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2

 

시위자들은 곳곳에서 날밝기를 기다리고있었다. ㅅ대 문리대 강당도 그런 집결처의 하나였다.

어둑시근하고 드넓은 방에는 청년학생들로 꽉 차있었다. 서로 비좁게 등을 맞대기도 하고 마주앉아있기도 한 그들의 옷주제는 온종일 소방차의 물공격에 젖고 맞대들이싸움에 찢어져서 누데기처럼 후줄근하였다.

학생들이 태반이였지만 일반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물날은 통치마를 입고 쭈그리고 앉은 아낙네들, 공장에서 그대로 달려온듯 한 로동복차림의 청년들, 오구구한 수염에 가린 두입술짬에 대통을 물고 이따금 쿨렁쿨렁 기침을 깇는 늙은이들, 그런가 하면 여라문살밖에 안돼보이는 소년들도 있다.

그들은 긴장된 흥분과 봄밤의 랭기때문에 우들우들 떨고있었다. 가슴에 소용돌이치고있는 격랑을 그대로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될수록 그저 묵묵히 앉아있었다. 잠을 청하지만 잠들기는 고사하고 숫제 눕고싶지도 않았다.

생각하면 2천여명, 그들이 걸어온 지나간 인생이나 지금 그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있을 상념들은 각이할수 있다. 그러나 누를길 없는 필연적인 마음의 폭발로 여기 한곳에 모여 한덩이가 되여있는 그들에게는 지울수 없는 필사적인 공통된 표정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제까지만 하여도 자기들이 이 으시시한 마루바닥에서 낯선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흥분속에서 밤을 지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었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 억눌리웠던 울분을 《썩은 정치 물러가라!》 하고 그렇듯 목청껏 웨쳐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또 자기들이 죽음앞에서 그토록 용감할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하였었다. 지금 그들의 가슴에는 지나간 전 생애에 없었던 슬기로운 격동이 끊임없이 물결치고있었다.

밖에서는 장갑차의 경적소리와 무한궤도의 소음이 모든것을 뒤흔들면서 끊임없이 불안하게 울려오고있다. 듣지 말자고 애써도 그 소리는 끈덕지게 가슴을 흔든다.

《저게 무슨 소릴가요?》

한 녀인이 불안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몇사람이 힐끔 녀인을 보았을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학생이 웃으면서 타이르듯 말한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녀인은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몸을 떨었다.

《학생, 무서워 묻는게 아니요, 알으켜줘요.… 땅크소리가 아니요?》

《그러니 어쨌단 말이요?》

곁의 늙은이가 대통을 문채 역스럽게 쏘아붙였다. 녀인은 온몸을 다시 한번 부르르 떨더니 왜 그런지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요. 녀석들이 정신이 있는가 말이요, 에이구… 상관의 말이면 다 들어야겠소? 글쎄,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정말 가만있지 못하겠소?》

령감은 소리를 높이고 마루바닥에 침을 탁 뱉았다. 아까 그 학생이 또다시 부드럽게 타일렀다.

《진정하셔요, 겁날건 없습니다. 죽은 사람들 생각을 해서라도 우리가 피값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왜 그걸 모르겠소, 우리 둘째도 총에 맞아 죽었다우…》

녀인은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닦는다. 닦으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저희또래들과 돌을 나르다가 그만… 가슴에 탄알이… 얼마나 아팠겠소. 생각하면 내 가슴이…》

그런줄 몰랐던 주위의 사람들은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물에 질펀해진 녀인의 얼굴만 침통하고 격해진 눈길로 바라본다.

《팔자가 기박한 년이라… 아이들의 애비는 삼년전에 개에 물려서 죽었어요. 산에 나무하러 갔었지요. …피투성이가 된걸 동리사람들이 업어다주었어요. 앞이 캄캄해서 울지도 못했어요. 동리사람들은 말하기를 두마리 사냥개를 데리고 지나가던 양놈들이 가랑잎을 긁어모으고있는 애 애비를 보자 시시닥거리면서 개들을 추기더랍니다. 애애비가 기력이 진해서 쓰러지자 양놈들은 그제야 개들을 부르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가더라는거요…》

듣고있던 령감이 마루바닥에 대통을 분질러뜨릴듯이 탁탁 털더니 소리쳤다.

《그놈들이 화근덩이란 말요, 미국놈들을 모조리…》

가슴속에 뒤번지는 증오를 담을만 한 말마디를 찾지 못해 이를 간다.

