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 장

 

1960년 4월 19일, 서울은 몸부림쳤다. 사납게 뒤흔들렸다. 폭압정치에 대한 15년동안에 쌓인 울분이 폭발된것이다. 수십만의 군중이 대통로를 메우면서 최루탄의 초연과 소방차의 물공격과 란사하는 총탄을 뚫고 중앙청으로, 경무대로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놀란 독재자들은 갖가지 계엄령을 련발하였다. 《보통계엄령》, 좀더 폭압적인 《비상계엄령》, 그것을 더 강화한 《경비계엄령》… 거리마다 가시철망과 바리케드를 쌓아올렸다. 수천의 무장경관놈들을 동원하여 미친듯이 총을 쏘아대게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발악도 군중의 물결을 멈출수가 없었다. 온종일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군중의 성난 파도, 충천하는 함성과 우박처럼 날아드는 돌벼락밑에서 총을 쥔 순경놈들의 사지는 마비되였고 상전도, 앞잡이들도 공포에 온몸을 후두두 떨었다.

밤이 되자 어둠은 그토록 진감하던 군중의 함성과 폭압자들이 빚어놓은 참경을 삼켜버리고 지금은 격전장의 전적과 같은 음산한 거리가 어두운 가로등밑에서 묵묵히 뒤채고있었다.

그러나 폭압자들은 이 사나운 침묵이 저들을 반대하는 성난 파도의 끝장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항거의 숨소리는 온 거리에 그대로 숨쉬고있었다.

정적은 거짓이였다.

 

1

 

한 처녀가 넋빠진 사람처럼 비칠거리며 걸어간다. 멀리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멓게 우뚝 서있는 동대문까지의 넓은 통로는 뒤엎어진채 텅비여있었다. 처녀는 트렁크를 들지 않은 한손으로 차거운 이마를 문지르면서 자주 멈춰섰다. 겁먹은 커다란 두눈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있다. 그는 단 하루동안에 상상도 할수 없게 변해버린 낯익은 거리를 둘러본다.

저쪽 교차점에는 반나마 허물어진 철조망과 흙가마니로 된 어수선한 바리케드가 가로막혀있었다. 무엇때문에 저것들이 필요했단 말인가? 길바닥을 온통 뒤덮고있는 유리쪼각, 부러진 막대기들, 찢어진 옷자락들, 그우로 락엽처럼 흩날리는 종이장들, 그리고 무수한 돌, 돌… 처녀는 그것이 압제자를 향해 수십만의 군중이 온종일 던진 깨여진 돌과 기와장이라는것을 아는지… 불타서 주저앉은 파출소와 경찰서들에서는 아직도 희읍스름한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고 하늘에는 비를 머금은 시커먼 구름들이 밀려다니고있었다.

그리하여 어제까지만 하여도 저기 서양식술집의 푸른 현등앞에서 취객들이 제멋에 겨워 류행가의 한곡조를 뽑아대고 여기 점포에서 능란한 장사치가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내느라고 엉너리를 부리고 맞은편 골목어구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지게군들과 실업자들이 피기없는 얼굴로 앞만 멍해서 바라보고있던 그런 낯익은 거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처녀는 숨이 차하면서 메마른 입술을 추기였다.

뒤에서 저벅저벅하는 군화소리가 들렸다. 처녀는 또다시 허둥지둥 걷기 시작하였다. 물웅뎅이에 미끄러지고 나무막대기며 돌쪼각들과 찢어진 옷자락들에 발을 걸채여 지칫거린다. 호각소리가 울리자 처녀는 덜미를 붙잡히운듯이 우뚝 섰다. 군화소리가 다가왔다.

《어디 가?》

두 순경놈의 사나운 가슴팍이 스산한 거리대신 처녀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집에 가요.》

처녀는 숨이 차하면서 간신히 대답하였다.

