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20

 

《왜 멍청히 서있어!》

순경은 그의 뒤덜미를 밀어던졌다. 지혜는 누군가의 어깨에 가슴을 찧고 누군가의 다리우에 어푸러졌다. 뒤미처 쇠창살문을 채우는 절그럭 소리가 들린다. 류치장이다. 자유와 권리, 인간의 존엄이 차단당한 비좁은 방.

까마득히 높은 손바닥만 한 채광창으로 희미한 빛발이 비쳐들고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숨소리, 무엇인가 묻는듯 한 시선을 느낀다. 지혜는 얼굴을 들었다.

그를 굽어보는 얼굴들이 어둠속에서 어슴푸레 드러나보인다. 오래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썩은 보리로 지은 메스꺼운 저녁밥이 들어오고 한초가 긴세월로 간주되는 긴긴 류치장의 밤이, 어디선가 무서운 살륙이 벌어지고있을 스산한 감방의 밤이 점점 깊어간다. 지혜는 오한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곁의 녀인이 자기 집에서 보내주었다는 담요의 한 끄트머리를 지혜의 발밑에 깔아주었다.

《에그, 불덩이로구만…》

녀인이 지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밖에 있었다면 한봉지의 해열제라도 먹었을것이지만 지금은 말라드는 입술을 뜨거운 혀끝으로 추기며 괴로움을 참는다. 수감자들은 모두가 새우처럼 꼬부리고있었다. 철창밖의 긴 복도로 순경이 흥얼흥얼 천한 곡조의 코노래를 부르며 뚜벅뚜벅 걷고있다.

그 발자국소리에 내장이 타는듯싶다.

사람의 추억이란 야속스러웠다. 철창속에 구속당하고보니 어쩐지 바깥세계가 그리워졌다. 어머니가 기다리고있을 작은 집, 애청학원의 이지러진 교사, 청동빛 조무래기들이 석탄버럭을 줏던 구질은 ㅅ구의 판자집거리, 강우와 함께 걷던 안개낀 저녁, 거기에 살아 움직이는 숨결이 있으며 생활의 기쁨과 슬픔이 있었다.

누군가가 잠결에 낮은 신음소리를 쳤다. 또 다른 녀인이 괴로운 한숨을 지으며 돌아눕는다. 뚜벅뚜벅하는 순경의 발자국소리가 또다시 가까와진다.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가뜩이나 뜨거운 가슴을 불로 지지듯 다가들었다. 학원은 페쇄되고야말겠구나!

지혜는 너무도 학생들을 사랑하였고 지혜의 온넋은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 모든것이 끝장인것이다.

기태와 함께 우러러보던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던 살구나무의 푸르고 싱싱한 가지들.

뚜벅뚜벅 내장을 타게 하는 순경의 발자국소리는 멎을줄을 모른다.

갑자기 저쪽에서 순경의것만 아닌 다른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절거덕하는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짐짝이 던지여지는듯 한 소리와 낮은 신음소리가 뒤따른다.

《누가 고문실에서 류치장으로 돌아왔소.》

잠든줄 알았던 곁의 녀인이 그렇게 속삭였다. 다시 류치장안은 살기를 품은채 깊은 나락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이 한정없이 흐르건만 아직 밤이였다.

음침한 어둠 저쪽에서 또다시 순경이 다가온다. 한 녀인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흠칠하고 고개를 쳐든다. 그는 잠시 다리가 떨려 일어나지 못하였다. 누군가가 그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마음을 든든히 가져. 두려울게 없어! 사람의 목숨은 히질기다.》

그러자 녀인은 고개를 쳐들고 앞을 쏘아보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지혜는 고문이란 얼마나 끔찍스러운것인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저 파리한 녀인이 그 고문의 지옥에로 가고있다고 생각하자 전률을 느낀다.

녀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초한초가 그 녀인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련만 시간은 너무도 더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면 갈마드는 바깥세계가 괴롭히고 눈을 뜨면 감방의 처절한 광경이 온몸을 굳어지게 한다. 지혜는 수없이 그것을 되풀이하면서 자꾸만 뒤채였다.

그래도 새벽은 오기마련이다. 돌연 까마득한 채광창에 푸른 빛갈이 스몄다. 살기띤 정적속에 스며드는 신선한 그 푸른 빛갈은 기이해보였다. 이윽고 반짝하는 한줄기 해빛이 흘러든다. 해빛이라기보다 작은 반점이였다.

그 반점은 몇사람의 흩어진 머리우를 비치다가 곧 사라졌다.

해빛이 사라지자 또다시 무권리와 고통에 신음하는 스산한 어두운 감방.

녀인은 낮이 기울어서야 돌아왔다. 누군지 가려볼수조차 없도록 터지고 부어오르고 간신히 움직이면서 기여들어왔다. 지혜는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딴 녀인들과 함께 그의 부르튼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또다시 오한이 일어나는것 같았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순경은 종시 지혜의 이름을 불렀다. 지혜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인가 가슴속에 불안하게 매달려있는것 같던 무거운것이 조용히 가라앉아 편히 숨을 쉴수 있었다.

