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11

 

성토대회를 끝마친 300명의 교수단은 《학생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프랑카드를 들고 교문을 나서 10메터도 못 갔을 때부터 시민들의 환호와 만세소리에 둘러싸여버렸다. 곳곳에 대기하고있던 그들의 제자들이 물밀리듯 대렬에 합류하였다. 행렬은 걸음마다 늘어났고 또다시 서울의 온 거리가 성난 웨침소리와 발구름소리로 뒤덮였다. 그리고 총성과 그것에 항거하는 처절한 싸움이 또다시 시작되였다.

ㅅ대 문리대 시위대렬도 함성과 발구름소리로 온 거리를 끓어넘치게 하면서 종로3가에 도착하였다. 벌써 300메터앞에 바리케드가 보였고 가시철망들우로 철갑모들이 보였다. 달려온 시위자들은 멈춰서야 하였다. 그들은 바리케드를 쏘아보면서 팔소매로 입술에 묻은 먼지를 문지른다.

두가지 난관이 그들을 더 전진하지 못하게 하였던것이다. 그 하나는 그들의 기본공격무기인 돌이 엄청나게 모자랐다. 전번 시위에서 거리집들의 기와란 기와는 다 벗기여서 던졌고 반반한 포장도로에는 돌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바리케드에 둘러친 가시철망을 돌파하는 문제가 용이하지 않았다. 19일처럼 정신없이 무리로 달려가 철조망을 마구 짓이기면서 돌파할수는 있다. 하지만 집중사격속에서 그것은 희생을 너무도 많이 내야 하였다. 그들이 맨주먹이라는것을 가려보는 놈들이 아닌것이다.

학생위원들은 대렬선두를 사격권밖에 멈춰서게 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펄펄 뛰고있는 청춘들이였다. 그렇지만 중앙청과 경무대의 마지막저지선까지 돌파하기 위해서는 솟구치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더 현명하게 움직일줄 알아야 한다. 이럴 때 무모한 돌격은 용기와 투지의 랑비였다.

투쟁에서 하루의 경험은 때로는 수십년의 전진을 가져오게 한다. 그들은 예상할수 있는 집중사격을 뚫고 철조망을 끊을 결사대를 선발하기로 하였다. 부근에 있는 철물점에서 절단가위는 손쉽게 얻었다. 위원장이 다섯명의 결사대원을 선발하였다. 평화적인 시위나 성토대회의 경험이 아니라 정규군의 시가전경험이 필요하였다. 그렇지만 위원장이라고 실전의 경험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각오와 신심이 주는 예지와 지휘를 맡은 책임감이 위험한 정황들에서 빠져나갈 타개책들을 생각해내게 해줄뿐이다.

다섯명의 학생이 절단가위를 받아들었다. 그들은 바리케드에서 가장 가까운 옆골목으로 빠져나와 철조망에 접근할것이다. 곧 대렬에서 떨어져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들 역시 위원장이나 마찬가지로 훈련된 병사가 아니였다. 젊음이 가지는 대담성, 정의에 불타는 희생성과 용기로 해서 가혹한 난관들을 뚫고나가고있는것이다.

문뜩 학생들은 바리케드에서 부산스레 왔다갔다하는 림억규를 먼발치로 보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지혜는 대렬선두에 서있었다. 의대생들은 언제나 그렇게 항상 부상자들이 생길수 있는 가장 위험한 곳에 서있어야 한다. 강우도 선두에 있었다. 그는 군중과 마주서서 구호를 선창하고있다. 《무자비해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괴로운 목소리가 귀전을 울리고 가슴을 흔든다.

결사대에 선발되지 못해 욕설을 퍼붓듯이 고아대던 몇 학생들이 어디선가 커다랗고 긴 하수도관을 얻어왔다. 네명의 학생이 자기들의 발견물에 득의해서 대렬앞으로 밀어내면서 학생위원장에게 눈을 끔쩍해보인다. 그들은 철조망까지의 300메터를 그 엄호밑에 접근할 심산이다. 학생위원장은 다섯명의 절단조를 보낼 때와 꼭같은 격동적인 마음을 담은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러는 사이에도 군중은 뒤를 이어 자꾸만 밀려들어 대렬은 점점 혼잡해지였다. 밀려드는 군중들은 먹이며 받는 구호소리로 끊임없이 거리를 뒤흔들고있었다. 종로의 대통로는 인도도 차도도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마구 뒤섞여 노래들을 부른다.

