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13

 

사람들이 얼싸안고 돌아간다. 학생들과 학생들이, 시민들과 학생들이, 소년들과 어른들이 어쩔줄을 몰라하며 춤추듯 돌아치고있었다. 승리한것이다. 맨주먹으로 승리한것이다. 오직 단결의 힘으로 승리한것이다. 총탄을 맞받아간 용기로 해서 승리한것이다. 정의에 대한 믿음으로 해서 승리한것이다.

지혜도 정신없이 환성을 올리였다. 목청껏 소리치건만 자기 목소리는 분간되지 않았다. 한덩어리의 거대한 음향속에 삼켜버린다. 타오르는 시선들, 기쁨에 억이 막힌 표정들, 발을 굴렀다. 그것도 모자라 껑충껑충 뛰였다. 마음껏 웨쳐도 좋다. 마음껏 기뻐하라! 그 기쁨과 그 웨침이 아무리 크다한들 15년동안 쌓인 슬픔과 고통의 상처를 다 가실수 있겠는가.

갑자기 지혜는 목이 꽉 막혀왔다. 난데없이 온몸이 나른해지는것 같았다. 녀학생들이 이렇게 말하고있다.

《이게 정말인가? 우리가 이겼다는것이 정말인가?》

《이기리라 생각하지 못했지?》

《아니야, 총탄이 날아오는 방금전까지는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였어. 하지만 지금은 믿어지지 않아!》

지혜는 왜 그런지 더 서있을 기력이 없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겼다!》

가슴속에서 격동이 솟구쳐올라오고 또 솟구쳐올라온다. 그것은 단순한 기쁨만이 아니다. 크나큰 이 환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냥 목메이게 만세를 웨치고있다.

그러나 주저앉아있는 사람의 수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생소한 이 기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는듯 그저 묵묵히 주저앉아있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커다란 기쁨속에 뒤섞여있는 슬픔을 지워버릴수가 없는것이다.

《둘째야… 둘째야…》

한 아낙네가 낮고 애타는 목소리로 죽은 아들을 부른다. 기쁨이 크기에 슬픔과 통분함은 더 컸다. 지혜의 가슴에도 지난 일주일에 겪은 모든 아픔이 되살아난다. 중상을 입은 영애, 윤아의 죽음, 준하의 체포, 림종으로 다가가고있는 아버지! 포도우에 뿌린 모든 젊은이들의 피! 고문실에서 놈들의 채찍과 곤봉에 시달리고있을 젊은 생명들… 그들의 희생으로 비로소 승리한것이다.

지혜는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치는 사람들사이를 혼자 거슬러 걸어가고있었다. 땅크가 지나간다. 포신을 겨누고있는 그런것이 아니라 소리치며 만세를 웨치는 학생들과 시민들로 뒤덮인 땅크가 지나간다. 물을 길어다주고 주먹밥을 마련해다준 아낙네들을 태운 뻐스가 천천히 지나간다. 학생들이 그 뻐스들의 차창마다 매여달려 차안에 대고 큰소리로 웨치고있다.

《어머니들, 아주머니들,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체내에 차고넘치는 기쁨과 흥분을 남김없이 터뜨리면서 거리거리를 밀려다녔다. 목이 쉬여 더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환성을 올리였다. 쓰라린 과거가 발밑에 짓밟히고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힘으로 빼앗은 승리이기에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지혜는 벌써 종로3가의 깨여진 바리케드아근을 지나고있었다. 여기서 어제 다섯명의 결사조가 비발치는 탄우를 뚫고 이 철조망을 끊으려고 생명을 걸고 나갔었다. 입술이 타오르게 가슴을 조이던 긴박한 시간, 그때 쓰러진 영애와 두 학생, 그들은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 혼수상태속에서 이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고있다. 아버지! 아버지는 이 기쁨을 아시고있겠는지!

사람들은 진정할줄을 몰랐다. 물결치는 사람들의 떼가 끊임없이 계속 지혜를 떠밀며 지나갔다.

《제격이거든요, 똥차가 제격이란 말야!》

사람들이 더 겹겹이 모여 이상하게 더 흥분해서 어딘가 사납게 돌아치고있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떠밀리우면서 붐비며 헤매다가 거기에서 뜻밖의 광경을 볼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쇠바줄로 무엇인가 달아매고 천천히 전진하고있는 오물차주위에서 소동을 벌리고있었다. 쇠바줄에 끌려가고있는것은 육중한 물체였다. 사람들이 모두가 달라붙어 그것을 걷어차고있었다. 처음에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러나 나중에는 피발이 서서 차고 짓이긴다. 아낙네들은 침을 뱉는다.

