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24일 로동신문

 

그날의 령혼들은 피의 복수를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73년전인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경, 일본 교또부 마이즈루항입구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수역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련속적으로 울리면서 4 000t급의 배 한척이 두동강났다. 검푸른 바다에는 삽시에 수난자들의 비명소리가 차고넘쳤다. 배의 침몰로 수천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다.

해방의 기쁨과 나서자란 고향땅에서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소중한 꿈을 안고 귀향길에 올랐던 수천명 조선사람들을 날바다에 수장해버린 일제의 대중적학살만행, 그때의 참혹한 광경을 조선사람치고 과연 그 누가 잊을수 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과거 일제가 저지른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의 진상은 세월과 더불어 더욱 선명하게 밝혀지고있다.

력사는 단순히 시간의 루적이 아니라 모든 사실자료들의 체현자이며 진실의 거울, 정의의 심판자이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일제에 의한 조선인집단학살만행으로 력사에 기록되였다.

일본방위성 전쟁사자료실에서는 1945년 8월 19일 해군성 운수본부가 오미나또해군경비부 참모장앞으로 보낸 전보가 발견되였다. 《우끼시마마루》의 운항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전보는 오미나또해군경비부가 보낸 제181439호 전보에 대한 답전이였다.

당시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되는 선박들의 항행은 금지되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끼시마마루》의 운항이 허가되였다는것은 그자체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라는것을 잘 보여준다.

일본정부의 허가와 지시밑에 오미나또해군경비부는 《우끼시마마루》가 부산으로 가게 된다, 조선으로 가는 배편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회유와 기만으로 조선사람들을 배에 태웠다. 결과 《우끼시마마루》는 정원을 훨씬 초과한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태우고 오미나또항을 떠나게 되였다.

《우끼시마마루》의 항로문제도 까밝혀볼 필요가 있다.

《우끼시마마루》는 처음부터 부산이 아니라 폭침장소인 마이즈루항 앞바다로 항로를 정하고 떠났다. 이것은 애당초 배가 부산항까지 갈 계획이 아니였다는것을 명백히 말해준다. 폭발직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들이 부랴부랴 뽀트를 타고 달아난 사실도 폭침이 이미 계획되여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사고발생당시 일본은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의해》 폭침되였다고 주장하였다.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마이즈루항주변의 항로는 이미 기뢰해제가 끝나 안전하였다. 이날 많은 배들이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갔지만 모두 무사하였다.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의해 폭침되였다는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목격자들은 만약 기뢰에 의한 폭침이라면 폭발시 물기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더우기 기뢰는 한번밖에 폭발하지 않는데 배에서는 련속적인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폭발은 기관실이 있는 배밑에서 일어났다. …

선실안에 있던 동포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갑판우로 올라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때 갑판우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일본해군의 헌병노릇을 하던 백모라는 사람이 갑판으로 뛰여나오더니 〈일본놈들이 화약을 터뜨려 배를 가라앉게 하였다. 〉고 고함을 지르면서 물속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

이때에야 우리는 일본놈들에게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아우성과 함께 배는 바다물속에 잠기고말았다.》

이것은 《우끼시마마루》폭침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상담의 일부이다.

사실들은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기뢰에 의한 폭침설》이 과학성과 현실성이 전혀 없는 날조에 불과하다는것을 보여준다.

일본정부는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람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 스스로 《우끼시마마루》에 올랐고 《우연한 사고》로 어쩔수 없이 수장된것처럼 묘사하고있다. 이것은 범죄진상에 대한 완전한 외곡날조이며 일본특유의 파렴치성과 교활성의 발로였다.

일본반동들은 한명의 조선사람이라도 더 죽이는것으로써 패망의 앙갚음을 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그들은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과 같은 집단적인 조선인수장사건을 연출하였던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불가피한 사고》로 매듭짓고 흑막속에 묻어버리려고 획책하였다. 일본정부가 배의 침몰로 죽은 사람들의 정확한 수자와 주소, 성명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지어는 그 수자를 대폭 줄여서 발표한 사실을 놓고서도 알수 있다.

극악한 살인마들에 의해 감행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국제법적견지에서 놓고보나, 인도주의적견지에서 놓고보나 도저히 용납될수 없는 반인륜적범죄이다.

보다 엄중시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 시기에 이러한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집단살륙만행을 감행한것이다. 비록 패망은 하였지만 민족배타주의정책은 변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은것이나 다를바 없다.

사실이 그렇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지난 70여년간의 일본의 행적은 조선재침야망실현을 위한 책동으로 일관되였다. 조선에 대한 재침으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이루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야망은 어제도 오늘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 일본의 대조선압살책동은 더욱 악랄해지고있다. 먹이감을 덮치려는 독사처럼 우리 나라와 아시아대륙을 노리고 혀를 날름거리고있다. 일본반동들이 그 누구의 《위협》에 대해 떠들어대고있는것은 우리 인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모든 죄악의 행적을 덮어버리고 재침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나라에 대한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와 패망후 반공화국적대시정책으로 이어진 일본의 죄악의 력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지워버릴수도 덮어버릴수도 없다.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대조선적대시정책에 한사코 매여달리고있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민족적의분을 더 크게 자아내고있다.

마이즈루의 검푸른 바다에 한을 품고 수장된 그날의 령혼들은 오늘도 피의 복수를 부르고있다.

 

박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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