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14

 

봄은 점점 무르익는다. 서울의 이해의 봄은 또 유난히 화창하였다. 신록이 빛을 뿌리고 봄볕은 도도히 흘러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봄빛과 함께 새로운 격동이 이 땅을 또다시 진감시키기 시작하였다.

지혜와 상애는 교실에서 4. 19때의것과 꼭같은 모금함을 만들고있었다. 의대병원의 정림에게 부탁하여 그때처럼 커다란 약함 몇개를 얻어온 그들은 그우에 흰종이를 바르고있었다.

약함을 얻으러 갔을 때 정림은 이전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엄격하였고 친절하였다.

《지혜는 퍽 달라졌어. 어른이 된것 같다고 할가, 어쩐지 미더워졌구먼.》 하면서 반가와하였다. 마치 옛 전우를 만나는 기분이였다. 김의사의 안부를 묻자 정림은 억누르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쫓겨났어. 4. 19때 맥드낼드가 잠그고 간 약창고를 마음대로 도끼로 까버렸다고 이모저모로 압력을 가해서 종시 그만두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어. 하지만 김의사는 유능한 외과의야. ㅅ구 장내과병원에서 모셔갔어. 거기는 공장지대라 외과환자가 더 많다고… 지혜, 며칠 있으면 나도 그리로 가.》

그리하여 지금은 정림이도 ㅅ구에 와있다. 지혜는 열심히 손을 놀리면서 상애에게 말하였다.

《4월에 우리는 간호원수직실에서 이 모금함을 만들었어. 복도건 병실이건 꽉 들어찬 부상자들의 신음소리와 울분의 웨침소리를 들으며 침통한 마음으로 이것을 만들었어. 그러나 지금은 전혀 같지 않아. 찬란한 래일을 보면서 만들고있어.》

새 구호가 마련되였던것이다.

통일의 광장에로! 그 웨침은 미제의 발밑에서 허덕이며 신음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심장에 소생하는 미래를 예고하는 기쁨과 투지의 북소리였다. 학생단체들은 자기의 명칭들을 바꾸었다. 어느 대학이나 어느 중고등학교나 학생단체들의 명칭에 《민족통일》의 넉자를 삽입하지 않는 학교가 없었다. 각 학교, 각곳의 회관들에서는 조국통일과 관련된 연구회, 강연회 등 크고작은 모임들이 매일처럼 열리였다. 턱끈을 졸라맨 무장경관도, 기마순경도 도처에서 일어나는 그 사태를 막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 봄 ㅅ대학교 민족통일련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언덕너머 저편에서 들려오는 저 세기사의 격동하는 음악소리를 들으라! 우리는 우리 인민에게 통일의 가능성을 제시할 엄숙한 순간에 있다. …젊은 세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일치단결 조국통일의 위업에로 매진하자!…

언덕너머가 어디를 가르키는것인지, 세기사와 격동하는 음악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조선사람치고 누가 모르겠는가. 그것은 천리마의 발구름소리며 화려한 락원에서의 노래소리였다. 미제가 제아무리 총검의 검은 구름으로 남조선하늘을 뒤덮어도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은 그들의 가슴속에 해살처럼 비쳐든다. 그이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의 명확한 방침과 방도들은 청년학생들의 심장을 그러잡았다. 그리하여 미제의 식민지파쑈정책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의 투쟁은 불쑥 한계단 더 높이 뛰여올랐다. 그들은 프랑카드에 이렇게 새겨넣는다.

《경제적자립없이 정치적자주도 없다. 양키 물러가라!》

《민족의 번영과 행복은 통일의 길밖에 없다.》

5월에 들어서자 드디여 ㅅ대학교 민족통일련맹은 온 남녘땅을 흥분으로 끓게 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새로운 성명을 발표하였다.

…빠른 시일내에 남북학생회담을 개최할것이며 남북학도간의 기자교류, 학술토론회, 예술, 학문, 창작의 교류, 체육대회를 개최할것이다. …

항상 남녘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평양에서는 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와 조선학생위원회가 즉각 이에 호응하는 편지를 채택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성에서는 입북하는 학생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평양방송으로 이 보도를 들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감동이 얼마나 컸었을것인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격동에 넘친 시선으로 서로 마주볼뿐 말이 없다가 갑자기 서로 붙안고 함성을 올리면서 웃으며 눈물을 흘리였다.

