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4월 11일 로동신문

 

  수필

사랑의 친필앞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한평생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얼마전 취재길을 이어가던 나는 옥류교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옥류교》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한자한자 쓰신 사랑의 글발이다.

4월의 따사로운 해빛에 유난히도 반짝이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을 바라보느라니 나의 가슴은 뜨거움으로 젖어들었다.

60여년전의 잊지 못할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우수경칩에 대동강의 얼음은 풀리고있는데 인민들의 소원은 풀리지 못하고있다고 조용히 외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오늘 아침에 동평양에 나갔다가 오던 길에 보니 대동강의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는데 나루배가 얼음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고, 그래서 대동강웃쪽 사람들이 불편하게 에돌아 출근하고있었다고 하시며 아무래도 우리가 힘겨웁지만 다리건설을 앞당겨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시작된 다리건설이였다.

어느날 건설장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리이름을 놓고 인민들로부터 의견이 제기되였다는데 대하여 알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멀리 모란봉과 청류벽이며 릉라도와 반월도를 바라보시고 흐르는 대동강물결에 한동안 눈길을 보내시다가 일군들에게 참말로 이곳을 흐르는 대동강물은 글자그대로 옥류이라고, 예로부터 인민들이 즐겨부르는 옥류라는 이름을 따서 옥류를 건느는 이 다리를 《옥류교》라고 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불러볼수록 아름다운 조국강산에 대한 한없는 긍지와 사랑이 절절하게 안겨오는 이름이였다.

인민의 의사와 념원을 담아 대동강에 새로 놓는 다리의 이름을 친히 지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 다리의 이름도 친필로 써주시였다.

나의 생각은 깊어만 갔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한 사랑의 길을 이어가시며 남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이 옥류교에만 새겨져있던가.

해방후 난생처음으로 나라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된 기쁨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한 농민의 집에 들리시여 대문기둥에 몸소 써서 달아주신 문패며 김형직사범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나라의 곳곳에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세계의 자랑 서해갑문에는 또 얼마나 사연깊은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가 있는가.

20리 날바다를 가로막아 대동강을 대인공호수로 전변시킨 서해갑문!

갑문의 기념비에 대담하고 통이 큰 구상과 작전으로 서해갑문을 일떠세우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공적을 아로새겨 후손만대에 길이길이 전하고싶은것이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갑문건설의 공로를 건설자들에게 돌려주시며 력사가 영원히 추억하게 그 업적을 아로새겨주시였다.

그이의 마음속에는 이렇듯 인민,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다. 하기에 어버이수령님 생애의 마지막날에도 우리 인민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바쁘신 시간을 보내시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문건에 마지막친필을 남기시였다.

김 일 성

 1994. 7. 7.》

온 나라 방방곡곡에 새겨져 빛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에는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인의 한생이 뜨겁게 어리여있는것이거니. 바로 그래서 우리 인민 누구나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앞에서 눈굽을 적시며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해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칠 굳은 결의를 가다듬는것이 아니겠는가.

어버이수령님의 친필, 정녕 그것은 우리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이 깃든 축복의 글발인것이다.

 

본사기자 신철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