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복(1758-?)은 봉건지배계급을 풍자조소하는 풍속화를 많이 창작하여 우리 민족의 회화발전에 이바지한 이름있는 풍속화가였다.
자는 립부, 호는 혜원이라고 하였으며 도화서 화원으로서 첨사벼슬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지니고있던 신윤복은 당시 화단에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진보적인 화가들에게서 현실을 보고 대하는 사실주의적창작방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김홍도, 리인문, 김득신과 함께 18세기말~19세기초 이름있는 미술가로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김홍도가 농촌생활상을 위주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면 신윤복은 도시생활형상으로 당시 사회의 각이한 계층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알수 있게 하는 훌륭한 인물화들을 많이 창작하여 중세회화사를 풍부히 하고있다.
사실주의적수법을 지향한 그의 작품들에서는 부패타락한 봉건통치배들과 승려들을 비롯한 사회기생충들의 위선과 패륜패덕행위를 신랄히 비난, 조소하고있으며 하층인민들의 생활을 다방면적으로 형상하여 그들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있다.
그는 자기의 붓으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각이한 생활을 보여주었으며 작품들에서 심각한 사회계급적모순을 예리하게 해부하였다.
대표적인 그림들로서는 《주막》, 《배놀이》, 《봄나들이》, 《가야금타기》를 들수 있다.
그림 《주막》은 먼길을 오가던 길손들이 드나들던 주막집 안뜰을 부감도형식으로 실감있게 펼쳐보이고있는 작품이다.
잘 정돈된 가장집물들과 부엌세간들이 가쯘하게 갖추어진 집안에서 곱게 단장한 주막집녀인이 먼저 들어와앉은 손님에게 술을 따르려고 하는데 뒤늦게 뜰안에 들어선 량반들이 그들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고있는것을 부뚜막옆에 서있는 하인인듯 한 사나이가 의아쩍은 표정으로 지켜보는것을 형상하고있다.
그림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화가의 예리한 관찰에 기초함으로써 봉건적신분제도가 서서히 무너져가고있는 당시의 시대상을 예술적형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화가 신윤복은 꾸준한 탐구와 사실주의적창작태도로 당시 근대적으로 발전하는 우리 민족회화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주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