《이렇게 빨리 내무성의 성명까지…》

불현듯 평양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지척에 있는것처럼 가까와졌다. 그리하여 다음날 모든 대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결성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평양의 목소리가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한것이다.

준비위원회는 성명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약소민족이 강대민족에게 리용, 착취만 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이제 젊은 세대들이 민족의 유일한 활로인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 …

결의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밝혀져있었다.

- 남북학생의 회담장소는 판문점으로 한다.

- 회담시일은 5월이내로 하며 정확한 날자는 대표선출이후 결정한다.

-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은 지역별로 대표를 선출하며 회담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 남조선당국은 우리 남북학생회담에 림하는 모든 편의를 도모하라!

이와 함께 준비위원회는 드디여 새로운 구호를 발표하였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구호에는 조선인민의 절박한 숙망이 담겨져있었다. 실현을 재촉하는 당면과업이 명백하게 제기되여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가슴에 끓고있던 소망과 기대를 흥분속에서 활짝 피여나게 하였다.

이미 단순한 울분의 폭발이 아니였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온갖 념원이 민족통일에 대한 끓어넘치는 열망과 합치되였다. 그것은 빈궁과 기아, 무권리가 빚어놓은 불행과 고통을 쓸어버리고 새 정치, 새 생활을 이룩하는 튼튼한 열쇠였다. 그것으로 해서 희망은 부풀어올랐고 투지는 빛발치였으며 조직은 확대되였다. 통일만이 살길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그것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운 홰불을 일구었다. 도시와 촌락, 거리와 마을, 그 어디에서나 남조선의 모든 광장에서 전국학생련맹결성준비위원회의 성명과 구호를 지지하는 군중집회가 관헌들의 비상경계와 행패를 박차고 련이어 엄숙하게 진행되였다. 선언문이 소리높이 랑독되였으며 결의문들이 비장한 각오속에서 채택되였다.

더구나 서울거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학생들의 시위대렬이 지나가고 연도의 시민들이 환호성을 보내고 호외를 파는 신문장사아이들이 흔드는 다급한 종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늘높이 살포되는 삐라가 꽃보라처럼 머리우에서 춤을 춘다.

학생회담에 대한 소식은 발이 달린것처럼 시시각각으로 온 남녘땅에 전파되였다. 보도기관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바빠졌다. 아무리 바빠져도 기자들이 그렇듯 신바람이 나서 일한 때는 더는 없을것 같다.

대표들이 판문점을 향해 떠나는 날,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다. 그 모임에서 오후 1시를 기하여 민요 《도라지》와 《아리랑》의 제창이 있는데 평양에서도 그 시각에 같은 노래를 제창하여 우선 하늘에서의 교류를 하리라는것이다. 그리고나서 남조선의 모든 청년학생들이 북상길에 오른 대표들을 환송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판문점까지의 모든 연도의 좌우편을 메꿀것이라 한다.

이 새로운 거세찬 불길에 적들은 당황하였다. 솟구치는 시위자들의 모든 념원이 북으로 향하고있는것이다. 주《한》미국대사는 매일처럼 하수인들을 불러다 밀담을 계속하였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접견》놀음을 벌리고 한편으로는 특무망을 펴고 치안국장으로 하여금 《경찰은 남북학생회담을 실력으로 저지시키겠다.》고 위협공갈하게 했다.

그러나 치안국장의 호통은 타는 불길에 키질을 한셈이였다.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은 다음날 이에 항거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더이상 민족의 비극을 연장시킬수 없다. 이는 피에 맺힌 우리 남북동포들의 울부짖음이다.

우리는 만나서 부둥켜안고 울고웃으며 설음과 기쁨을 서로 나눌것이다.

형제여, 학우여, 이곳으로 오라!

그리고 다같이 행군하자!

북쪽의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 남북학생축제를 갖자. 래일의 광휘로운 터전을 닦기 위하여 남북학생회담의 광장으로 나아가자! 력사는 이 순간 우리 편에 있다. …

5월이였다. 신록은 온 산야에 푸르른 빛을 뿌리고있었다. 드디여 대표선출이 시작되였으며 력사적인 회담에 비용으로 써달라고 각 신문사들에 금품과 선물이 련이어 들어왔다. 녀인들은 남북학생회담을 지지하는 시위대렬에 뛰여들어 반지를 뽑아주었으며 신사들은 시계를 풀었다.

가난한 애청학원 선생들과 학생들도 자기들이 할수 있는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남선생들과 남학생들은 각곳에 흩어져 파철도 수집하고 구두닦기와 물장사로 번 돈들을 바치였고 녀선생들과 녀학생들은 모금함을 가지고 거리에 나섰다.

