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3

 

처음에 장교놈은 가슴을 버티고 위풍을 세우며 들어섰지만 곧 멈칫 서버렸다. 한것은 방안이 너무도 넓고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전등불빛이 너무도 어두워 모든것을 한눈에 가려볼수가 없었기때문만이 아니다. 학생들속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륙군대위로군, 저런자가 무엇때문에 왔소?》

《모르겠소.》

《권총을 란사하든가 우리를 무마하든가 할거요.》

그런데 들어선 대위는 자기를 노리는 총구를 보자 어느 직종의 인간보다 가장 민감한 군인으로서의 직감이 그로 하여금 적의에 찬 방안공기를 감촉하게 하였고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멈춰서듯 팔과 다리를 한껏 긴장시키였다. 장교는 퍼그나 오래동안 버티고 서있었다. 방안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더는 진동할수 없게 된 고무줄처럼 조용해진다. 그는 별안간 큰소리를 쳤다.

《누가 대표냐? 이리 나오라!》

잠시 아무도 대답이 없다. 구석에 둘러앉은 학생위원들이 낮은 소리로 서둘러 토의를 한다. 학생위원장이 먼저 물었다.

《저자와 담판을 할 필요가 있을가?》

아무도 얼른 결심을 못하는데 강우가 단호하게 말한다.

《안할수도 없다.》

《하기야 안할수도 없지. …그런데 누가 나서겠소?》

위원장은 강우를 본다. 학우들속에서 강우는 명석한 두뇌와 사회를 보는 통찰력과 판단력을 가진것으로 일정한 인정을 받고있었다. 대학신문에 게재되는 그의 론문들은 예리한 분석, 화려한 필치로 해서 학생들속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얻고있었으며 사회의 신문, 잡지들에서까지 그의 재능있는 필력에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대위가 또 소리를 쳤다.

《대표 없나?》

《내가 하지.》

강우는 불쑥 일어서더니 장교놈에게까지 잘 들리도록 침착하게 말을 건넨다.

《좀더 례절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시오. 그러면 대표도 나올것이요.》

강우는 헤쳐진 목단추를 채우며 자신만만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태연하게 장교놈을 굽어본다. 장교의 키가 그보다 한치가 작기때문이 아니고 대위라는 그의 계급장이 대수롭지 않게 보여서도 아니다. 장교의 축 처진 볼과 흐린 두눈이 아니라도 온몸에서 흐르는 무지와 탐욕의 체취가 강우로 하여금 그를 굽어보지 않을수 없게 하는것이였다. 별안간 그 장교가 마치 구령을 치듯 자기소개를 한다.

《본관은 림억규대위다.》

《문리대 강우.》

억규는 사병들앞에서 훈시를 할 때의 어조그대로 목소리에 무게를 넣는다.

《본관이 이 복잡한 시각에 만사를 제치고 여기로 온것은…》

그가 여기로 온것은 계엄사령관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미제침략군 8군사령관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서 19일 단 하루새에 서울을 그토록 처참하게 만들었고 평화적시위에 나선 인민들을 그렇듯 잔인하게 학살한 장본인의 한사람인 계엄사령관놈은 억규의 사단장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네 사단에 문리대 강당에 갈 용기가 있는 장교가 없소? 거기 무장한 폭도 2천명이 집결해있소.》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대한 군중의 힘을 예상하지 못했던 폭압자들은 남수가 가진 수류탄과 포수가 가진 한정의 사냥총뿐인 ㅅ대 문리대 강당의 시위군중을 어마어마한 무장폭도로 생각하면서 당황망조해있었다. 그런 폭압자의 한사람인 계엄사령관놈도 우들우들 떨면서 겁먹은 큰소리를 쳤다.

《그들의 무장을 해제해야 하오. 평화적으로 말이요. … 성공하는 장교에게는 그 자리에서 직급을 한등급 높여주겠소.》

사단장은 그것을 억규에게 맡긴것이다. 워낙 억규는 상관들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로 알려져있었다. 상관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있어서 억규를 릉가할 사람이 사단에는 없었다. 상관들의 술추렴, 기생추렴, 물자의 가로채기 등 온갖 지저분한 일들에서 상관들이 만족하도록 신바람이 나서 알선하고 뒤치닥거리를 하는것이 기특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사단장은 한등급 올라갈수 있는 더없는 《행운》을 억규에게 주었던것이다. 좀 미욱하고 총명하지 못한 억규는 용약 두 사병을 데리고 ㅅ대 문리대 강당에 나타나 거만하게 훈계를 시작한것이다.

