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9

 

교감은 교직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운영리사회에서는 지혜선생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였소. 지혜선생은 우리 학원에 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학원을 위해서 성심성의를 다하고있소. 선생님들도 아시겠지만 지혜선생의 학급반 학생들의 금번 미거가 전교에 모범이 되고있다는것을 리사회에서는 일치하게 인정하였소. 학원안에 이런 미풍이 지배하게 되여야 하겠소. 그렇건만 개중에는 이 모범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사리에도 맞지 않는 불평들을 하고있소. 그런즉…》

지혜는 불의의 타격을 받은 사람처럼 잠시 멍해서 앉아있었다. 영철은 학원을 수리하지 않을 좋은 구실을 줄것이라고는 했지만 교감이 이렇게 리사회의 이름을 걸어서까지 칭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의 학생들은 얼마나 즐겁게, 그렇듯 깨끗한 마음으로 수리를 했던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 지혜는 다른 교원들앞에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배속에서부터 솟구쳐오르는 노기가 서서히 온몸에 퍼진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면서 생각을 짠다. 교원들은 표정을 굳히고 잠자코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표정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불꽃들이 튀고있다는것을 지혜는 느꼈다. 영철교원이 벌떡 일어선다. 그러자 교원들이 일제히 얼굴을 든다. 놀란 표정이 아니라 무엇인가 각오하는 굴함없는 표정이다. 영철교원은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높았고 어조가 빨랐다.

《학교수리도 안하고 교편물도 갖추지 않고 수업조건을 위해서는 거의 한푼도 쓰지 않으면서 매일처럼 그렇듯 과중한 실습이 무엇때문에 필요하오? 실습에서 얻어진 리득은 어디로 가오?》

교감의 얼굴빛이 대번에 날카로와졌다. 선생들은 숨을 죽이였다. 싸움을 앞둔 숨막히는 정적이 한순간 방안의 공기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어쩌자는거요? 응? 리사회는 공명정대하오. 더구나 영철선생은 지난번에도 불온하게 굴었지만 리사회에서는 관대하게 보았더랬소. 인재가 없어서 그랬던줄 아시오? 천만이요. 그렇게 불만이거든 차라리… 좋도록 하시오. 리사회는 사표를 수락할 용의가 있소.》

교원들의 긴장된 가슴에 부지중 한가닥의 불안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 불안은 오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밀어버리지 못하였다. 불안은 너무도 습관된것이며 결심은 더는 버티고있을수 없는 절박한것이였다. 영철은 뜻밖에 여느때없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교감선생이 솔직하게 사실을 말하셨다는것을 저희들은 익히 알고있습니다. 우리의 사표를 언제든지 수락할 용의가 있으며 대신할 인재들도 얼마든지 있다는것을 말입니다.》

《영철선생…》

교장은 통절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막으려고 하였다.

《교장선생, 오늘 저에게 하고싶은 말을 하게 해주십시오. …가난한 우리 학원 학생들은 돈이 없어 다른 학교에 가고싶어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애들은 이런 무너져가는 학원에서 감당하기 힘든 로동을 하면서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학교에 다니고있습니다.》

영철은 한마디, 한마디에 진실을 담으면서 또박또박 말하고있다. 교장은 무엇인가 각오하듯이 눈을 감았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그의 심장에 영철의 말은 뜨거운 못을 박고있을것이리라.

《우리 교원들 역시 잘살고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번번이 월급이 체불되지만 일자리를 떼울것이 근심스러워 부당한것을 보면서도 아픔을 누르며 참아왔지요. 바로 리사회는 학생들과 교원들의 이 약점을 거머쥐고 무슨 일이든 할수 있으리라 생각하고있소. 하지만 너무도 철면피하게,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하여왔지요. 너무도 지나쳤소. 아무리 무맥한 교원들이지만 더는 참을수 없어졌소.》

《그래서? 교장선생, 이 란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감은 손아래사람을 쏘아보듯 교장을 쏘아보았다. 교장은 감고있던 눈을 떴다. 책상우에 올려놓은 그의 두손이 떨린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주름진 입가를 우무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영철의 말이 계속되였는데 어조는 아까보다 한층 단호하였다.

《우리 교원들은 학원의 운영을 위해 피치 못할, 그러니까 이미 제정된 실습시간이외의 실습은 학생들에게 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오늘부터 당장 실천하기로 하였다는것을 알려드립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뭐라고? 목공과 날염의 납품기일이 박두했는데 일을 못하도록 훼방을 놓겠다구? 이야말로 학원을 망하게 하려는 잡도리요. 학원이 망하면 학생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응? 손톱눈 곪기는것만 알고 염통 곪기는줄은 몰라?》

교감은 성이 났을뿐아니라 발버둥치고싶도록 초조하였다. 이번에 주문받은 목공일과 날염은 백창락이 주선한 일본상사의 보세가공품으로 그의 주머니에 꽤 많은 돈이 흘러들어올수 있는것이였다. 그 기일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호랑이같은 백창락의 노기를 어떻게 달랜단 말인가. 그런 그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덧붙였다.

