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8

 

지혜는 비소리에 잠을 깨였다. 퍼붓는듯이 지붕을 때리는 소란한 비소리였다. 습기와 랭기가 이불안에까지 스며들었다. 학교에 또 비가 새겠구나 하고 생각하자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때아닌 늦가을의 비였다.

학교는 몽롱한 비발속에 잠겨있었다. 교사지붕에 지질러놓은 천막천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기발처럼 펄럭거리고있다. 그렇건만 푹 젖은채 어쩌지 못하고 서있는 교사는 한층 가긍스러워보였다. 지혜는 걸음발을 다우쳤다.

운동장 어중간에서 다시 지붕을 쳐다본 지혜는 깜짝 놀랐다.

《기봉이!》

몇 학생이 지붕에서 펄럭이는 천막천을 지질러놓느라고 왔다갔다하고있었다. 물참봉이 되여 몸에 찰딱 달라붙은 홑옷이며 이마에 드리운 머리칼에서는 물이 좔좔 흘렀다. 얼굴들은 새파랗게 질려 무엇인가 연방 고함소리들을 치면서 위태롭게 돌아치고있었다.

《선생님, 비켜요. 돌에 맞아요.》

추녀밑에서 10메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지혜에게 이렇게 소리치면서 애들은 와들와들 떨리는 소리로 떠들썩하게 웃고 야단이였다. 그런데 남수가 성이 나서 고함을 쳤다.

《선생님, 왜 비맞으며 그래요. 우산을 바로 쓰세요. 교실에 들어가보세요. 거기서도 비설겆이를 하고있어요.》

지혜가 지붕을 쳐다보느라고 우산을 제껴서 비를 맞고있었던것이다. 남수는 마치 선생이 아니라 자기가 보호해야 할 동생에게 하듯 나무라고있는것이다.

교실에서는 뚫려진 담벽과 지붕으로 쏟아져내리고있는 흙탕물을 처녀애들이 비로 쓸어모으고 소랭이에 담아내고있었다. 비물에 화락하게 젖은 무거운 멍석은 축 늘어져서 창문앞에 세워져있다. 그러다가 멍석들이 자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밑으로 주저앉으면 처녀애들은 다시 세워놓느라고 안깐힘을 쓰고 또 웃는다.

《선생님 오셨어!》 하고 기뻐 소리치던 처녀애가 그만 미끄러져 흙탕물에 넘어졌다. 모두 깔깔 웃었다. 넘어진 처녀애도 더럽힌 치마자락을 쥐여짜면서 소리내여 웃었다.

즐거운것이다. 자기 학교와 교실을 자기 힘으로 보호하고있다는것에 신바람이 나하는것이다. 거의 아침을 못 먹었을 그들이 퇴락한 교사때문에 그리고 가난으로 해서 이런 학교밖에 차례지지 못하기때문에 공연한 고생을 당하고있건만 견디기 힘들어할 대신 웃고 떠들고있는것이다. 짓밟아도, 버림을 받아도 줄기차게 솟아나는 건전한 생명력이 이들속에 약동하고있는것이다.

(이런 아이들 하고라면 절벽도 뛰여넘을것이다.)

지혜는 함께 멍석을 닦고 물을 퍼내면서 북받치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오후가 되자 비는 씻은듯이 멎었다. 새파란 하늘과 비에 씻기운 맑은 공간에 차거운 랭기가 서린다.

《선생님, 인제 곧 겨울이 닥쳐옵니다.》 하는 기봉의 말은 저렇게 뚫려진 담벽을 그대로 두고 겨울을 어떻게 나겠는가 하는 뜻이였다. 그런데 연희가 발딱 일어섰다.

《고 꼬마가 글쎄, 미장에는 자기가 제일이랍니다.》

꼬마란 물론 기봉이다. 처녀애들은 가까스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있었다.

