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18

 

득찬의 집안은 침통한 불안에 싸여있었다. 아버지는 벌써 한시간이나 금방 숨이 넘어갈듯싶게 기침을 깇고있었다. 그것이 멎으면 목안에서 걸그렁 소리를 내며 입안이 타든다고 연방 마른침을 삼켰다.

《득찬아, 학교에 가봐라! 봉투붙이는 일에 너라고 빠져서야 안되지.》

아버지는 기침때문에 한마디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서도 정신만 들면 그렇게 타일렀다. 그럴 때마다 득찬은 언덕이마밑으로 아버지를 바라볼뿐 대답을 못한다. 그 눈에 말할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때로 무엇인가 애가 타는듯이 갈팡거리기도 하였다.

《안 가냐?》

아버지는 짜증을 낸다. 득찬의 치뜬 눈빛이 일순 결연히 빛났다.

《가겠어요.》 하고는 성이 난듯이 일어선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등으로 문지르며 열려진 방문을 나서다가 어째서인지 다시 돌아서며 아버지를 한참이나 응시하고 섰다.

《아… 안… 가냐?》

아버지의 괴로운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간다는데두!》

득찬은 휙 돌아서버렸다. 그러나 길가에 나선 득찬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겨 서있다.

《못 갈게 뭐야? 못 가면 머저리!》

혼자 성이 난 표정으로 중얼거린 득찬은 학교와는 반대쪽으로 걸음을 뗀다. 그리고는 언덕이마를 얼마간 숙인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다싶이 걸었다.

판자집거리를 벗어나자 잡초속에 잡관목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경사지를 끼고 에돌아간 신작로길에 나섰다.

득찬은 숨이 찬듯 걸음발을 늦춘다.

아버지의 괴로운 기침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득찬의 눈에 눈물이 괴였다. 오늘 아침 득찬은 수도가에서 아버지의 병이 사흘을 못 넘길것 같다는 동리아낙네들의 말을 들은것이다. 목에 걸려있는 가래가 없어져야 기침이 멎고 편히 숨을 쉴것이 아닌가. 그렇게만 되면 아버지는 죽지 않을것이며 살아날것이라 득찬은 생각한다.

돌배를 따오자. 못 딸게 뭐야. 나무밑둥이 가시철망밖에 있는데. 무서워해서는 안돼. 돌배 몇알이면 가래가 다 삭아버리고 아버지는 산다. 득찬의 기억에는 이전에 기침이 잦을 때 즐겨 돌배를 먹던 아버지의 모습이 딱 배겨있었던것이다.

신작로에는 행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 여기 신작로를 두고도 멀리 에돌아다녔다.

득찬은 눈을 크게 뜨고 좁은 두어깨를 한껏 벌리였다.

정말 지금 그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흥, 그따위 노랑눈이 뭐가 무서워!》

그는 껌을 쩝쩝거리며 몇잎 안되는 구두닦은 값조차 물지 않으려고 위협하기도 하고 낄낄거리며 달아나기도 하던 미군놈들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 놈들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공포를 몰아냈던것이다.

멀리 보초막이 보였다. 득찬은 그쪽에서 고개를 돌리고 돌배나무가 선언덕을 바라보았다. 그는 신작로를 가로 건너 경사지에 올라섰다. 페허처럼 삭막한 경사면에는 잡초들이 키를 넘게 제멋대로 엉켜있었다. 그 어중간에 가시돋힌 철조망이 길게 늘여져있다.

그 가시철망안에 미군의 훈련장인 드넓은 공지가 있었다. 공지는 장교 몇명과 두대의 찦차외에 텅 비여있었다. 보초병은 이쪽에 등을 돌리고있었다.

득찬은 뒤엉킨 잡초를 헤치며 언덕으로 올라갔다. 강제철거시킨 집터자리라 나딩굴고있는 돌도 많았고 웅뎅이도 많았지만 득찬은 걸채여 넘어지지도 않았고 비칠거리지도 않았다.

몇걸음앞에 돌배나무가 서있었다. 얼마전까지 저앞에 그의 집이 있었다. 박우물도 있던 그 집은 지금 있는 집보다 시야가 트이고 남새밭도 있어 살기 좋은 집이였다. 맑은 공기속에 있던 그때는 아버지의 병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었다. 남수랑 데려다 덩굴을 올린 커다란 호박을 쪄먹던 생각이 즐겁게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잡초가 뒤엉킨 페허, 가시철조망, 보초병의 철갑모와 기관단총이 번뜩이는 불길하고 살벌한 훈련장이 옆에 있다.

득찬은 돌배나무쪽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돌배나무밑에 이른 득찬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린 돌배들을 올려다보면서 군침을 꿀꺽 삼키였다.

돌배를 받아드시고 기특해하는 아버지의 주름잡힌 얼굴이 떠오른다.

이윽고 그는 손등으로 코밑을 썩 문지르더니 나무우로 재빨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덜 익기는 했으나 누런색이 떠도는 돌배를 두손에 한웅큼씩 따서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훈련장의 보초병은 무엇때문인지 저쪽으로 가고있다. 공지안의 장교들은 서로 뭐라고 지껄이느라고 이쪽은 보지도 않았다.

