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성시에는 사람들로부터 권투할아버지로 존경받는 김귀하로인이 살고있다.

올해 나이가 75살인 그는 젊은 시절에 일본프로권투계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조국의 품에 안긴 후에는 우수한 권투선수들을 많이 키워 조국의 체육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일본으로 끌려간 가난한 막벌이군가정의 둘째아들로 태여난 그는 18살 나던 해에 일본권투구락부에 들어간 후 전 일본 페자급, 라이트급, 미들급의 패권자로, 동양미들급의 패권자로까지 되였다. 그가 경기마다에서 련전련승하여 조선사람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게 되자 일본반동들은 갖은 모략과 압력을 가하며 그의 국적을 바꾸어보려고 비렬하게 책동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해외공민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고마운 어머니조국이 있었다.

그는 당당한 조선의 체육인이 되여 조국을 빛내일 결심을 품고 주체55(1966)년 4월 귀국의 배길에 올랐다.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는 평안남도 순천시 체육구락부(당시) 권투감독, 도체육단 권투감독으로 사업하면서 유망한 권투선수들을 많이 키워냈다.

나라에서는 권투선수후비육성을 위해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는 그의 안목을 넓혀주기 위해 대학에 보내여 공부하도록 하여주었고 그가 키워낸 선수들이 국제경기들에서 우승하였을 때에는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와 명수칭호도 안겨주었으며 그의 세 자식들도 공부시켜 권투감독으로 내세워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김귀하로인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렸지만 그는 오늘도 훈련장에 자주 나가 조국의 영예를 떨쳐갈 권투선수들을 키워내는데 자기의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있다.

사진 로남철, 글 윤금철

 

일본에서 프로권투선수생활을 할 때의 김귀하 (왼쪽에서 첫번째) 와 그에 대하여 쓴 체육실화

 

청천강체육단에서 권투감독으로 있는 맏아들 김성덕

 

자손들과 함께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김귀하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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