《미국놈들을 쳐없애야 하지! 언제까지나 수모를 당하고 살겠소?》

한 학생이 낮으나 창자를 찢는듯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흐느끼기만 하던 녀인이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그 두눈에 불길이 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고 가슴이 쑤셔요. 내가 죽나 이놈의 세상이 뒤엎어지나 해볼판이지요. …내속에는 악만 남았지요. 나는 양놈들을 볼 때마다 언젠가 복수를 하고야말겠다고 마음을 더 독하게 먹어요.》

그러던 녀인은 격한 한숨을 짓더니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맏이놈이 땅크부대에 끌려갔단 말이요. 그런데… 빌어먹을 자식, 죽지 못하고 왜 나온단 말이요!》

녀인은 땅크에 타고있는 아들을 눈앞에 당장 발견이나 한것처럼 이렇게 소리쳤다.

《날이 밝기만 해봐요. 그녀석을 가만두지 않겠소.》

목메인 침묵이 얼마간 흘렀을 때 한 중년남자가 녀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아드님은 안 나왔을거요.》

의젓한 그 목소리에는 녀인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는 따뜻한 인정이 있었다. 메마른데다가 입은 옷도 초라하였지만 어딘가 사려가 깊어보이는 그사람의 얼굴표정을 오래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인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해주어 고마와요.》

중년남자는 과묵한 사람인듯 그저 서글픈듯 한 미소를 그려보이고 잠자코 있다. 그러다가 다시 무릎우에 펴놓은 종이에 무엇인가 적기 시작하였다.

《아버님.》

사람들사이를 비집으며 다가오는 한 대학생이 중년남자를 그렇게 불렀다. 그의 손에는 담요 한장이 들려져있다.

《강군인가?》

《담요가 한장 있기에 가져왔습니다.》

중년남자는 담요를 받으면서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혜에게 편지를 쓰고있네. 하루속히 돌아오라고…》

그 말에 강우는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잠자코 있었다. 지혜의 아버지 리문섭은 한숨을 지으며 괴로운 표정을 하였다.

《아버님,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 아마도 우리 싸움이 녀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혹독한지 모릅니다.》

문섭을 안심시키려는 강우의 뜻과는 달리 그 말은 아버지를 더 격하게 만든것 같다.

《지혜가 견디지 못한단 말인가? 이애들이 견디고있는걸 자네도 보았겠지?》

문섭의 주위에는 그의 어린 제자들이 빙 둘러앉아 서로 머리를 기대고 자고있었다. 처절한 싸움의 마당에서 열서너살씩 나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흔든다. 그렇듯 잠든 소년들의 얼굴들은 람루한 옷주제에도 불구하고 순결하고 천진스러웠다.

《강우씨, 곧 위원회가 있답니다.》

흰 위생복을 입은 영애가 다가와 그렇게 알려주었다. 영애는 문섭을 보자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영애냐?》

《네.》

부르고 대답하는 두사람의 목소리에 지혜에 대한 근심이 스며있다는것을 강우는 느꼈다. 그러나 두사람 다 지혜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준하군을 알지? 저기 연단곁에 보이지? 벽에 머리를 기대고있는… 아까부터 보고있느라니까 상처가 몹시 아픈 모양인데…》

문섭은 적십자표식이 달린 영애의 가방을 보며 말하였다.

《네, 가보겠어요.》

영애는 무엇인가 더 말하려는듯 잠시 주저하며 서있다가 그대로 돌아선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가자 문섭은 잠든 제자들에게 담요를 펴서 씌워주면서 하나하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나서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그의 얼굴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문섭에게서 얼마간 멀어지자 강우는 종시 울분을 참아내지 못하였다.

《지혜는 나를 만나지도 않고 갔소.》

영애는 가슴속을 꽉 누르듯 하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짬이 없었을거예요. 학교에서는 급작스레 떠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강우씨는 학생위원회 일에 바쁘셨고… 그렇지만 분해요.》

《만나야 했소. 괴로와하는 아버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오.》

그들은 준하곁에 다달았다.

《상처를 보여주세요.》

준하는 천장 어딘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것은 상처가 아니야!》 하는 준하의 말에 강우의 얼굴근육이 푸드득하고 떨렸다. 영애는 말없이 준하의 왼팔에서 붕대를 풀었다. 준하도 구태여 엇서지 않고 영애가 하자는대로 팔을 맡긴다. 핀세트가 상처를 깊이 쑤실 때마다 아픔을 참느라고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 영애의 나지막한 코잔등에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안심해, 아프지 않으니까.》

《너무 괴로와하지 마세요, 우리가 윤아몫까지 싸우고있어요.》

《고마와, 영애.》

준하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어느덧 그의 두눈에 이슬이 맺힌다. 갑자기 격한 가슴을 누르는듯 그의 숨결은 거칠어진다.