수면부족때문에 눈들이 게슴츠레했고 무엇인가 불만스런 표정이였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든것이 맞갖지 않았다. 식민지에 와있으면 본국에 있는것보다 월급도 많을뿐아니라 통치자로서의 무제한한 권력이 있어 사기협잡, 가로채기 등등 수단으로 재물을 모아들일수 있다는데 마음이 동해 오기는 멀리 왔지만 클클하고 갑갑한것만은 어쩔수가 없었다.

낮이면 모여앉아 온갖 도박에 정신을 팔고 밤이면 술추렴, 유곽출입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무엇인가 항상 성차지 않았다.

《야! 우리는 점령군이지?》

《물론이다!》

《그런데 왜 이 갑갑증을 없앨수 없단 말이냐? 나가자!》

그렇게 쓸어나가서는 온갖 추잡한 행동을 다해보고 싸움판도 벌려 권총놀음도 해보고 자동차를 고속으로 몰아 무고한 인민들을 차바퀴밑에 깔아도 보고 길가던 처녀를 랍치해오기도 하지만 그냥 솟구쳐오르기만 하는 탐욕과 권태를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도박판을 벌리였는데 한 녀석이 트럼프장을 휙 집어던지며 이따위로 갑갑증이 덜어질게 뭐냐고 소리쳐서 그럼 총쏘기내기라도 하자고 세 녀석이 병영을 뛰쳐나왔건만 다른 녀석들은 그것도 갑갑한 노릇이라고 다시 트럼프장을 주어들고 따라나오지 않았다.

《이 훈련장에서 쏠게 뭐 있냐?》

《뭐, 아무거나 쏴보세.》

《야, 그럴것없이 차타고 거리에 나가자.》

《양갈보들이란 늦잠꾸러기라 아직 일러.》

그렇게 시시한 싱갱이질을 하고있는데 한 녀석이 낮은 소리로 웨쳤다.

《야, 저게 뭐냐?》

나머지 장교들도 그자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돌배나무우의 득찬을 발견한 세 녀석의 얼굴에는 잔인한 기쁨이 차디찬 빛을 뿌렸다.

《괜찮은 과녁이야…》

《처녀였으면 더 좋겠다만…》

《가만, 내 먼저 쏘겠다.》

《함께 쏘자. 욕심부릴게 있니?》

세 녀석은 자기가 서있던 자리에서 각기 권총을 뽑아들었다.

득찬은 두 주머니에 가득 돌배를 따넣었다. 아버지에게 돌배를 드릴 기쁨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곧 학교에 가자. 밤늦도록 봉투를 붙여 집에 있던 시간을 봉창하자고 생각하면서 아래로 미끄러져내리려고 얼굴을 돌리던 득찬은 자기를 향해 세 장교가 들고있는 권총을 보자 일순에 얼굴빛이 새파래졌다.

총성보다 앞서 가슴에 오는 모진 타격에 손맥이 탁 풀려 그대로 나무에서 떨어졌다.

감각도 시야도 모든것이 아득하였다. 득찬은 돌배가 떨어져나오지 않았나 해서 주머니를 만져보려고 했으나 손이 천근처럼 무거워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주어 가까스로 손을 대보았다. 한두알이 그대로 양복주머니에 있다.

득찬은 일어서려고 했다. 한시바삐 아버지의 가래를 없애주어야 한다.

자꾸만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정신을 잃으면 아버지한테도, 학교에도 갈수가 없지 않은가.

득찬은 일어섰다. 비칠비칠 걸었다. 잔등으로 샘처럼 피가 흘러내렸으나 감각하지 못하였다.

문득 자기를 비웃는듯 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은상싶어 앞으로 꺾어지려는 목을 가까스로 돌려 소리나는쪽을 보았다. 멀리 세 미군장교가 그를 향해 너털웃음을 치고있었다. 사위의 모든것이 아득하기만 한데 그것만은 똑똑히 보였다.

그 순간 득찬의 가슴에는 그자신도 감당 못할 분노가 솟구쳤다. 이를 악물고 무서운 눈초리를 하고 비칠거리며 아무 돌이나 집어들었다. 그리고 비칠거리면서도 그놈들쪽으로 달려갔다. 장교의 곁에서 으르렁거리고있던 승냥이나 다름없는 군견이 입을 벌리고 가시철조망에 달려들어 기승을 부린다. 세 장교는 더 유쾌하게, 더 크게 웃는다.

득찬은 독사같은 이발을 드러내고 자기에게 덮쳐들듯이 짖어대는 군견의 흰 배때기와 뻘건 혀를 보면서 뒤로 넘어졌다.

사람들은 의지의 힘으로 시간과 함께 슬픔을 이긴다. 그러나 못박힌 분노는 타오를 분화구가 없을 때 가슴속에서 그대로 굳어지면서 증오와 보복의 칼을 벼린다.

