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5

 

지혜는 교수일지를 쓰고있었다.

《9월 ××일, 가을답지 않은 흐리터분한 날씨, 게다가 무덥기까지 하다. 어찌도 벼룩이 성한지 수업을 계속할수가 없었다. …》

교원실은 조용하였다. 교감은 매양 그렇지만 볼일이 있다면서 아침부터 나갔고 남자교원들은 지금 한창 바쁜 일을 맡고있는 목공실습장에 자기 학생들과 함께 일하러 가고 없었으며 교장은 하루에 두끼로 굼때기 위해 늦게 먹은 점심밥곽을 한편에 밀어놓은채 한정없이 이새만 쑤시고 앉아있었고 지혜의 바로 옆책상을 차지하고있는 상애교원은 《아동심리학》을 읽노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지혜는 일지를 계속 쓴다.

《그래서 할수없이 수업시간 한시간을 떼내여 대대적으로 벼룩잡이를 하였다. 남수가 볼부은 소리를 한다. <겨울이 되면 없어지기마련인 벼룩을 뭣때문에 잡습니까?> 수업시간이 잘리우는게 싫은 모양이였다. 그렇지만 어찌겠는가. 벼룩때문에 주위가 산만해져서 공부에 집중할수가 없는것이다.

지리숙제를 해온 학생이 20프로도 못된다. 월사금납부기일때문에 밤늦게까지 벌이들을 했을것이다. 그러니 책망할수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해지군 한다. <아침에 지각을 하지 말라.>, <숙제는 꼭 해와야 한다.>는 말이 소용없을뿐아니라 할수도 없지 않은가. 밤새 실습을 하고 벌이를 하는것만도 어린 그들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것이거늘… 한 학생이 장마당에서 오이를 훔쳐먹었다고 한다. 이럴 때 선생은 학생의 종아리를 때려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붙잡고 울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훔치지 말라는 말도 할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굶고있으라는 말인것이다.》

지혜는 펜을 떨어뜨렸다. 학원에 온 첫날 그때도 지금처럼 일지를 적고있었는데 김영철이라는 젊은 선생이 다가와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일지요? 한 반년은 누구도 그런걸 적소. 그렇지만 누구나 또 반드시 그만두고마오.》

지혜는 공연히 성을 내고있는 영철선생의 얼굴을 의아해서 바라보았었다.

《쓸수가 없어지오. 학원이 아니라 모리장에서 무슨 교수일지겠소. 교감이 모리배고보면 그런데 관심하는 사람도 없소. 불쌍한 교장은 그저 우는소리뿐이지.》

그때로부터 두달, 그래도 지혜는 일지를 적어왔다. 하지만 이 일지 역시 무슨 교수일지겠는가. 갑자기 더 쓸 생각이 없어진다. 두달, 아니 2년, 두주일, 그것은 그렇게 길게도 짧게도 생각되였다. 이런저런 놀라운 일들에 전부 익숙해진것도 같고 갈수록 생소하게만 생각되기도 하였다.

학원이 모리장이라고 한 영철선생의 말은 하나도 과장이 아니였다. 모리장이고보니 학원의 설비는 말이 아니였다. 교사지붕은 비가 새고 담벽은 몇해째 흙을 바르지 않아 앙상하게 드러난 수수대산자짬으로 밖이 내다보였고 교실바닥에는 멍석이 깔려있다. 앉은뱅이책상 하나에 다섯씩이나 둘러앉아 공부를 해야 하며 흑판의 칠은 다 벗겨졌고 백묵조차도 푼푼히 쓰지 못한다. 교편물로는 깁고 또 기운 괘도가 하나 있을뿐.

이런 수업조건에다가 《실습》으로 허덕이기까지 해야 하는것이다. 목공반이나 날염반에 고정적으로 매여있는 큰 학생들에게는 더 말할것도 없고 모든 학생들이 백창락의 방직공장에서 가져오는 실풀기, 오작천의 손질, 양말코숭이 꿰매기, 양말다리미질… 고정일감들과 안상두교감이 어디선가 맡아오는 책장접기, 봉투붙이기, 곽만들기 등 별의별 일감들을 《실습》해야 한다. 일감이 왈칵 밀려들면 수업까지 밀어젖히고 아침부터 《실습》을 해야 하고 게다가 납품할 날자가 바빠지면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붙들어두는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뿐인가. 방학때면 아예 방직공장에 가서 견습공으로 《실습》을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의 로동이 《실습》이니만큼 품삯이 학생들에게 돌아가지 않는것은 물론이다. 《실습》에서 생기는 수입은 백창락이가 리사장인 애청학원운영위원회로 들어가고 상무리사이기도 한 교감이 이것을 한손아귀에 쥐고있다.

