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8일 《통일신보》

 

  수기

어머니조국의 사랑의 품에 안겨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태양절을 맞는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만수대거리에도 연분홍진달래, 살구꽃이 활짝 피여나 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있다.

4월의 화창한 봄과 함께 나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일성대원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있다.

 

        산을 봐도 들을 봐도 그리워라 수령님

        그 언제나 이 가슴에 그리워지는 수령님

        사랑에 넘친 환하신 미소 이 강산에 비껴있네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영원한 그 미소

        …

어버이수령님이 그리워질 때마다 내가 마음속으로 조용히 부르군 하는 노래이다.

절세위인의 해빛같이 환하신 미소를 그려볼수록 친어버이의 정으로 우리 가정을 따뜻이 돌봐주시던 나날들이 어려와 눈굽이 젖어들군 한다.

1948년 3월 일본땅에서 태여난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별로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다. 당시는 나의 아버지(한덕수)가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 의장단 성원으로 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자개바람이 일도록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일본반동들의 탄압을 피해 지하에서 투쟁하는 아버지와 나는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았고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아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가 결성된 후에는 더욱 바쁘게 지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가 몹시 힘들었다. 나의 추억속에 자리잡은 아버지의 모습은 일에 파묻혀 언제나 분망하게 보내던 과묵한 모습이였다.

1971년 11월, 나는 오매불망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조국에 온다는 소식을 받으시고 앞으로 자신께서 지나가시다가도 쉽게 들려보실수 있도록 자신의 저택 맞은켠에 우리 오누이가 생활할수 있는 살림집을 마련하도록 하시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두달전에 먼저 조국의 품에 안긴 남동생과 저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주시였다. 그이께서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며 한덕수의장의 맏딸이 왔다는데 어디 보자고, 어서 이리 오라고 다정히 불러주실 때 나는 목이 메여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날 처음으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웠지만 나는 친아버지보다 더 따뜻한 사랑에 어려움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것을 느끼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너희들은 나를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나는 너희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면서 내 손에서 공부도 하고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야 한다고 정을 담아 교시하시였다.

그후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와 동생이 사는 집을 여러차례 찾아주시고 현지지도의 길에도 우리를 데리고다니시며 조국의 현실을 알도록 해주시였다. 그 나날 평범한 로동자와 농민들, 가정주부들까지 어버이수령님께 무랍없이 자기 일을 자랑하는 모습이 당시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일본에서 수령님의 소탈하신 풍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인민들과 그렇듯 허물없이 지내시는것을 정작 체험하고보니 《어버이수령님》이라는 한없이 숭고한 부름속에 담겨진 깊은 의미를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그 나날은 내가 어버이수령님의 절세의 위인상과 고매한 인민적풍모에 대하여, 조국인민들과 진보적인류가 왜 그토록 우리 수령님을 흠모하여마지 않는가를 심장으로 체득한 나날들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시집을 가서 첫 아기를 낳았을 때에도 우리 집을 찾으시여 친정아버지의 심정으로 저와 아기의 상태에 대하여 세심히 물어주시며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그 사랑속에 나는 조국의 어엿한 일군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정일장군님께서도 우리 가정에 크나큰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마다 나와 동생을 비롯한 가족을 아버지가 있는 일본에 보내여 간호를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아버지는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다가도 위대한 장군님소식만 들으면 의식을 차리군 했고 내가 곁에 있으면 《또 장군님께서 나를 걱정하시는구나.》하며 불사의 의지로 일어서군 하였다.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순간에 동포들과 후대들에게 《경애하는 정일장군님을… 존경합니다. 하늘보다 더… 존경…합…니…다.》라는 유언을 남기였다.

지난 3월 7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일흔번째 생일을 맞는 나에게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시였다. 대를 이어 받아안는 그 사랑에 나는 흐르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돌려주신 하해와 같은 사랑과 은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백두산절세위인들을 충정으로 받들어모시였던 아버지처럼 우리모두의 하늘이고 운명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정다해 더 잘 받들어모시겠다는것을 이 뜻깊은 4월의 봄명절날에 더욱 굳게 결의다지게 된다.

 

국제문제연구원 연구사 한 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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