《북한공산군은 오늘도 호시탐탐 남침할 기회를 노리고있다. …》

흔히 장교놈들이 사병들앞에서 훈시할 때면 약국의 감초처럼 넣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후려치듯 그의 말을 막았다.

《반공선전은 15년동안 너무도 실컷 들었다. 반공회관이 재가 된것도 모르는가?》

강우는 여전히 디굴디굴 굴고있는 장교의 두눈을 태연하게 바라보았다. 억규의 얼굴빛이 차츰 사나와지자 강우는 문뜩 그를 툭 건드리듯 말하였다.

《훈계가 아니라 용건을 말하시오.》

저도 모르게 흠칠 놀란 장교놈은 말을 계속하였다.

《제군!》

웅변조의 그의 목소리는 잘 울렸다. 강우는 똑바로 억규를 바라보면서 주의깊게 듣는다.

《제군들은 정의로운 학도다. 본관은 제군들의 우국지정을 충분히 리해한다. 그러나 학생의 본분은…》

《학생의 본분은 당신보다 우리가 더 잘 아오. 빨리 용건이나 말하시오.》

강우는 또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는 그리 참을성이 있는 젊은이가 못되기도 하였지만 참을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억규는 비로소 얼마간 당황하였다. 데룩거리던 그의 두눈에 보일듯말듯 불안이 감돈다. 방안에 꽉 들어찬 군중들의 필사적인 흥분이 어떤 거대한 덩어리가 되여 그를 압박하는것 같았다. 우둔한 그는 아무리 폭도라기로 단순한 학생들이 포악하고 까다롭기 이를데없는 그의 상관들과 비기랴고 쉽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담판의 첫시작부터 끌려들게만 되니 그도 어느덧 초조해졌다.

《좋다, 용건을 말하마. 제군! 이 난국에 처하여…》

왜 그런지 자꾸만 연설조로 된다. 그는 피가 꺼꾸로 솟아오르도록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제군, 제군들이 진정으로 조국이 수난에 처하는것을 원치 않거든… 사소한 감정을 버리고…》

또 말문이 막혔다. 혀가 하느라지에 붙어 목이 쉰것처럼 말소리가 씩씩거렸다. 억규는 기진한듯이 수건을 꺼내 이마에 내돋은 비지땀을 훔치였다. 그리고 서둘러 첨가한다.

《본관은 계엄사령부의 위임을 받고 그 뜻을 전하려고 왔다.》

강우는 여전히 림억규를 굽어보면서 명령하듯 묻는다.

《그래서, 용건이 뭐요?》

《이봐요. 강우군.》

뜻밖에도 억규가 어조를 바꾸어 하소연하듯 강우에게로 한걸음 다가선다. 총명하지도, 대담하지도 못한 그는 사병들앞에서는 허장성세로 호령도 하고 위세도 높지만 자기보다 상관이라든가 돋보이든가 하는 경우에는 믿어지지 않도록 급작스레 비굴해지군 하는것이 버릇이기도 하였다. 그런 억규는 군중의 적의에 찬 압력에 얼마간 겁을 먹기도 하고 강우의 당당한 태도에 위압을 느끼기도 하여 저도 모르게 저자세가 되고만것이다.

《강우군, 다른 장소에 가서 상론하는것이 어떤가?》

《그럴 필요가 없소. 대중앞에서 떳떳이 해야 하오.》

자기의 우세를 확신하는 철저하게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거절을 당한 억규는 마음이 끓어오르기도 하였지만 궁지에 빠진 자신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참을성이 없고 자신의 우세에 대한 확신을 가진 강우는 빨리 결속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언급해야 할 본문제에 대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몇가지 묻겠소. 아마도 당신은 우리에게 시위를 단념시키러 온것 같소. 우리 역시 즐거워서 총탄이 비오듯 하는 속에 나가는것은 아니요. 문제는 당신들의 태도여하에 달려있소.》

《강군, 아까도 말했지만…》

수동적이 아니라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강우는 억규의 말을 마지막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첫째로 계엄사령부가 학생들의 정의로운 의거를 인정하는가 하는거요.》

억규는 공연히 숨이 차하면서도 선뜻 대답하였다.

