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0월 26일 로동신문

 

력사의 갈피에서

 진짜 특급전범자 (2)

 

일제패망후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도죠를 비롯한 전범자들은 사형에 이르기까지의 각이한 형벌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첫번째로 꼽아야 할 특급전범자인 일본왕 히로히또는 법정에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전범자로 기소된 이전 시종장관 기도 고이찌가 재판정에서 히로히또가 군부에서 올라온 작전계획에 매일과 같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리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일본을 재무장시켜 아시아지배전략실현의 돌격대로 써먹는데서 《국민통합의 상징》인 일본왕을 그대로 살려두는것이 유리하다고 타산했기때문이다. 패망직후의 일본정치계도 맥아더를 대상으로 암암리에 막후공작을 벌렸다. 맥아더사령부는 최종적으로 일본왕을 살려두는것이 《20개 사단의 화력에 맞먹는》 가치를 가진다는 판단을 내리고 히로히또를 전범자명단에서 빼버렸다.

이렇게 놓고볼 때 도죠는 히로히또를 대신한 제물이나 같았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일제가 패망한 후 히로히또는 도죠를 만나 자기를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다할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즉 그가 전쟁의 모든 책임을 걸머지라는것이였다.

특급전범자로 락인되여 교수형을 언도받은 도죠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은것으로 하여 만사람의 지탄을 받았다. 오직 히로히또만이 도죠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편 일제패망후 히로히또는 특급전범자로서의 자기 정체를 감추어보려고 국민들과 세계를 얼려넘기는데 몰두하였다.

《인간선언》이라는것을 발표하여 일본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국가를 통치할수 있게 한 근본바탕인 자기의 《신》적인 존재를 《부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놀음을 벌렸다. 이것은 전범국의 최고통치자로서의 죄과를 감소시키기 위한 술책의 하나였다.

히로히또는 자기에게는 군국주의군벌들의 꾀임에 넘어가고 핍박에 견디여내지 못한 죄밖에 없다고 하면서 《피해자》로 둔갑해나섰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수감자에 불과하였다. 나에게는 아무러한 권력도 없었다.》고 횡설수설하였다. 히로히또가 자기 실록에서 《만일 전쟁을 주장하는 내각의 결정을 반대한다면 일본은 반드시 혼란에 빠지게 될것이였다.》고 주장한것은 자기의 죄를 어쩔수 없는 일로 여기게 하기 위한 간특한 말장난질에 불과한것이였다. 일본의 보수적인 력사학자들은 히로히또를 아무런 실권도 없었던 《허수아비군주》로 묘사하면서 전쟁책임을 도죠내각에 전부 넘겨씌웠다.

히로히또가 야스구니진쟈에 도죠를 비롯한 특급전범자들의 위패가 옮겨진 사실이 폭로되자 그에 대한 참배를 중지한것도 자기의 행적이 특급전범자들과 련루되는것을 두려워한 의식적인 회피였다.

하지만 력사적진실은 히로히또야말로 전쟁을 반대한 군주가 아니라 반대로 피비린내나는 침략전쟁을 명령하고 그 과정을 총괄한 제일가는 특급전범자였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이상의 사실들은 히로히또가 저지른 죄악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일본이 조선에서 감행한 모든 반인륜적죄악은 물론이고 다른 아시아나라들에서 저지른 온갖 치떨리는 만행의 막뒤에는 언제나 일본왕 히로히또가 있었다.

피비린 악행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명령하고 전범자재판에서까지 빠져나와 여생을 편안히 보낸 히로히또는 마땅히 세계의 정의와 량심의 규탄과 징벌을 받았어야 했다.

침략전쟁의 원흉이였던 일본왕 히로히또는 1989년 1월에야 죽었다. 오늘도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의 가슴속에는 그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있다.

 

본사기자 안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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