연도에는 시위자들의 목을 추겨주려고 물통을 들고 다니는 아낙네들, 주먹밥을 나누어주는 아주머니들, 기와장과 돌들을 날라오는 소년들로 법석 들끓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표정이 필사적이였으며 움직임도, 말마디들도 격동적이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포신과 총구앞에서 벌어지고있었다. 19일에도 바로 이 자리에서 수백의 학생과 시민들이 죽고 상했다. 아스팔트길에는 아직도 피자욱이 남아있었고 싸움의 흔적도 그대로 널려있었다.

바리케드에서 50메터밖에 안되는 골목길에서 튀여나온 다섯 학생중의 한 학생이 철조망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린다. 예상하지 못한 순경놈들과 사병들이 미처 사격할 생각을 못하고있는데 그 학생은 철조망을 끊기 시작하였다.

선두의 시위자들은 림억규가 뭐라고 고함을 치고있는것을 보았다. 다음순간 일제사격소리가 들리고 철조망앞의 학생이 풀썩 어푸러졌다. 반대쪽에서도 두 학생이 철조망으로 향하고있다. 맨뒤의 학생은 골목에서 몇발자욱을 못 가서 쓰러졌다. 정면으로 하수도관을 굴리며 달려가는 네 학생에게도 총탄은 비오듯 하였다.

대렬선두옆 연도에 서있던 지혜는 입안이 바싹 말라들었다. 곁에 서있는 영애의 얼굴표정은 점점 더 격해진다. 쓰러진 학생에게서는 피가 랑자하게 흘러내리고있을것이다. 이럴 때의 한초한초는 부상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막대한 시간이기도 한것이다. 문뜩 영애가 그 부상자를 향해 발걸음을 떼였다.

총구와 초연, 웨침소리, 사람들의 사나운 눈초리, 인산인해의 거세찬 물결,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하여 일떠선 산악, 지혜는 어떤 사나운 내부적힘에 밀려나듯 걸음을 떼였다. 비칠거린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깨를 끄당겨 뒤로 돌려세운다. 지혜는 뿌리치려고 몸부림쳤다.

《지혜, 정신있소?!》

《부상자에게 응급처치를 해야 해요.》

《좀 기다리오.》

강우였다. 지혜의 일신을 념려하는 근심때문에 그의 관자노리에 피줄이 섰다. 강우임을 안 지혜는 극히 짧은 순간 온몸의 힘이 일시에 빠지는것 같은 무기력을 느끼며 그의 팔에 실신할것처럼 몸을 기댔다. 일초도 못되는 그 짧은 시각이 지혜에게는 긴 시간처럼 초조했다. 곧 몸을 떨듯이 강우의 팔을 뿌리친 지혜는 온몸의 힘을 다하여 영애를 따라잡으려고 달려나갔다. 허리를 굽히고 뛰였다.

지혜는 이상하도록 모든것이 다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쓰러져있는 부상자의 모습은 더 크고 뚜렷하게 보였다. 함성과 총성속에서 그의 신음소리도 가려들린다. 자주 스치는 총탄에 귀뿌리가 따가왔다.

영애는 쓰러진 한 학생을 지나 더 앞으로 나간다.

지혜가 그 학생을 업으려고 하자 그 학생은 별안간 지혜의 손을 뿌리쳤다. 살아있었다. 지혜는 그의 뿌리치는 손에 얼굴을 얻어맞고도 그가 살아있다는 기꺼움에 새로운 흥분을 느꼈다. 부상자는 혼자서 배밀이로 더 전진하려다가 정신을 잃고 다시 쓰러진다.

부상자를 등에 진 지혜는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무거운 두발을 힘들게 떼여 걸었다. 총탄이 귀전을 스친다. 땀이 자꾸만 눈두덩으로 흘러내리였다.

문뜩 뒤에서 영애의 비명이 들린듯싶어 가까스로 돌아보았다. 그러나 영애는 아까와 다름없이 무게때문에 비칠거리지만 부상자를 업어오고있었다.

아낙네들이 달려와서 도와주어 부상자를 골목길에 내려놓았다. 부상자를 내려놓자 뜻밖에도 영애가 옆으로 넘어졌다.

《영애!》

지혜는 정신없이 영애를 부여잡았다. 입에서 빨간 실오리같은 피가 흐른다.

《영애, 정신차려!》

영애가 눈을 떴다.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지혜, 빨리 부상자들을 병원에 보내야… 지혜, 내 걱정 하지 마. 아무데도 아프지 않아. 지금 아주 편안해…》

지나친 격동때문에 상처의 아픔을 감각하지 못하는것이다. 다른 부상자는 아낙네들이 들것으로 운반해주고있다.