그 물체란 리승만의 동상이였다. 실물그대로 두볼이 심술궂게 축 늘어지고 눈부리가 무지스러운, 몇시간전까지 미국의 노예, 동족에게는 독재자의 몸뚱아리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후날 이때의 광경을 회상하고 가슴을 쥐여뜯어야 하였다.

《왜 동상이였겠소? 진짜 리승만의 목을 매달아야 했소!》

그들은 승리의 격동이 너무도 큰것이였기에 또 너무도 몰랐기에 모든것이 소망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었었다. 원쑤들이 잔악할뿐아니라 교활하다는데 대해 응당한 경각성을 높이지 못하였었다.

 

병원현관문에 들어선 지혜는 허겁지겁 2층으로 뛰여올라갔다. 어지간한 부상자들은 모두 거리에 나간듯 복도에도 병실에도 누워있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혜는 초조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부상자들에게 승리의 광경을 전해주면서 가까스로 아버지의 병실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미소를 그리며 맞이한다.

《아버지는 잠이 드셨어. 퍽 나아진가봐. 목에서 들리던 걸그렁 소리도 없어졌어.》

병자는 아픔이 가시여진듯이 편히 숨을 쉬면서 눈을 감고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리승만이가 고만두었다지?… 천지개벽할 일이구나. 너희 아버지도 원한이 풀렸을거다.》

밖에서는 여전히 온 거리를 뒤흔들면서 승리의 함성이 계속되고있었다. 밖의 광경을 전해주려고 달려나갔다 달려들어오군 하는 간호원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며 부상자들의 흥분의 웨침소리로 해서 병원안도 활기에 충만되고있었다. 지혜는 아버지침대에 다가앉아 속삭이듯 말하였다.

《아버지! 들려요? 이겼어요. 리승만이가 물러났어요! 아버지, 깨여나셔야 해요. 눈으로 보셔야 해요!》

지혜는 점점 아버지의 손을 끌어잡으며 소리를 높였다. 아버지에게는 잠이 실려있는것이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고있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것은 림종의 마지막평온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

지혜는 쓰린 가슴을 지탱할수 없는듯 몸부림친다. 그런 딸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맑은 두눈이 소녀처럼 동그래져서 갈팡거리였다. 아버지의 침대에 머리를 묻고 모대기고있는 지혜의 몸속에서 불덩어리인지 노기인지 스스로 헤아릴길 없는 강렬한 힘이 소용돌이치고있었다. 확성기에서 《하야》를 중얼거리던 늙은 송장의 목소리, 가시철망, 다가오던 땅크, 숨이 꺽꺽 막히던 최루탄의 연막속… 그 모든 횡포한 악을 다 짓밟아버렸단 말인가?! 수천의 피의 원한이, 아니 15년의 쌓이고쌓인 울분의 보복이 이루어졌단 말인가?! 아버지는 죽었다. 어머니가 남편의 죽음을 비로소 깨달은듯 쿨쩍쿨쩍 울기 시작하였다. 방안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공허해진다. 복도에서 울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려왔다. 싸움을 걸듯 고아대는 큰소리이기도 하였다.

《똑똑히 말해, 리승만이가 뒈졌냐? 아직 살아있단 말이냐?》

《그까짓 송장 살았으면 어떻고 죽었으면 어때? 어쨌든 경무대에서 뚝 떨어져 벌써 리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더라.》

《이 문둥아, 이 천치야, 뭐가 같아? 리승만의 목도 달아매지 못하고 만세는 무슨 우라질 만세야!》

19일 경무대를 향해 선두에서 달리다가 총에 맞아 다리를 절단한, 평상시에는 사자처럼 힘이 세였다는 부상자였다.

《안심하오.》

누군가의 거드름 빼는듯 한 그런 말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은 그가 별로 큰 부상도 아닌데 항쟁기간 내내 병원에 붙배겨있던 음침하게 생긴 사나이라는것을 목소리로 짐작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곧 우리 민주당이 집권할텐데 그때에는 모든것이 다 잘될것이요!》

《닥쳐! 민주당도 물러가란 말이다. 네놈들때문에 아까운 청춘들이 피를 흘린줄 아냐?》

《이보시오, 왜 걸구드시오. 싸움은 이젠 끝장이 났단 말이요!》

《싸움이 끝났다구? 리승만이가 여적 숨을 쉬고있는데 싸움이 끝나? 미국놈이 거리에서 네활개를 치고있는데 싸움이 끝나? 왜 경무대를 불살라 버리지 못했냐 말야, 왜 중앙청을 짓부셔놓지 못했냐 말이야?!》

아버지침대에 그대로 엎드려있던 지혜는 별안간 창자를 어이는듯 한 억눌린 소리로 통곡하였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