《어디서 오냐 말이다?》

《고양군에서요. 걸어왔어요. …학교에서 실습갔었어요.》

《학교는?》

《네?》

《어느 학교냐 말이다. 말귀도 못 알아들어?》

《ㅊ의대…》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었어?》

처녀는 트렁크를 땅에 놓고 열어보이려 하였다. 별안간 어디선가 총소리가 나자 처녀의 팔이 흠칠하고 떨렸다. 순경놈은 소리나는쪽을 돌아보더니 트렁크를 발길로 툭 차면서 《그럴 짬이 없다. 가라!》 하고는 급히 달려갔다.

처녀는 트렁크를 들고 다시 비칠거리면서 걸었다. 총성은 더는 들리지 않았지만 겁먹은 처녀는 정신없이 걷는다. 골목길에 들어서서야 얼마간 숨이 나가는듯 걸음발이 고르로와졌다. 추녀를 맞대고 서있는 반토굴처럼 나지막한 집들중에서 한 집 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어머니!》

안에서 급히 방문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무신을 끄는 발자욱소리가 들렸다.

《지혜냐?》

지혜는 뒤집혀진 바깥과는 달리 떠나기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것이 없는 방안이 오히려 이상한듯 두리번거리다가 등을 기댄 담벽에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아버지는요?》

지혜의 두눈에는 공포가 그대로 실리고있다.

《어떻게 이런 날에 왔니? 무서웠지?》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네? 어머니.》

《옷갈아입어라, 기차가 다니던? 에이구, 걸어왔구나. 며칠 더 있다가 올게지 이 란리에 뭣때메 오니?》

《어머니, 아버지는요?》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나갔어.》

《네? 총을 마구 쏘아댔다는데요?》

《그러니 어찌겠니? 아버지가 학생애들만 내보낼분이냐. 어제 새벽에 나갔는데 안 오는구나. 숱한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다. 옆집 맏아들도 부상을 당했어. 튼튼한 젊은이였는데 백지장처럼 되여 누워있구나. … 온종일 총소리와 아우성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듯 했다. 전장같았어. 나는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서워서 수원집과 같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사하신가요?》

딸은 목이 메여 묻는다.

《무사하지 않구. 래일 새벽부터 다시 시위를 하자구 모여서들 날밝기를 기다린다누나. 얼마나들 기승스러운지 피를 흘리면서도 그냥 만세를 부르지 않니. 보는 사람의 가슴이 터질것 같았어. 순경놈들이 어떻게나 모진지 승냥이가 사람가죽을 쓰고있달수밖에, 눈들이 뻘개서 사람들을 그렇게 마구 죽였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서워하질 않는구나. 죽기를 각오하고 한사코 덤벼들었다. … 난 생각만 해두 치가 떨리는구나.》

어머니는 차츰 목이 메인 소리로 오늘 하루 겪은 일들을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비통하여 숨이 컥컥 막히게 하였다.

그러자 일주일전 서울을 떠날 때의 기억이 그림자처럼 딱 붙어서 바늘로 찌르듯 머리를 괴롭힌다. 그 기억은 지금의 정황속에서 오히려 그때보다 더 강한 압력을 가지고 지혜를 힐책하는듯싶다.

 

…학교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 술렁술렁해졌었다. 대학교무부의 표정은 긴장해졌으며 학생들은 네다섯만 모여도 자주 무엇인가 울분을 토로하였다. 대구, 마산에서 들려오는 피의 항쟁과 김주렬의 참사에 대한 소식이 학생들을 흥분시켰던것이다. 학생들은 수업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솟구쳐오르는 격동을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이렇게 묻군 하였다.

《선생님은 항쟁을 지지합니까?》

불의에 질문을 받은 선생들의 태도는 각이하였다. 어떤 선생들은 당황하여 공연히 교단우를 서성거리다가 엄한 얼굴로 《학업을 계속합시다.》 하고 아무 말도 안했으며 어떤 선생들은 학생들을 엄한 시선으로 둘러보다가 성이 난듯이 《그걸 선생인 나에게 묻소? 학생들자신은 결심을 채택하지 못하오?》 하고 말했으며 또 어떤 선생은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용기가 없다면 우리 늙은이들이 앞장에 서지요.》 하고 말해서 학생들의 가슴속에 조용히 신심을 심어주었다.

