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19

 

드디여 그날이 왔다. 언뜻 보기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수업이 진행되고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각일각 다가오는 싸움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긴장된 눈초리로 말없이 앉아있었다.

지혜는 흑판에 기대서서 자기의 학생들을 누구라 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긴박한 정적속에서 학생들의 어린 가슴마다에 뛰고있는 고동소리가 들리는듯싶다. 오직 즐겁고 행복스럽게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공부해야 할 년령에 학원의 운명을 저들스스로가 지키기 위하여 경찰의 곤봉과 맞싸

움을 해야 하는것이다.

《선생님, 얼마나 남았습니까?》

누군가가 놀랍게 침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삼분 남았습니다.》

삼분이란 시간이 어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듯 학생들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한층 더 반짝거렸다. 그리고 가슴들이 더 높이 오르내렸다. 남수가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밖을 살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온것이다.

ㄷ방직에서 울리는 점심고동소리와 함께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공장에서는 학부형들이 성토대회를 가지고 그것이 끝나는대로 행길로 뛰쳐나와 함께 시위에 떨쳐나서기로 약속되여있었다.

복도를 울리는 교장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교장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교감은 요행 오늘도 나타나지 않았다.

교사안은 지금 죽은듯이 조용하였다.

전투마당에서 돌격직전의 정적이다. 폭풍을 머금은 긴장된 정적이다.

《몇분 남았습니까?》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침착하던 기봉이가 초조해서 또 물었다.

《인제 곧…》 하는 지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ㄷ방직의 점심고동소리가 울렸다. 한순간 온몸에 전률이 지나가는것을 느꼈다. 고동소리는 유난히 우람하고 유난히 뚜렷하게 들렸다.

드디여 모든 학급에서 모든 학생과 선생의 웨침소리가 동시에 터져 교사를 뒤흔들었다. 문을 박차는 소리, 복도를 울리는 발구름소리, 바로 어디서나 군중의 단합된 힘의 폭발이 일으키는 격동이였다. 그 격동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모르게 하며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섬광처럼 명백하게 깨닫게 한다.

선생과 학생, 상급생과 하급생의 분간이 없었다. 서로 어깨를 겯고 교정을 향해 사태처럼 쏟아져나왔다. 학원마당은 학생들로 꽉 찼다. 학생들은 흥분으로 해서 발을 구른다. 목청껏 웨친다. 애되나 격한 항거의 목소리는 무더운 여름공기를 흥분시킨다.

교원실에서 혼자 어쩔줄 모르고있던 교장이 입을 꽉 다물고 텅 빈 교사안에서 비칠거리며 걸어나온다. 주위의 광경이 한꺼번에는 다 파악할수 없는듯이 현관에 서서 온몸으로 웨치고있는 그 학생들을 굽어본다. 남수가 지휘대우에 올라섰다.

《애청학원의 학우들이여!》

남수는 두주먹을 쥐고 잠시 서있었다. 북받치는 울분이 가슴속에서 뒤번지고있어 얼른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집은 다 가난합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한데나 다름없는 이 무너져가는 학원에서,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리를 배워 우리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가 묻힌 강산인가를 알았습니다. 조선력사를 배워 유구하고 찬란한 우리 민족의 력사를 알았습니다. 이 무너져가는 학원이 없었다면 그나마 어디서 우리가 배웠겠습니까. 그렇건만 우리의 이 학원을 없애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서툰 손으로 교실을 수리하고 뼈빠지는 로동으로 학교를 운영하여왔습니다. 그렇건만 학원을 위해서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은 관청에서 무슨 권리로 문을 닫으라고 합니까?》

남수의 거친 숨소리는 운동장에 꽉 들어찬 학생들의 성난 숨소리와 한덩어리가 되여 높이 오르내리였다.

《굶주리고있다고 배우지 말란 말입니까.》

그 목소리는 피를 토하는것처럼 통절하였다. 학생들은 발을 구른다. 그들의 애되나 노기에 찬 웨침소리는 그들앞에 서있는 이지러진 교사를 떠받들면서 부근의 판자집거리를 흔든다. 남수의 목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지혜는 자주 공장쪽을 살피였다. 공장은 높은 울타리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예정대로 성토대회를 시작하였을가?

그러나 공장에서는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갑자기 일본경제대표단이 참관을 온것이다. 며칠전에 대구 어느 공장에선가 한 로무자가 참관온 일본경제대표단을 돌로 깐 불상사가 있었으므로 경찰은 이날 ㄷ방직에 삼엄한 경계망을 늘여놓았다. 아침부터 공장안팎에서 정복, 사복의 경관놈들이 서성거리고있었고 로무자들의 아침출근이 끝나자 모든 작업장을 밖으로 채워서 일체 출입을 금했다. 점심시간에도 주먹밥 한덩이씩을 넣어주고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대표단녀석들이 참관을 할 때만 작업장의 문을 열었는데 군경들이 주위를 새까맣게 둘러싸고 다녔다.

그리하여 각 직장에 삼사십명씩 널려있는 애청학원 학부형들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는 길은 전혀 막혀버렸던것이다. 그들은 발을 굴렀다.

한편 애청학원에서는 남수의 성토가 진행되는 동안 선생들은 초조한 시선으로 방직공장쪽만 살피고있었다. 공장에서 모든것이 약속대로 진행되여있다면 지금쯤 학부형들의 시위대가 정문에서 쏟아져나와야 하는것이다.

《지혜, 방해가 있나봐!》

상애가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남수의 말은 계속된다.