《웃긴? 녀자들이란건…》

동혁이가 또 녀자타령을 한다. 그래도 녀자들을 곧잘 돕는것은 그였기때문에 처녀애들은 동혁을 싫어하지 않았다. 지금도 동혁은 처녀애들을 바라보며 씨물씨물 웃고있는것이다. 방안전체에 어떤 즐거운 흥분이 떠돌고있었다. 기봉은 태연하게 앉아있다.

《꼬마가 뻐기는 꼴 우습잖아?》

《우습긴? 선생님…》

동혁이가 또 일어섰다.

《기봉이가 말입니다. 담벽의 구멍들을 하루품만 있으면 다 막을수 있다거든요. 그런데 뭐가 우습습니까?》

웃을 일은 없다. 그러나 지혜도 우스웠다. 학급에서 가장 쪼무래기인 기봉이가 그 일을 해내겠다고 진지하게 장담을 했다는것이 우스웠고 보다는 그들자신이 교실을 자기들 손으로 고칠 생각을 해낸것이 즐거웠다. 지혜는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고칠가요? 기봉이.》

《어떻게서든 흙 한달구지가 마련되면 고칩시다. 형님이 어떻게 해줄겁니다.》

기봉은 어깨를 쭉 펴고 서서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모두가 손벽을 치며 기뻐하였다. 가난해도 서로 뜨겁게 살리라!

며칠후 한 로인이 흙 한달구지를 싣고 왔다.

《기태가 청을 하더군… 내게는 큰 아들녀석들밖에 없고 손자녀석들은 아직 너무 일러 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없어. 그러문 어때, 가족이나 다름없는 판자집거리의 로무자들 자식이 다니는데…》

《고마와요, 정말 고마와요.》

《그까짓 흙 한짐이 뭐길래 그러오.》

흙을 부리우고난 로인은 아무 돌에나 걸터앉더니 담배쌈지를 꺼낸다. 그리고는 대통을 뻐금뻐금 빨면서 볼품이 없는 낡은 교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다.

《우리 학생들이 불쌍하기야 하지, 저것도 학교라고…》

《기봉이 형님 안녕하신가요? 상처가 도지는 일은 없던가요?》

《기태말인가? 아무 탈 없어. 천행이라니, 말발통밑에서 살아났으니 말이지… 4월봉기후에는 이 무식한 소견에도 뭔가 좀 나아질줄 알았더니 그 꼴이지… 에잇 쯧쯧, 우리도 언제나 남처럼 살아보겠는지, 기태녀석 말은 꼭 잘살게 된다는군. 하긴 나도 그걸 믿지 않으문야 이 고생을 견디나?》

희망!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것만도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로인의 희망도 은실이네들처럼 북과 잇닿아있는걸가?

《믿지, 믿구말구, 지혜선생.》

로인은 그답지 않게 힘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에겐 북이 있지 않나. 우리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지원의 손길을 뻗치고있는 그곳 형제들이 있지. …더 버티고 살아갈것 같지 않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짓다가도 그들을 생각하면 어떻거든 이 고생을 이겨내겠다는 기운이 생기지. 너무도 억울해서 피눈물이 날 때도 말이야.》

지혜는 무엇인가가 가슴속으로 찡하고 울려옴을 느끼였다. 공화국에 대해서 더 많은것을 알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신념에 따르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한편 복희나 은실이 그리고 이 로인의 움직일수 없는 그 신념은 지혜의 가슴에 뜨거운 고동을 준다.

《학교가 저 모양이지만 언젠가 백창락이녀석은 학부형들을 모아놓고 그랬다는군. 학교타발을 하는데 네놈들이 사는 집은 대궐인가구. 학부형중 반수가 ㄷ방직로무자들인데 제녀석이 굶어죽을수밖에 없는 임금을 주니 쓰구사는 집들이 말이 아니지. 그러지 않아도 판자집인생이란 기막힌 팔자만 모여살고있으니까. 하기야 그런 판자집이 서울장안에 거지반이고보면 기막힌 팔자를 타구나지 않은 사람이 없는거지. 그러니 팔자겠나? 아니지.》

로인은 한참이나 담배만 뻐금뻐금 빨았다. 치욕도, 굶주림도 모든것을 참아오느라고 깊이 패인 주름살들에는 어뜩 보매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로인은 ㄷ방직 틀거리공이였는데 틀거리를 만드는데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있었지만 워낙 양순해서 견습공들이나 다름없는 천대를 받고있었다. 감독은 물론 반장도, 기사장도 누구나 《도흥령감태기》라고 불렀다. 그래도 본인자신은 별로 노여워하지 않고 언제나 공손히 대답하군 하였는데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밸도 없는 령감이라고 하면서 자기 일처럼 화를 내군 하였다.

