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8월 23일 《우리 민족끼리》

 

《박근혜와 량승태의 결탁, 너무도 이상했던 과거사 재심》(1)

 

지난 8월 19일 남조선언론 《민중의 소리》에 전두환군사깡패무리가 조작한 《한울회사건》에 대한 재심을 박근혜와 량승태가 결탁하여 《사법롱단》을 통해 군사독재시절의 사법부판단을 그대로 되풀이한데 대해 규탄한 글이 실리였다.

글을 련재로 소개한다.

일명 《한울회사건》은 《인혁당사건》과 《부림사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공안조작사건》이였다.

아직까지 상당수 피해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있다.

《량승태사법부》가 박근혜집권시절 재판거래 등 반헌법적《사법롱단》을 자행하던 때 이 사건은 재심에 회부됐다.

그러나 《량승태사법부》휘하의 재심재판부는 군사독재시절의 《정권》과 결탁했던 사법부의 판단을 되풀이했다.

독재《정권》이 한번 죽인 피해자들을 《량승태사법부》가 같은 론리로 한번 더 죽인셈이다.

박근혜는 과거 독재《정권》이 《국민》에 행한 폭력에 대해 무심하고 그에 따라 어떠한 반성도 없다.

《과거의 일은 묻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진정한 사과 없이는 공허하다.

《국민》에 의해 끌려내려온 박근혜는 짧은 임기동안 력사교과서 《국정화》를 중요하게 추진했다.

량승태 전 《대법원》 원장은 《상고법원도입》이라는 자신의 숙원사업을 임기내에 이루기 위해 이같은 박근혜의 신념을 뒤받침하기로 했다.

《국민》이 피흘리며 쥐여준 《사법부의 독립》을 내팽개치고 느닷없이 행정부의 수장에 머리를 조아리는 황당한 일을 자행했다.

량승태가 박근혜와의 청와대오찬회동이 있던 2015년 8월 6일 그에 앞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약 10일전인 7월 27일 《현안관련말씀자료》라는 문건을 작성한다.

화일명 《과거외곡의 광정》이라는 해당 문건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뒤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며 《무엇보다 먼저 외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하였음.》이라고 적혀있다.

《량승태사법부》는 청와대와의 오찬에서 박근혜《정권》의 입맛에 맞는 과거사판결을 해왔다고 자화자찬하며 또 앞으로 그럴것을 맹세했다.

두사람이 통한 그 시기 그 지점에는 《한울회사건》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의 재심은 이 시기인 2015년 개시됐고 2017년 또다시 유죄판결을 받았다.

《과거사외곡의 광정》이라는 두사람의 공통된 목적속에 《한울회사건》은 정말 없었을가.

재심이 열렸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권고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한차례 기각했다.

그뒤 기각결정에 항소해 얻은 재심의 기회를 《대법원》은 재심개시취지로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이 허락한 재심은 허울뿐이였다.

《한울회》라는 명칭은 검찰과 경찰이 부른 용어로 애초 이들은 한울모임이라는 신앙단체였다.

이들은 전두환군사깡패와 그가 벌린 1980년 5월 광주학살만행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국가보안법》위반혐의, 5. 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군페지를 주장했다며 《계엄법》위반혐의 등을 받았다.

이들이 정말 벗고싶던 루명은 그 시절 한울모임이 《한울회》라는 《반국가단체》였고 이에 따라 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이라는것이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보안법위반은 유죄이므로 심리할 필요가 없고 5. 18민주화운동법에 따라 《계엄법》 등 혐의에 대해서만 심리범위를 한정하는 취지로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계엄법》혐의의 경우 5. 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 18민주화운동법)에 따라 현재는 당연히도 재심이 열리게 되면 대개가 무죄를 받는다.

이 법은 전두환 등 신군부관계자들의 범죄혐의가 속속 드러나던 시기인 1995년 12월 21일 제정됐다.

결국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1월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5. 18 관련혐의에 대해서만 심리하는 일부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졌다.

《대법원》 판단을 굳이 뒤집을 판사가 드물었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허울뿐인 재심개시결정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형사 23부 리민걸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판단을 절대 거스를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리민걸판사의 인사이동리력을 살펴보면 그는 법원행정처와 법원을 종횡무진 오가며 승진을 놓치지 않던 《엘리트》판사였다.

법원에서 일선판사로 일하다가 법원행정처로 가는것은 대부분의 판사들에게는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은것으로 여겨진다.

보통 법원판사로 10년간(군법무관 경력포함) 근무하게 되면 법원행정처 심의관급으로 가게 되는데 이는 사법연수원 동기 중 2~3명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고 한다.

이후 다시 법원에 복귀해 15년 정도 부장판사로 근무하게 되면 법원행정처 총괄심의관급으로 2년 정도 일할 기회를 얻게 되고 20년간 판사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이후에는 또 2년정도 법원행정처 실장급으로 일하게 되는 식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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