그럴무렵, ㅊ의대 교무부에서는 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전교학생들의 실습려행을 조직하였다. 그 처사는 학생들속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였다. 학생위원회는 교무부당국이 실습려행이라는 구실밑에 학생들을 각처에 분산시킴으로써 그들의 단합을 방해하련다고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였다. 그러나 교무부는 실습려행이 졸업과 진학의 자격을 부여하는 중요한 행사라고 하면서 항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적지 않은 학생들이 즉각 려행을 거절하는 성명서를 제출하였다. 교무부는 한걸음 더 나가 그런 학생들에게 정학처분을 내리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였으며 학생위원회는 실습을 중지하지 않으면 동맹휴학을 단행하겠다고 또다시 엄중항의하였다.

그런 어느날이였다. 학급동무인 영애가 지혜를 끌다싶이 해서 보이라칸뒤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지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지만 말없이 따라갔다.

주위는 석탄재와 녹쓴 쇠붙이들이 널려있는 어지러운 곳이였다. 지혜는 눈을 내리깔고 영애의 말을 기다린다. 언제나 대바르고 록록치 않은 영애였지만 흥분때문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발음하였다.

《지혜, 실습려행을 거절해!》

짐작은 하고있었지만 막상 명령적인 동무의 말을 듣자 지혜는 우울한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되물었다.

《왜?》

《그걸 몰라서 묻니?》

《…》

《생각해봐, 지금이 어느때냐?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판가리싸움의 마당이 아니겠어.》

지혜는 오래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애는 또다시 단호하게 말하였다.

《오늘중으로 거절하는 성명서를 써야 한다.》

지혜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영애쪽은 보지 않고 학교울타리너머 저쪽 백양나무우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면서 괴로운 한숨을 짓는다.

《나도 쉽게 생각한것은 아니였어. 내가 실습려행을 가려고 결심한것은 이 사나운 격랑에서 도망치려고 생각해서가 아니야. 나는 장차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고있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학과학에 열정도 힘도 다 바쳐야 해. 서툰 의사가 된다는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라는걸 너도 알지 않니? 실습의 기회가 그리 많지 못한 우리들에게 있어 이번 려행은 놓쳐서는 안될 귀중한 기회가 아닐가?》

《왜 너 하나만을 생각하니? 지혜, 이 순간에도 대구, 마산에서는 학생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있어. 10대소년들까지 목숨걸고 싸우고있단말이야. 그애들은 포부와 미래가 없어 싸우는줄 알어?》

지혜는 또다시 덤덤히 먼 하늘만 바라보다가 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병마에 쓰러지는 허다한 사람들의 참담한 모습이 보여. 만약 산간벽지나 조그만 농어촌에까지 모두 병원이 있고 거기 유능한 의사들이 있었다면 그들중 많은 사람들을 구할수 있었을거야. 민주주의냐 독재냐가 아니라 의료일군의 량심과 헌신과 그리고 능력만이 그들에게 건강을 주고 생명을 보호해줄수 있는것이 아니겠어?》

《자기를 속이지 마! 너는 겁이 난거야. …》

《영애!》

지혜는 영애의 두눈을 뚫어질듯이 바라보며 소리쳤다.

《너는 조금도 나를 리해하려고는 하지 않는구나, 너는 잘못 보았어.》

《그랬어, 나는 너를 잘못 보았어. 나는 네가 정의로운것을 외면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어. 나는 너의 가슴속에 옳은것에 몸을 바칠줄 아는 불덩어리가 있는줄 알았어. 그렇지만 네게 있는것은 불덩어리가 아니라 차디찬 린광이였어.》

《린광?》

지혜는 그 말이 아파 얼굴을 찌프리였다.

《나는 정말 너를 잘못 보았어, 정의를 외면할줄 몰랐어…》

영애는 힐책하기보다 흥분해하는 표정이였다.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다 표현할수가 없어 같은 말을 외우던 그는 갑자기 휙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지혜는 자기를 등지고 가는 동무의 뒤모습을 불안하고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서로 마음을 의탁했던 가장 친근한 동무가 그를 털끝만치도 리해해주려 하지 않는것이다.

(결코 린광일수가 없어!)

지혜는 혼자 속으로 부르짖었다.

