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13

 

봄이였다. 시골에서는 양지바른 언덕에 파릇파릇 새움이 돋아나고있으리라. 그러나 탄재와 구정물과 악취로 차있는 이 ㅅ구에는 새움이 싹틀수 있는 풀 한포기 없다. 그래도 봄은 소리없이 찾아왔다. 뼈속까지 얼게 하던 찬바람을 막을길 없던 홑옷에도 인제는 말할수 없이 따사로운 해빛이 랭기를 밀어젖히면서 조심스레 스며들어왔다. 사람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얼어붙었던 길바닥이 낮이면 물기를 머금으면서 발목이 쑥쑥 빠지게 구질어졌다. 사람들은 그래도 좋았다. 활개를 펴고 큰소리를 나누면서 어쨌든 소생한 봄을 느낀다.

지혜도 무엇인가 따사롭고 마음이 뛰는듯 한 봄을 느끼면서 카바이드등이며 석유등들을 켜고있는 판자집의 작은 창문들에서 스며나오는 불빛에 겨우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구질은 길을 골라짚으면서 야학에 나가려고 공장으로 가고있었다.

야학은 처음 생각한것 이상으로 성과를 거두고있었다. 학생들은 이만저만 열성이 아니였고 놀랍도록 리해가 빨라 모두가 웬간한 문장들은 막히지 않고 읽게 되였다. 그리하여 이번 주일로 첫기 야학은 일단락 짓는다.

그리 크지 않은 신작로길을 건느려던 지혜는 학생들의 야간시위대렬과 맞다들어 걸음을 멈추었다. 길을 메꾸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은 모두 손에손에 홰불들을 들었다.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빨갛게 타는 홰불은 시위자들의 얼굴에 더욱 격동적인 표정을 가한다. 말없이 걷는 시위자들의 줄기찬 발구름소리, 어둠을 누비는 홰불, 전진하는 불덩이의 대렬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충격을 준다. 불빛에 비쳐진 프랑카드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통일만이 살길이다.》

통일이라는 두 글자가 갑자기 심장을 그러쥐는듯 하였다. 언제 이북처럼 되는가고 묻던 득찬의 아버지! 그곳을 동경하는 남수, 동혁, 연희… 생각하면 그 동경과 념원은 지혜의 가슴속에도 있었다. 다만 가슴속깊이에 겹겹이 묻어두었을뿐이다. 통일은 학대받고 천대받고 굶주리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피끓는 념원이였다. 아무리 포악한 압력도 그것을 지워버릴수 없는 삶의 소망이였다. 그 숙망이 홰불에 비치여 싸움의 광장으로 도도히 흐르고있는것이다. 지혜는 공장에 다달을 때까지 흥분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이상한것은 공장 역시 여느때없이 소란한것이였다. 바로 창고앞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듯 사람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고있었다. 지혜는 걸음발을 다우쳐 다가가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지혜선생…》

기태가 지혜의 팔을 잡더니 창고뒤 어두운 구석으로 데려갔다.

《오지 말라고 알려드릴 짬이 없었습니다. 순경 두놈이 왔소. 수업에 참가하겠다는거요. 그래서 강습반 학생뿐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순경놈들을 끌어내고있소.》

《무엇때문에 참가하겠다고 해요?》

《로무자들은 지혜선생의 가르침도, 교재도 마음에 들어하오. 글을 배운다기보다 생활의 진리를 배우고있다고들 하니까.》

기태는 어둠속에서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교재는 정말 훌륭해요.》

그것을 썼다는 기태와 복희에 대해서 감탄하고있던 지혜였다.