오늘도 애청학원 학생들은 싸움의 준비를 위한 봉투붙이기를 하고있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밖에서 동혁이가 망을 보고있다. 학생들의 손은 언제나처럼 재빨리 움직이고있었다. 여느날과 다른것은 때때로 처녀애들의 작은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것뿐이다. 사내들의 두눈에 비낀 적의가 어른의것처럼 더 세차게 이글거리고있는것뿐이다.

득찬의 시체는 돌배나무가 서있는 언덕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낭떠러지밑에 던지여져있었다. 지나가던 한 행인이 발견하고 안고 왔는데 방안에 내려놓을 때 주머니에서 돌배 한알이 디그르르 떨어져내렸다.

허둥지둥 달려왔던 지혜도 은실이도 떨어져내린 돌배를 보자 모든걸 알았다.

《득찬아!》 하고 부르는 지혜의 목소리는 이를 부드득 가는 소리였다.

은실의 창자를 끊을듯 한 울음소리가 터졌다.

탄알이 뚫은 득찬의 가슴은 피에 엉켜져있었으나 얼굴은 창백하기는 해도 잠든것처럼 단정하였다. 부르면 대답할듯싶은 언덕이마의 얼굴, 살아보려고 그렇게도 발버둥쳐온 어린 넋,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여 나이에 비해 너무도 성장하지 못한 작은 몸뚱이, 그래도 슬픔과 쓰라림, 기대와 사랑의 감정을 남달리 민감하게 느끼던 그 득찬은 없다.

배고픔도, 과로도, 아버지와 동생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도 그를 괴롭히던 모든 괴로움이 영원히 끝이 났다.

남수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가슴을 치며 통곡하면서 그렇게 웨치였었다.

득찬의 죽음앞에서 누구보다 목놓아운것은 남수였다. 가슴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쳤었다.

《이 자식아…》

목이 쉬여 말도 하지 못했었다. 쓰레기를 주어먹었다고 때려야 했던 그때의 마음의 아픔을 득찬은 남수의 가슴에 그대로 남겨놓은채 가버린것이다.

득찬의 아버지는 앓던 사람 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치면서 아들의 가슴우에 쓰러졌었다.

《이게 무슨 꼴이냐! 득찬아!》

본의아니게 남쪽으로 내려온 잘못을 아들에게서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아버지로 되고말았다고 그는 통곡하였다.

사람들은 득찬을 잃은 슬픔때문에 울었다. 그의 가족의 설음을 생각해서 울었다. 피지도 못하고 가버린 득찬의 짧은 생애가 가긍해서 울었다.

《원통하구나! 살인범을 그대로 두다니!》

한 로인이 그렇게 흐느끼자 언젠가 기태네 집에서 학원의 페쇄를 두고 욕설을 퍼붓던 아낙네가 소리쳤다.

《양키놈들을 모조리 몰살시켜야 해!》

제일먼저 눈물을 거둔것은 은실이였다. 언제까지나 슬퍼하기에는 앓는 아버지와 어린 두 동생의 기둥이 되여야 하는 걸머진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득찬아!》

상냥하고 따뜻한 은실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도록 랭혹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득찬의 시체를 들여다보며 산 사람에게 하듯 말했다.

《언젠가 기어이 너의 원쑤를 갚아주마!》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조용히 관뚜껑을 닫았다.

《고이 잠들어라! 득찬아!》…

그때의 회상속에서 지혜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봉투를 붙이던 손을 놓고 북받치는 가슴으로 어린 제자들을 둘러본다.

재게 놀리고있는 작은 손들, 입술을 사려문 얼굴들, 피여나지 못하는 꽃봉오리들, 짓밟힌 어린 넋들.

생각하면 승냥이의 총구앞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운명에 서있는것은 득찬이뿐이 아니였다. 령롱한 이들 작은 머리우에는 누구에게나 털부숭이 검은 마수가 빚어놓는 가혹한 운명이 노리고있다. 이들모두가 포악한 발톱밑에서 시달리고 떨고있다.

이들뿐이겠는가. 지혜, 너도 영애도 강우도, 그래서 아파하고 괴로와하며 뒤채고있는것이다.

그래서 남녘땅인민들에게는 시시각각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닥쳐오는것이다. 윤아도 그래서 죽었다. 아버지도 그래서 죽었다. 준하도 그래서 고문의 고통을 당했다. 수천수만의 청년들이 그래서 원한의 피를 흘렸다.

그 검은 마수는 항시 총구를 겨누고 너털웃음을 치고있는 살인마 미제양키들!

이전에도 지혜는 교활한 침략자들을 멸시했으며 포악한 살인마들을 미워하였었다. 장춘단공원에서 지혜는 맥드낼드앞에 욕설을 퍼붓지 못했던것을 분해했었다.

그러나 피흐르는 득찬을 부둥켜안은 그 순간부터 미움은 욕설이나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였다. 그것은 피의 격랑이였으며 절박한 보복의 칼날이였다.

득찬의 죽음은 지혜에게 증오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던것이다. 이를 갈며 몸부림치며 온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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