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사회주의 지배인동지와 남측 자본주의 사장님의 이야기(김이경)
2012-07-16 08:37:58, 조회수: 1,903
지배인: "엘리베이터 설치해 달라우. 동무들 허리 다치겠음메"
사장님: "쩝쩝..."
김이경: "웬, 엘리베이터! 넘 심하지 않아요?"
사장님: "내 돈으로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안 되겠소? 내가 감동 받아서..."
김이경: "으잉!"
[풍경10-북측 룡성구역 장류공장 지배인과, 남측 웰빙 사장님]
2012년 07월 11일 (수) 14:54:16 김이경
김이경 / 겨레하나(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북한을 가장 많이 들락날락했을 김이경 ‘겨레하나’ 사무총장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 총장은 6.15시대 이후 북한을 100번쯤은 오갔으며 어떤 때는 한 달에 서너 차례 평양, 개성, 금강산 등을 찾았습니다. 물론 방북을 많이 했다는 게 특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4년여에 걸쳐 한 차례의 방북도 쉽지 않은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김 총장의 유별난 방북은 지금 시기 가장 돋보이기도 합니다. 대북 지원사업과 남북 교류협력을 통해 김 총장이 본 북한과 북한사람들은 어떨까요? 이 연재는 겨레하나의 블로그와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남북이 협력사업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양 체제의 차이가 갑자기 드러나는 돌발 상황이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남쪽 후원자들 앞에서 남쪽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발언을 하는 북측 공장 지배인들도 있고, 역으로 남쪽 방문객들이 북측을 매우 민망하게 할 질문들을 쏟아내어 여러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북측의 안내원이나, 남측 대북협력 사업자들이 슬기롭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임기응변과 기지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 대북사업자들보다는 해당 사업 방북 관련, 남쪽 전문가들이 훨씬 더 북의 고민을 빨리 이해하고 답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번 글은 함께 방북했던 기계 제작 납품회사 사장님이 내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준 이야기이다.
평양 룡성구역에 장류공장 설비를 지원할 때였다. 장류공장이란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공장을 말한다. 북이 장류공장을 짓고 싶은데 남측에서는 현대화된 기계와 전기 승압장치 등을 지원해주고(주1) 북에서는 공장건물과 노동력을 맡아서 공장건설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방북할 때마다 룡성 장류공장 책임자가 부탁하는 지원 요청 품목이 자꾸 추가되어, 우리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비용이 늘어나면 우리의 예산으로는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 협력사업을 할 때마다 발생하는 일이지만 공장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해야 한다던가, 공장을 운영하는 집기나 소모품 등을 추가로 요청하곤 한다.
북에서는 공장 건물과 노동력만 대고 나머지는 남쪽에서 협력하기로 정리된 사업장인지라, 북에서의 자체적인 예산은 받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는 기계 설비와 전기공사에 관한 것 빼고 웬만한 것은 다 거절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런 과정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안타까운지... 북의 사정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도 처음 후원자를 확보할 때 세운 예산을 초과할 권한과 능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
설비 조립이 거의 완료되고 그 점검 차 방북했을 때였다. 당연히 남쪽에서 기계 설비 설치 전문가가 같이 동행하였는데, 그분은 남쪽에 웬만한 대규모 된장 고추장 회사들의 공장건설을 맡아했다는 사장님이었다.
▲ "엘리베이터 설치해 달라우. 동무들 허리 다치겠음메" "쩝쩝..." [겨레하나 제공]
대략의 설치와 정상가동 상태를 점검하던 중 노동자가 삶은 콩 함지를 얹은 지게를 메고 철 구조물로 만든 계단 몇 개를 올라가 콩을 분쇄기에 쏟아 붓는 부분에서 북측 공장 지배인이 우리 사장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내용인즉 그곳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무거운 콩 지게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노동자의 허리와 어깨가 무사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헉...!’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그러면서 남쪽 웬만한 고추장 된장 만드는 대기업의 기계 납품을 해보았는데, 어디에도 그런 설비를 갖춘 곳은 없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그냥 노동자가 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쪽 사장님의 답변에 북 공장 지배인은 더욱 황당해 했다. 너무 당연한 설비 아니냐고! 남측에 그 크고 화려한 공장들에 그 정도의 자동화 시설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 "웬, 엘리베이터! 넘 심하지 않아요?" [겨레하나 제공]
나는 실제 우리 식품회사 대기업에 그런 자동화 설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 사장님 말이 그런 게 없다니 그런가보다 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북측이 좀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남쪽이 인도지원으로 어렵게 자금을 구해 가까스로 그 사업을 할 경비를 마련하는데 남쪽에도 없는 웬 자동화 설비? 그것까지 주문하는 거는 너무 심하지 않나?
쉬는 시간이었다. 사장님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그 설비를 해주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다. 그 사장님은 이 사업의 실제 후원자인 안성시로부터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고용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돈을 내서 지원을 해주어야할 그 어떤 의무도 없는데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 "내 돈으로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안 되겠소? 내가 감동 받아서..." "으잉!" [겨레하나 제공]
“아니 왜요? 거절하면 되는데, 사장님이 비용을 내서 하신다고요?” 내가 물끄러미 사장님을 쳐다보자 사장님 말은 더 뜻밖이다. 사장님 본인이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다는 답변이었다. 자기가 지금은 사장이지만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 출신인데, 노동자의 어깨와 허리를 걱정해주는 경영인이나 관리인은 없었단다. 작은 문제이지만 남쪽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북이 사회주의라더니 그래서 그런지 남쪽과는 좀 다른 것 같다고 하였다.
망연자실... 똑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은 말을 듣고 나는 그 사장님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남쪽에도 없는 더 세련된 기계 설비를 요구하는 것 같아 약간의 짜증까지 난 상태에서 어떻게 거절할지를 고민 중이었는데 사장님은 감동을 받았다니?
사장님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책을 통해 관념적으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배웠는데, 노동자들은 힘든 노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 차이인가? 책상에서 배운 이론적 이해와 삶을 통해 얻은 실제적 감수성의 차이인가?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노동자 혹은 노동자 출신이 겪는 고통도, 분노도, 따라서 노동현장이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주견도 없다...!!
갑자기 우리 사장님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장사치인 줄만 알았는데, 인정이 있고 사람의 삶을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는 철학을 가진 분이었구나!
나는 남북 협력사업을 할 때마다 합의안을 이행하기에 급급하여 정작 중요한 자기 성찰의 좋은 계기를 스쳐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일은 갑자기 내가 애초 남북 민간교류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것은 남쪽과는 전혀 다른 체제인 북녘에서 북쪽 분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서 우리와는 무엇이 다른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이 어떻게 확인되는지, 남북의 협력과정을 통하여 남북 모든 사람들의 분단이 어떻게 함께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입견과 좁은 틀에 얽매여 있었던 나 스스로를 해방하는 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류공장을 건립하고 준공식 이후 몇 년 동안 그 공장을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로 했으면 가볼 일이 있었으련만 공장 지어주는 것으로 완료된 사업이었기에 그후 현장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사장님이 지어준 그 자동화 설비를 사진으로 찍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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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지원사업의 주체는 안성시였다. 안성시는 안성시 소속, 바우덕이 풍물패의 평양 공연을 성사시킴으로서, 바우덕이 풍물패의 우수성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싶어했고 북은 장류공장을 지음으로써, 그 공연의 성사를 위한 북 내부에서의 명분을 만들자고 했다. 안성시의 장류공장 지원기금은 안성에 있는 기업의 후원이었다.
출처: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