《윤아는 중앙청앞까지 내곁에 있었어. 우리는 모두와 함께 팔과 팔을 끼고 달리였어. 탄알이 연방 귀뿌리를 스쳤지만 무섭지 않았어. 그중 한알이 윤아의 뜨거운 가슴을… 가슴을 뚫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거야.》

영애는 그러는 준하를 격동된 시선으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다르게는 할수 없으니까… 다만 한가지… 그 한가지만은 참을수 없어. 내가 왜 윤아와 자리를 바꿔서지 못했던지…》

《공연한 생각이예요!》

영애는 성이 나서 소리치면서 흐느끼듯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행앞에 맨주먹으로 대든 그들은 많이도 상하고 죽었다. 준하는 별안간 상반신을 앞으로 쑥 내밀더니 낮은 소리로 웨쳤다.

《윤아는 나의 온넋이였어!》

윤아는 외지에 가있는 어머니에게 한장의 편지를 남기고 시위에 나왔었다.

《어머니, 기다리다 못해 만나지 못하고 갑니다. 동무들이 다 떨쳐나가는데 저라고 어떻게 집에 있을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딸은 나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과 온 겨레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갑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갑니다. 어머니!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저의 일기책갈피에 륙십환(환-당시 남조선화페단위)이 있으니 윤식이에게 무엇인가 사주어서 기념으로 해주세요. 불효자식, 용서를 빌면서 나갑니다.》

(윤아!)

영애는 창자를 끊을듯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웨쳤다. 너무도 모질었다. 맨주먹뿐인 그들을 향해 기관총을 란사한 그놈들이 사람일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 학생들은 더는 참을수 없는 분노를 안고 울분을 폭탄처럼 터뜨리면서 마음껏 웨쳤었다.

《썩은 정치 물러가라!》

그렇듯 온 천지에 대고 소리높이 웨칠수 있는 이날, 이밤이야말로 긍지와 격동의 밤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하지만 지혜는 아무것도 모르고있다.

《준하씨, 지혜가 실습려행에 가버렸어요.》

《윤아에게서 들었어. … 하지만 윤아는 지혜를 나무라지 않았어. 어쩔바를 몰라 방안을 왔다갔다하더니 나에게 말하더군, 자기가 지혜몫까지 싸우겠다고…》

《윤아는 살아야 했어요.》

영애는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감추려고 약가방을 들더니 얼굴을 숙인채 돌아선다. 강우도 준하의 슬픔과 분노에 찬 얼굴만 들여다보다가 아무말없이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끓어오르는 마음속에서 혼자 부르짖었다.

(지혜, 너는 윤아의 무덤앞에서 뭐라고 하겠어? 준하의 저 고통앞에서 내가 어떻게 머리를 들고 서있으라는거야? 아버지의 쓰린 마음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도 괴롭구나.)

강우는 격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비집고 학생위원들이 모인 장소로 갔다.

 

강당 한구석에서는 ㅅ대 문리대 학생위원들이 두세시간후면 시작될 시위에 대한 행동계획을 토의하고있었다.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광화문로타리에서 다른 대학들과 합류한다. 목표는 경무대다. 10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리승만이가 3. 15선거의 무효를 우리앞에 인정할 때까지 한걸음도 물러설수 없다.》

《경무대까지 저지선이 세군데 예상된다. 어제는 경찰이였지만 오늘은 군대다.》

위원들사이에 불안한 공기가 무겁게 감돌고있었다. 한 청년이 성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러기에 나는 이런걸 제기한다. 우리는 어제 본격적인 무장탈취를 해야 하였다. 파출소를 불태울 때만 하여도 수류탄 몇개, 카빈총 몇정쯤은 힘들이지 않고 얻을수 있었다. 이 강당안에도 그렇게 수류탄을 얻었다는 소년이 있다. 사냥총을 가지고 나온 일반시민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다른 학생위원이 그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바로 그때 그들 뒤켠에 있는 작은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밖에서 한 사나이가 들어섰다. 로동복차림의 얼굴빛이 거무스름한 사람이였다. 반박하는 학생의 말은 계속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사도다. 폭력이 아니라 지략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어제 밤 미대사 매코노이는 경무대를 방문하여 현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외교에서 우려란 함축성있는 말이다. 법적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태의 근본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그의 말과 결부시켜볼 때 대사는 확실히 우리 학생들에게 동정적이라고 생각된다.》

《뭐라고?》

성급한 학생이 소리를 쳤다.