지혜의 가슴에도 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소용돌이치는 울분이 왜 없겠는가, 폭압과 빈궁속에서 살아야 하는 남녘땅의 모든 사람들처럼 지혜의 가슴속에도 그것은 철부지 어린시절부터 싹터올랐었다.

빈 쌀독을 붙잡고 눈물짓던 어머니의 치마자락에서 어린 지혜는 울음을 삼키고 배고픔을 참았었다. 개천가 구질은 공터에다 무허가 판자집을 지었다고 순경놈에게 따귀를 맞던 아버지의 굴욕과 절망에 찬 표정을 바라보면서 지혜의 어린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었다. 철이 들자 공납금납부가 늦어졌다고 교감에게 욕을 당하던 치욕속에서, 사치와 패덕의 명동거리를 거닐 때마다 느끼는 혐오감속에서, 다리밑에 허기져 쓰러진 거지아이를 굽어보는 가슴아픔속에서, 유형무형으로 항상 죄여드는 공포정치의 압박속에서 울분은 쌓아졌던것이다.

어수선한 보이라칸 뒤구석에 혼자 남은 지혜는 동무가 남긴 억울한 질책의 아픔을 참느라고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지혜는 항상 그렇게 참을줄 알았다.

어머니는 지혜의 그런 성미가 아버지를 닮았기때문이라고 하군 했다.

지혜는 많은것을 바라지 않았다. 전공하는 과목에 온넋을 기울이지만 그의 소망은 크지 않았다. 시대의 앞장에 선다든가, 사회를 개조한다든가 하는 그런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작은 시골에서 작은 병원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보살펴주는것, 그것이 그가 가진 단 하나의 소망이였다. 크지 않은 그 소망에 지혜는 온 세계를 껴안은것 같은 희망에 부풀어오르면서 학업에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하고있었다.

그러나 그 성의와 량심을 가장 친한 벗인 영애가 조금도 리해하려고 하지 않는것이다.

막상 서울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던 지혜는 가슴에 밀려드는 오만가지 생각에 손이 떨렸다.

《지혜야, 래일 가면 안되니?》

어머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딸과 잠시나마 헤여지기가 서운해서인지 짐꾸리는것을 거들어주다말고 묻는다.

《모두 함께 떠나야 해요, 어머니.》

《그렇겠지만… 아버지가 그저 좀더 생각해보라고만 하셨지 가라는 말씀은 한마디도 안하셨어.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하고 간다면…》

지혜는 마음속이 우울하기는 하였지만 어머니를 위해 애써 미소를 그리였다.

《저도 아버님을 만나뵙고 가고싶어요. …학교에서 오늘 급작스레 떠나자는걸 어떻게 할수가 없어요. 어머니, 그렇지만 아버님은 나무라시지 않으실거예요.》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그것에 온 생애를 바치고있는 아버지는 전공하는 학업에 성의있는 노력을 다하려는 딸의 마음을 충분히 리해해주리라 믿었다. 지혜는 아버지를 존경하고있으며 사랑하고있다.

지혜는 착잡하고 어수선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집을 나와 정거장으로 향했다.

 

고양에서의 일주일, 그들 내과학부 학생들은 고양군의 농촌들을 편력하면서 농민들의 질환과 그것의 원인이 될 의식주상태를 조사하는것이 이번 실습의 목적이였다.

농가는 례외없이 문짝도 기둥도 기울어지고 벌레먹은 무거운 초가이영이 땅에 닿을듯이 축 늘어진 오막살이들이였다. 더구나 류랑하다가 어찌어찌해서 정착해있는 사람들은 그 오막살이조차 없어 고깔모자처럼 수수대를 엇세워놓은 집짐승우리보다 못한 곳에서 살고있다. 그런 농가들이 5리, 10리의 간격을 두고 네다섯집씩 모여살고있는 벽촌들이다.

