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3월 19일 《우리 민족끼리》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삶

 

봄빛이 무르익는 3월이다.

리인모동지가 형언할수 없는 적들의 모진 악형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를 지켜내고 조국의 품, 당의 품에 안겼던 잊지 못할 그 3월로부터도 어느덧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리인모동지를 따뜻한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여 영광의 상상봉에 내세워주시고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하늘같은 믿음과 은정의 세계는 오늘도 혁명전사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와 함께 길이길이 빛을 뿌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를 우리 당은 잊지 않고있습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째지게 가난한 이름없는 화전농의 아들로 태여나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오던 리인모동지가 혁명이라는 숭고한 세계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것은 주체19(1930)년 8월, 그가 12살나던 해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울리신 파발리의 총성을 현지에서 직접 듣고목격한 때부터였다.

아직은 혁명의 진리를 깊이 알수 없었던 그는 그후 전설처럼 들려오는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조국해방의 구성으로 굳게 믿고 따르게 되였으며 두차례에 걸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을 만나뵙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어둡던 강산에 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신 항일의 전설적영웅의 거룩한 영상을 우러르며 새 조국건설에 자신의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던 그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불행하게 체포된 때로부터 수십년세월 오로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매혹과 숭배를 절대적인 신념으로 간직하고 적들의 살인적인 고문과 지긋지긋한 감옥살이를 꿋꿋이 이겨내며 혁명가의 지조를 지켰다.

전향문 한장이면 쉬이 감옥의 문턱을 넘을수도 있었으나 그는 결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순간순간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세기적고문도 정을 주고 믿음을 주고 혁명가로 성장시켜준 백두산절세위인들에 대한 충정의 마음만은 결코 흔들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마음속기둥으로 삼고 감옥에서는 물론 출옥후에도 통일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걷던 리인모동지를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하루빨리 그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송환해오기 위한 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2(1993)년 3월 19일 리인모동지는 오매에도 그립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 사랑하는 처자가 기다리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에 되였다.

그때로 말하면 미제와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처해있던 참으로 준엄한 시기였다.

그 긴박한 정세속에서도 한 전사를 기어이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용이주도한 작전을 펼치시고 몸소 진두지휘해주신 신화같은 이야기는 아마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의 력사에도 없을것이다.

조국에 돌아올 당시 리인모동지의 건강상태는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악액질상태》였고 극도로 쇠약해진 심장기능, 페농양에다 운동기능상태는 령에 가까왔으며 심한 언어장애, 호흡장애에 음식을 넘기는 기능마저 거의나 마비되여있었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리인모동지의 생명은 이미 굳건히 담보되여있었고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사랑이 그를 지켜주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를 즉시 전문병원에 입원시키시고 그의 소생을 위해 사지외과로부터 신경, 혈관, 심장, 장기의 모든 부문, 심지어 치과에 이르기까지 가장 유명한 전문의사, 박사들로 치료조를 무어주시였으며 건강회복을 위해 값비싼 고급약들과 보약류, 건강식료품들과 지어 희귀한 남방과일까지 아낌없이 다 보내주시였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절세위인들의 육친적인 사랑속에 꺼져가던 그의 생명이 다시 활력을 받아안게 되였으며 잊을수 없는 주체82(1993)년 4월 15일에는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병원에까지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는 무상의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날 리인모동지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리인모동무는 원쑤들의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적지조와 절개를 지켜 용감히 싸워이겼다고, 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며 자신께서 몸소 수표하신 당원증을 수여해주시고 자신의 존함이 새겨져있는 금시계를 채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인모동지에게 안겨주신 조선로동당 당원증, 그것은 정녕 정치적생명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이 세상 가장 값높은 인생증서이기도 하였다.

수십년세월 쇠고랑을 차고 때없이 감행되는 야수적인 고문에 뼈까지 탈린 가는 팔목에 채워주신 금시계, 그것은 정치적생명의 은인인 어버이의 심장에 숨결을 맞추며 영원히 변치 말고 신념의 한길을 걸으라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불변의 태엽으로 삼아 돌고도는 인생박동기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보통강기슭의 서장동에 2층짜리살림집을 마련해주시고 옷장, 이불장, 천연색텔레비죤, 랭동기, 피아노 등 가장집물까지 그쯘하게 갖추어주시였으며 밀차를 타야 하는 리인모동지의 불편을 념려하여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없애도록 조치도 취해주시고 위생실, 세면장리용에서 불편이 있을세라 구석구석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리고 리인모동지를 전국로병대회때에는 주석단의 어버이수령님곁에 앉혀주시였으며 해마다 생일상을 차려주시고 귀중한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어디 그뿐이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직도 모자라는 사랑이 있으신듯 리인모동지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내세워주시고 변함없이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여갈수 있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생명이 꺼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빛나게 살려는 전사의 심정이 대견하시여 나라일에 바쁘신 가운데서도 손수 그가 쓴 글들을 밑줄까지 그어가시며 한자한자 보아주시였다.

그리고 글을 정말 잘 썼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며 당보를 비롯한 출판물을 통해 널리 소개선전할데 대한 은정도 베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리인모동지는 불편한 몸이지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참된 혁명전사의 고귀한 생을 빛내일수 있었으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할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에게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주시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가장 값높은 인생평가를 내려주신데 이어 생일 80돐에는 공화국2중영웅의 영예를, 그의 가슴에는 조국통일상을 달아주시였다.

영원히 변색도 퇴색도 모르는 혁명적신념의 원천을 주시고 량심의 청결한 꽃을 피워주시고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가 육체적생명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의 장례식을 《인민장》으로 하도록 해주시고 그의 령전에 친히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못다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평양의 통일거리에 그의 반신동상까지 세워주시는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리인모동지의 생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태양같은 은정과 크나큰 믿음,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혁명전사들에 대한 사랑과 의리의 세계속에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영생한다는것을 온 겨레에게 깊이 깨우쳐주고있다.

우리 천만군민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리인모동지를 본받아 당과 수령을 따르는 길에서 죽어도 혁명신념을 버리지 않을것이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이 땅우에 기어이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울것이다.

로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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