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 장

4

 

애청학원은 ㅅ구 한 모퉁이에 간신히 끼여있었다. 도심지에서 멀리 벗어난 그곳까지는 뻐스 하나가 다닐뿐이였는데 그나마 어찌도 붐비는지 힘내기에 견딜만 하지 못하면 아예 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지혜는 처음부터 걸을 생각으로 아침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ㅅ구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공장지구였다. 그렇지만 ㄷ방직을 제외하고는 제탕, 제분을 하는 기껏해야 몇십명의 로무자들이 일하는 올망졸망한 공장들뿐이였다. 지혜가 이 지구에 한발을 들여놓자 맞받아온것은 지독한 악취와 요란한 소음이였다.

나무죽지로 둘러친 담벽에 로무자들이 나드는 문이라기보다 구멍이 있고 거기에 문짝대신 거적을 늘어뜨린것이 공장건물들이였다. 그런 건물의 철공소며 공장들에서는 물론 감옥처럼 드높은 담벽을 둘러친 ㄷ방직에서도 소음은 공기를 사납게 흔들고 갈기갈기 찢으면서 공장들 짬새에 끼여있는 판자집들을 뒤흔들었다. 길은 공장들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구정물로 해서 항상 비온 날처럼 구질었고 오물적재장처럼 더러웠다. 공장들의 굴뚝들과 쭉데기벽 틈새며 거적문사이로 새여나오는 냄새와 연기들은 지나는 사람들의 숨을 막히게 하였다.

도중에 얼마간 넓은 마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석탄재더미들이 쌓여있었다. 그 재더미마다에는 예닐곱살씩 됨직한 조무래기들이 타다 남은 석탄덩이를 줏느라고 버럭을 뒤지고있었다. 벗다싶이 한 알몸뚱이들이 탄가루를 뒤집어써서 새까맣고 청동으로 만들어진것처럼 반들반들하였다.

지혜가 지나가자 몇 아이들이 일손을 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그 눈길에는 비애와 선망과 나이에 당치않은 과로에 시달린 서글픈 기색이 있었다.

이 고장 아이들은 이렇게 버럭더미우에서 철이 들었고 철이 들면 다음 직업은 구두닦기, 물장사, 담배장사 아니면 소매치기나 거지가 된다.

ㄷ방직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퇴락한 애청학원교사가 볼꼴없이 서있었다. 회벽을 한 담벽은 군데군데 수수대가 드러나보이도록 온통 떨어졌고 녹이 쓴 양철지붕은 찢어진 방수포로 깁고 또 기운 한심한것이였다. 비바람에 시달려 거무튀튀한 기둥들 사이사이에 커다란 창문들이 교사라는것을 간신히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교사에 어울리지 않게 운동장만은 꽤 넓었다.

지혜는 그렇게 무너져가는 교사와 마주선채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수업시간인듯 교사안은 조용하였다. 어느 방에선가 한 학생의 더듬거리는 책읽는 소리가 들렸다. 지혜는 어떤 운명앞에 다가가듯 뛰는 가슴으로 현관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문뜩 지혜는 현관곁에 붙어서서 자기를 바라보고있는 한 학생을 발견하였다.

호기심에 찬 두눈은 마치 지혜의 값어치를 재여보는듯 한 꾀바른것이였다.

《왜 거기 서있지?》

지혜는 자기가 만난 첫 학생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그저요. …그걸 알아 뭘 해요. 일러바칠 담임선생도 없는데…》

학생은 눈웃음으로 쳐다보면서 태연하게 말하였다.

《나는 일러바치지 않아. 그리고 네가 뭘 잘못하고있는지도 모르고…》

소년은 히쭉 웃으며 좁은 이마를 수그리더니 발끝으로 땅을 썩썩 비비며 무엇인가 망설이고있었는데 갑자기 흘끗 쳐다보면서 물었다.

《리지혜선생이시지요?》

지혜는 놀랐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눈치빠른 소년은 지혜의 표정을 보자 《어떻게 아는가구요? 내가 뭐 바본가요. 문섭선생님대신 우리 담임선생으로 오시지요?》 하고 물었다. 그리고나서 소년은 잔돌 하나를 지혜의 발끝을 향해 가만히 차던졌다.

《뭐 이상할것 없어요. 득찬이랑 남수랑이 그러던데요. 내가 거짓말한다 했더니 막 때리려구 덤벼들지 않아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안 오시겠다문 4. 19때처럼 프랑카드를 들고 집에 찾아가자고 말예요.》

《너 이름이 뭐지?》

《기봉이… 김기봉이예요.》 하고 대답한 그는 몇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별안간 돌아서 달아나면서 놀려대듯 이렇게 소리쳤다.