《미국놈들이 우리에게 동정적이라고? 이 바보야! 이 세상이 누구때문에 황페화돼가는가? 그놈들이 조선사람을 모욕하고 짓이기고 빼앗고 하는것이 아직도 모자라서 동정적이라고? 야, 한번 더 말해봐!》

《침착해서 상론하세.》

강우가 펄펄 뛰는 동무를 달래면서 말했다.

《우리의 전인민적인 항쟁이 없이도 매코노이놈이 그런 우려를 표시했을가?》

강우의 목소리는 침착하였다. 로동복의 사나이가 그러는 강우를 주시하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강우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계속하였다.

《애당초 미대사놈은 우리들에게 동정을 표시할 자격이 없다. 리승만이 미대사놈의 지시가 없이 폭압정치를 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평화적시위가 처음부터 우리의 행동계획이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돌 하나, 칼 하나 준비없이 시위를 시작하였다. 폭압자들은 그런 우리들에게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우리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강우는 잠시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본다. 로동복의 사나이는 여전히 물끄러미 강우를 바라보고있다.

《15년의 울분이 폭발한 이 사나운 파도의 돌진앞에 새삼스럽게 무엇이 두려워 미대사놈의 <동정>에 기대를 걸겠는가. 일찌기 우리 력사에 외세에 의해서 나라가 구원된 일이 있는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행동계획을 짜자.》

로동복의 사나이는 강우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학생위원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던 그는 문뜩 발을 멈추었다.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는 문섭을 발견한 그는 사람들사이를 마구 헤집으며 다가갔다.

《선생님!》

고개를 쳐든 문섭은 그를 보자 몹시 반색하여 얼굴을 빛내인다.

《정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사나이는 자고있는 아이들때문에 더 다가가지 못하고 섰다.

《무고하십니까? 선생님! 사모님께서도, 따님도? …찾아가뵙지 못해…》

《정말 반가우이, 어떻게 지내나?》

《공장에 다닙니다.》

《아직도 신념대로 살고있겠지?》

정권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짤막하게 대답한다.

《네. …언젠가 길가에서 따님을 만났었는데 처음에는 몰라보았습니다. 지혜양이 먼저 알아보고 절 불러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정말 몰라보게 숙성하였더군요. …》

《벌써 다섯해가 남으니까…》

문섭도 권범도 결코 잊을수 없는 그 다섯해전의 기억을 더듬는듯 아무말도 안하고 마주본다. 다섯해전, 문섭은 옛 제자를 목숨으로 보호해주었다. 권범은 옛 스승의 그 커다란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다.

권범은 잠든 소년들의 얼굴을 둘러본다.

《보이라아저씨!》

한 아이가 눈을 떴다.

《동혁이냐? 모두 있구나. 그런데 남수는?》

《저기 어디 있을텐데…》

《남수는 자지 못하겠다는군. 어제 아침 그애의 구두닦이친구 인식이가 총에 맞았어…》

문섭이가 대신 대답하였다. 그러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권범을 불렀다.

《정군, 이리 오게. 여기 앉을 자리가 있네.》

권범을 찾은 사람은 50고개가 넘어보이나 건장한 사나이였는데 한손에 사냥총을 들고있다. 권범은 문섭에게 머리를 숙여보이더니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몇해나 포수를 했는가구? 30년쯤 되지. 범은 잡아보지 못했어. 어째선지 한번도 만나지를 못했거던. 하지만 곰은 잡았어. 숱한걸 잡았지.》

권범은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한 문섭이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솜씨가 여간이 아니구만요.》

《글쎄, 죽을고비도 많이 겪었지만… 그쯤되겠지. 어쨌든 젊은이를 겨누는 경찰놈들이 있으면 내 다 잡아드리지. 어쩐지 젊은이가 마음에 들거던. 종로3가 바리케드에 임자하고 나하고 선참으로 올라섰지. 내 살아 생전에는 임자를 잊지 않을걸…》

《고맙습니다.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서 사십니까?》

《포수가 서울서 살겠나? 아들녀석한테 다니러 왔지. 우리 집은 심심산골에 있지. 혹시 임자에게 무슨 일이 있게 되면… 사람이란 몰라. 그리구 임자 성미를 보니까 변고가 많겠어. 우리 집을 찾아오라구.》

《정말 고맙습니다.》

《지나가는 말이 아니야. 내 주소를 적어주지.》

《지나가는 말씀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권범은 문뜩 뒤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걸 날 줘! 응? 주지?》

한 청년이 소년에게 무엇인가 열심히 타이르면서 그렇게 말한다.