교감은 외부와의 접촉이 많기때문에 그래야 한다면서 언제나 말쑥하게 빼입고 다닌다. 교제때문에 할수없이 자주 술을 마셨고 출퇴근에도 붐비는 전차가 아니라 언제나 택시를 타고 다닌다. 그러면서도 경리운영이 쪼들린다고 푸념이고 교원들의 월급을 제때에 주는 일이 없다. 몇번이고 꺾어서 주면서도 선심이나 쓰듯이 거드름을 피운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학교의 경비, 교감의 협잡금, 일감의 임자인 장사치나 공장주의 리윤, 알선해준 청부업자들의 구전, 이런저런 명목의 술값에다 뢰물비용까지 그들의 연약한 두팔로 벌어대야 한다. 그뿐인가. 가난한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다 먹여살리지 못한다. 학생들은 저들의 먹고살 몫, 때로는 병든 가족의 몫까지 벌어야 한다.

이런 속에서 지혜는 두달을 보냈다. 생각할 때마다 지친 한숨을 짓게 된다. 학생들은 그렇듯 감당하기 힘든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놀랍도록 열심히 공부하였다. 열심의 정도가 아니라 필사적으로 배운다. 그들의 새까만 눈과 마주서기만 하면 피곤도 울분도 모든것을 잊고 수업에 온 마음을 쏟지 않을수 없게 그렇게.

지혜는 고개를 숙이였다. 또다시 뭔가 적으려고 펜을 들었다. 그러나 초점을 잃은 시선은 다시 책상 한 모서리를 응시한다. 그러던 지혜는 문뜩 자기것과 잇닿은 상애의 책상 한 모서리에 가는 칼끝으로 새겨진 두 글자를 발견하였다.

《4월》 그렇게 씌여있었다. 상애가 새겼을가, 아니면 이전 책상의 임자일가? 지금 상애가 차지한 그 책상은 이전에 한 젊은 교원의 책상이였다. 그 교원은 4월에 희생되였다고 한다. 상애는 그뒤 그 책상을 자기것으로 하였다. 두사람은 투쟁을 준비하던 어느날, 서로 자기들의 일생을 상대방에 의탁하였다. 그 기쁨을 동무들과 나눌 사이도 없이 젊은 교원은 바리케드앞에서 죽었다.

4월! 지혜의 머리에 불현듯 그날들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장갑차의 경적소리, 진감하던 총성, 연막과 최루탄의 몽롱한 악취, 쓰리고 아프던 눈, 너무도 많이 흘린 피, 그러나 노호하는 군중의 웨침소리와 발구름소리가 온갖 야만적인 행패를 제압하였었다.

그렇지만 학원에는 그 승리가 아무런 빛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젊은 교원과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야 했던가. 결코 그들이 바랐던 학원의 생활은 이런것은 아니였으리라.

학생들에게 해빛을 안겨주기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제나름으로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받아들인다. 강우는 적수에 대한 무자비한 도전을, 영철선생은 뒤끓는 울분으로, 어머니는 삯빨래, 그럼 지혜 너는? 권범이, 기태, 복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준하의 어머니 김씨는? 그 녀인은 경찰에서 나온 준하가 학교에 다니게 되였다는 그것으로 다시 짓밟히고있는 정의에 외면할 어머니가 아닐것이다. 정림간호장은 여전히 빳빳한 흰 위생복을 입고 병원에 세워진 규률을 엄격하게 지키고있으리라. 그러나 4월은 그의 가슴에 많은것을 박아넣었을것이다. 지혜는 가슴이 쓰렸다. 자기들의 무력에 몸부림치는 마음이였다. 부당한것과 싸워야 한다고 영애와 약속했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때 별안간 문이 벌컥 열리고 연희가 굴듯이 달려들어왔다. 연희는 빨개진 얼굴에 속눈섭이 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메마른 입을 혀끝으로 추긴다.