《리문섭선생 딸이지요? 야, 신난다.》

그 소리에 어떤 선생 하나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조용하라고 고함을 쳤다.

지혜는 괜스레 부푸는 마음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아, 지혜양이요? 여기 앉소. 그러지 않아도 한번 찾아가려던 참이요.》

교장은 반갑게 맞아주며 지혜앞에 손수 의자를 갖다놓기까지 했다. 그의 환대는 지혜의 마음을 더욱 고동치게 하였다.

《음… 그렇군. 문섭선생이 학생들만 잘 키운것이 아니라 따님도 훌륭하게 키우셨군.》

교장은 한숨을 짓더니 말하였다.

《우리의 잘못이지. 벌써 리지혜선생을 채용했어야 했소. 가뜩이나 수업시간이 적은 학생들을 몇달씩 놀리는 일이 없었을것을… 이 교장이 우유부단해서 그랬소. 취직난이 이만저만 아니고보니 지원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겠소? 리사회의 의견도 구구하고… 그래서 다른 선생을 채용했더랬소. 요행 한달이 못돼서 그 선생은 다른 일자리로 가버렸소만. 어쨌든 문섭선생의 따님이 우리 학원에 오게 되니 나는 문섭선생을 다시 만난것처럼 기쁘오.》

30년이나 되는 교편생활에서 완전히 교육자틀이 잡힌 교장이였지만 지혜가 와서 기쁘다고 하는 어조에는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나더니 곧 표정을 바꾸고 근엄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문섭선생의 따님이니 다 알고있겠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것은 결코 허수로운 일이 아니요. 하늘이 준 무거운 직책이라 생각하고 불철주야 분투노력해야 하오.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인정이 있어야 하고 량심이 있어야 하오. 특히 녀선생은 례절바르고 매사에 단정해야 하오. 지나치는 행동은 무엇이든지 삼가해야 하오. 지나치게 화려한 옷차림,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도, 지나치게 날카로운 생각도 다 참아야 하오. 그래야 덕이 넘치고 과시 남을 가르치는 천직을 가질만 한 인재라 보오.》

과연 내가 남을 가르칠 천직을 가진 인재라고 할수 있을가? 성의와 노력하겠다는 결심이 있을뿐이 아니겠는가. 지혜는 그런 뜻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음, 과시 문섭선생의 따님이시오! 처음에는 그런 결심이 있으면 충분하오. …》

그러는데 그때 아까부터 시끄럽게 날아다니던 파리떼중에서 두세마리가 교장의 책상우에 앉았다. 교장은 파리채를 집어들어 책뚜껑우에 앉은 놈을 때려잡는다. 그리고는 빼람에서 빈 성냥곽을 꺼내더니 파리채끝에 붙은 파리를 그 곽속에 떨어뜨려 넣었다.

《파리는 이렇게 보기만 하면 잡아야 하오. 500명의 학생과 교원이 다 이렇게 해야겠는데 그러지 못하다나니 교실이고 복도고 파리투성이요. 그런데 지혜선생, 한가지만은 내 말을 꼭 듣소. 다름아니라…》

교장은 별안간 마치 손주를 대하듯 친근한 동작으로 민망해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이미 아무도 없는 교원실안을 한번 더 살펴보더니 말을 잇는다.

《용공말이요. …문섭선생도 그러루한 일때문에 맘고생을 하시지 않았나?》

권범을 숨겼다는 혐의를 받았던 그때 일이라 생각하면서 지혜는 잠자코 있었다.

《이봐요.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오. 우리 학생들은 거지반 로무자들의 자녀가 아니겠소? 그러니 당국에서도 이만저만 주목하는것이 아니요. 우리 생각에야 로무자의 자식이라고 특별히 나쁠게 뭐가 있소. 불쌍히 생각해야지. 그러나 당국에서야 그렇소? 그러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단 말이요.》

지혜는 교장의 로파심이 진심에서 오는것이라는것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그의 가장자리가 다 해진 양복깃을 서글픈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작년 가을에 있은 일을 아오? 문섭선생의 담임반에서 심은 고구마때문에 사달이 생겼었소. 학원에 왔던 시학이 그 고구마중에서 한가마니를 교감에게 말하고 가져갔소. 좋은 일은 아니지만서두 무엇이든 가져 안 가는 시학이 없고보니 일일이 탓할수도 없고 우리야 그럴 때면 그저 눈을 감지. 그런데 학생녀석들이 가만있질 않았단 말이요. 싣고 가는 달구지군에게서 그 고구마를 빼앗아오지 않았겠소. 그러니 시학은 대로했지. 아이들에게 용공사상을 가르쳤다고 해서 문섭선생까지 하마트면 인책을 당할번 했소. 고구마는 도루 보내고 주동이 되였던 학생에게 20일이라는 정학처분을 하고 우리가 닭마리나 가지고 왔다갔다해서 겨우 무사했지만… 그 학생은 지금 없소. 김인식이라고 4월에 죽었소. 똑똑하고 야무지고 좋은 학생이였지. … 지금도 그 학생 얼굴이 눈에 선하오. … 그 학생에게 정학처분을 주는 이 교장의 마음이 오죽했겠소? 참았지…》

교장은 마지막말들을 몹시 힘들게 한다. 지금도 무엇인가 견디기 힘든것을 참고있는듯 한 표정이였다.

