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3일 로동신문

 

    수  기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의 첫 영웅이 되던 나날에

 

나는 주체39(1950)년 12월 재진격의 길에서 비행기사냥군조를 조직할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은 가장 우월한 대중적인 반항공투쟁방법입니다. 비행기사냥군조는 어데서나 쉽게 조직할수 있으며 적비행기를 쏴떨구는데서 기동성을 보장할수 있습니다.》

맨 선참으로 비행기사냥군조원이 될것을 탄원하여나서던 그날 제47보병사단 113련대직속 고사기관총소대 사수였던 나는 련대지휘관들앞에서 이렇게 결의다졌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도 저격무기로 적비행기를 쏴떨구지 않았습니까. 하늘의 날강도들을 기어이 내 손으로 죽탕치고야말겠습니다. 다시는 우리 공장, 내 고향에 얼씬 못하게!》

그러나 적기를 쏘아떨군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마음은 불같은데 복수심만으로는 하늘의 비행기를 땅우의 저격무기앞으로 끌어들일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때 우리들의 신심을 북돋아준것은 김일성장군님의 명철한 가르치심이였다.

적비행기들을 유인하여 쏴떨구라!

바로 그것이였다. 다음날 우리는 용기백배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였다.

까마귀떼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유인할가?

생각을 굴리던 나는 불이 번쩍 나게 고사기관총의 철갑탄을 뽑아버리고 예광탄 8발을 재워 불시에 사격을 들이댔다. 갑자기 날아오르는 불줄기에 와뜰 놀란 적기들이 급격히 기수를 돌렸다.

기우뚱거리며 진지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하는 적기들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철렁하였다.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다른 분대들도 있었던것이다.

한번도 적기와 싸워보지 못한 애숭이가 단꺼번에 4대를 불러들였으니 설익은 주먹맛을 보이면 적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무모한 희생을 낼수 있었던것이다.

나의 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불기둥이 사방에서 솟구쳐올랐다.

쏟아지는 흙비에 눈앞이 뿌잇해졌다. 이때를 기다렸던 적기 한대가 급강하하며 달려들었다. 아물거리는 눈을 비벼 크게 뜬 나는 적기를 조준하여 고사기관총탄을 날렸다.

(내 사랑하는 공장을 통채로 삼키고 이 나라 아이들에게서 어머니를 앗아간 놈, 오늘은 내가 네놈을 삼키는 날이다!)

점점 더 크게 다가드는 적기의 동체를 향하여 나는 더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명중만 하면 시커먼 연기를 뿜을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이제나저제나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지기를 조급하게 기다리는데 처박힐듯 내려꽂히던 적기는 40~50m상공우로 씽 하니 지나가버렸다.

다음번 적기는 기어이 명중하리라 마음다지며 사격자세를 바로잡는데 어인 영문인지 막 달려들던 두번째 적기가 옆으로 급히 꽁무니를 사렸다.

분통이 터졌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기쁨에 넘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승운동무, 비행기가 떨어진다!》

분대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글쎄 내가 빗맞혔다고 생각했던 그 적기가 고지너머로 추락되고있는것이였다.

집집마다에서 창문이 열렸다. 시민들도, 행군길의 보병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만세를 터쳐올렸다.

얼싸안아 나를 추켜올리는 전우들의 뜨거운 포옹에서 풀려나온 나는 아직도 포연이 자욱한 진지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적기들이 눈독을 들이고 덤벼들었던 곳은 뜻밖에도 우리 고사기관총진지가 아니라 해안포들이 자리잡고있었던 낡은 진지였다. 순간 머리속에서 번개불이 벙끗 일었다.

여기에 허위포진지들을 만들고 적기들을 다시 유인해보자.

그달음으로 나는 전우들과 함께 자동차바퀴며 불타버린 나무들을 얻어 《포》들을 조립해나갔다. 어설프게 조립한 《포》들에 련대장이 보내준 위장망을 씌우고 나무가지들로 품들여 위장까지 하고나니 어느덧 저녁해가 다 저물었다.

성수가 난 분대원들과 떠들썩 웃으며 고지를 내리는데 정치부련대장이 나를 마중하여 달려왔다.

《오늘 최고사령부에서는 적기를 쏴떨군 비행기사냥군조원 김승운동무를 화선입당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조선로동당원!