《싫어요!》

대답하는 소년의 어조는 어지간 역정스럽다.

《남수, 인식이몫까지 경찰놈들을 족쳐야 하잖겠어?》

《기태아저씨가 아니라 내가 족치는거예요.》

《넌 아직 어리지 않니?》

《얕보지 말아요.》

《얕보는게 아니야. 네가 아직 팔힘이 모자라는건 사실 안야? 팔씨름 해볼가?》

《흥.》

코방귀를 뀐 소년은 야무진 목소리에 비꼬인 어조로 이렇게 대꾸하였다.

《기태아저씨도 파출소를 까부시고 얻으면 되잖았어요. 그러지도 못하고 남의것을 탐내는거예요? 난 이런걸 더 많이 얻었더랬어요.》

남수는 두개의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쪼크리고 앉은채 요지부동이였다. 물날은 잠바의 나들나들한 목깃에 때국이 흐른다. 그렇지만 새까만 두눈은 재빠르고 령롱하게 또렷또렷 빛났다.

《그래서 던져봤니?》

기태라고 불리운 청년은 무던히도 지꿎었다. 뜻밖에도 소년은 맥없이 어깨가 축 처지며 한숨을 짓는다.

《던질줄 알아야죠. 가르쳐줘요!》

그러자 권범이와 함께 그 광경을 보고있던 포수가 소리내여 웃었다. 그는 상반신을 쑥 들며 참견했다.

《이 할아버지가 가르쳐줄가? 하긴 수류탄보다 숫제 총쏘는 법을 배우지 않겠어?》

그는 사냥총을 가볍게 들고 왔다. 소년은 령롱한 눈을 빛내이며 포수의 거동을 살핀다. 포수는 자리를 비집고 소년의 곁에 앉더니 사냥총을 그의 눈앞에 번쩍 쳐들어보였다.

《남수라고 했지? 어때, 배우겠어?》

소년은 사냥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대신…》

포수는 말을 끊고 잠시 웃는 얼굴로 소년의 호기심에 찬 두눈을 내려다보았다.

《그대신 수류탄은 저 아저씨에게 주지 그깟거…》

불시에 사냥총에서 눈길을 뗀 소년은 청년과 포수를 번갈아보았다. 결심이 내려지지 않는듯 안깐힘을 쓰며 입술을 깨문다. 그러다가 다시 포수가 쳐든 사냥총을 집어삼킬듯이 쏘아보던 소년은 수류탄을 안은 두팔을 선뜻 내밀었다. 기태가 힘있게 그것을 받는다.

《내 원통하게 죽은 너의 구두닦이동무 인식이몫까지 꼭 할테다.》

이렇게 말하는 기태의 얼굴에는 진정 엄숙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포수는 씨물씨물 웃으며 남수한테 바싹 다가앉는다.

《두 사내대장부가 종시 어린 너를 구슬렸구나!》

《다 알아요.》

소년은 시뜻한 표정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야 팔힘이 없으니까 할수 없잖아요?》

《다 안다고? 이녀석이!》

포수는 남수의 가뜩이나 덥수룩한 머리칼을 거머쥐고 한바탕 흔들어주고나서 또 말했다.

《이녀석, 내 마음에 든다. 너 포수 안하겠니?》

《인식이 복수를 해야 해요!》

남수는 무던히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였다. 갑자기 웃음을 거둔 포수는 소년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총가목을 이렇게 어깨에 대고 왼손으론 단단히 받쳐잡아야 한다. 그리고 바른손은… 요놈의 손, 손톱만이지 작기도 하구나.》

남수는 손을 크게 보이느라고 가무잡잡한 손가락짬을 힘껏 넓혔다. 그의 반들거리는 두눈은 유난히도 빛났다. 그렇지만 얼굴표정에서는 어린애답지 않은 필사적인 기색이 엿보였다. 포수도 어른을 대하듯 요구성을 높인다.

그때였다. 두 사병을 거느린 괴뢰군장교놈 하나가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나타났다.

《한눈을 감고… 그렇지, 저 문가를 겨눠!》

남수의 묘준한 한눈에 장교놈의 상반신이 그대로 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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