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9월 3일 《우리 민족끼리》

 

《우리가 보낸 9년의 세월에 대해 당신들이 대답하라》

 

지난 8월 31일 남조선언론 《자주시보》에 쌍룡자동차로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파업을 야수적으로 진압하고 투쟁에 참가한 로동자들을 해고시킨 리명박《정권》을 규탄하는 피해자가족의 편지가 실리였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족대책위에 참여한 안해들은 30대였다.

그래서 아이는 젖먹이가 대부분이였다.

소동은 늘 오전에 일어났다.

아침밥을 못 먹은것은 말할것도 없고 아이를 곁에 두는것조차 너무 위험해 급한대로 낯선 이에게 맡긴적도 있었다.

그러나 공권력은 아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저질렀다.

저공비행하는 직승기가 일으키는 흙먼지와 엄청난 바람, 압력을 느끼고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울어댔다.

어떤 날은 엄마와 아이들을 방패로 둘러싸고 조여들기도 했다.

어린 아기와 아이들이 있는데도 하늘에선 바닥으로 최루액봉지를 떨어뜨렸고 경찰은 눈앞에서 시위군중에게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며 남자들을 잡아갔다.

수년을 알고지낸 남편의 동료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앞을 가로막으며 우리더러 물러서라 하였다.

《너희들때문에 우리까지 죽는다!》고 하였다.

가슴이 찢어졌다.

상황이 나날이 무겁고 비참해져가는것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남편은 물도, 먹을것도, 전기도 끊긴 곳에 갇혀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고 생각하니 이불우에 눕는것도 괴로웠다.

아픈 마음으로 베개잇만 적셨다.

깊어가는 절망감을 떨쳐낼 소식이라곤 귀를 씻고 열어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설마, 설마 하던 … 내 상상을 찢고 남편들은 공장에서 나왔다.

100여명이 구속되였다.

감옥에 간 남편들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것도, 새로 태어난 셋째 아이의 얼굴도 못 보았다.

얼굴이 검게 타들어가고 속이 문드러지도록 참고참아도 무엇 하나 기쁜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반갑고 좋은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수 없었다.

석방되여 나온 남편들 대부분은 생계활동을 시작했고 일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복직투쟁을 지속했다.

웃을 일이 없었고 싸울 일은 많았다.

대화는 없어지고 서로 피해 안주고 각자 견디는것이 미덕이 됐다.

우울, 공황장애, 암, 리혼, 자살…

쌍룡자동차가족들 주변에서 떠나지 않는 불길한 소식들이다. 가족들은 이렇게 푸념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쌍룡차에 좋은 소식이 있을리가 있나.》

중요한 계기나 국면들이 있었다.

《대선》후보들의 방문, 《국정》조사, 회사와의 교섭, 고등법원판결, 《대법원》판결 같은 기회들.

하지만 오래된 푸념은 자꾸만 되풀이되였다.

삶에 대한 포기!

버림받은자들이 습득할수밖에 없는 무표정한 포기.

그게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삶이였다.

2009년 여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진실의 문이 조금 열린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지만 분한 마음이 더 드는 리유는 그동안 《정부》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해왔기때문이다.

우리가 보낸 9년의 세월에 대해, 이제 당신들이 대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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