《선생님, 득찬이가 매를 맞고있어요!》

《뭐? 누구에게?》

《남수가 때려요!》

지혜는 교장과 상애를 바라보고 연희의 뒤를 따라 교원실을 뛰여나왔다.

연희는 교사 뒤마당으로 나가서 실습장 왼편 모퉁이를 돌아 감자밭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이 오셔!》

연희가 소리치자 빙 둘러섰던 학생들이 일시에 돌아보았다. 득찬에게서는 코피가 흘렀고 동혁이가 수건으로 그 코피를 닦아주고있었다. 득찬이의 두뺨에는 아직도 뻘건 손자욱이 있다. 그 손자욱에 지혜는 성이 치밀었다. 그것이 남수의것이라는것이 더 분했다.

《왜 싸웠어요, 남수!》

남수는 아직 분을 참지 못해 펄펄 뛰면서 선생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득찬에게 또다시 소리를 친다.

《너절한 자식! 다시 그래 봐! 없다!》

《왜 싸웠어요?》

지혜는 남수의 팔을 아프도록 꽉 그러쥐였다. 남수는 시선을 들어 지혜를 쳐다보았다. 그 눈! 병원에서 옥채를 바라보던 헤아릴수 없이 착잡하던 그 눈이다.

《남수! 선생님은 너희들이 왜 싸웠는가 묻고있어!》

남수는 깊이 숨을 들이킨다.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문 남수의 표정은 뜻밖에 금방이라도 울어버릴듯싶은것이였다. 지혜는 당황하여 팔죽지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하지만 남수는 대답을 할 대신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더니 등을 돌렸다.

《남수!》

지혜는 종시 큰소리를 쳤다. 남수는 등을 돌린채 걸음을 멈춘다. 4월의 그때에 비해 얼마간 키는 컸으나 여전히 소년의 고집스런 등어깨다.

《말해요! 왜 싸웠는가?》

《득찬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는 남수의 대답은 뜻밖에도 공손한것이였다. 잠시 기다렸지만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혜는 자기의 학생들이 무엇인가 숨기려고 하거나 책망을 들을가 저어해서 잠자코 있지 않다는것을 느낀다. 지혜는 지친 목소리로 연희에게 물었다.

《연희, 사연을 말해다오.》

연희는 사내애들을 둘러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하였다.

《득찬이가 쓰레기통에서 얻은 깡통밑에 붙은 부스레기를 주어먹었어요. 그래서 남수가 때렸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혜는 불의에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것처럼 아뜩하였다. 학생들도 시선을 딴데로 돌린채 그냥 우뚝 서있었다. 얼굴이 부어오르도록 매를 맞고도 울지 않던 득찬이가 비로소 기여나오는 눈물을 삼키려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지혜는 깊은숨을 들이킬뿐 아무 말도 안하고 서있다가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떨어진 득찬의 옷단추를 주어들었다. 쭈그러진 단추를 들여다보고있는 지혜는 점점 목이 메여왔다. 아이들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지그시 참으면서 주머니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학생들의 해진 옷을 꿰매주기 위해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던것이다. 득찬에게 다가가 단추를 달기 시작하였다. 득찬은 잠자코 선생이 하는대로 몸을 맡긴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쓰레기통을 뒤졌겠는가. 얼마나 분했으면 이 득찬을 때렸겠는가. 아이들의 그 격렬한 심정을 지혜는 리해하였다.

그렇지만 허기진 동무를 때리도록 마음이 모질어서는 안된다. 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수에게 말하였다.

《때린다고 득찬의 배고픔이 나아질가?》

그러자 남수는 힐끗 고개를 돌리더니 선생을 쏘아본다.

《선생님도 단추를 달아줄 대신 득찬의 뺨을 한대 후려쳐야 했어요.》

《배가 고파 견딜수가 없어 미국놈 병영앞에 내버린 깡통을 줏는 어린소년에게 총을 겨누는 놈이 누구라는걸 남수 너도 알겠지?》

갑자기 남수가 선생에게로 휙 돌아선다. 두눈이 사납게 치째진다.