《영애, 죽어서는 안돼!… 죽어서는 안돼!》

지혜는 영애의 두손을 아프도록 그러쥐고 목메인 소리로 같은 말을 외우고 또 외운다. 실습려행을 간다고 질책하던 영애, 위생복을 입혀주면서 눈물을 흘리던 영애, 낮이면 가정교사, 밤이면 필사생, 그렇게 하면서도 늘쌍 학비와 식비에 쪼들리고있던 영애, 굳건한 의지로 견디여나가던 영애… 그 영애는 자주 이를 갈며 성나서 말하군 하였었다.

《이 썩어빠진 세상이 당장이라도 뒤엎어져 재가 되였으면! 그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젊음도 아깝지 않아, 지혜!》

그 영애가 그렇게도 원하던 새 생활을 눈앞에 두고 온 겨레가 충천하는 기세로 돌진하고있는 이 마지막순간에 원쑤의 총탄에 맞은것이다.

《죽어서는 안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사납게 지워버린다. 아낙네들이 지혜에게서 영애를 빼앗아 들것에 눕혔다.

돌연 진동하는 군중의 웨침소리가 폭발하였다. 발구름소리와 함성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면서 격노한 파도처럼 바리케드로 밀려간다. 철조망이 절단되였던것이다. 지혜도 다시 그 대렬속에 끼여들었다. 팔과 팔을 끼고 타오르는 심장들이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여 돌진하고있다.

놈들은 인제 곧 최루탄을 발사할것이다. 소방차로 물감을 탄 물을 마구 쏟아부을것이다. 경험한 시위자들은 그들의 더러운 솜씨를 알고도 남는다.

드디여 요란한 음향과 함께 초연이 피여오르기 시작하였다. 연기는 대렬선두를 삽시에 휘감았다. 최루탄의 연막속에 든 시위자들이 비칠거린다. 눈이 쓰렸다. 숨이 칵칵 막혔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멈춰서지 않는다. 비칠거리면서도 전진하였다. 전진! 전진만이 연막에서 벗어날수 있다.

《학생, 물수건 받아요!》

한떼의 아낙네들이 찬물에 추긴 수건들을 가지고 최루탄연막속으로 뛰여들었다. 눈이 쓰려 선두에 선 김씨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녀인들은 마치 연기가 자기들의 눈을 쓰리게 하지 않는것처럼 모질게 기침을 하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물수건으로 학생들의 눈을 훔쳐주고 입을 가리워준다.

한 학생이 그 물수건을 빼앗아들더니 방금 날아온 최루탄을 집어들고 다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바리케드를 향해 힘껏 던진다.

《돌! 돌!》

학생들은 연막속에서 비칠거리면서도 그렇게 웨쳤다. 아낙네들이 연도에 쌓아주었던 돌무지는 너무나 작았다.

최루탄의 기세가 차츰 죽자 놈들은 여러대의 소방차로 물공격을 시작하였다.

물은 방망이보다 더 힘껏 학생들을 쓸어눕혔다. 가슴이 터져오고 숨이 넘어가는듯 하였다.

《돌! 돌!》

소방차를 까부셔야 한다. 바리케드뒤에 총구를 겨누고있는 순경놈들과 사병놈들의 사격을 마비시켜야 한다. 소방차의 물이 마르기만 하면 놈들은 또다시 사격을 시작할것이다. 그러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돌이 왔다!》

그 말은 삽시에 퍼졌다. 한대의 트럭이 군중사이를 헤치고 다가오고있었다.

《돌이요!》

적재함에 무드기 쌓인 돌을 보자 학생들이 목이 메여 웨친다. 운전칸에서는 한 청년이 내려선다. 그 수척한 얼굴을 보자 지혜는 소스라치게 놀래여 달려가며 웨쳤다.

《정선생님, 안돼요. 병원으로 돌아가셔야 해요!》

권범은 그저 미소를 그릴뿐 아무 대꾸도 없이 달려온 남수에게 말했다.

《돌을 다 부리거든 트럭에 올라타고 한강까지 가라. 너희들이면 돌을 번개처럼 실을게다.》

한떼의 소년들이 적재함우로 와르르 올라탄다.

물줄기는 때때로 적재함곁에까지 와닿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벌써 돌을 던지고있었다.

《병원에 가셔야 해요.》

지혜는 그것만이 지금 자기 할 일인듯 권범의 곁에 다가서서 애원한다.

적재함우에서 그 말을 들은 남수가 돌을 잽싸게 부리우면서 참견을 하였다.

