다. 지혜는 괴롭기라도 한듯이 얼마간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그 말 과남해.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도 일러… 결코 겸손해서 그러는것은 아니야.》

그러나 지혜는 무엇인가 크낙한것이 가슴에 안겨져 힘껏 숨을 들이키였다.

《인제 비로소 깨달았다고 할가. …투쟁이라는 그 커다란 뜻앞에 지금 비로소 맹세할수 있다고 할가. 정녕 옳게 살겠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거야. 먼 후날 복희가 지금 나에게 한 그 말을 아무런 과장도 없이 들려줄수 있게 그렇게 살겠다고 말할수 있어.》

복희와 함께 있게 되면서부터 지혜는 벌써 감방이 단순히 살벌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곳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맥박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느끼는듯 한 마음의 앙양이 있었다. 수감자들은 바깥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이웃에 대한 절절한 리해와 뜨거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남의 아픔은 곧 자기의 아픔이여서 고문에서 돌아온 한사람을 위해서 두셋이 밤을 지샌다. 설사 석방이 되여서 나가게 된다 해도 헤여져야 하는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군 한다.

그리고 지혜에게는 류치장이 바로 학습의 좋은 장소이기도 하였다. 강사는 복희, 복희의 머리속에는 모든 학습자료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여있었다. 첫 학습날에 복희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의 투쟁에서는 모든것을 기억속에 집어넣어야 하지요. 기억력을 길러야 하지요. 뼈와 살 그리고 심장속에 새겨넣어야 하지요.》

복희는 체계적으로 피나는 학습을 시켰다. 민족의 태양 일성장군님께서 밝혀주신 불멸의 민족자주사상과 그 진리성을…

오늘도 드높은 채광창으로 새벽빛이 비쳐든다. 푸르스름한 그 빛발은 띠를 이루어 류치장안으로 엇비스듬히 강물처럼 흘러들어왔다. 복희가 그 빛발을 바라보며 흥분한 어조로 하던 말을 계속하고있다.

《…온 겨레가 망국노의 설음, 참혹한 생활에 몸부림치면서 자기들을 이끌어줄 위대한 령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리였어. 바로 그러한 때 절세의 애국자이신 일성장군님께서 어둠속에서 헤매던 우리 인민에게 찬란한 빛발을 안겨주시였어.》

복희는 아주 낮은 소리로 귀가에서 속삭이는것이였지만 가슴이 벅차오르기만 하는 지혜에게는 온 세계를 흔드는듯 도도한 목소리로 들렸다.

불현듯 지혜는 자기가 그이의 다함없이 뜨겁고 자애로운 품속에 있는듯 한 가슴설레임과 따사로움을 느끼며 수없이 가슴이 뛰였다. 그이께서 계시는 평양이 우렷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항상 가슴속에 지니고있어 그대로 환히 안겨온다. 평양은 날이 갈수록 더 세찬 힘을 가지고 더 밝은 빛을 가지고 지혜의 가슴속에서 성장하고있었다. 굽이쳐흐르는 대동강, 그 기슭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 푸른 가로수, 그 모든 인민의 재부들은 아직은 지혜의 눈앞에 제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책에서 본 하늘높이 날고있는 천리마동상만은 명백한 표상을 가지고 새벽안개우에 의연히 솟아있었다. 복희의 목소리가 그 안개속에서 들려오는듯싶었다.

《…지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나의 주위에서는 어둠이 걷히였어.》

지혜의 가슴도 무엇인가 가득차면서 천천히 오르내리였다. 문뜩 지혜는 이렇게 웨쳤다.

《뵈옵고싶어요. 복희!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가슴속에 무엇인가 타오르는것 같아. 걷잡을수 없이… 복희, 우리는 이 처참한 암흑속에서도 항상 밝은 빛발을 향해 당당하게 살수 있도록 통일의 날을 앞당겨야 해. 그날을 위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지혜선생, 래일 아침에 선생은 이곳에서 나가요.》

복희의 그 말에도 지혜는 어떻게 아는가고 묻지 않았다. 밤새 고문에 시달린 복희가 돌아오자 그렇게 말하였다. 어디나 그물눈처럼 펴져있는 눈과 귀가 복희나 기태에게 모든것을 알려주는지 모른다.

《나만 나가? 그럼 복희는?》

《나도 오래 있지 않아요.》

호수처럼 깊은 눈, 그러나 평범하고 수수한 이 녀자와 함께 지난 한달동안의 생활이 지혜의 가슴을 뜨겁게 흔들었다. 지혜의 생애에서 가장 혹독하던 생활, 그러나 복희는 그 생활을 가장 값있는 생활로 만들어주었으며 그 값을 깨닫게 해주었다.

《복희,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지?》

《만나구말구요.》

그날 밤, 복희는 지혜의 저고리안깃에 성냥가치만큼 똘똘 만 쪽지 하나를 넣어주었다.

《연희나 우리 어머니에게 전해주어요.》

연희의 이름이 불리워지자 지혜의 그러지 않아도 수척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남수, 동혁이, 기봉이 그들과 다시는 함께 교정에 설수 없단 말인가? 애청학원은 영영 이 세상에서 매장되였단 말인가? 그리고 득찬이…

《아마 우리 영이가 젖달라고 몹시 울거야.》

《애기아버지는 집에 안 계셔?》

복희는 미소를 그리였다.

《모르겠어요.》

이튿날 새벽, 순경의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지자 복희는 지혜의 손을 잡았다.

《그럼 안녕히, 곧 만나게 돼요.》

《복희, 고마와… 이 감방에서 있은 모든 일을 나는 오래동안 잊지 않을거야.》

철문이 열리고 순경이 지혜의 이름을 불렀다. 때마침 동그란 반점같은 아침해빛이 비쳐들고있었다. 람루한 옷을 걸친 지혜의 모습이 한순간 그 반점에 밝게 비치였다가 다시 어슴푸레한 속에 잦아들듯 창살문을 향해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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