《이 교감에게도 생각이 있었소. 이번 월급은 전액을 한꺼번에 지불할뿐아니라 밀렸던것도 되도록 청산하자고 말이요. 이번 주문품은 그만큼 유리한것이요. 유리하니만큼 제기일에 납품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주문을 받기 곤난해지오. 학원의 신용은 떨어지고 나 역시 학생들이나 선생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눈을 꾹 감고 한번만 참아주 하고 생각했소. 응… 그런데 리사회의 고통도 모르고 이 무슨 란동이요? 렴치가 있어야 하오. 오늘부터 당장 실천한다고?》

《그렇소!》

이미 40이 넘었고 평소에는 말이 없던 교원이 거친 목소리로 잘라말하였다.

《누가 그것을 결정했소?》

교장이 힘없는 소리로 그렇게 묻는다.

《교직원일동이지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을 제외한…》

지혜는 싸움이 쉽지 않으리라는것을 느끼면서 불안과 긴장에 굳은 힘을 주며 앉아있었다. 일감의 주문에 대해서나 그 납품기일문제에 대하여 지혜는 다 알고있지 못하였다. 협잡군에게도 자기 변론의 리유가 있었다.

 

사건은 뜻밖의 일로 해서 꼬리를 물었다.

그때 지혜는 력사수업을 하고있었다. 지혜는 어느 학과보다도 력사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생활의 바닥에서 수모를 당하고있는 그들에게 찬란한 선조들의 력사는 긍지를 심어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과제는 임진왜란, 지혜는 감동을 가지고 리순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렇듯 애국적인 명장 리순신장군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간신들의 모해를 받아 포승에 묶이여 서울로 호송될 때 백성들은 연도에 주저앉아 통곡하였습니다.》

지혜의 눈앞에는 흰옷을 입고 포승에 지워진 리순신의 모습이 떠올랐고 통곡하는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후듯후듯 가슴에 느껴졌다. 처녀애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그렇게 교수에만 열중하고있던 지혜는 찦차 한대가 교정에 와서 멎고 거기서 강우가 뛰여내리는것을 보지 못하였다. 강우는 한참이나 운동장에 선채 교사전모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현관으로 들어섰다.

지혜는 강우를 보지 못하고 학과를 계속하고있었다. 남수가 일어서서 질문을 한다. 오래 생각하다가 하는 질문인듯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리면서 하기 힘들어하였다.

《선생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가지만은 알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애국심이 강하고 용감한 리순신장군이… 어째서 포승을 순순히 받았는지… 왜 뿌리치고 대항하지 않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글쎄, 여느때도 아니고 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망하는가 흥하는가 하는 그런 때가 아닙니까. 왕명을 거역하지 않으려고 그랬다는데 그까짓 왕명이… 나라와… 민족이 중하지… 저는 아무래도 리해되지 않습니다.》

뜻밖의 질문에 지혜는 마음을 가다듬고 들었다. 땅크앞에 나섰던 그때의 남수의 당당한 모습이 기억에 떠오른다. 지혜는 동안을 두고 심중한 어조로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지요? 리순신장군이 왜 포승을 순순히 받았을가요? 나라가 흥망에 처하고있을 때니만큼 왕명도 거역해야 했을가요? 거역할수 있었을가요?》

선생의 질문은 학생들의 판단의 방향을 암시하는것이기도 해야 한다. 지혜는 그렇게 남수의 질문을 정리해서 물었다. 학생들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쉽게 판단을 내릴 문제는 아니다. 남수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을 못했을것이고 생각을 힘들게 하지 않고서는 대답할수가 없는 그런 질문이다.

그때 교장이 강우를 데리고 교실에 들어섰다. 강우의 얼굴은 멍석우에 비좁게 앉은 학생들때문에 흐려졌다. 여위고 못 입은 학생들, 이지러진 앉은뱅이책상들, 떨어진 담, 무너져내릴듯 한 천장… 그것은 강우의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는다.

강우는 용기를 내듯 교탁으로 시선을 들었다. 놀래는 지혜의 두 눈빛이 한순간 반겨 빛나는것을 보았다. 저고리도 치마도 검은 빛갈인데 유난히 빳빳하고 단정한 흰 동정이 검은 빛갈에 더 깊이를 첨가한다. 황량한 교실에 한점의 청신한 빛발이 되여 침착하게 수업을 하고있었다. 강우는 오래동안 지혜를 주시하다가 한 학생이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 비로소 그 학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우대가 큰 순박한 소년이였다.