《지혜누나는 공연한 걱정을 하셔. 아저씨는 완강한 농민의 피를 이어 받았고 로동에 단련된 장사라는걸 모르셔.》

그 말을 하는 남수의 표정이 마치 자기자신의 일처럼 어찌도 자랑에 넘쳐있었던지 지혜는 더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 돌을 싣는 트럭이 몇대나 돼요?》

《서울바닥에 있는 트럭이란 트럭은 죄다지.》

《야, 신난다. 그럼 우리는 서울바닥의 구두닦이, 물장수를 다 불러들여야겠어요. 한강까지 가느라면 모두 만날거예요.》

운전사들은 차고에서 차들을 끌어내왔다. 밀막던 차주들은 그 서슬에 눌려 손을 놓았다고 한다. 뿐인가, 시내 곳곳에 있는 연유공급소 로무자들은 저장탕크의 밑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그 트럭들에 휘발유를 공급하였다.

돌은 소방차를 마비시켰다. 시위자들은 또다시 사태처럼 바리케드를 향해 육박하였다. 돌벼락이 우박처럼 바리케드로 날아든다. 선두의 학생들이 끊어진 철조망을 짓이기며 그곳에 올라섰다.

ㅅ대 문리대 학생들은 도망가는 순경놈들속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달려가는 림억규를 보았다. 돌들이 그쪽으로 한꺼번에 날아갔다. 그러나 억규는 사병들을 밀어젖히고 건물뒤로 사라졌다.

《만세!》

통로를 꽉 메운 군중의 새까만 머리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여 저지선을 향해 돌진해서 그것을 넘어가고있었다.

 

26일! 새날이 밝았다. 방금 통금해제시간이 지났을뿐이였건만 어느 거리나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통로마다 꽉 들어찼고 그것은 중앙청과 경무대에 가까운 길일수록 더했다. 아낙네들은 쌀독에 남은 낟알들을 깡그리 모아 주먹밥을 지어 거리에서 밤을 지샌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있다.

《어머니, 수고하셔요.》

ㅅ대 문리대 학생들은 김씨를 보자 인사를 하였다. 김씨는 학생들의 시선속에 자기를 측은하게 여기는 빛을 보자 미소를 그리고 말하였다.

《우리 준하는 무사할거다. 너희들이 오늘은 기어이 경무대를 점령할테니말이다.》

주먹밥에는 쌀도 보리도 밀기울도 두부비지도 섞여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아낙네들이 자기가 가진 모든것을 다 털어 만들어온 진수성찬이라는것을 알고있다. 밥덩이에 스민 불타는 정성에 가슴이 메였다. 그래도 싸움을 위해 든든히 먹었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언제나 그렇게 뒤에서 아들들의 힘을 길러주고 뜨거운 마음을 불어넣어준다.

멀리 중앙청이 보였다. 그 중간에 삼엄한 바리케드가 있었다. 이 마지막저지선에는 철조망이 아니라 줄지어 겹겹이 늘어선 땅크들의 포신들이 시민들을 노리고있었다. 사병들은 무표정한 목각처럼 땅크주위 요소마다에 서있다.

사방의 통로로 해서 여기 모여든 각 대학, 각 학부 학생위원장들이 가두에서 림시회의를 가지였건만 맨주먹으로 땅크를 까부실 묘안이 있을리 없다. 적들은 공포에 떨고있었지만 아직도 연명하려고 발버둥치고있다.

시간이 흐른다. 적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학생들도 땅바닥에 주저앉은채 폭발할듯 한 노기를 가누며 완강하게 버티고있었다. 그들은 아낙네들이 주는 물바가지를 말없이 받아 꿀꺽꿀꺽 삼키였다. 물을 먹는 동안도 그들의 시선은 곁눈으로 땅크의 포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숨막힐듯 한 사나운 침묵은 또 흘렀다. 적들속에서 무엇인가 구령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움직이는 사병들의 철갑모가 중천에 떠오른 해빛에 반사되여 번쩍거린다. 학생들은 모여앉아 팔들을 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박자만 있는 북소리처럼 절박하고 힘찬 노래소리였다.

옆골목에서 새로운 시위자들이 프랑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뜻밖에도 한떼의 소년들이였다. 람루한 옷, 반짝이는 새까만 눈동자들, 어제 돌을 실어나른 구두닦이아이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학생들이 한사코 말려도 막무가내로 대렬 맨앞으로 나서려고 요동들을 친다. 그들의 선두에는 커다란 프랑카드가 있었는데 요동을 칠 때마다 물결처럼 흔들렸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사병아저씨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들을 쏘지 말아요!》

그 글발을 보자 지혜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그런데 곁에 섰던 남수는 공연히 두덜거렸다.