《물론이다. 계엄사령부와 우리 국군은 학생들을 결코 폭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우국지정을 리해한다. 때문에 정의의 투사인 학생들에게 바라는바…》

《체포된 학생들을 석방하겠는가?》

억규는 자기 말이 중둥무이되는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으면서 즐겨 대답에 응하군 하였었지만 그 질문에만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더듬거리였다.

《그것은…강군, 말하자면 본관의 직책에서 벗어난단 말이요. 다만 본관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는것만이 당신의 직책에 속하오?》

점점 더 강경해지는 강우가 날카롭게 반문한다. 억규는 숨을 씩씩거리며 불만을 표시하였다.

《본관 역시 모든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일에 한목숨 아끼지 않을 군인으로서의 각오가 있다.》

《좋다.》 하고 말하는 강우의 태도는 억규에게 진정한 각오가 있건없건 대답을 한 이상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하였다.

《우리의 요구는 3. 15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것을 선포하라는거다. 리승만이 우리앞에 나와 사과하라는거다. 우리의 뜻을 경무대에 전달하겠는가?》

억규의 얼굴에 희색이 떠오른다. 아무리 총명하고 명석하다 하여도 세속적인 권모술수에 물젖지 않은 강우는 억규의 얼굴에 비낀 기쁨의 표정을 성의있는 맹세의 표정으로 잘못 보았다. 억규의 대답은 시원시원하였다.

《경무대에도 계엄사령부에도 건의하겠다. 체포된 학생들의 즉시 석방도 건의하겠다.》

《좋다, 우리는 이제 곧 경무대에 갈 대표를 선출하겠다. 우리를 안내할 용의가 있는가?》

억규는 가슴을 펴고 큰소리로 웨친다.

《정의의 학도들! 본관은 그 일을 기쁘게 수행할것이다. 왜냐하면 제군들의 의거에 만강의 찬의를 가지고있기때문이다.》

마산에서부터 시작하여 한달나마 온 남조선의 학생들과 청년들이 피를 토하며 항쟁하였건만 리승만은 학생대표들을 만나기는 고사하고 언제나 총검으로 이에 대답하였었다. 그러나 억규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웨친다.

《제군! 계엄사령부에서도 학생대표와 만날것을 희망하고있소. 군과 학생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용감하게 이 난국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강우도 그 말을 그대로 믿은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리승만이앞에서도 떳떳이 자기의 주장을 말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심과 그 늙은 독재자를 면전에서 공박할수 있다는 용기로 해서 억규의 말을 눌러버리지 않았다.

《제군! 우리는 서로 우국지정을 가지고 불상사가 없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의 학도들, 본관은 우리가 평화의 사신임을 제군들의 눈앞에서 증명하겠다.》

공포에 떨면서 겁에서 오는 과대망상증으로 여기 모인 학생들이 무장을 가지고있는줄 알고있는 위정자들의 서툰 연극이다. 강우의 얼굴빛이 얼마간 변하였다. 억규의 마지막말이 뜻밖이였던것이다. 직급이 한등급 높아지려는데 온 정신을 쏟고있는 억규는 휙 돌아서더니 온몸에 힘을 주어 두 사병에게 명령하였다.

《총을 땅에 놔라!》

판가리싸움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수 없는 용기와 계략이였다. 두 사병이 어리둥절해서 총을 놓는다. 갑자기 방안이 숨을 죽인듯이 조용해졌다. 젊은 강우에게도 그것은 하나의 타격이였다. 그는 얼마간 당황하여 두 사병이 총을 땅에 떨어뜨리는 절그럭소리에 흠칠 놀랐다.

그때였다. 긴장한 정적속에서 누군가의 웅글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대표, 정신차리오!》

학생들은 소리의 임자가 누군지 알지 못하였지만 문섭은 그것이 권범이라는것을 대번에 알아맞췄다. 권범이만이 그렇듯 힘과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수 있는것이다.

《대위! 당신은 잘못 생각하였소. 바로 당신의 말대로 이 땅이 수난에 처하는것을 원치 않거든 무고한 청년들을 참살하고있는 살인자들의 무장을 해제해야 하오.》

《무슨 당치않은 소리!》

성공의 절정에서 그를 밀어던지는 권범의 말에 억규의 이마가 뻘개지고 관자노리에 피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권범의 잘 울리고 힘이 박힌 목소리는 계속된다.

