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 조국땅 그 어디에서나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과 그 품에 사는 크나큰 긍지와 행복, 한없이 귀중한 삶의 보금자리인 어머니조국을 영원히 지키고 빛내갈 이 땅의 천만군민의 지향과 의지를 절절하게 반영한 노래 《조국찬가》가 전인민적인 합창으로 끝없이 울려퍼지고있습니다.
노래 《조국찬가》는 백두의 천출위인이시며 절세의 애국자,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높이 모신 위대한 시대에 사는 우리 인민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시대의 명곡입니다.
애국가의 장중한 선률과도 같이 숭엄하게 울려퍼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세심한 관심과 지도를 받으며 나의 아버지가 《애국가》를 창작하던 때의 이야기를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군 합니다.
온 나라가 해방의 기쁨에 끓어번지던 주체35(1946)년 9월 어느날이였다고 합니다.
오매에도 뵙고싶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의 창작가들을 몸소 불러주시고 나라의 주인이 된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애국가》를 지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애국가에는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담아야 한다고 그 창작방향과 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주체36(1947)년 6월에는 《애국가》에 대한 시청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리면상선생과 아버지를 비롯한 작곡가들이 지은 여러곡을 들어주시고 아버지가 창작한 곡을 《애국가》로 선정해주시는 크나큰 믿음을 베풀어주시였으며 노래의 장중한 성격과 참뜻이 더 힘있게 살아나게 후렴부분을 반복하여 부르도록 그 형상방도까지 세심히 밝혀주시였습니다.
이렇듯 몸소 그 창작사업을 발기하시고 하나하나 세심히 지도하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따사로운 손길이 있어 해방된 인민의 기상과 지향을 전인민적인 사상감정으로 격조높이 노래한 새 조선의 국가, 아름답고도 숭엄한 정서를 뜨겁게 안겨주는 장중하고 품위있는 조국송가인 《애국가》가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후에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속에 《민주청년행진곡》과 《우리의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여러편의 노래들과 기악곡들을 창작할수 있었습니다.
한없이 자애로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도록 하고 나라를 빛내이는 《애국가》를 창작한것은 그의 큰 공로이며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하시면서 아버지에게 주실수 있는 온갖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시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버지를 우리 나라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수훈자로,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 인민예술가로 내세워주시였을뿐아니라 아들, 손자들까지도 주체음악예술의 요람속에 안아 재능있는 작곡가들로 키워주시였습니다. 저의 눈앞에는 지금도 아버지의 생일 80돐을 계기로 맏아들과 막내아들인 제가 작곡한 노래들까지 다 넣어 가족음악회를 열도록 하여주신 어버이장군님의 배려로 만수대예술단을 비롯한 이름있는 예술단체들과 평양학생소년궁전 예술소조원들까지 참가하여 동평양대극장의 화려한 무대에서 음악회를 가지던 그날의 감격과 환희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정녕 나라없던 그 세월에는 막벌이로동자로 떠돌아다니며 음악학교문전에도 못 가본 아버지가 해방과 더불어 온 세상이 다 아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사회주의조선의 국가인 《애국가》와 같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주옥과 같은 송가들을 창작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백두산절세의 위인들을 위대한 수령으로, 스승으로 높이 모시였기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절세의 위인을 높이 모신 위대한 시대가 명곡을 낳습니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이 세상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을 받아안은 우리 일가족모두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신 오늘의 긍지높은 시대를 만방에 소리높이 자랑하는 《조국찬가》와 같은 시대의 명곡들을 더 많이 창작하고 더 높이 부르며 충정의 대,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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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곡하고있는 김원균선생 |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 있는 김원균선생의 동상 |

가족들과 함께 있는 김원균선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