《우리 마음에 드니까 놈들의 마음에는 안 드는거지… 소문을 듣고 왔는지… 야학생속에 첩보가 있었던지 그것만은 아직 모르겠소만…》

《기태씨는 오늘 수업을 그만두자고 그러셔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혜선생이 위험에 처하는것을 원치 않으니까요.》

지혜의 가슴에는 타오르며 도도히 전진하는 무수한 홰불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복희가 선생이였다면 수업을 그만두지 않겠지요?… 섭섭해요.》

《지혜선생, 우리는 항상 공격전만 할수 없습니다. 때로는 방어도 때로는 퇴각도…》

《무엇때문에 퇴각하겠어요? 순경이 와있으면 와있으라지요. 승인받은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데 그것이 어쨌단 말입니까?》

《놈들은 어정쩡하게 검열을 한것을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있지요. 그리고 승인을 했든 안했든 리치가 통하는 경찰이 아닙니다.》

《저는 수업을 해야겠어요.》

지혜는 단호하고 고집스럽게 기태를 뿌리치고 문가로 향한다. 다시는 4월의 그때처럼 뒤걸음치지 말아야 한다. 타오르는 홰불이 지혜를 떠밀어주고있지 않는가. 지혜는 문앞에 겹겹이 둘러선 로무자들을 향해 결연한 어조로 말하였다.

《저를 들어가게 해주셔요. 야학선생입니다.》

로무자들은 놀라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방안에서는 순경과 다투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순경 두놈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의자까지 갖다놓고 앉아있었다. 지혜는 여느때없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야학생들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방안에 그대로 서성거리고있는 로무자들을 향해 한층 소리를 높였다.

《야학생이 아닌분들은 돌아가주셔요! 야학에 대해서 마음을 쓰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로무자들은 얼른 나가지 않았다. 지혜는 말을 계속한다.

《우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도 강의를 중단할수가 없습니다. 배고프고 졸리고 춥고 해도 이 석달 하루 한시간도 결강하지 않았습니다. 배우는것은 힘입니다. 힘을 키우고있는 우리들이 이만한것에 물러설수 없습니다.》

지혜는 자기가 조금도 당황하고있지 않다는것을 스스로 느낀다. 아직도 문옆에 서성거리고있던 로무자들이 이렇게 웨쳤다.

《우리는 나가겠소. 하지만 돌아가지는 않겠소. 밖에서 진을 치고있을테니 안심하고 공부들을 하시오.》

이렇게 해서 이날의 수업은 방에는 순경 두놈을 앉히고 밖에는 그들을 호위하는 수십명의 로무자들에게 둘러싸여 삼엄하고 긴장한 공기속에서 시작되였다.

지혜는 흑판에 그날 배울 과제를 썼다. 백묵에 힘을 넣어 한획한획 똑똑히 썼다.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농민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아저씨가 대답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어 우리가 먹을 량식을 마련해주는 어진 사람들이다. >

<로무자란 무엇인가요?>

<입을것도 신을것도 책도 연필도 사발도 집도 가구도 전차도 비행기도 이 세상의 물건이란 물건들을 죄다 만드는 씩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란다.>

아이는 놀라면서 물었습니다.

<량식을 만드는 농민들이 왜 굶어야 하나요?>

아저씨는 한숨을 지을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이는 또 물었습니다.

<별의별 물건을 다 만드는 로무자들이 왜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자집에서 헐벗고 추워서 떨어야 하나요?>

아저씨는 더 크게 한숨을 짓고나서 말하였습니다.

<얘야, 어서 커라. 크며는 왜 그런지 다 알게 된다.>

그 말에 아이는 성이 나서 말했습니다. <흥, 나도 알아요. 아저씨는 알면서 왜 한숨만 지어요! 로무자들은 아저씨처럼 한숨만 짓지 않아요.>》

지명된 덕대가 랑랑하게 읽었다. 뒤이어 모두 한꺼번에 읽었다. 랑독이 원만하게 되자 지혜는 물었다.

《농민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한 처녀가 일어선다.

《량식을 마련해주는 어진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처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도로 주저앉는다. 얼굴이 벌개지고 왜 그런지 두눈에 눈물이 있었다. 처녀의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딸을 먹일수가 없어 선금을 받고 공장에 팔았다.

《아이는 그 농민에 대해서 아저씨에게 뭐라고 물었습니까?》

지혜는 그 처녀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처녀가 또다시 일어섰다.