지혜는 스스로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마음으로 철창문을 나섰다.

《지혜!》

어느 감방에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지혜는 고개를 돌렸다. 상애가 철창을 붙잡고 세찬 시선으로 보고있었다. 시선과 시선은 뜨겁게 마주쳤다. 그것을 본 순경의 곤봉이 총창처럼 철창사이를 째고 상애의 가슴을 찔렀다. 넘어진채 여전히 지혜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길, 철창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침묵의 대화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명백한것인지 당사자만이 안다. 두 처녀는 서로의 뜨거운 고무의 눈길과 상대방에 대한 믿음에 가슴후더워지는 떳떳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용기를 더한층 높인다. 지혜는 발걸음을 다우쳤다.

책상 하나, 의자 두개가 놓였을뿐인 그리 넓지 않은 방이다. 먼지에 휩싸인듯 한 메마른 방이다. 옆방으로 통하는 넓은 문을 등뒤에 두고 형사 한놈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지혜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별안간 상냥한 표정으로 의자를 권했다.

이름이며 주소며 년령이며 이미 그들이 알고도 남았을 질문들을 이것저것 하였다. 그리고나서 형사는 가벼운 웃음을 띠고 고개를 갸우뚱한채 물었다.

《우리는 선생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페교가 누구에겐들 즐거울수야 없지요. 교장에게 책임이 있소. 그렇지요?》

《교장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어요?》

《그럼 누구에게 책임이 있지요?》

지혜는 창문쪽 어딘가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역시 교장의 책임이 옳지요?》

《부당하게 페교를 강요하는 교육감의 책임이 아니겠어요?》

《시끄럽다!》

형사의 상냥하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표독스러워졌다. 그러나 곧 다시 차디찬 미소를 띠웠다.

《한번에는 안 대겠단 말이지? 쓸어주고 만져주고 해야 한단 말이지?》

주모자가 누구인가 묻는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시위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주모자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오른 울분과 투지로 해서 싸움에 나섰었다. 다만 살구나무앞에 선 기태는 그들에게 싸우는것이 정당하며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주었을뿐이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겠단 말이지? 자, 그럼 다른것이나 말하지. 선생님은 방직공장에 아시는분이 누구누구시지요?》

애청학원의 투쟁이 방직공장로무자들과 련계밑에 이루어졌는가를 알자는것인가? 단순히 학부형들이 그곳 로무자들이고 해서 그저 의심해보는걸가? 지혜는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방직공장에 아는 사람이 한두사람이겠어요? 학부형의 절반이상이 방직공장에 다니니까요.》

《그 어느 학부형과 페교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전부이지요. 딴 학교에 전학하도록 미리 알려주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묘하게 발뺌은 못할걸? 박복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사실대로 말하란 말이다!》

전혀 뜻밖의 질문이였다. 놈들은 정말 복희와 무슨 련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묻는것일가? 페교처분당하기에 앞서 복희를 체포하였다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묻는걸가? 공연히 무슨 단서가 잡힐가 해서 그러는걸가?

《4월에 병원에서 만났을뿐이예요.》

그 말을 하고난 지혜는 곧 후회하였다. 형사의 얼굴에 한줄기 호기심이 비끼였던것이다. 전혀 본 일이 없다고 할수도 있었으며 연희네 가정방문에서 얼핏 보았다고도 할수 있지 않았던가?

은실네 집에서 만났었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쓸데없는 말을 한것 같다.

《구면친구로군! 어때, 복희는 용감했겠지?》

《몰라요. 채혈하러 온 복희를 보았을뿐이니까요.》

《그 많은 채혈지망자속에서 용케도 이름이며 사람을 가려보았군그래.》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

《의사와 다퉜으니까요. 의사선생은 건강이 나빠 채혈을 못한다고 하니까 막무가내로 덤벼들어 소동을 일으켰으니까요.》

《애국자로군?》

《그렇지요.》

형사의 시선은 사나와진다.

《그 다음 만난것은?》

《없어요.》

《헛소리치지 마!》

칼날같은 목소리와 함께 펜대가 날아왔다. 지혜는 낮은 비명을 지르며 펜끝에 찔리운 아래턱을 손으로 눌렀다. 아픔보다는 모멸에 대한 분노가 가슴을 치받았다. 사람을 욕되게 할수 있는 권한이 이 악하고 너절한 자식들에게 쥐여져있었다.

《지혜선생, 여기서는 정직한것만이 통합니다.》 하는 형사의 얼굴에는 또다시 잔인한 웃음이 비꼈다. 수천년동안에 수억만사람들이 당했을 이런 모욕을 사람들은 어떻게 참아왔으며 어떻게 자신의 인간된 존엄을 지켜왔단 말인가?

그때였다. 별안간 녀자의 비명이 들렸다. 창자를 끊는 아픔이 아니고는 그런 비명을 지를수 없다.