《그 솜씨 가지고 뭐가 무서워 벌벌 기는거예요!》

젊은이들이 그렇게 펄펄 뛰면 령감은 꺼지게 한숨을 지을뿐 아무 말도 안한다. 그런 도흥령감에게도 믿음이 있다는것이다. 감독놈들은 천시해서 구박하고 젊은이들은 대들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구박하고 그래서 기를 못 펴던 령감이 지혜를 만나자 갑자기 말문이 열린듯 평소에는 가슴에 박아두고 빛도 보이지 않던 말이 조용히 끊임없이 솟아나왔다.

《우리 동리에는 기막힌 집이 한두집이 아니야. 미군병영을 짓는대서 단칸짜리 집들을 헐리우고 온 사람이 수두룩하지.》

병영을 짓는다고 집을 헐리웠다는 그 한마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슬픔과 피의 원한이 맺혀있단 말인가. 오막살이들을 마구 깔아뭉개는 미군땅크, 땅크우에서 웃고 떠들며 신바람이 나하는 미국놈들의 상통, 한지에 나앉아 새파래진 입술만 떨며 울지도 못하는 아낙네들의 백지장같은 얼굴! 그 광경은 식민주의야만들의 횡포와 학대밑에 신음하는 남조선의 수난의 축도였다.

《그뿐인가. 우리 집에서 두집 건너에 두 총각애가 사는데 재작년엔가 아버지가 보는데서 외동딸이 한 미국놈에게 욕을 당해서 아버지와 딸이 한시에 자살을 했다네. 그래서 총각애들만 남았지. 그리고 우리 뒤집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 엠피놈의 총에 맞아 다리 하나가 없어졌지. 또 한집은 례화동에서 꽤 사는 집이였다는데 그것도 미군장교 하나가 물건을 사주겠다 해서 빚까지 져가며 돈을 털어주었는데 그놈이 어디론가 도망을 빼서 밑천도 찾지 못하고 파산을 당했다지 않나. 그리고 또 어떤 집은 미군특무놈한테 잡혀가서 반주검이 돼서 나와 병신이 된 집도 있고 아예 나오지 못한 집도 있지.》

병신이 되고 자살하고 파산하고… 미군의 군화에 짓밟힌 곳마다 피압박민족의 불행과 고통의 참담한 운명이 있다. 말문이 열린 도흥령감도 어떻게 미제야수들에게 당한 남녘백성들의 가지가지 참사를 다 렬거하겠는가. 조선민족의 가슴속에 박힌 그 원한은 참하고 어진 도흥령감의 마음속에도, 지혜의 가슴속에도 못박혀있는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팔자겠나? 나는 혼자 늘 곰곰히 생각한다네. 지혜선생, 이런 소리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날 일이지만서두 믿고 하는 말이지. 글쎄, 그렇지 않은가? 미국놈만 없다면 그런 변고들이야 없지 않았겠나? 없지 않구. 조선사람이야 아무리 이악하다고 해도 그렇게 무지스럽기야 하나? 지혜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내 말이 글렀을가? 그르지 않아. 기태녀석이 옳게 생각했다고 하더군.》

그런 도흥령감의 말을 듣고있던 지혜는 별안간 가슴속이 타오르는것 같았다. 식민지철쇄를 끊어야 한다! 그런 부르짖음이 아직은 무엇인가에 꽉 눌려있었으나 마음속깊이에서 목이 쉬게 소리치는것이였다.