《내가 미국놈과 같다구요?》

남수는 노기에 가슴을 들먹거리며 다가왔다. 지혜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쥐고있는 바늘에 달린 실이 팽팽히 헤워졌다. 도도한 남수의 눈! 그런 당당한 남수에 대한 감동으로 지혜의 가슴은 오히려 뜨거워졌다. 뜻밖에 남수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 선생이라는것, 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선생이라는 생각이 미쳤는지 모른다. 연희가 울음섞인 소리로 웨쳤다.

《득찬이를 욕하지 마! 때리지 마! 순경에게 구두닦기통을 빼앗겼어. 벌써 사흘째나 벌이를 못한거야!》

서울에 구두닦이, 담배장사가 그렇게도 많건만 순경들은 심심하면 단속을 한답시고 벌금을 받고 구두닦기통이나 담배밑천을 빼앗군 하였다.

때로는 며칠씩 류치장에 넣기도 한다. 연희는 그냥 흐느껴울었다.

《울긴 왜 울어?》

기봉이가 침착한 목소리로 연희를 달래였다.

《깡패새끼들처럼 왜 사람을 치니?》

《야, 제발 욕은 해도 울음만은 그치란 말이다.》

동혁이가 어쩔줄 몰라하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한다. 울음소리가 무엇인가 그들의 마음을 찢어놓는가싶다. 연희가 입술을 깨물면서 가까스로 울음소리를 멈추고있는 동안 그들은 가슴만 들먹이고있었다. 이윽고 남수가 득찬에게로 다가선다. 지혜는 실끝을 맺고 끊었다.

《너 또 쓰레기 주어먹을테냐?》

어조도 태도도 여전히 위압적이였다. 남수에게는 자기 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있는것이였다.

《안 줏겠다. 안 줏겠어!》

역스럽게 대답하면서 득찬은 땅에 떨어졌던 모자를 집어썼다.

《가자!》

안 줏겠다는 한마디의 말에 모든것이 풀렸다고 생각하는지 남수는 그렇게 말하고 앞장을 선다. 선생을 무시하는 거만한 태도이기도 하였다. 득찬이가 고개를 숙인채 그의 뒤를 따른다. 지혜는 얼른 주머니에서 득찬이에게 주려고 넣어두었던 돈 50환을 전부 꺼냈다. 그러자 연희가 지혜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애원하였다.

《선생님, 주지 마셔요. 득찬은 받지 않을거예요.》

득찬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지혜를 쳐다보고 돌아선다.

지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가난한 이 애들! 너무도 자존심이 강한 이애들! 선생에 대한 불만이 아직도 가슴에 차있는 남수가 잔혹하도록 자기들의 마음을 드러낸다.

《득찬은 거지가 아닙니다.》

지혜는 말없이 천천히 돌아서 그들과 헤여졌다. 학생들에 대한 찢어지는듯 한 이 동정의 마음을 그들은 리해하지 않는다. 선생은 무력하였다.

그의 학생들은 자주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럴 때 지혜는 사랑하는 그의 학생들이 어떤 엷은 장막 저쪽에서 그를 못마땅하게 응시하고있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지혜와의 사이에 하나의 도랑을 두고 건너오지도 않았으며 지혜를 부르지도 않는것 같다. 선생에게는 리해되지 않는 세계, 그들만이 겪어야 하는 어떤 생활에 대해서 그들은 저들만의 울타리를 친다. 지혜는 북받치는 마음을 식히려고 교원실이 아니라 혼자 교실로 향했다. 걸으면서 득찬의 집에 한번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지혜는 교탁앞에 놓인 나무쪽걸상에 앉았다. 학생들과 그가 함께 숨쉬고 함께 생활하고있는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방바닥에 깐 누기찬 멍석, 모서리가 닳아떨어진 앉은뱅이책상들, 그래도 그 책상들은 줄지어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떨어진 담벽, 비가 새여 얼룩이 진 천장, 깨여진 유리, 이 초라한 교실에서 배를 움켜잡고 배워야 하는 그의 학생들, 그들이 아무리 지나치다한들 자존심과 기개를 잃지 않는 한 선생은 기뻐해야 할지 모른다.

지혜는 득찬을 때린 남수의 행동이 결코 옳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통절한 심정을 리해한다. 가난의 밑바닥, 천대와 굴욕에 대한 끊임없는 항거속에서 사물에 대한 판단이 모질어지지 않을수 없었으리라.