학생들이 집으로 찾아온 뜻을 말하여도 농민들은 영문을 채 깨닫지 못하였고 별로 알고싶어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의 생활난과 굴욕속에서 풍화되여버린듯싶게 무표정한 늙은이들, 필요한 영양분의 삼분의 일도 섭취하지 못하여 골격마저 기형적으로 자라고있는 아이들, 해볕에 타고 비바람에 거칠어진 메마른 젊은이들이 인사치레의 웃음조차 모르고 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만성질환을 가지고있지 않은 농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처방해준 몇봉지의 약은 바다에 떨어진 기름방울과 같아서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학생들이라 원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약을 주지만 농민들은 고마와한다기보다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듯 한 허구픈 표정을 그리였다.

《이렇게 먹지 못하고 약을 먹어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 농군에게는 식구가 먹을만큼의 땅만 있으면 약없이도 무병장수할수 있소.》

한 농민이 이렇게 말하자 멀찍이에서 학생들을 어떤 적의에 차서 바라보고있던 한 떠꺼머리총각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땅뙈기가 있으문 뭘 해요. 거둬들인 곡식을 빼앗아가는 놈이 없어야 해요!》

그러자 먼저 말한 농민이 화가 나서 대꾸하였다.

《농사군에게 땅을 주는 세상이라면 곡식을 빼앗아가는 놈들도 다 없어진단 말이다! 뭘 알기나 하구 그러냐?》

《흥, 그런 세상에 살아보셨다구 그 야단이유?》

《왜 못살아보아? 넌 그때 코흘리개여서 쥐뿔도 몰라!》

그러자 한 농민이 손을 휘저으며 말참녜를 하였다.

《잠자쿠 있으라구. 화김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면 후환이 있을수 있어…》

격해서 서로 고아대던 농민들이 어느덧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조용해졌다. 금방이라도 성난 목소리가 튀여나올듯싶은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뼈만 앙상한 개 한마리가 땅바닥을 뒤지며 돌아가다가 누군가의 발밑에 밟혀 요란한 비명을 치고 달아났다. 모이를 쫓던 두세마리의 닭들이 그 소리에 놀라 도랑가로 달려간다.

울타리도 없는 뜰에 쭈그리고 앉거나 돌바위에 걸터앉은 농민들은 잎담배를 짧은 대통으로 연방 들이빨면서 때때로 누렇게 뜬 얼굴의 의혹에 찬 시선으로 학생들을 쳐다볼뿐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학생들은 물었다.

《저, 뭘로 끼니를 하십니까?》

그들의 식사형편을 알아야 한다. 질문을 받은 농민이 순박한 웃음을 그린다.

《요즈음은 잘 먹지유. 봄이 아니겠소, 물도 풀도… 산천이 굶겨죽이겠소?》

지혜는 답답한 마음으로 《주식-산나물》 하고 적었다. 그리고 진찰을 하고난 후 약 몇봉지를 주었다.

《약은 싫소. 본전뿐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돈이 없소.》

지혜는 어떤 부끄러움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말없이 다음 농민과 마주 앉는다. 그 농민은 마주앉자마자 물었다.

《서울학생들은 시위를 안할 작정이요?》

지혜는 공연히 놀래였으나 입을 다물고 청진기를 대였다.

《학생, 우리 농군에게는 그런것이 필요하우. 세상이 뒤집히는것 말이요. 우리가 풀뿌리를 먹고산다는것을 몰라서 조사하러 왔소?》

지혜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렇게 고양에서 일주일, 그것은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였다. 농민들은 만성질환에 대한 림시처방이 아니라 병마에서 벗어날수 없는 생활, 그것이 송두리채 뒤엎어지기를 바라고있었다. 의학은 그들의 기아와 빈궁앞에 너무도 무력하였다. 생각하지 말자고 여러번 뒤채였으나 영애의 말이 자꾸만 가슴을 찌른다.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판가리싸움이 아니겠어?》

뒤이어 자기가 했던 말도 기억에 떠오른다.

《민주주의냐 독재냐가 아니라 의료일군의 량심과 헌신과 능력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고 생명을 보호해줄수 있는것이 아니겠어?》

량심과 헌신과 능력이 과연 농민들의 생명을 보호할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여기 낯선 산골을 편력하는 며칠간에 그들 역시 편안하게 지낸것은 아니였다. 무거운 약가방을 들고 매일처럼 까마득한 령길을 넘나드느라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생겼고 새벽에 일어날 때면 온몸이 쑤셔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밤이 되면 어느 농가의 토방우에 축축한 멍석을 깔고 잤다. 그렇건만 량심과 헌신과 능력에 대한 불안은 바줄로 가슴을 동여매는것처럼 신념을 압박하였다.