지혜와 상애가 그 모금함을 만들고있는것이다. 별안간 운동장에서 유난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지혜는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종시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학생들은 점심시간 한때를 즐기고있었다. 뽈을 차고있는 학생, 고무줄넘기를 하고있는 처녀애들, 하나밖에 없는 유희도구인 철봉대에 매여달려있는 학생들, 그저 구경하면서 서성거리고있는 학생들모두가 유난히 생기있게 돌아치고있었다. 밝게 비치는 화창한 봄볕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애선생, 저애들을 좀 봐요!》

지혜는 어딘가 흥분한 표정으로 한떼의 학생들을 가리킨다. 상애가 가까이 와서 말했다.

《통일렬차놀음이야. 누가 생각해냈는지 며칠전부터 매일이야.》

키가 큰 동혁이와 또 한 학생이 선두에서 화통이 되여 서있었다. 그뒤에 십여명의 학생이 앞의 학생의 허리를 붙잡고 꺼꺼부정해서 늘어서있다. 신호기대신 푸른 헝겊과 붉은 헝겊을 든 남수가 푸른 헝겊을 휙 저었다. 출발신호다. 렬차가 움직였다.

《달린다 달린다 통일렬차 달린다.》

노래인지 구호인지 어쨌든 모두가 박자맞게 부르며 전진한다. 그러자 뽈을 차던 학생이 공을 집어던지고 고무줄넘기를 하던 처녀애들이 고무줄을 아무렇게나 걷어쥐고 통일렬차에 매여달려 혼잡이 이루어진다.

《정류소에서 올라타란 말야!》

《역장》인 남수가 목이 쉬게 고함을 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붉은 천을 꺼내 휘둘렀다. 렬차가 급정거한다. 그바람에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느라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역장》이 설명을 한다.

《통일렬차에 탈 사람은 정류소마다 서있으란 말이다. 저기 백양나무가 대구이고 저기 철봉이 서울이고… 누구나 다 태워주니까 알았지?》

렬차는 다시 달린다. 《대구역》에서 학생은 세배로 늘었다.

《달린다 달린다 통일렬차 달린다. 기적소리 울리며…》

《마지막은 뭐라고 하지?》

상애의 물음에 지혜가 북받치는 마음으로 대답한다.

《평양으로 달린다!》

《아이들두 참!》

상애와 지혜는 순간 엄숙한 시선으로 마주보았다. 평양에 가보지도 못한 애들의 가슴에 평양은 살아있었다. 렬차는 정류소마다에서 새로운 학생들과 합세하여 그냥 저쪽으로 달리고있다. 그쪽에서는 두 학생이 긴 새끼줄을 잡고 통일렬차가 다가오는것을 바라보고있었다.

《아마 저게 분계선일거야.》

지혜는 단순한 놀음놀이를 보고있지 않는것처럼 가슴이 뛰였다. 렬차가 《분계선》가까이로 다가가고있다. 대포를 걸고 공화국을 노리고있을 실제의 분계선이 머리에 그려진다. 황페화된 비무장지대의 철로는 녹이 쓸고 침목은 썩어져 형체도 없어졌으리라. 철갑모를 쓴 미군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며 귀를 강구고있을것이다.

하지만 봄볕에 빛나는 여기 《분계선》에서는 학생들의 통일렬차가 환호성속에서 거침없이 다가간다. 그러자 새끼줄 저쪽에서 대기하고있던 학생의 떼가 와- 소리를 치며 달려와 줄을 끊었다. 그리고 렬차의 승객들과 부둥켜안고 웃고 떠들며 환성을 올린다. 지혜는 기꺼움에 목이 메였다. 전체 조선인민의 꿈! 얼싸안고 돌아가는 학생들, 넘어지면 넘어진대로 서로 디굴디굴 굴고있는 학생들, 누군가가 만세를 부르자 다른 학생들도 손을 쳐들고 목청껏 만세를 웨친다. 격동에 찬 얼굴들!

상애는 웃으면서 눈시울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낸다.

평양! 평양이 지척에 있다. 가보지 못한 그들에게 구체적인 표상은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빛과 꽃보라와 뜨거운 맥박과 굳센 힘이였다. 그 평양이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후듯후듯 느끼게 한다.

그러나 검은구름은 의연히 남조선하늘을 뒤덮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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