《그애들에게 해빛을!》

지혜는 쓰리고 아픈 가슴으로 온 세상에 대고 웨쳤다. 그때 누군가가 교실문을 조용히 열었다. 지혜는 얼굴을 돌렸다. 뜻밖에 남수가 어둠속에서 지혜를 마주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가슴이 섬찍하도록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아까 그 돈을 주십시오.》

지혜는 리유를 묻지 않고 팽팽 당겨지는 마음으로 돈을 꺼내주었다.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드는 남수의 손끝이 떨리고있었다. 그리고 묻는다.

《득찬이가 혼자 먹지 않겠다고 하문 모두가 나누어먹어도 됩니까?》

배고픈것은 득찬이만 아닌것이다. 지혜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남수는 한참이나 그대로 섰다가 말하였다.

《아까는 잘못했어요.》

그 목소리에 담긴 진정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치도록 그렇게 절절하게 말한다. 지혜는 도도한 남수가 풀이 죽어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있는것에 가슴이 저미도록 측은한 생각을 하면서도 침착하게 물었다.

《득찬을 때린것 말이냐? 득찬을 거지로 생각한다고 나를 나무란것 말이냐?》

남수는 고개를 쳐든다.

《문섭선생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쓰레기를 줏는다는것은 수억만 인구가 굶주리고있는데 먹을수 있는것까지 버리고있는 배부른 놈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비굴한짓이라고 하면서 그런 학생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종아리를 맞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런짓을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처음에 그것을 지키기가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장마당에서 떡이나 오이를 훔쳐먹는걸 아셨을 때에는 그저 붙잡고 우셨어요.》

아버지는 그랬으리라. 아이들에게 자랑이 무엇이라는것을 가르쳐주시려고 하셨다.

《그렇지만 득찬이가 얼마나 배고팠으리라는것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그러면…》

《배고플수록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한다. 때리고싶은 분기도 참아야 한다.》

《때리고싶지 않았어요.》

남수는 소리를 쳤다. 그리고 몸부림친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배고프고 춥고 억울하게 살아야 해요!… 득찬이가 얼마나 배고팠으리라는것을 우리가 왜 모르겠어요. 득찬의 아버지는 병을 앓고계셔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누이 혼자서 여섯식구를 먹여살려야 해요. 왜 우리가 그걸 모르겠어요. 왜 모르겠어요!》

별안간 남수가 울기 시작하였다. 교탁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마음껏 운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안한다. 지혜는 그 남수의 머리를 껴안았다. 까까중이머리가 흐느낌에 따라 지혜의 앞가슴을 받아올린다. 지혜의 가슴속은 격동에 끓어올랐으나 울수가 없었다. 뒤채기는 이 어린 넋을 감싸주어야 한다. 득찬을 때려야 했던 가슴속아픔때문에 울것이다. 그리고 허기진 득찬을 때리고난 가슴속아픔때문에도 울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득찬을 거지로 생각한다고 대든것은 제가 잘못했어요.》

남수는 울음섞인 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정말 잘못했어요. 보이라아저씨가 당장 가서 사과하고 오라고 하셨어요.》

《보이라아저씨? 정권범아저씨말이냐?》

《네, 누구나 다 우리를 거지로 얕보는것이 아니라구요. 원쑤놈과 자기편을 분간할줄 모르는 머저리라고 성을 내셨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 또 정신없이 우는 남수를 껴안고있는 지혜의 머리에는 격한 생각들이 노호하여 서로 부딪쳤다. 굶주림, 자랑, 동정과 우정, 분노와 슬픔, 착잡한 생각들의 사나운 충돌에서 어떤 생각은 지혜의 가슴을 때리고 튕겨나기도 하였고 어떤것은 섬광처럼 비꼈다가 걷잡을새없이 암흑속에 사라지기도 하였다. 어떤것은 형태가 없이 재빛어둠속에서 배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지혜는 그중 한가닥을 잡아 가슴에 박아넣을수 있었다.

원쑤놈과 자기편, 무자비한것과 참을성의 계선, 아버지는 자기편인 제자들에게 떳떳한 자랑을 지니게 하려고 그들의 종아리를 쳤다. 그렇지만 횡포한 적에게 대항하는 사나움은 가지려 하시지 않으셨기에 그놈들에 대해서는 외면하셨다. 죽는 마지막시각에 그런 자신을 통절하게 뉘우치신것이다.

원쑤와 자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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