도흥령감의 괴로운 목소리가 계속된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그놈들 권세가 이만저만한가? 생각하문 한숨만 나간다니까. 우리 공장 젊은 녀석들이 날 무골충으로 여기고있지만 무골충이 아니라면 어쩌겠나? 그놈들에게는 돈이 있지, 권세가 있지, 총이 있지…》

《아니예요!》

지혜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갑자기 가슴속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럴수 없어요!》

어느덧 지혜는 도흥령감의 거칠게 주름진 손을 잡고있었다. 지혜는 애원하듯 말하였다.

《아버님은 방금 인제 잘살게 되는것을 믿기때문에 견디고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건 그래, 그래서 살지. 그래도 미국놈들 생각을 하면 답답하지.》

도흥령감은 스스로도 모순을 느끼고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담배만 빨았다. 지혜 역시 심장을 꽉 눌리운것처럼 가슴속이 아프고 답답하였다. 철쇄를 끊을 거대한 힘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고있지 못하였다.

그런데 도흥령감이 얼굴을 빛내이며 물었다.

《선생, 기태네 집앞에 있는 살구나무를 봤나?》

《아직…》

《그럼, 우리 동리엘 한번두 안 왔었군. 올해도 열매가 무척 열렸다네. 알이 주먹만큼이나 크고 희한한 살구지. 우리 동리에서는 모두 그 살구나무만 쳐다본다네… 보통살구가 아니야. 살구꽃이 필 때면 온 동리가 환하지. 아마 기태가 한번 살구나무자랑을 하자고 모실거네.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꼭 오라구. 살구나무 보러 오라구.》

도흥령감은 낑하며 힘들게 일어선다.

《참, 지혜선생이 야학에 나간다지?》

《네.》

《나도 학생이라네…》

도흥령감은 주름진 얼굴로 어린애처럼 수집게 웃었다. 도흥령감을 바래고 교실로 돌아온 지혜는 무엇인가 북받치는 생각속에서 교실을 왔다갔다하였다.

 

기봉은 과연 미장의 능수였다. 가는 사다리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면서 커다란 흙손을 대담하게 놀려 구멍난 담벽들을 척척 메꾸었다. 기봉은 그날의 《영웅》이였다. 학생들은 기봉을 하늘끝까지 떠받들면서 그가 주는 어떤 지시에도 복종하였다.

《자식, 좀더 묽어야 해!》

허우대가 큰 동혁의편이 쩔쩔매면서 흙에다 물을 더 붓고는 씩씩거리며 다시 이기고나서 이만하면 됐는가고 눈치를 살핀다. 그렇게 절절 기는것은 비단 동혁이뿐 아니였다. 모두가 너나없이 흙을 섬겨주고 사다리를 붙잡아주고 입에 사탕알을 넣어주고 야단법석이였다. 오늘 꼬마는 몸도 담도 다 커보였다. 연희가 다시는 꼬마라고 안하겠다 맹세한다.

《녀자들이 맹세를 지킬가?》

기봉은 제법 어른스럽게 넘겨짚는다. 연희가 모욕감에 뾰로통해서 소리를 쳤다.

《녀자들이 뭐 어쨌다구? 요 꼬…》

《자, 봐. 당장인걸, 녀자들이란 그저 기분나름이거던.》

《그럼 맹세 안하겠어. 꼬마, 꼬마, 꼬마!》

《그까짓것에 성낼줄 알구? 아무리 작아두 나는 사내대장부야!》

이날 기봉은 일손에서나 거동에서나 단연 두각을 나타내였다. 지혜까지도 자기가 지금까지 기봉을 잘 모르고있었다는것을 느낀다.

구멍이란 구멍은 쥐구멍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메꾸어졌다. 기봉의 미장솜씨는 이만저만이 아니게 흙손자국이 미끈하였다. 그러나 회가루가 없어 메꾼 자리마다 뻘건 흙이 드러나 볼꼴은 말이 아니였다.

