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7월 18일 《우리 민족끼리》

 

반일애국지사, 통일애국인사로 영생하는 몽양 려운형선생 (1)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을 지니고 해방후 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견결히 투쟁한 전 인민당 당수였으며 조국통일상 수상자인 려운형선생이 사망한지 70년이 되여온다.

이날을 맞으며 온 겨레는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몽양 려운형선생과 그의 자녀들에게 대를 이어 베풀어주신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된다.

민족의 수난사를 겪으며 겨레의 운명을 구원해줄 구세주를 목마르게 기다려온 려운형선생이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넓은 품에 안긴것은 주체35(1946)년 2월 11일이였다.

그가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우리 나라가 북과 남으로 갈라진후 사선을 헤치고 평양으로 찾아온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만이 남조선인민들이 나아갈 앞길을 명확히 밝혀주실수 있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이날 몸소 려운형선생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알고싶어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은 절대로 일부 사람들이 부르짖는 미국식《민주주의》의 길을 걸어서도 안되며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하여도 안된다는것을 밝히시고 조선혁명의 성격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조선식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조선식으로 건국사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조선사람에게는 미국옷도 맞지 않고 쏘련옷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맞지도 않는 다른 나라의 옷을 입을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맞는 조선식옷을 만들어 입어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조선인민은 조선식민주주의의 요구에 맞게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수립하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국사업에서 절대로 외세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외세를 믿을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선민족의 단합된 힘을 믿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건국사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전민족이 하나와 같이 굳게 단결하여야 합니다.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정견의 차이가 있건 없건 관계없이 제국주의와 봉건을 반대하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적인민들이 굳게 단결하여야 새 민주조선을 건설할수 있습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튼튼히 묶어세우려면 민주주의적인 통일전선을 굳게 형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통일전선사업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을 바로잡고 하루빨리 남조선에서 민주주의적인 통일전선을 튼튼히 형성하는데서 중요하게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려운형선생은 조선식이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분명 수령님의 교시에서 기성의 리론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자기 인민의 힘을 느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려운형선생의 가슴에 절절히 울리였다. 참으로 난생처음 들어보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애국의 진리, 투쟁의 진리, 혁명의 진리였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려운형선생에게 기별도 없이 왔으니 집에 가서 조밥이나 같이 들자고 하시며 그를 데리고 댁으로 가시였다.

그이의 댁으로 간 려운형선생은 생각했던바와는 너무도 다른 방안과 가구들을 보며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갈하고 깨끗하기는 하였으나 너무나도 검소하였기때문이였다.

이윽고 식사가 들어왔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겸상을 들고들어와 조심히 내려놓으며 식찬이 변변치 않지만 많이 잡수세요라고 하시면서 려운형선생에게 인사를 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숙동무, 이분이 바로 려운형선생이시오.라고 하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광복전에도 잘 싸우시고 지금도 견결히 싸우시는 선생께 경의를 드립니다라고 허리굽혀 인사를 하시였다.

(바로 이분이 이름난 백두산의 녀장군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찌 이토록 수수하고 평범할수 있으랴.)

려운형선생은 김정숙동지의 영채도는 눈매, 당돌하고 민첩한 몸가짐, 맑고 청아한 목소리, 티없이 밝은 미소, 온몸에 배여있는 담찬 기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한 손님이 내 집에 왔는데 식찬이 변변치 않아 미안합니다. 이제 통일정부를 세운 후 선생께 꼭 성찬을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그에게 수저를 들려주시였다.

자개도 박지 않은 보통 밥상우에는 팥물을 올린 조밥에 구수한 토장국, 두부찌개, 무우장아찌, 산채볶음, 고추절임, 조개구이 등외에 색다른 찬도 없었다. 려운형선생이 수수한 밥상에 의혹을 감추지 않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술, 담배를 안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 집에 와서야 한잔 해야지요.라고 하시면서 놋잔에 술을 가득 부어 려운형선생에게 주시였다. 그는 《예, 고맙습니다. 달게 들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사실 려운형선생은 해방전이나 해방후나 술을 입에 대본적이 없었다. 원래 그는 일찌기 술과 담배를 배웠지만 《을사5조약》조작후 국채보상절연운동에 참가하면서 술과 담배를 딱 끊었다. 조선이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로 입에 안대겠다는 결심을 그는 독실하게 지켜왔다. 해방이 되자 친지들이 이젠 마시라고 권했지만 려운형선생은 나라가 통일된 다음에야 마시겠다고 하며 여전히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김정숙어머님께서 부어주시는 술을 다 마셨던것이다.

려운형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 끊었던 술을 40년만에 처음으로 마셨다고 하면서 꿈속에서만 그리던 그이를 만나뵈운 오늘은 자기가 세상에 다시 태여난 날이며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말씀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부어주신 약주를 달게 마시고나니 웬일인지 지나온 곡절많은 인생이 돌이켜진다고 하면서 미국에 기대를 걸고 독립청원서를 써서 빠리강화회의에 보낸 일도, 쏘련(이전)의 힘을 빌어 독립을 해볼가, 중국의 힘을 빌어 독립을 해볼가 정신없이 뛰여다닌 일도 스스럼없이 말씀드렸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물도 많고 과실도 많은 려운형선생을 탓할 대신 모진 괴로움과 역경속에서도 끝까지 민족적지조를 지켰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화제는 다시 정치문제로 옮겨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나서 려운형선생은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지고 조선이 나아갈 길이 환히 내다보인다고, 남조선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의 이름있는 정치가들도 많이 만나보았지만 수령님 같으신분을 만나뵙기는 처음이라고,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을 드린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여 우리 조선에 대통운이 텄다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힘자라는껏 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그날로부터 오래동안 위대한 수령님의 댁에 머물러있으면서 따뜻한 지도와 분에 넘친 배려를 받았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탁월한 령도력을 지니신 희세의 정치가이실뿐만아니라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인민의 수령이시였다.(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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