《참는것과 싸우는것, 눈물과 항거의 계선을 깨닫지 못하고 한평생을 헛되게 지냈다.》 하고 말한 아버지의 편지구절이 떠오른다. 지혜는 옥죄이는 마음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교장도 그 문제에 대해서 다짐을 받을 생각은 없는가보았다.

《그런 점들에 명심하시고 래일부터라도 나오시지.》

그리고나서도 교장은 무엇인가 민망해서 우물쭈물하였다.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던 지혜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우리 학원은 지혜선생도 아시다싶이 실습장을 가지고있소.》

애청학원은 일련의 특수성을 가지고있었다. 가난하다든가 부모를 잃었다든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서 소학교과정을 다 못 마친 학생들이 다니는 소학교도 중학교도 아닌 어중간치기 학교라고 할가. 반나절은 수업을 하고 반나절은 로동을 해서 중학교 2학년정도까지의 학과를 가르치고있는 직업학교라고 할가. 학생들은 말이 실습이지 보수없이 로동하는 소년공이나 다름없었다. 대신 공납금이 아주 싸서 가난한 ㅅ구로무자들의 자식들이 불평없이 다녔다. 어쨌든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일하는 실습장의 규모는 그리 작지 않았다.

《그 실습장에서 물건과 돈을 다루다나니 어디나 마찬가지로 보증금이 있어야 하오. 문섭선생을 보아서야 응당 받지 말아야 하지만서두 딴 선생들과의 비례도 그렇고… 이렇게 하면 어떨가? 첫 월급을 보증금으로 하고 나머지는 몇달에 쪼개서 내도록 그렇게 하면 안되겠소? 생활이 곤난하겠지. 쯧, 생활난이야 누구나 다 당하는 일이고… 정 딱하지 않다면 그렇게…》

《그렇게 하겠어요.》

《됐소.》

교장은 한숨을 푹 쉬였다. 그때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마침 교감이 오시는군.》

교장은 지금까지의 친근하던 표정을 바꾸고 얼마간 큰소리에 실무적인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들어온 교감 안상두는 40살쯤 나보이는데 인정미있고 소박한 교장과는 정반대로 바늘자리도 안 날듯이 표표한 인상에 옷차림도 가난이 배여있는 주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매끈하였다. 교장이 지혜를 소개하였지만 랭랭한 어조로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받고는 교장에게 다른 말을 한다.

《백창락사장님댁에 갔다왔습지요.》

백창락? 신재의 아버지 백창락일가? 그 백창락이 이들과 무슨 상관일가?

《만나셨소?》

《사장님은 안 계시고 부인만 계셨는데 사연을 말씀드리자 어떻게 좋도록 여쭤주시겠다고…》

《그거 참 잘됐소. 들어주시겠지?》

《되겠습죠.》

안상두는 큰 문제도 아니라는듯 대답하면서 담배에 라이터불을 켜댄다.

《이번 여름방학도 학생들을 쉬지 못하게 하는것은 안됐지만… 교사도 실습장도 얼마간 수리를 해야지. 하다못해 실습장에 거적대신 문이라도 달고…》

《제가 마침 잘 갔었죠.》

《잘 가셨소. 지혜선생도 알고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원은 ㄷ방직 백창락사장께서 대지를 기부하시고 여러가지로 힘을 써주셔서 창립되였소. 아직도 리사장으로 계시면서 음으로양으로 도웁고계시오. 자산가는 많지만 백사장님처럼 학교설립에 많은 자금을 내놓는 사람은 쉽지 않소.》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한 일이 없었다. 애청학원이 어떻게 경영되고있는지, 학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아버지는 경찰에 체포되였던 그동안에 어떤 일을 당했던지를 말하지 않았듯이 학원의 뒤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기에 지혜는 아버지가 백창락에게 돈을 돌리러 갈 때도 옛 동창의 안면으로 가는줄만 알았었다.

신재나 백창락이 자기 생활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은 유쾌한 일은 아니였다.