그래도 학생들은 자기들의 일손을 스스로 신기해하면서 유쾌해하였다. 방안은 한결 잔풍해지고 그날부터 청소도 정성껏 하였다. 하루는 교탁우에 종이꽃 두가치를 꽂은 깨진 유리병까지 마련해놓았다. 그것은 삭막한 세상에 비쳐든 한줄기 따뜻하고 소박한 빛발이였다. 기쁘고 서로 다정스러웠다. 천대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의 소원이란 슬프도록 대수롭지 않은 극히 사소한것일수 있다. 혹시 그들은 티끌만 한 인정이나마 서로 따사롭게 나누며 살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었는지 모른다.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친형제나 다름없어졌다. 구두닦이는 자진하여 발가락이 나온 신을 신고 다니는 동무의 신발을 기워주었다.

《응, 그랬어. 기봉이라는 애가 아주 미장에 능수였어.》

밤늦게야 실습이 끝나고 방등불을 켜놓은 교원실에서 퇴근준비를 하고있을 때였다. 지혜는 흙매질을 하던 때의 즐겁던 기분그대로 유쾌하게 이야기하였다. 상애가 심드렁해서 이에 대꾸한다.

《우리는 뚫려진데 종이라도 발라야겠어. 우리 반에는 미장의 능수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안 바르겠소.》

영철선생이 소란스럽게 책상우를 건드리면서 큰소리로 불평을 터뜨린다.

《학생들과 나는 뚫려진 구멍마다에 서서 소리치겠소. 학교를 수리해라! 학교를 수리해라! 하고 온종일 소리칠테요. 공부도 안하고 실습도 안하고 언손을 비비면서 발을 구르면서…》

흥분된 영철은 숨이 칵 막혀 다음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는 늙은이의것처럼 걸그렁거렸다.

《흥! 약자의 슬픔은 거기에 있지. 어쨌든 공부를 해야 하고 추위를 막아야 하니 뚫린 구멍을 그대로 내버려둘수 없단 말이야. 그대로 둔다고 교감이나 백창락이가 얼겠어? 손등도 가려워지지 않을것이고…》

그는 몸속에 차고넘치는 울분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교감녀석은 애당초 수리하려고 생각한 일도 없지만 수리하지 않아도 될 좋은 구실을 발견한셈이지. 지혜선생의 학급반을 보라 하고 말이요.》

지혜는 흠칠하였다. 자기들의 교실수리가 영철선생의 울분을 더하게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수리한것이 공연한 일이였을가? 비가 새고 바람이 쏠려들고, 그래서 홑옷을 입은 학생들이 우들우들 떠는것을 그대로 보면서 수업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럴수 없어. 자기들의 힘으로 할수 있는것을 하지 않을수 없었어. 공부해야 하니까. 추위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니까.

《하기야 교실의 구멍은 흙을 바르든가 종이를 바르든가 하다못해 수세미를 틀어막든가 할수 있어. 그렇지만 실습시간은 너무 많어. 이렇게 밤늦게까지 실습이 계속된다면…》

《공부시간은 절반으로 줄고, 그러니 이것이 학원이요?》

영철의 여전히 성이 난 목소리이다.

《차라리 공장은 이러나저러나 임금을 받고있소. 여기는 임금없는 공장, 강제로동소요. 학생들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있소. 이 일주일 우리 반 출석률은 60프로도 못되오. 당장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죄다 쓰러질거요. 술찌꺼기나 시래기범벅을 먹고 다니는 우리 학생들이요.》

《지금 하는 목공일만 넘기면 좀 나아지지 않을가?》

상애가 한숨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천만에, 또 새 일감이 들어오오. 백창락이가 왜놈들의 보세가공품을 잔뜩 가져왔다오. 왜놈들의 자재로 왜놈들의 물건을 만드는 예속생산을 장려해서 산업을 진흥시킨다고, 그런 생산에는 세금도 면제해주고있소. 팔다팔다 인제는 로동력까지 팔아먹고있소. 백창락이가 팔아먹으려는 로동력에는 우리 애청학원 학생들도 포함되여있단 말이요.》

영철의 말을 들으며 어느 한곳을 응시하듯이 생각을 모두고있던 지혜는 불현듯 얼굴을 쳐들었다. 어두운 방등에 비친 상애와 영철의 침통한 얼굴을 바라본다.