《제가 왜 농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저의 부모가 농사군인데 왜 모르겠어요.

저의 부모는 여름이면 다락논에 물을 퍼올리느라고 밤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거둬들인 낟알을 지주에게 다 빼앗겨야 합니다. 봄이 되면 온 집안식구의 얼굴이 붓습니다. 그나마 작년에는 그 논에 미군병영을 지었어요. 땅을 떼우고 한지에서 사흘을 자고나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붓기가 심해져서인지 화가 나셔서인지 알수 없어요. 저에게는 어린 두 동생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지주의 옷자락에 매여달려 사정했습니다. 어린것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밭 몇뙈기라도 부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지주놈은 어머니의 잔등을 구두발로 찼습니다. 지금도 앓고계십니다. 저는 하는수없이 선금을 받아 어머니에게 드리고 공장에 왔습니다. …이것이 농민이 아니겠습니까.》

처녀의 목메인 가는 목소리가 끊어졌다. 방안은 조용했지만 때때로 누군가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지혜는 자기가 글을 가르치고있는 선생이라는것을 잊고 물었다.

《공장에 온 후 집에 가보았습니까?》

《어떻게 가겠습니까. 로자도 없고 제가 가면 누가 벌겠습니까. 세살 난 맨 손아래동생은 배고파 죽었습니다. 또 한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있습니다. 선생님, 농사군이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순경놈의 얼굴이 사나와진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공부나 해라!》

지혜는 높뛰는 가슴으로 말하였다.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자, 농민이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았습니까?》

학생들의 시선에는 불꽃이 일었다. 순경놈들은 숨만 씩씩거린다. 지혜는 그 긴박한 공기를 가슴에 가득 들여마시면서 이런것도 물었다.

《량식을 만드는 농민이 굶고 물건을 만드는 로무자가 헐벗는다고 아저씨가 한숨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성이 나서 로무자들은 한숨만 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한숨을 지을 대신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아오!》

진국로인이 낮으나 잘 들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순경이 벌떡 일어섰다.

《뭘 안단 말인가?》

진국로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선생이요? 그리고 몰라서 묻소? 거리에 나가보오. 지금도 끝나지 않았을거요. 학생들이 홰불시위를 하고있소. 그 프랑카드에 뭐라 써있는지 보면 아오.》

《말해봐라!》

순경은 언질을 잡으려고 기어이 말을 시키려는것이다.

《앉아서 굶지 말고 일어서서 싸우자!》

《누구 하고 싸우는가?》

누군가가 뒤에서 큰소리로 대답한다.

《우리를 굶기는 놈, 우리를 때리는 놈, 우리에게 큰소리치는 놈…》

《누구얏!》

두놈의 순경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잠간!》

낮으나 태연하고 도도한 지혜의 목소리에 순경은 공연히 흠칠하면서 돌아보았다.

《오늘의 국어강습은 이것으로 그치겠습니다. 모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야학생들은 순경앞을 막아나서듯 출입문까지의 길을 틔워주었다. 지혜는 미소를 그리며 모두들에게 눈인사의 작별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뜰에는 로무자들이 약속대로 어두운 창고두리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고마워요. 저를 위해주셔서…》

처음 보는 그들이건만 자기와 야학을 보호해주고있는데 대한 감사의 정과 친혈육과 같은 친근감을 느끼면서 가슴이 후더워진다. 그러는데 기태가 어둠속에서 다가왔다.

《오늘 야학은 훌륭했습니다.》

그는 인사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 막 가슴이 북받쳐요. 모두가 친형제처럼 느껴져요. 야학에 나오게 해주어서 정말 고마와요.》

《고맙다는것은 우리가 할 말입니다.》

《아니예요. 정말 소박하고 진실한분들이예요. 막막하던 앞이 트이고 힘이 생기는것 같은…》

지혜는 자기가 아까 홰불시위대와 만났던 길을 걷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리였다. 그러자 어둠을 태우며 흐르던 무수한 홰불의 전진이 눈앞에 떠오른다. 연기를 뿜으며 타오르는 불덩어리들의 전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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