《당신네 두 사병이 풀어놓은 보잘것없는 보총은 당신들이 가진 살인무기중에서 한두알의 모래알에 불과하오. 대위, 우리와 평화적인 담판을 원하거든 경찰의 모든 무장을 해제하시오! 그리고 오늘 진주한 기갑부대의 모든 무장도 해제하시오!》

억규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신음소리같은 울부짖음소리를 내였을뿐이였다. 권범은 불현듯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강우에게도 타이르듯 말한다.

《학생대표, 대위의 서툰 연극에 넘어가 자진해서 경무대에서 감옥으로 들어가는 순진한짓을 하지 말아야 하오.》

문뜩 문섭은 5년전 그때 순경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한점의 그늘도 없는 숙연한 표정으로 《…신념입니다, 신념이 있을 때 사람들은 무서운 힘을 가집니다.》 하고 말하던 권범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섭은 순간적인 회상에서 별안간 정신을 차렸다. 장교놈의 두눈에 살기가 비끼였던것이다. 그런 억규의 바른손이 번개처럼 권총을 찬 허리에 가는것도 보았다. 문섭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면서 《앗!》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보다 더 큰 음향이 삼켜버렸다. 포수가 명사수답게 남수에게서 사냥총을 나꾸채 들더니 권범이와의 약속을 지켜 장교놈의 손목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기였던것이다. 억규가 쏜 그리고 포수가 쏜 두방의 총성은 방안공기를 부셔버렸다.

총성의 여운속에서 극히 짧은 한순간 모든것이-사람들의 움직임도 시간도 생활도 일시에 정지된것처럼 무서운 침묵에 휩싸였다. 그것은 폭발직전의 기이한 정적이다.

다음 순간, 사나운 군중의 웨침소리가 일시에 폭발하여 억규는 자기의 몸뚱아리가 산산쪼각이 나서 허공에 흩어지는것 같은 공포를 느끼였다. 동시에 허리를 찔리우는것 같은 모진 충격에 상반신을 푹 꺾고 어푸러졌다.

그렇지만 달려나간 두 사병중의 하나가 걸핏 눈에 뜨인 출입문곁의 전기스위치를 제껴서 방안의 불을 꺼버린것은 억규에게 있어 천만다행이였다. 모든것이 어둠에 묻혀 사람들은 서로 걸채이고 어푸러지면서 억규를 가려보지 못하는것이다. 그래서 억규는 사람들이 붐비는 짬으로 겨우 빠져서 벽모서리에 붙어섰다.

군중들은 어둠속에서도 끊임없이 함성을 지르면서 출입문으로 쏟아져나가고있었다.

ㅅ대 문리대 정문을 나서면 그리 넓지 않은 긴 신작로길이 있다. 거기에는 턱끈을 죄여맨 백여명의 순경놈들이 곤봉을 들고 시위군중이 터져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정문에서 물밀듯이 쏟아져나온 시위대는 순경들을 맞받아 마구 돌진하였다. 그리하여 어두운 신작로는 순경놈들과 시위대의 무서운 란투장으로 화했다.

주먹과 총창, 힘과 증오의 대결로 쓰러지고 짓밟고 울부짖고 피를 흘린다. 선두에 섰던 강우가 정문을 나서자 곧 순경놈에게 덜미를 붙잡히였다. 어찌도 힘껏 끌어당기는지 젖혀진 목이 금방 꺾어지는듯 하였다. 여러놈이 젖혀진 그의 얼굴을 후려친다. 곤봉과 주먹이 숨쉴 사이없이 쏟아져내렸다. 뼈가 부서지는듯 한 소리가 자기 귀에도 똑똑히 들린다.

이상하게 강우는 그놈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가려보았다. 벌렁한 코구멍을 소처럼 씨근거리는 놈, 거품을 물고 더러운 욕설을 퍼부으면서 달려드는 놈의 두터운 입술, 번개치는 총대, 시뻘건 상통들… 강우는 자기의 얼굴이 깨지든가 목이 꺾어지든가 할것 같았다.