지혜는 종시 같이 간 오인숙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령길을 앞두고 개울가에서 점심요기를 하고났을 때였다.

《우리는 오지 말아야 하지 않았을가?》

인숙은 한잠 자겠다고 풀밭에 드러누우며 대답한다.

《정말이다. 이렇게 고생스러울줄 알았다면 뭣때문에 왔겠니?》

지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

그때 문뜩 개울건너 산비탈로 누군가 굴듯이 미끄러져내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물방울에 온몸을 마구 적시면서 개울을 뛰여건너왔다. 열두어살 됨직한 총각애였다. 총각애는 학생들을 보자 숨이 차하면서 묻지도 않는데 이렇게 말하였다.

《서울에서도 마산에서처럼 변이 일어났어요!》

《시위투쟁말이냐?》

《총으로 마구 쏜대요. 피를 쏟으면서도 그냥 싸운대요. 불이 붙고 돌벼락이 떨어지고 끔찍스런 란리판이 되였다나요.》

《어느 학교지?》

《몰라요. 읍에 있는 내 동무 형님이 죽었대요.》

총각애는 그들을 뿌리치고 달려가려고 하였으나 학생들이 놓아주지 않았다.

총각애는 두눈을 반들거리며 말하였다.

《이러지 말고 누나들도 거기 가서 싸우면 더 잘 알지 않겠나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자면 걸어가셔야 할거예요. 기차도 자동차도 서울로는 가지 못하니까요.》

총각애가 그들을 힐책하느라고 한 말은 아니였지만 지혜는 방망이로 가슴을 치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불타는 거리, 비발치는 탄우, 초연, 피, 사나운 함성, 그런 영상들이한데 엉켜 거대한 음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눈앞에 다가오는듯 하여 지혜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이윽고 지혜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인숙아, 돌아가자.》

인숙은 량미간을 찌프리고 지혜를 유심히 바라본다.

《무엇때문에 총탄속에 머리를 들이밀겠니?》

지혜는 그러는 인숙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수가 없는듯이 두눈을 지르감는다. 그러나 망막속에 떠오르는 영상들, 질책하던 영애, 초췌한 아버지의 슬픔에 찬 얼굴, 약을 받아들던 농민들의 허구픈 표정, 《세상이 뒤엎어져야 한다.》고 말하던 적의에 찬 시선… 지혜는 다시 눈을 떴다.

《가야 해!》

그러자 산과 골짜기, 높은 령마루우의 푸른 하늘이 압착되였던 지혜의 가슴을 탁 트인 자연의 맑은 공기로 서서히 풀어주는듯싶었다.

그리하여 서울에 돌아왔다. 상상을 초월하여 뒤엎어진 서울, 그러나 지혜는 아직 안온한 방에 앉아있다. 밖은 몸부림치고있다. 영애,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강우, 모든 그의 학우들이 바깥 어딘가에서 격동에 넘쳐 불안한 밤을 지새고있으리라. 그렇지만 지혜는 여기 혼자 앉아있다.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하였다.

돌연 어디선가 날카롭고 긴 경적소리가 울려왔다. 뒤이어 무엇인가 육중한것이 땅밑을 뒤흔든다. 그 소리는 끊임없이 울려오면서 가뜩이나 잠 못 이루고있는 서울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포장도로를 짓이기는 땅크대렬의 무한궤도소리였다.

《지혜야, 이 일을 어쩌니?》

어머니의 불안에 떠는 두눈이 지혜를 쳐다본다.

《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모르셔요?》

《ㅅ대 문리대 강당에서 밤을 지샌다고 학생애 하나가 알려주더라만… 강우의 학교지?》

《네…》

또다시 땅크소리가 들려온다. 그들모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며 무한궤도의 거만한 음향이 밤거리를 집어삼킬듯 세차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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