《흥, 쏘지 말란다고 쏘지 않을 녀석들이야!》

《쏠지도 모르지.》

프랑카드를 들고있는 소년이 언덕이마밑으로 남수를 치켜보면서 대꾸한다. 아버지의 침대머리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리던 득찬이다.

《바로 프랑카드에 대고 몰사격할 녀석들이란 말이다!》

남수는 거친 말투로 또 한번 쏘아붙였다. 득찬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대꾸한다.

《그럴지도 몰라, 그래도 좋지 뭐. 총알이 다 우리에게 쏠리면 그동안에 형님들이 땅크를 까부실것 안야?》

《흥.》

남수는 얼굴을 찡기며 돌아섰다. 그제야 득찬은 얼굴을 들어 쾌활한 얼굴로 웃어보인다. 그 웃음속에 깃든 웅심깊은 각오를 알아보지 못할 남수가 아니다.

돌연 하나의 땅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육중한 체구가 성가신듯이 유난히 천천히 움직였다. 곁에 섰던 땅크도 그뒤를 따라 역시 서서히 움직여왔다. 땅크들은 한줄로 늘어서 온다. 무한궤도에 눌려 포도가 이지러진다.

미국제땅크다. 그것은 15년동안에 허다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강제철거에 항거하는 농민들을, 학정을 반대하여 길가에 가로누운 녀학생들을, 장정들과 로인들과 청춘들을 가리지 않고 깔아뭉개였다.

사람들의 저주와 증오의 웨침소리가 거리와 건물을 뒤흔든다. 땅크는 여전히 서서히 다가왔다. 학생들의 부르쥔 손이 떨리고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무한궤도소리, 그 울림, 불타오르는 창자로부터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목갈린 웨침소리, 무표정한 사병들, 번뜩이는 포신들과 총신들, 어마어마한 무쇠의 전진, 폭압의 전진, 적아의 거리는 200메터밖에 안된다.

그때였다. 땅크와 학생들사이의 그 무서운 공간으로 무엇인가 던져진듯이 누군가가 달려나갔다. 그것은 단 혼자의 어린 소년이였다.

《남수!》

지혜는 목구멍이 찢어질듯이 소리쳤다. 수십만군중이 놀랜 얼굴로 뛰여가는 남수의 쇠꼬치같은 몸뚱이를 바라본다. 무표정하던 땅크의 사병들도 충격에 이그러진 얼굴로 남수를 본다.

남수는 땅크에서 좀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문채 천천히 손을 올려 목깃이 다 해진 웃옷 앞단추를 아래까지 다 벗겼다.

그리고나서 갈비뼈가 앙상한 작은 앞가슴을 불쑥 내밀었다. 목청껏 온 거리에 대고 소리쳤다.

《쏠테면 쏴라!》

땅크는 비칠거리면서도 여전히 다가왔다. 그러자 남수는 웃옷을 훌렁 벗어 땅에 멨다꽂으며 또다시 웨쳤다.

《쏠테면 쏘란 말이다! 못 쏘면 개새끼!》 하고 소리친 남수는 앞가슴을 내민채 이번에는 그스스로가 땅크앞으로 천천히 그러나 당당한 거동으로 다가간다.

팔에 붕대를 감은 소년의 몸뚱이는 보잘것없이 작았으나 군중의 투지와 겨레의 기개를 한몸에 지니고있는것으로 해서 수십만 적아의 삼엄한 대렬속에서 하나의 강력한 력점을 이루고있었다.

땅크는 점점 더 비칠거렸다. 땅크의 행렬도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소년앞으로 다가오는 땅크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모두의 가슴에도 동시에 북받친 결사전의 결의는 화산의 폭발처럼 무서운 고함소리로 하늘과 땅을 깨뜨리였다. 대통로를 꽉 메운 사람들의 검은 바다가 중앙청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땅크의 대렬이 공포에 떨어 눈앞에서 금방 멎어버리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었다.

선두땅크가 멎었다. 뒤따르던 땅크도 멎지 않을수 없었다. 한둘만이 옆으로 삐여져나와 그냥 다가오려고 비칠거린다. 놈들속에서도 뭔가 고함소리가 일었다. 한 사병이 땅크에서 뛰여내려 남수에게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사병은 불의의 총성에 두팔을 벌린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옆으로 삐여져나와서 비칠거리던 땅크에서 한 장교가 문밖으로 상반신을 쑥 내밀고 권총을 쏘았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발악이였다. 시위자들의 사나운 바다는 이미 선두땅크에도, 두번째 땅크에도, 그 다음 땅크에도 새까맣게 올라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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