《붙잡아는 갔지만 다시 통제사로 놓아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뭐…》

소년은 손으로 머리를 썩썩 비비며 끝을 맺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앉는다.

《자, 누구 또 대답해보세요. 자기가 말하고싶은것은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생각을 침착하게 하고 대답을 똑똑히 합시다. 동혁학생은 결국 수군통제사로 왜적을 물리치게 됐으니 구태여 거역 안해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거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동혁의 이번 대답은 명백하였다. 지혜는 미소를 그린다. 다음은 기봉이가 일어섰다. 침착하고 명민한 그는 언제나 정연한 대답을 하군 한다.

《마음이 어진 리순신장군은 역적이 되지 않으려고 순순히 포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왜적과 싸워야 하는 복잡한 나라의 형편에서 반항을 한다면 나라가 뒤숭숭해질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릅니다.》

《남수학생, 납득이 됩니까?》

기봉은 지혜가 가르친대로 정확하게 대답하였던것이다. 그러나 남수는 분연히 일어섰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있었다.

《저는 왕명에 반항해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역적이 될지언정 나라를 왜적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포승을 뿌리치고 검을 휘둘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4. 19에 우리는 리승만이를 몰아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역적이 아니라 정의의 학도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였는데 자기 혼자가 곧으면 얼마나 곧겠습니까. 백성들은 썩어빠진 조정보다 리순신장군을 따랐을것입니다.》

답변과 론박에 집중된것은 학생뿐 아니였다. 강우도 교장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다. 지혜는 어떤 감탄의 시선으로 남수를 바라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판단할줄 아는 학생이였다.

그의 판단은 이 사회에 대한 항시적인 반항으로 해서 언제나 모가 있었다. 그 모가 지혜에게는 귀중하게 생각되기도 하였고 남수를 위해 불안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기봉이가 또다시 일어섰다.

《남수는 잘못 생각합니다. 리순신장군이 나라를 저버리고 자기가 옳을것만 생각했다고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남수는 성이 나서 기봉을 흘겨보았지만 더 대꾸는 하지 않았다. 지혜는 시계를 보았다. 3분이 남았을뿐이다. 결속을 지어야 한다. 교장과 강우는 여전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교장은 눈가를 찌프리고 입을 꽉 다물고있었고 강우는 어딘가 신중한 표정으로 지혜를 주시하고있었다. 지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남수학생은 아주 뜻있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배운것을 항상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혜는 학생들이 유난히 긴장하여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리순신장군은 우리 나라 력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애국적인 명장이였습니다.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우리 민족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장군은 탁월한 전법으로 수적으로 많은 적을 모조리 바다에 처넣고 대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장군은 덕이 높고 인자하고 대발라 백성들의 높은 인망을 지니고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리순신장군은 300여년전에 살았습니다. 왕명이 옳건긇건 그것을 어기는것을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는것으로 아는 봉건사회에서 살았습니다. 때문에 장군은 지금 생각하면 낡은 도덕인 그때의 도덕에서 벗어날수가 없었습니다. 300여년전의 학자들이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전기나 원자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것처럼 리순신장군도 그때의 사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백년후인 오늘에 사는 남수학생이 더 훌륭하게 생각할수도 있는것입니다. 4. 19의 용사들은 나라의 운명을 위해서 리승만을 뒤집어엎었습니다. 민족은 개인보다 비할바없이 소중하니까요. 우리 학생들은 리순신장군처럼 나라를 사랑하며 리순신장군처럼 용감하며 더 나아가 리순신장군보다 더 정확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강우는 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무엇인가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학생앞에 서있는 지혜는 부드럽기만 한것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위엄있는 존재였다. 총명하고 다정하던 이전의 지혜가 아님은 물론이다. 생활에 보람을 가진 생기로 충만된 빛나는 아름다움이 비낀 두눈의 불꽃이 정기를 뿜으며 얼굴도 표정도 선명하게 드러내고있다. 영애는 강우에게 그 불꽃을 보는가고 물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명백하게 보았던것은 아니다. 지난날 그가 본 그 불꽃들은 지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곧 사라졌거나 강우자신의 감수성이 무디여 지나쳐버렸거나 했었다.

오늘이야말로 강우는 지혜를 처음 보는것처럼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있는 저 눈빛, 연하고 부드럽기는 해도 미미하던 이전의 그 얼굴이 아니다.

눈도 표정도 선명하고 밝게 빛발쳤다. 그 새로운 지혜가 스스로 성장하여 그에게서 벗어나는것 같은 불안과 반발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생생한 아름다움은 지금까지의 지혜에 대한 생각을 몇배로 더 강렬하게 하여 그를 사로잡는다는것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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