《저는 래일부터라도 제정된 실습시간이 다되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겠어요.》

지혜는 례사로운 말을 하듯 조용히 말하였다. 영철이가 잠시 지혜를 눈여겨보았다. 그의 두눈이 방등불에 비치여 광채를 내였다.

《운영리사회는 지혜선생을 면직시키고 딴 교원을 채용할거요.》

그 말을 듣자 지혜는 복희가 하던 말을 그대로 중얼거리였다.

《한사람의 힘으로는 당하지 못해. 상처가 나는 경우에도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어쨌든 시간외 실습은 중단해야 해요. 영철선생도 상애선생도 그렇게 해야 해요.》

《그래도 모조리 면직시킬거요. 실업자는 700만.》 하는 영철의 격한 목소리는 그가 지혜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심이 준 흥분때문이였다. 지혜의 마음도 격해졌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저는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졌어요. 상애선생…》

상애는 밥곽이 든 보자기를 들고 일어선다.

《그럴 용기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아.》

그 말은 뜻밖이였다. 지혜는 부지중 상애에게로 한걸음 다가갔다.

《학생들이 시들어가고있는것이 보이지 않아요?》

상애는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 딴 곳을 바라보고있는것 같은 힘없는 시선이다.

《신심이 없어. 협잡과 모리가 네활개를 칠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사회에서… 반항은 무력한거야.》

《설사 무력하단들 물러설수는 없잖아요? 상애선생! 애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지혜는 애원하듯 상애의 팔을 흔들었다.

《나는 불집을 걸겠소!》

갑자기 영철선생이 상애를 질책하듯 격해서 부르짖었다. 상애는 도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영철선생, 그렇지만 덤비지는 마세요. 모든 선생들의 의향을 타진해봐야 해요. 그렇게 한 후에 불집을 걸겠다고 약속하세요. 네?》

마치 어린애를 타이르듯 하는 상애의 목소리였다. 지혜는 영철이가 성을 낼줄 알았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약간 볼부은 소리였지만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긴 하겠소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거요.》

《하지만 정의롭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해요. 때로는 그자신뿐아니라 그의 부모처자들까지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요. 저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게까지 모질지 못해요.》

하지만 남수가 모질어서 득찬을 때렸던가? 아버지가 모질어져서 무자비해야 한다고 하였을가?

부정과 부패와 총알과 감옥으로 이루어진 이 땅에서 모험을 할 용기가 없다고 해서 욕설을 퍼부을 생각은 지혜도 하지 못할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학생들은 시시각각 과로에 시들어가고있다. 용기! 그것은 두가닥의 갈림길에서 희생과 고통을 각오하면서도 옳은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힘이 아니겠는가. 힘은 생활의 시시각각에서 길러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철쇄를 끊어버릴 힘으로 자랄수도 있지 않는가! 지혜는 죄여드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상애선생, 우리는 실습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을 돌려보내겠다고 선포해야 해. 그렇게 할수밖에 없어. 생각하면 나와 나의 어머니가 편안히 살겠다고 수십명의 학생들을 쓰러지게 할수는 없어. 지금도 나와 어머니가 반드시 편안히 살고있는것은 아니야.》

《지혜선생말이 옳다는것을 모르지 않아. 남이 할 때 나도 따라가겠다는것만은 약속해.》

상애는 그렇게 시인하면서도 무거운 한숨을 지었다. 그 한숨소리는 지혜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상애선생! 싫어요. 한숨소리…》

지혜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웨치고나서 곧 후회하였다. 상애의 가슴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것이다. 그 상처때문에 기력이 쇠진하고 신음소리를 내였다고 해서 성을 내야 한단 말인가. 지혜는 말을 뚝 끊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혜, 마음쓰지 말아요. 지혜말은 조금도 지나친것이 아니니까…》

상애는 다시는 한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괴롭게 숨을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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