《애청학원의 나의 학우들! 우리가 학원을 앉아서 빼앗기겠습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싸우려고 일어났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렬에서 한걸음도 물러나지 맙시다.》

남수는 말을 끊고 메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추기였다. 초조해졌던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쁨에 넘쳐 웨치고싶었다.

《자, 보십시오. 우리의 형님과 누나들이,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달려옵니다.》

그렇게 말해야 할 시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간을 끈다면 마음이 높이 뛰고있는 학생들은 참아내지 못할것이며 정보를 받은 경찰이 달려올수도 있다.

영철선생은 결심을 내린듯 남수에게 손을 쳐들어보였다. 종시 남수는 절통한 목소리로 이렇게 웨쳤다.

《자! 학우들, 팔과 팔을 끼고 우리의 정당함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웨치면서 거리로 나아갑시다. 페교처분이 철회될 때까지 완강하게 싸웁시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머리에 동이였다. 500명의 학생들도 그를 따라 일제히 수건을 동인다. 봉투를 붙여 푼돈을 모아 사들인 수건들이였다. 수건에는 《페교반대》라고 씌여있었다. 그때였다. 드디여 방직공장 골목길에서 억눌리운듯 한, 그러나 통절한 함성이 울려왔다. 남수는 마음껏 소리높이 웨쳤다.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달려옵니다!》

학부형들의 선두가 보이자 남수는 단우에서 뛰여내렸다. 프랑카드가 대렬의 앞장에 섰다.

《페교 결사반대!》

학부형들의 수효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후덥고 미더운 지원의 손길을 느꼈다. 대렬은 질서정연하게 교문을 향한다. 소년들만이 가질수 있는 반짝이는 두눈들, 어린 소년들의것이라고 할수 없는 비장한 표정에 입을 사려물고 걸음을 다우친다. 그들의 야무진 웨침소리는 듣는 사람의 창자를 끊는다.

《남수야, 프랑카드의 한끝을 내게 다오!》

교장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학원의 존망이 걸려있는 이 마당에서라도 교장값을 하게 해다오!》

비록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비통한 어조로 하여 학생들의 가슴을 쳤다. 남수가 말없이 자기가 들고있던 프랑카드의 한끝을 넘겨주려고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지, 나는 프랑카드보다 앞장을 서야 한다!》

교장은 반백이 된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 힘있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500명의 학생들이 감격의 새로운 함성들을 올리였다. 그들은 만세와 구호들을 끊임없이 웨치면서 큰 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돌연 큰 거리쪽에서 경찰백차의 경적소리가 새되게 울려왔다. 곧 방직공장울타리모서리에서 불쑥 나타난 백차는 그들의 코앞에서 덜컥 멎었다.

그뒤를 이어 기동경찰대를 만재한 한대의 트럭이 들이닥쳤다. 곤봉을 든 순경놈들이 우르르 쏟아져내린다.

지혜는 한순간 굳어진듯이 섰다. 온몸이 사나운 긴장에 회오리쳤다. 왜그런지 자기가 무사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경들이 미친놈처럼 다가온다. 앞에 섰던 교장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곤봉에 맞은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지혜는 뭔가 소리를 치면서 그쪽으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뒤따른 곤봉에 지혜도 상애도 남수도 동혁이도 손쓸 사이없이 매를 맞고 비칠거렸다. 한 학부형이 한놈에게서 곤봉을 빼앗아들고 그들을 보호하려고 두팔을 마구 휘저었으나 한떼의 경관들이 달려들어 모두매를 치고 수갑을 채웠다.

프랑카드가 땅에 떨어졌다. 어린 학생들과 처녀애들이 제 분에 못이겨 울음을 터뜨리며 순경들의 옷자락에 매여달린다. 숱한 학생들이 코피가 터지고 신음소리를 치면서 쓰러진다. 학원 앞길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였다.

지혜는 아픔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자기의 머리칼을 거머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이를 악물고 대들었다. 소매자락이 떨어지고 입안이 쩝쩔하고 버적버적하였다. 스스로도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하면서 경찰들에게 저주의 욕설을 퍼붓고있었다.

아직 뼈대도 자라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수십명의 곤봉을 든 경찰놈들이 대들고 마구 치고 차고 때리고있는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그렇게도 자랑하는 《민주주의진렬장》에서 《군정》이 백주에 벌려놓군 하는 광경이다.

지혜의 두팔이 뒤로 비틀어지더니 손목에 선뜩하는 촉감이 느껴졌다.

수갑이 채워진것이다. 그리고도 모자라 사정없이 허리와 허벅다리를 발길로 찬다. 아픔은 감각하지 못하였지만 다만 가슴속의 내장이 그때마다 뒤틀리우는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놈들은 묶은 팔죽지를 끄당겨 저들의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어올렸다.

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부르짖음이 들렸다. 피흐르는 이마우로, 흩어져내린 머리칼틈새로 두볼이 부어오른 연희의 얼굴이 보였다. 적재함바닥에 쓰러진 지혜는 터질듯 한 가슴속에서 이런 웨침이 터져나오는것이였다.

《죽을 때까지 네놈들과 싸우리라!》

차안에는 상애와 영철선생, 네다섯명의 학부형들과 교장의 터지고 피흐르는 몸이 순경들의 발밑에 쓰러져있었다. 멀어지는 학생들의 울음소리와 부르짖음이 내장을 도려내는듯싶다.

차는 마구 달리고있다. 곧 큰 거리에 나섰다. 거리가 유난히 휑하게 넓어보였다. 무수한 간판들! 놀라서 쳐다보는 행인들, 마지막으로 보는 거리이며 푸른 하늘의 넓은 공간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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