아직은 입당청원서를 쓸 생각도 감히 품어보지 못하였던 나였다.

피젖은 입당청원서를 가슴에 품고 공화국기밑에서 눈을 감은 용사들은 그 얼마이고 《나를 조선로동당원으로 불러달라!》고 웨치며 원쑤의 화점에 몸을 던진 전우들의 청원은 얼마나 절절했던가.

생각할수록 나의 마음은 송구스러워졌다. 입대한지 이제 겨우 넉달만에 나는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소대의 첫번째 전사가 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입당날자는 비행기사냥군조원이 되여 처음으로 적기를 쏴떨군 주체40(1951)년 1월 24일로 되였다.

나는 온밤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당원이 된 내 모습을 보셨더라면!)

벌써 몇번째 이 생각을 곱씹느라니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내 손에 월사금을 쥐여주고싶어 염전으로, 탄광으로 떠다니며 마소처럼 고역에 시달리던 아버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기술을 배워주는 꿈같은 세상이 있다는것을 알지 못한채 아버지는 억울한 생죽음을 당하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소리에 문득 어머니의 목소리가 실려왔다.

《죽고싶어도 목을 맬 새끼오리조차 없던 이 소작농이 해방덕에 〈지주〉가 되였구나!》

분여받은 토지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던가.

전선으로 떠나는 나를 이끌어 그 땅의 흙 한줌을 쥐여주며 어머니는 타는 눈으로 당부했었다.

《우리 땅의 이 표말이 뽑히우지 않도록 해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달빛에 어룽어룽한 허위포진지를 다시한번 깐깐히 위장해나가는 나의 마음은 쇠물처럼 끓어올랐다.

(아직은 가슴에 군공메달 하나 없는 나를 조선로동당원으로 불러주신 최고사령관동지이시여, 숨이 붙어있는 한 적기를 절대로 살려보내지 않겠습니다!…)

푸름푸름 먼동이 터왔다.

그날은 아침일찍부터 적지휘기가 날아들더니 2개 편대가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허위포진지에 군침을 흘리며 고지우를 뱅뱅 도는 적기편대를 주시하던 분대의 누군가가 키득키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영웅이 2명은 나겠구나.》

당시 적기 3대를 쏴떨구면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게 되여있었으니 8대중 6대만 격추시켜도 그의 말처럼 영웅이 2명은 나오는셈이였다.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있는데 적지휘기의 신호탄이 면바로 허위포진지에 가맞았다. 그 신호에 따라 적기 한대가 나와 일직선상에 놓인 정면으로 기웃거리며 달려들었다. 조준기의 십자선상에 그놈의 기관부를 든든히 잡아넣은 나는 원쑤의 골통에 불을 뿜었다.

순간 나는 저도모르게 아찔해졌다. 각일각으로 커져보이던 적기의 그 징그러운 몸뚱아리가 마치 내 온몸을 덮쳐버릴듯 들이닥치고있었던것이다. 갑자기 폭풍이 일고 땅이 움씰거리더니 굉음이 고막을 찢었다.

《명중이다!》

우리는 다시 전투서렬을 짓는 적기들을 향하여 사격위치를 바로잡았다.

겁쟁이같은 놈들이 달아날가봐 마음을 바재이고있는데 이번에는 적지휘기의 신호탄이 내가 속한 3분대의 린접인 2분대에 날아들었다.

(개새끼들, 우리 손아귀에선 절대로 못 빠진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것과 동시에 2분대에서도 불이 뿜어져나왔다.

검푸른 바다에 수장당하는 저들의 주도기를 본 적기들은 급기야 바다쪽으로 뺑소니치고말았다. 우리의 비행기사냥에 대한 경험은 점점 사단, 군단으로 일반화되였다.

얼마후 우리 비행기사냥군조원들은 어느 한 방어전투에 진입하였다.

우리의 임무는 사단의 반땅크포대대를 비롯하여 직사포구분대들을 엄호하는것이였다.

날이 새면 치렬한 격전을 벌려야 하였으나 그날은 모두가 흥분에 설레였다. 바로 그날은 2월 8일이였던것이다.