《이 불한당놈들아!》

강우의 입에서는 일찌기 입밖에 내보지 못한 상스런 욕설이 저절로 튀여나왔다. 그러자 한놈이 악에 받쳐 그의 팔을 뒤로 비틀었다. 아픔에 숨이 멎어버릴듯 하여 비지땀이 온몸에 내배였다.

《강우군!》

강우는 사람들의 씨근거리는 숨소리와 차고 치고 하는 탁음을 뚫고 리문섭의 목갈린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얼굴이 해쓱해진 서준하를 비롯하여 동무들이 그를 도우려고 달려들고있다는것도 알았다. 곧 강우의 덜미를 잡았던 순경놈이 발밑에 넘어졌다. 놓여난 강우와 달려든 학우들은 비칠거리는 순경놈들의 머리며 동가슴들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2천의 군중과 경관놈들의 이런 접전은 푸르스름해진 새벽빛갈아래서 점점 똑똑히 드러난다. 욕설, 신음소리, 비명, 총탁과 곤봉과 주먹과 발길질에 둔탁하나 소름이 끼치는 소리, 그것은 무서운 힘내기의 대결이였으며 피투성이의 싸움이였다. 그러나 시위자들은 아낙네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뒤걸음치지 않았다. 다만 아낙네들과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수없이 흘러내리고있다.

영애도 울고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눈물을 감촉하지 못한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였다. 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대렬에서 떨어지지 말자고 있는 힘을 다하여 순경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며 한걸음이라도 전진하였을뿐이다.

난데없이 어디선가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뜻밖에도 순경놈들이 싸움에서 손을 뺀다. 그 틈에 시위자들은 더 굳게 스크람(팔을 바싹 끼고 횡대를 이루는것)을 짰다.

《경무대로!》

학생위원장이 그렇게 웨쳤다. 팔을 낀 대렬은 돌격전에 들어선 병사들처럼 함성을 지르면서 급한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정문앞의 저지선을 완전히 돌파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문섭이와 그의 제자들은 거의 한덩어리가 되여 달리였다. 선생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빛이 컴컴했으나 학생들은 오히려 선생을 보호하려고 그의 주위에 방패처럼 들어붙어있었다.

《독재아성을 때려부시자!》

온갖 미적지근한 주저와 참을성을 던져버리고 불덩어리가 되여 전진하는 사람들의 힘은 진할줄을 몰랐다. 그러나 달리던 대렬이 네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리발소앞까지 다달았을 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였다.

점점 더 밝아오기 시작한 네거리 저쪽에서 어두운 구름 같은것이 밀려오고있는것이다. 검은구름의 떼는 순식간에 시커먼 덩어리가 되여 급속히 다가온다.

《기마대다!》

시위자들속에서 누군가가 숨막히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뒤이어 그쪽에서부터 위협의 총성이 연방 울렸다. 군중들은 반사적으로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제도 기마대들은 총탄을 란사하면서 시위군중들을 말발굽밑에 깔아눕혀 사상자들까지 냈다.

먼지에 버적거리던 입안이 바싹 말라들면서 입술이 타는듯 하였다.

가까와지는 말발굽소리, 그것은 치렬한 대결이 눈앞에 있음을 알리는 사나운 초침소리였다. 학생위원들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입술을 깨문채 거칠게 숨을 쉬고있을뿐이였다. 희생을 무릅쓰고 대결해야 하는가, 아니면 피해야 하는가, 피하면 대렬은 흩어진다. 어느쪽을 택해야 할지 경험이 필요하였다. 훈련이 필요하였다. 오한과도 같은 떨림이 온몸에 엄습한다. 그러자 그 누구의 가슴에도 모든것을 각오하는 최후의 결의가 서서히 솟구쳐올랐다.

누군가가 시위자들의 사이를 마구 비집고 대렬앞으로 나간다.

《젊은이!》

포수가 그의 뒤를 따른다. 젊은이는 량손에 수류탄을 쥔 기태였다. 대렬밖으로 나선 그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그를 엄호하려고 생각한 포수도 함께 달려나가다가 어느 한 담모퉁이에 붙어서서 가까와지는 기마대를 향해 사냥총을 겨눈다.

갑자기 총탄이 비발쳤다. 붉은 불빛이 기태의 주위를 수없이 누비며 지나간다. 총성과 붉은 예광과 말발굽소리에 신작로길은 뒤엎어진 악마의 도가니속같았다. 경험도 조직적훈련도 없는 시위자들의 대렬 한 모퉁이가 종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백지장처럼 공포에 서린 수십명 학생들이 정신없이 대렬을 떠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한 아낙네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한 소년이 휙 돌아서더니 문섭의 품에 와락 기여들었다.

