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19세기초-1864년)는 조선봉건사회 말기의 재능있는 지도지리학자이다.

자는 백원, 호는 고산자라고 하였다.

일찍부터 지리 및 지도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있던 그는 외래침략자들의 침략이 날로 더욱 강화되는 형편에서 국방을 강화하고 인민들에게 자기 국토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를 만들것을 결심하고 봉건정부에 제기하였다.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은 그의 애국적제기를 거부하다 못해 오히려 그를 박해하였지만 그는 자기의 뜻을 버리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지도제작에 힘을 기울여 1834년 《청구도》라는 조선지도첩을 만들었다.

그후 그는 《청구도》가 너무 번잡하고 일부 자료들도 부정확하다는것을 느끼고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 위해 근 27년간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현지조사와 측량, 측정사업을 하였다. 그 과정에 그는 당시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았던 백두산에 두번씩이나 오르내렸으며 마침내 1861년 축적 16만 2 000분의 1의 조선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작출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동여지도》를 통해 봉건국가의 기밀을 루설시켰다는 터무니없는 죄명을 쓰고 체포구금되였으며 1864년 감옥에서 희생되였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온성으로부터 제주도까지 전 국토를 지구의 위도선에 따라 22개 부분으로 나누고 병풍식으로 접어 책처럼(첩본) 만들었으며 그 하나를 1첩으로 하였다. 이렇게 22첩의 전체 도면을 합치면 33㎡의 조선지도가 된다.

이 지도는 지형, 지물 등 자연조건과 력사, 경제, 문화, 군사 등에 관한 광범한 내용이 포괄되여있으며 그 구체성과 실용성으로 하여 여러번 재판되였다.

《대동여지도》는 당시 측정수단들이 발전하지 못하여 정밀성에서 일정한 부족점이 있고 시대적제한성으로 지도의 기호표시에서 유교적관점을 반영하고있으나 당시 나라의 자연과 국방, 경제와 문화연구에서 자료적가치가 큰 과학문화유산의 하나로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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