그날 우리는 밤늦도록 이제 승리하면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토론하였다. 끝날줄 모르는 전우들의 꿈이야기를 깊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듣기만 하던 1분대사수가 문득 이렇게 말하였다.

《난 죽을 때까지 이 고사기관총을 떠날것 같지 못해. 살붙이같거던. …》

새날이 밝았다. 예견했던대로 적들은 만만치 않게 달라붙었다.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순간일수록 적의 숨통을 손아귀에 잡아넣는 가장 좋은 때였다. 여기저기서 멸적의 불을 뿜는 우리 비행기사냥군조원들의 명중사격에 적기들이 련거퍼 대가리를 구겨박았다. 악에 받친 적들은 더 많은 적기들로 파장식공격을 들이대며 저공에서, 고공에서 전술을 바꾸어 악착스레 줄폭탄을 쏟아부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화력전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적의 기총탄에, 류산탄에 찢기고 불탄 옷이며 신발들은 하루에도 몇차례나 치르는 적들과의 격전을 말없이 셈해주는 증거물이기도 하였다.

분분초초가 생사를 다투는 전투를 마치고나면 흘러내린 땀에 신발까지 화락 젖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언제 옷을 말려입을새가 없었다. 새날의 복수전을 준비해야 하였던것이다. 어느새 우리들은 얼음버캐가 내돋아 서걱서걱하는 옷을 입는데 습관되여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때 격정의 파도가 온 고지에 일어번졌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평범한 하사관인 나에게 손수 축하문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를 위하여서와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애국주의적헌신성과 용감성을 발휘하여 적기들을 격추함으로써 빛나는 공훈을 세운 동무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 더욱 큰 성과와 승리가 있기를 축원한다는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

어디까지 꿈이고 어디서부터 생시인지 선뜻 가늠이 가지 않았다.

우리의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를 아시다니?! 이 애숭이전사에게 축하문까지 보내주시다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솟구치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와 그리고 우리 비행기사냥군조원들에게 사랑의 선물까지 안겨주셨으니 그날의 그 감격을 나는 반세기가 훨씬 넘은 오늘까지도 잊을수 없다.

추운 겨울에 산에서 비행기를 사냥하느라고 얼마나 춥겠는가고 하시며 겨울솜신으로부터 담배에 이르기까지, 모내의를 여러벌이나 보내주신 그이의 사랑은 얼마나 육친적인가. 그 사랑이 천겹만겹의 방탄벽으로 매 전사의 몸을 감싸고있어 우리 비행기사냥군조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미 두려운것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 두려운것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느냐, 못하느냐 하는것이였다.

적들의 폭격과 사격에 고지는 그 몇번 《밭갈이》되였지만 우리 비행기사냥군조원들의 젊은 투지와 용기는 더욱더 굴함없이 백배해졌다.

결전의 그날들에는 희생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고사기관총을 지키겠다던 1분대사수, 승리하고 장가가는 날 온 동리가 보란듯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자랑하겠다고 외우던 그가 고사기관총우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 날 우리는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그의 모내의를 함께 묻어주며 피타는 맹세를 다졌다.

전우여, 그대가 못다 쏜 복수탄을 우리가 날리리라!

20여일동안에 나는 적기 5대를 격추시켰다. 그해 3월 고향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여왔다.

《…영웅칭호까지 받고 김일성장군님으로부터 축하까지 받았다니 집안의 영광이 이 이상 더 큼이 어디 있겠느냐.

오늘 저녁에는 너의 공로를 찬양하는 성대한 군중대회까지 있었다.

어머니는 처음 주석단이라는데 올라가보았고 꽃다발을 받았다.

…네가 원쑤놈들의 비행기 다섯대를 또다시 격추하였다는 소식이 가까운 시일내에 전하여질것을 어머니와 너의 동생들은 굳게 믿는다. …

3월 21일 밤 어머니 씀》

*                         *

 

적기앞에 비겁하면 내가 그놈에게 목숨을 잃고 내가 적기앞에 용감하면 단 한발로 적기의 숨통을 끊을수 있다!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을 벌리던 그 나날에 체득한 이러한 용감성과 배짱은 저절로 생겨난것이 아니다.

평범한 전사에게도 담력과 슬기를 안겨주시여 영웅으로 키워 전승을 안아오신 위대한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이 준것이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 전쟁로병 김승운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