《흥, 여기가 어딘지 똑똑히 알란 말야!》

형사는 비웃음을 띠우고 옆방으로 통한 넓은 문을 활짝 열어제낀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꽤 넓은 방이다.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너무도 밝아 눈동자를 찌르는듯 한 전등불빛이 세멘바닥에 나딩굴고있는 고문도구들-몽둥이며 가죽끈이며 걸레쪼박들을 똑똑히 비치고있었다. 세 형사들의 잔인한 얼굴에는 비지땀이 번지르르하였다. 한편 담벽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며 서있는 칼칼한자는 4월에 서준하의 집에서 본 사찰계주임이 틀림없다. 그는 두 형사가 한 녀인을 고문하고있는 광경을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보고있었다.

이자들은 피투성이가 된 한 녀인의 몸뚱이를 있는 힘껏 비틀고있었다.

녀자의 부어서 이그러진 얼굴이 아픔을 견디려고 허공을 노리고있다. 온몸에는 찢어진 옷자락사이로 부어오른 끔찍스런 채찍자욱이 보였다. 지혜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뜨란 말야!》

귀청을 때리는 고함소리와 함께 형사의 두손바닥이 지혜의 량쪽뺨을 불이 일도록 련속적으로 쳤다. 지혜는 어쩌지 못하고 아픔을 참으면서 비칠거리다가 종시 쓰러졌다. 그러자 암팡진 손이 목덜미를 아무렇게나 잡아채며 일으켜세운다. 그러나 다리의 힘을 받치지 못해 다시 쓰러졌다. 구두발이 옆구리를 걷어찬다. 또다시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세운다. 이미 지혜의 몸은 자기것이 아니였다. 그자들의 손과 발에 의해서 마음대로 쥐여박히우기도 하고 떠올리여지기도 한다.

지혜는 눈을 떴다. 형사의 독기오른 얼굴을 어떤 괴물을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그동안에도 건넌방에서 녀인의 비명은 계속되고있었다. 지혜는 시선을 돌렸다. 녀인의 두다리짬에는 모가 난 몽둥이 두개가 끼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를 비틀고있는것이다. 중세기로부터 인간도살자들에 의해서 전해지고있는 고문법이다.

사람의 정신도, 육체도 페인으로 만들려는 원시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수천만의 애국자들이 그 고문을 이겨왔다.

녀인을 비틀고있는 형사가 숨이 차하면서 말하고있었다.

《아플게다. 그렇지만 당장 아픔을 멈출수 있다. 뿐아니라 너를 곧 애비없는 불쌍한 네 딸곁으로 보낼수 있다. 사람이란 얼마 살지 못한다. 무엇때문에 이 고통을 당한단 말이냐? 자, 말해라! 권범이녀석이 어디 갔지?》

지혜는 내심의 놀람을 참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하였다. 권범에 대해서 아는 기색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줄기차게 마음을 굳게 하였다. 가능한 한도까지 모든것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는것을 지혜는 어디선가 배웠다. 소설에서였던지 아니면 페교반대투쟁을 준비하던 날에 기태에게서 들었던지 아니면 비상한 경우에 비상한 각오를 하게 하는 인간의 예지가 시사하는것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지혜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문뜩 지혜는 녀인을 알아보았다. 얼굴이 부어오르고 터졌지만 지혜는 알아보았다. 복희였다. 복희는 낑하는 소리를 친다. 목이 너무 비틀리여 말소리를 내지 못해한다고 생각했는지 담배를 피우며 서있던 주임이 두 형사에게 눈짓을 하였다. 형사가 손아귀의 힘을 푼다. 푸하고 긴숨을 쉬던 복희의 입에서 피거품이 나왔다.

《백번 죽여야 소용없다. 권범이가 누군지 나는 알지도 못한다!》

목은 쉬였지만 그 아픔속에서 그렇듯 침착한 목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한순간 잠자코 듣기만 하던 주임이 별안간 표독한 소리를 치며 달려들었다.

《이 악독한 년!》

복희의 머리를 마루바닥에 던지더니 구두발로 부서질듯이 내리찼다. 지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찬물이 끼얹어진듯 정신을 차렸다.

놈의 구두발밑에서 지혜를 응시하는 복희의 줄기찬 시선을 보았던것이다. 지혜는 목이 메였다. 복희의 두눈에 뜨거운 빛발이 있었다. 반가움과 오히려 지혜를 측은해하는 표정이다. 철창속에서 주고받는 그 시선이다.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도고한 기개를 보여주면서 침착해야 한다고 타이르고있다는것을 지혜는 똑똑히 느끼였다.

주임이 사나운 눈초리로 턱짓을 하자 형사는 사이문을 탕하고 닫았다.

모든것이 나무판자에 가리워질수는 없다. 복희의 시선은 가슴속에 박혔다.

감방에 돌아온 지혜는 피로가 물밀리듯 밀려들어 눈을 감았다.

《누가 자라고 했어!》

순경의 긴 몽둥이가 철창사이로 지혜의 관자노리를 찔렀다. 잠이라는 생체의 단순한 요구도 살인자들의 손아귀에 쥐여져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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