문섭은 두팔을 커다랗게 벌려 아이들을 안았다.

《골목길로 빠지시오. 그리고 다시 네거리로!》

학생위원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질책하듯이 울리였다. 학생위원들이 갈팡거리는 군중들을 골목길로 밀어넣는다. 허둥지둥 옆으로 달려들어가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던 시위자들이 놀라는 소리를 쳤다. 기마대를 향해 달려가던 기태가 말발굽에 채워 비칠거리다 길우에 풀썩 꺼꾸러졌던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내던진 두개의 수류탄이 튀는 요란한 폭음이 살벌한 주위를 삼켜버린다. 초연속에 앞발을 든 말배때기와 안장우에서 떨어지는 기마병, 갈팡거리는 말들의 요동이 보였다. 말발굽소리는 란잡하게 흩어졌다. 비명과도 같은 말의 울음소리들이 초연에 싸인 새벽공기를 찢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틈에 총탄을 피해 골목길로 흩어져들어갈수 있었다.

기마대가 다시 대렬을 수습하였을 때는 이미 시위대렬의 마지막사람들이 좌우에 뚫린 여러개의 골목길로 빠져나가고있을 때였다.

영애는 문뜩 돌아섰다. 그리고는 가게옆으로 빠져 다시 신작로길에 나섰다. 이미 기마대들은 지나가버리고 거리는 방금전까지 무서운 란투가 벌어졌으리라고는 생각할수 없게 텅 비여있었다. 영애는 아침해빛이 비쳐들고있는 사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간호원언니!》

소리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방싯하게 열린 대문틈으로 한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저를 좀 도와주셔요.》

앞채에 잇달아 지은 방앞에 좁은 마루가 있고 거기에 한 부상자가 반듯이 누워있었다. 뜻밖에도 영애가 찾고있는 기태였다. 기태는 이따금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였다.

상처받은 어깨에는 수건이 서툴게 처매져있었다. 영애는 피에 젖은 그 수건을 풀었다. 틀림없이 어깨뼈가 상한것 같았다. 탄알때문이 아니라 말발굽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출혈이 심했다. 맥박에 힘이 없었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영애는 손바닥만 한 뜰안을 살폈다. 굵은 모래를 깐 정갈한 뜰이였지만 두개의 장독외에 아무것도 없다. 눈치빠른 소녀가 먼저 말했다.

《어머니가 들것을 얻으러 가셨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병원에 가겠어요. 약값도 없는데… 우리 언니가 있으면 어떻게 할지… 이 아저씨는 언니와 한 공장에 다녀요.》

소녀는 살눈섭이 길고 이마가 도드라져서 령리해보였다.

《네 이름이 뭐지?》

영애는 붕대를 감으며 물었다.

《연희예요. …간호원언니, 이 아저씨 죽지 않지요?》

연희는 기태의 해쓱해진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묻는다.

《안 죽는다.》

《죽어서는 안돼요.》

듣는 사람의 가슴에 충격을 주는 어린애답지 않게 절통한 목소리였다. 영애는 소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결코 죽지 않아. 용감한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 말에 연희는 영애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민망한듯이 말하였다.

《용감한 사람도 죽어요.》

영애는 잠시 일손을 놓고 소녀의 슬픔이 어린 령롱한 두눈을 바라보았다. 연희는 설사 절망적이기는 해도 진실을 요구하고있는것이다.

《죽지 않는다. 이 아저씨는 그렇게 쉽게 죽을수 없는분이니까.》

삶에 대한 완강한 요구, 그것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죽음에서 구원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영애는 알아듣도록 표현할수가 없어 말을 끊었다. 그렇지만 소녀는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꼭 살아요.》

연희의 얼굴에 말할수 없이 찬연한 빛이 비꼈다. 믿음인지 자랑인지 알아볼수 없었으나 그것은 영애에게까지 기태가 살아난다는 확신을 준다.

《우리 학교 병원에 데려가자. 우리는 미국인원장놈한테서 병원을 빼앗았단다. 약값이 없어도 된다!》

《미국놈에게서요?》

연희의 두눈은 유난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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