《뿐만아니라 학원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아직도 이렇게저렇게 도움을 받고있소. 아까도 말했지만 금년 가을에는 교사를 얼마간이라도 수리하지 않고서는 월동할것 같지 않아 렴치불구하고 또 청을 댔소. 날염이라든가 양말코숭이 꿰매는 일이라든가 그러루한 일감을 ㄷ방직에서 좀 받아올수 없겠는가 하고 말이요.》

일감을 받아다 학생들에게 일을 시키는것도 도움이라고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백사장이 학원의 대지를 기부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한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나설 마음이 생겨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생각해낸것도 그 동기이기는 하지만 보다는 그 대지가 워낙 백창락의 소유가 아니고 일부는 왜놈이 내버리고 간 공터였고 일부는 어떤 과부의 소유였는데 ㄷ방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그 대지를 자기것으로 하고싶은 욕심이 생긴데 그 동기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저렇게 문서놀음을 하고 롱간을 부렸는데 뜻밖에도 그 과부가 록록치 않아 말썽이 많아지자 자기 땅으로 하지는 못하고 그 땅을 애청학원 설립부지로 기부한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과부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미궁같은 법망놀음에 능하지 못한 그 녀인은 울며 겨자먹기로 애청학원의 창립자의 한사람으로 이름을 올리는데 동의하고 더는 하소해볼데가 없이 땅을 떼웠다. 그런 내속을 알리 없는 교장은 이러나저러나 고맙게 생각하면서 자기보다 칠팔년이나 아래인 백창락에게 설날마다 선물을 사가지고 세배를 다니고있었다.

《제가 정말 마침 잘 갔습니다.》

교감은 어딘가 교장의 말을 비웃는듯 한 표정으로 또 그렇게 말하였다. 교장도 그제야 눈치를 채고 영문을 묻듯이 교감을 바라본다.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장님 따님인 신재양의 피아노독주회가 있다는군요.》

《그렇소? 성의가 없다보니 그것도 모르고있었군. 그래서?》

《그래서 이런 기회에 우리 학원에서도 뭔가 도웁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습죠.》

《잘하셨소. 그래서?》

《학교에다 어떻게 부담을 주겠는가고 마나님께서 펄쩍 뛰십디다. 그런걸 가까스로 입장권 스무장만 팔아드리겠다고 가져왔습죠.》

그 말에 교장은 입을 반쯤 벌리고 당황해하였다.

《그걸 누가 사겠소?》

《우리들이 노나가지기라도 해얍죠. 백사장의 은공을 생각한다문…》

《하긴 모른체 해서야 도리가 아니지. 그저 우리들이 넉넉치 못하다나니 걱정이 돼서…》

상두는 주머니에서 입장권묶음을 꺼내더니 잠시 그것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말했다.

《정 곤난들 하시다면 학생들더러 팔아오라고 하지요.》

《그건 안되오!》

뜻밖에 교장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상두의 눈이 약간 치째졌다.

《이왕 구두닦이나 담배장사아이들인데 입장권 한장씩 못 팔겠습니까?》

교감은 상반신을 뒤로 젖히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안되오! 팔지 못할가싶어 그러는것은 아니요. 과외로동을 시키는것만도 이 늙은이에게는 가슴이 아프오. 선생들이 나눠가집시다. 차라리 그렇게 합시다.》

두사람의 주고받는 말소리를 듣고있던 지혜의 머리에는 신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잖니? 너의 공납금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돈을 버는건 아니거던.》

신재의 쏘는듯 한 높은 목소리가 귀가를 찌른다. 그렇건만 가난한 그들은 리사장의 딸을 위해 몇푼 안되는 월급을 쪼개고 그때문에 몇끼 더 굶어야 한다.

《자, 지혜선생도 한장 가지시죠.》

상두는 지혜앞에 입장권 한장을 내밀었다.

《이 값도 월급에서 제하면 안될가요?》

《오, 그렇게 하시죠.》

지혜는 교감과 실무적인 절차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악취와 소음과 연기에 휩싸인 공장거리를 다시 지난다. 이번에도 석탄을 줏던 조무래기들이 일손을 놓고 지혜쪽을 물끄러미 본다. 학원에 나가게 되였다는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건만 지혜의 머리는 착잡하였다. 뒤엉킨 생활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도 똑바로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은 지워지지 않고 살아있었다. 남수, 연희, 득찬이들의 령롱하게 빛나던 눈들이 가슴에 생생하게 박혀있는것이다.

그것은 달빛에 비친 은백색실처럼 어둠속에서도 빛을 뿌린다. 그것은 어둠의 무게에 못 견디거나 뒤걸음치지 않는 힘과 용기를 서서히 침착하게 솟구치게 해주고있었다.

지혜는 차츰 걸음발을 다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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